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Farewell to Yahoo!


 
Farewell to Yahoo!








2007년 9월 30일 이래, 야후 블로그에 "심심하면 카메라 뜯어보기" 라는 블로그 타이틀로 포스팅을 시작한지 벌써 거의 4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분들과 소중한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무길도한량은 오늘부로 야후를 떠나 새로운 곳에 초막을 짓고자 합니다.
사실 야후의 블로그 업그레이드 이후 그동안 여러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들로 포스팅에 불편을 겪어, 야후 블로그측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야후측으로서도 아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임을 밝혀와 무길도한량은 심사숙고 끝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포스팅을 보시면 아마도 그 구체적인 문제점들의 일부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떠나는 마당에 굳이 야후를 탓하기는 싫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히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무길도한량은 또한 야후에 감사를 드립니다.
4년여의 시간 동안 약 500편에 달하는 보잘것 없는 나의 글들의 거처를 제공하였고, 또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저에게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 멋지고 사용하기 편리한 야후 블로그로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무길도한량은 구X로 자리를 옮겨 '무길도한량의 고물창고' 라는 새로운 문패를 답니다.
그곳은 야후처럼 멋지진 않아도 큰 불편없는 블로그 포스팅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히 감사드리오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길도한량 배상.

(2011.07.25)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의 엉터리 같은 스팸체크 관계로 글이 포스팅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 글에 스팸성이 있다고 하네요. ^^

죄송합니다. (무길도한량 올림)
(2009.08.12)


--- 3일 후

다행히 다시 정상적으로 되는 모양입니다.

(저도 스팸을 좋아하지 않응께... 
단, 통조림 스팸은 좋아하지요.^^)

성원 보내주신 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꾸벅)
항상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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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라의 여인



스톨라의 여인








더위도 식힐 겸 아픈 허리 운동도 할겸 아이들과 목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따땃한 8월 아침 햇살이 눈을 제법 자극하지만, 푸른 숲에 둘러싸인 목장을 보면서 마음이 이내 가벼워졌다.
멀리서 말들이 코파람 부는 소리, 나보다 더 큰 송아지가 엄마 찾는 소리...
학창시절 배웠던 '목장길 따라'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내친 김에 2절도 한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람 고백하기 좋았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랑 고백하기 좋았네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아, 더 멋진 3절도 있는데...
아이들의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진도를 못나가게 한다.

아빠, 아빠,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가 무슨 뜻이야? 
???

아- 아이들은 왜 어른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걸까?
두런 두런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대답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야아~, 저기 양들 좀 봐라~
화제를 얼른 바꾸어 일단 긴급위기상황을 모면해낸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부랴부랴 컴퓨터부터 켜고 스톨라 품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한다.
아빠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는가...
그러나 정확한 답은 찾을 길이 없고, 비스므레한 조각자료들만 찾아낼 수 있다. --;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자료를 잘 찾는다는데, 아무래도 난 아닌가 보다.

일단 슬로바키아 북쪽에 있는 지명에서 Stola 를 찾아냈다. (OK, 요건 쓸만하다)
이 노래가 보헤미아 민요이고 보헤미안 지방이 그 근처에 있으니 일단 stola 는 보헤미안 지방의 한 고장이라고 하자.
이 지방엔 집시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기존 사회의 관습과 질서에 구애되지 않는, 좋은 말로는 자유분방하게, 나쁜 말로는 방랑천리 떠돌아 다니는 습성이 있어 이것이 보헤미안의 뜻처럼 쓰이기도 한다.

다음, poompa 는 정말 찾기가 어려웠는데...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떠돌아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음악해설 중 poompa 를 여성성기를 가르키는 비속어로 쓰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여자를 지칭하는 대(代)명사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stola poompa 는 "스톨라에 사는 여인" 이란 뜻일 수도 있겠고 (마치 '아를르의 여인' 에서 보듯), 끝에 짧게 poom 한 것은 poompa의 애칭으로 poom! 
...안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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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에, 어불성설에,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쪼가리 지식으로 뭔가 그럴싸 하게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몰라 하는 것보단, 그래도 뭔가 끄나풀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인 효과가 더 좋은지 나쁜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3절을 읊어보자.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응 응 응

마지막 여인을 한글로 더 짧게 줄이니 별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 되는 관계로 좀 더 애교스런 다른 말로 바꿨다. 

수 많은 외국 민요들을 채보하고 번역하여 우리들의 즐거운 캠프송 포크송으로 만들어 보급하신, 싱어롱 프로그램의 대가 전석환님께여쭤보아야 할 문제인듯 하다.
'조개껍질 묶어', '목장길 따라', '석별의 정', '사모하는 마음', '그리운 고향', '꼬부랑할머니가' 등등건전가요집에 수록된 수 많은 노래들이 그 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니...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척 나타나셔서 모든 사람을 건전한 노래를 통해 하나로 만들어주시던 전석환님이야말로 통기타의 절대원조라 할 수 있는 분이다.

목장길 따라 산책한 후, 아이들은 가벼운 샤워를 하고 몸을 식히려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릇에 담고있다.
적당히 끼어들어가 스톨라 품파 이야기를 해주어야 되겠는데... 생각하고 틈을 엿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그런 것이 있었는지... 하는 눈치다.
그들은 스톨라의 여인을 목장길에 두고 왔나보다.

에이, 나도 더운데...
먼저 퍼놓은 아이스크림을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당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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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

수박냉차와 딱성냥

수박냉차와 딱성냥





   
         

벌써 밤하늘엔 별들이 한가득 한데 아빤 아직도 오시질 않는다.
평상 한가운데 누워 하나 둘 별을 세던 아랫집 진이는 이젠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포대기에 쌓인 채로 칭얼거리던 동생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어머니 등 뒤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있다.
진이가 대(大)자로 펼쳐누운 평상의 주변을 돌아가며 한귀퉁이씩을 차지한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 소리는 도란도란 들려오고 밤의 한기가 내리는지 서늘해진 저녁 공기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의 따뜻한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엄마,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줘...
엄마가 섬그늘에?
불쑥 꺼내는 소년의 말에 어머니가 되물으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하는거 있잖아.
으응, 그래.
어머니는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저 아래 동네에선 신작로를 내느라 우리 동네 밑에 자리한 바위산을 깨내는 다이너마이트가 수시로 뻥! 뻥! 터지고, 바위가 튀지 않도록 덮은 가마니들은 하늘 높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저러다간 우리 동네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머닌 우리가 그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하루에도 몇차례씩 주의를 주셨다.

때 이른 더위는 어린이날이 지나기 무섭게 반팔이며 양산이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어느날은 수박냉차 아저씨까지 낑낑거리며 짐자전차를 끌고 우리 동네까지 올라왔다.
그가 올라올 때 자전거 뒤켠으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가마니들이 날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졌다.

덥기로는 그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더운 것처럼 보여서, 저렇게 땀을 흘리다간 싣고 온 냉차를 아저씨가 혼자 다 마셔도 부족할 듯 싶었다.
그는 공터 옆 처마 밑 그늘에 털썩 주저앉더니 챙 좁은 밀짚모자를 뒤로 조금 제끼고, 이상한 푸른색 무늬들이 어지럽도록 마구 새겨진 셔츠의 윗단추 두개를 풀었다.
그리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한쪽 끝을 잡고 두어번 탁탁 털어내 손수건을 넓게 펼친 후 얼굴이며 목에 난 땀을 마구 문지른 후 수건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목도리 마냥 뒷목에 걸쳤다.

그가 커다란 수박 한덩이와 얼음이 담긴 냉차통에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를 끌어내려 유리컵에 넣자 유리컵엔 금새 갈색 액체가 가득 차올랐다.
냉차통을 향해 빙 둘러선 아이들을 향해 건배를 하듯 유리컵을 들어보이더니 냉차아저씨는 단숨에 그것을 자신의 긴 목 속으로 털어넣었다.
캬아~, 시원타!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어이 시원해, 어이 시원해 하는 소리를 연방 내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셔츠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가치를 입에 물은 후 딱성냥을 구두굽에 그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이자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탄성.

다시 한 번 입가에 씨익 웃음을 새긴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있게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가 길게 내뱉으며 머리에 얹힌 밀짚모자를 내려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겠지?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한 컵에 10원이다.
아이들은 10원이라는 액수에 그만 맥이 탁 풀리는 눈치였다.
이 동네 아이들에게 10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이 아저씨는 모르는 것일까?
10원이면 삼립 크림빵이 하난데...
빠르게 냉랭하게 식어가는 아이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냉차아저씨가 민첩성을 발휘한다.
근데! 이 아저씨가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선 5원에도 줄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입가엔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담배를 한 번 길게 빨아 하늘에 대고 동그라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야아....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지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멋지지?
예!
좋다. 그럼 이 아저씨가 너희들을 위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마.
아이들은 호기심에 부풀어 냉차아저씨의 입으로 모든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아... 냉차 한 잔에 5원에다가 아저씨가 이 딱성냥 하나씩 선물로 주마. 이 딱성냥 있으면 너네 아버지들도 이 아저씨처럼 동그라미 만들 수 있어. 심심할 때 아버지한테 동그라미 만들어달라 그래.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것만도 충분히 신기한데, 동그라미까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의견교환을 하느라 조금 부산해진다.

그 중 나이든 4학년 아이가 손을 들며 질문을 한다.
저는요, 얼음 먹으면 배 아파서 안되는데요?
맞습니다. 얘는 설사쟁이래요.
눈치없이 옆에 선 녀석이 끼어든다.
냉차아저씨는 안됐다는 듯이 혀를 두어번 끌끌 차더니 어쩐다 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다가, 두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낸다.
그래, 아저씨가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눈들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가선다.
아저씨가 말야... 냉차 싫은 사람은 딱성냥 3개를 10원에 주마. 어떠냐?
아이들은 순식간에 각자 집으로 사방팔방 흩어져 간다.

햇볕 내리쬐는 공터엔 냉차아저씨와 소년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년은 햇볕에 눈이 부셔 인상을 쓰며 냉차통을 올려다 보고있다.
너는 왜 안가냐?
아저씨가 물었다.
전 돈이 없는데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엄마도 돈이 없는데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아저씨는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어낸다.
순간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마을 전체가 몸서리를 쳤다.

옛다, 이거 한 잔 마셔라.
아저씬 유리컵에 차디찬 냉차를 가득 부어 소년에게 내밀었다.
아녜요... 안되요. 우리 엄마가 얻어먹는건 거지래요.
소년이 도리질을 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냐, 임마.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인거야. 어서 마셔.
벌써 몇몇 녀석들이 돈을 가지고 공터로 달려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냉차아저씨에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단숨에 냉차를 들이마셨다.
커- 시원한지고... ^^

그날 딱성냥을 산 녀석들 중의 몇몇은 쓸데없이 돈 썼다고 등짝을 후려맞았다고도 하고, 몇몇 녀석은 냉차 먹고 배탈이 났다고도 한다.
냉차도 한 잔 얻어마시고 딱성냥까지 하나 얻은 소년은 밤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를 뵙지 못한 관계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부엌에 몰래 숨겨 놓았다.
어느날 밤 장난끼가 발동한 소년은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와 함께 불장난을 하다가 농 위에 쌓은 이불 위로 늘어진 담요에 불이 옮겨붙어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하여 한동안 그 동네엔 등짝에 손바닥 문신한 녀석들과 종아리에 가로줄 무늬 새긴 녀석들이 공터에 때 이른 모기들처럼 득시글 거렸다고 한다.
바위벽을 깨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폭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2011.06.14)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우리가 어렸을 때 뜻도 모르고 쓰던 단어들이다. (물론 바보는 예외지만... ^^)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맘 편한 한량이란 작자가 하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고 이해하시길... ^^

바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천치: 선천적으로 정신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멍텅구리 : 멍청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으버리: 사전에 안나오나 부산지방에선 '어바리' 라고 쓴다고 하여, 다시 어바리를 찾아봄. 발견!
어바리: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 (하여, 으버리는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인 것으로 추정됨)
쪼다: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쪼다에 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예전에 어느 코미디언이 벤허 영화가 히트 했을 때, 주인공 쥬다 벤허 (Judah Ben-Hur) 가 하도 바보 같고 천치 같고 멍텅구리 같이 답답했던 관계로 "에이, 이 쥬다 같은 녀석아" 하고 놀렸다는데서 '쪼다' 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거야 말로 100% 믿거나 말거나... ^^

여하튼, 무길도한량은 왜 이런 어바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앉았을까?
본래의 쓰임새와 달리, 사실은 이것들이 우리 형제들 간에 통용되던 '욕'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성적인 욕설이나 동물에 빗댄 말들이 우리 집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안쓰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성인들은... ^^) 우리 예삿것들은 화가 나고 폭발해야만 할 때 무언가 대용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쓸 상황이 없다면 또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이란 것이 적당히 부딪히며 살아야 잘 산다고 하지들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놀림말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화가 조금 나면, "바보!"
그거보다 조금 더 나면, "바보천치!"
그거보다도 또 눈꼽 만큼이라도 더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
또 그거보다 더 많이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의 다섯 단계로 세기를 조절하며 표현하기로 우린 약속했다.

누구는 어렸을 때부터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나쁜 XX" 하고 욕하는 것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다섯 단어의 조합을 어느 만큼 빨리 구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고 연구했다.
"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에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이것이 한 단어처럼 수려한 모습으로 유창하게 흘러나왔을 때야 그것이 '잘 사용된' 모습의 욕이 되었지, 천천히 '이런 바보, 천치, 멍텅구리...' 하고 주워 섬긴다면 그건 김이 싹 빠져버려 더 이상 아무 느낌도 매력도 없는 칠성사이다 슈바~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본론으로 가서...
어릴 적 나의 동생들은 순하고 착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사악한 오빠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며 살아왔다.
시집을 가고 아이들을 키우며 이젠 사십이 넘은 지금에도 그러하리 라고 생각은 않지만, 옛날엔 '에구, 이 미련아~' 하며 주먹으로 살짝 알밤만 주어도 3초 이내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구는 여린 녀석들이었다.
오빠의 말을 잘 듣고 같이 잘 놀고 오빠의 잘못에도 부모님께 고자질하지 않고, 혼자 벽 보고 앉아 눈물로 앙금을 녹여내던 의리의 돌쇠들이었다.
(참조: 노변한담 중 '오빠란...'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422 )

오늘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상급반이었던 무길도한량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에헴)
방구석에 들어앉아 몇날 몇일을 프라모델을 만드느라 처박혀 있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노올자~' 하는 소리만 들으면 금새 궁뎅이가 들썩들썩 하여, 참아내질 못하고 곧바로 달려나가야만 했다.
그날도 빠알간 가을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부리나케 신발을 꺾어 신으며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며 현관을 튀어나갈 찰나,
"잠깐 나 좀 보자." --

어머닌 막내를 데리고 시장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무길도한량이 동생 K를 봐주기를 원하셨다.
"어, 축구 가야 하는데..."
그러자 어머닌 무길도한량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시며,
"학교 앞 한씨문방구에서 얘랑 같이 아톰바도 하나씩 먹고... 같이 좀 데려가라."
아톰바!
그렇지 않아도 쓸쓸해져가는 가을바람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아톰바를 거부할 수 있는 자, 게 누가 있나?
(아톰바가 무엇이냐? 삼립인지 샤니인지에서 나온 어묵꼬치바로 호빵통처럼 둥그런 통에서 덥혀 팔았던... 요즘 핫바의 기원이라고나 할까?)

무길도한량은 동생 K를 학교 동문 앞 한씨문방구로 데리고 들어갔다.
먼저 아톰바 하나를 K에게 내밀며 그는 물었다.
"너 추운데 나가서 스탠드에 앉아 축구 볼래? 아니면 따뜻한 여기서 아톰바 먹으면서 기다릴래?"
"여기 있을께."
"자, 그럼 시간이 좀 걸릴거니까 이 오빠 것도 네가 먹어."
"오빤 안먹어?"
"암만 해도 여기에서 기다리는 네가 먹는게 나을것 같다."
"빨리 와야돼."
그는 양손에 아톰바를 든 동생을 뒤로 하고 운동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야호! 짐 덜었다!) ^^

모처럼 인원이 꽉 차 축구는 제대로 재미가 났다.
1대0 이 되고, 1대1 이 되고, 1대2 가 되고, 또 2대2 가 되고... 야호~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국기강하식에 걸려 잠시 애국가가 울리는 동안 꼼짝없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태극기가 내려지는 것을 본 후, 그들은 축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교문을 잠그기 위해 소사아저씨들이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다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저씨들이 휘휘 모는대로 남문을 향하여 아이들과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기며 걸어나갔다.

아이들과 즐거웠던 시간을 되새기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집 앞에 도착한 것은 벌써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땀 젓은 웃도리를 마루에 내려놓으려 할 때 그는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녀왔냐?"
아차!
그는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다시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아차차!

한씨문방구 아줌마의 눈꼬리는 이미 양옆으로 한 15도씩은 치켜 올라가 있었다.
그 옆에서 동생 K는 눈물 콧물을 비오듯 쏟아내며 잉-잉- 울고 있고...
"어떻게 집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를 이렇게 혼자 놔두니? 문도 못닫고 이게 뭐람?"
아줌마가 하는 소리가 앵앵거리며 그의 귀를 때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깜빡 까먹었다.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날 까먹을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는 슬며시 동생의 코트자락을 들어올려서 일단 콧물을 닦아준다.
"미안하다니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긴 골목길을 따라 벌써 보안등이 하나씩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서러운 기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고만 울어라."
이마 옆으로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그는 동생을 달래려 애를 썼다.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엄마한테 다 일러줄거야...잉잉잉~"
"아, 글쎄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골목 초입의 훈이네 집에서 된장찌게 끓이는 냄새가 온동네를 진동하며 풍겨나왔다.
그의 뱃속에서도 동생의 뱃속에서도 합창하듯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났다.
"잉잉잉~ 배두 고파... 잉잉잉~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래... 빨리 가서 우리도 밥 먹자. 제발 좀 그만 울어라잉~"
어둠 속으로 낯 익은 하늘색 대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동생의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오늘도 또 긴긴 밤이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그를 업습해왔다.


(2011.05.10)

가벼운 양식

가벼운 양식






           
정동 MBC에서 덕수궁쪽으로 돌아나가는 그 언저리엔 오래된 경양식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따리아노' 라 하여, 국적 불분명한 경양식집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던 당시에 이탈리안 스타일의 경양식이라고 꼭 꼬집어 표방한 레스토랑이었다.
실내 장식이나 웨이츄레스들의 복장에선 이탈리아의 향기가 났었던 듯 하지만, 그렇다고 메뉴 자체가 100% 이탈리안식은 아니었던... 하지만 그 분위기와 맛이 상당히 괜찮아서 각종 행사치레 하는 사람들이 잘 찾는, 그런 곳이 있었다.
야채스프와 따뜻한 모닝빵이 인상 깊었었다.

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나와 대한문을 지나고 다시 반대편 돌담길로 들어서면 막다른 길 끝으로 영국대사관이 보이는 골목 안으로 세실극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 '세실레스토랑' 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재야 인사들이 모여 독재에 항거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도 갖고 하던 곳으로 TV 뉴스에 자주 나오던, 그런 쪽으로 유명한 경양식집이었다.
젊은 날에 드나들 때에도 항상 뒷통수로 쏟아지는 감시의 눈길을 느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아내와 선 본 날 점심식사를 하러 가 스파게티와 세실정식을 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가격 대비 내용이 충실한 편이었고...

영등포 역전엔 신세계백화점 맞은편으로 제법 큰 '해바라기' 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의 특색은 대부분의 경양식집이 소규모라 음악을 주로 카운터에 있는 오디오를 통해 틀어주었던 것과는 달리, 중앙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있어서 30분 마다 생생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던 곳이었다.
생음악에 감동 먹은 무길도한량이 촌스럽게도 쪽지에 신청곡을 써서 피아니스트에게 건네주려다, 옆에서 지키고 있던 험상궂은 덩치에 의해 눈흘김을 당해 쫓겨날 뻔 했던 곳이었는데 실내장식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개방성이 특징이었고, 거리에선 볼 수 없었던 초미니스커트의 웨이츄레스들이 실내장식을 대신하던 곳.
가장 싼 돈까스정식은 혼자 먹기엔 벅찰 정도로 풍족한 모습이었다.

보신각 뒷쪽으로는 꽤 많은 경양식집들이 빌딩 지하마다 위치하고 있었는데, 수 많은 대학가 미팅들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또 수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들이 깨어져나간 역사적인 지역으로 '반줄', '일과 이분의 일', '오감도' 등등의 경양식들이 유명했다.
가수 현인, 가수 전영의 탱고 '서울야곡' 의 가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2절에 보면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이곳 경양식집들은 맛 보다는 만남의 장소로서의 분위기 창출에 충실했던 면이 있었다.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노래를 안듣고 그냥 갈 수는 없겠다.
http://www.youtube.com/watch?v=2G8j1gN6JQU (클릭!)

지금이야 곳곳에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들이 사방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양식집이란게 그리 많지 않아서 '너, 또랑에 가서 썰어봤어?' 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낯선 곳 중의 하나였고, 레스토랑들도 정통을 표방하기엔 좀 미안했던지 '가벼운' 이란 표현을 붙여 경양식이라고 부르던 것이 현실이었다.
중요한 만남을 갖는데, 어디 가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삼겹살 구워 쌈 싸먹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국밥 한 그릇씩 놓고 마주 앉거나 입 가장자리에 진한 짜장 묻혀가면서 이야기 하기도 그런 경우들에는 경양식집이 신발 안 벗고 간편히 의자에 앉아 폼 잡으며 먹기에 제 격이라서 그런지 제법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래도 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여전히 가격은 높아, 제법 용돈을 많이 받던 무길도한량도 맘 먹고 한 번 가서 칼질하고 오면 일주일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음식들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걸 어찌하랴...

그곳의 음식이 어쨌었길래...?
아, 그거야 경양식집에 가서 한 번 썰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식도락이 있지 않았겠남?
우선, 거기에서 주로 파는 메뉴를 주욱 한 번 나열해보자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그리고 스파게티가 있었고, 칼질하는 종류로는 돈까스, 함박스텍, 비후스텍, 비후까스 그리고 정식 등이 있었고, 안주론 멕시칸샐러드, 과일샐러드 등등...
아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맛이 심히 그리우나 풀 길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

대부분의 경양식집들은 빌딩 지하나 2층에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좀 어두침침한 분위기에서 테이블마다 개별 조명이 있고 여기저기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가 당시엔 터부처럼 느껴지던 여자들의 흡연인구 증가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조용한 음악은 흐르고 여기저기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 나즈막하게 도란도란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단정히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는 통가죽으로 커버를 씌운 메뉴판과 따뜻한 보리차를 유리잔에 담아 내어온다.
무엇을 먹어볼까나...
서너 테이블 건너에 앉은 여자가 후우 하며 테이블 위로 드리워진 백열전등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어올린다.

이 집의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위해서는 정식을 시키는 것이 좋다.
정식엔 돈까스와 생선까스와 함박스텍이 조금씩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식하고 OB 라거 하나 주세요.
스프는 야채스프 하고 크림스프가 있습니다.
크림스프로 주시고요.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밥으로 주세요 한다.
네, 잠시 후에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웨이터는 빼앗듯 메뉴판을 거둬가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우리 식구가 처음 경양식집으로 고기를 썰러 갔던 날,
처음 먹어본 크림스프의 맛은 천상의 음식처럼 우리의 뇌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언제나 아껴먹기를 좋아하고, 항상 좋아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먹는 막내 동생은 한 입 먹은 크림스프가 너무도 맛이 있어서 그것을 제일 나중에 먹고자 남겨두었다.
웨이터가 메인코스 음식를 가지고 와 배열하면서 스프그릇과 숟가락들을 거둬 가버리자 막내 동생은 빼앗긴 자신의 몫이 안타까워 울어버렸다.
한그릇쯤 다시 줄 수도 있었을텐데, 비정한 웨이터는 남은 스프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스프는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지금도 그 크림스프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웨이터는 나이프와 포크와 숟가락을 차례로 배열하고 샐러드접시와 크림스프와 맥주를 내려놓았다.
고깃부스러기가 점점이 박힌 누리끼한 크림스프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얄팍한 접시 위에 살짝 깔려 나온 스프의 양은 한 네 스푼이나 될까?
좀 넉넉한 마음으로 주었으면 좋았을걸...
올리버 트위스트도 아니고 스프를 더 달라 그럴 수도 없고...쯧.
야채샐러드 위엔 케챺과 마요네즈를 적당히 꿀과 함께 섞은 소스가 올려져 있어 포크로 두어번 저어 떠먹으면 그 맛도 제법 괜찮았다.
맥주로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니 벌써 배 저 밑에서 빨리 음식 들여보내라고 신호를 보낸다.

정식 접시는 제법 큼지막한 것이 보기에 기분이 좋았다.
바삭하게 튀겨낸 얇은 돈까스가 왼편에, 역시 마찬가지로 잘 튀겨낸 생선까스가 중앙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함박스텍 조각이 두어개 양송이버섯을 이고 제일 오른쪽으로 자리헀다.
접시 윗켠으론 삶은 당근 두어쪽, 삶은 완두콩과 옥수수알이 약간씩 그리고 마카로니가 서너쪽 차례대로 담겨있다.
같이 나온 밥 접시엔 하얀 쌀밥이 아까의 크림스프 마냥 납작하게 깔려있고 간간히 밥 위에 까만 깨를 몇 뿌려놓았다.
깔끔하게 자른 노란 단무지 몇 조각도 작은 접시에 별도로 담겨 나왔다.

먼저 정식 접시에 얹혀나온 가니쉬 위에 토마토케챺을 뿌려주시고...
아삭하는 소리를 내는 돈까스의 왼쪽을 포크로 잡고 칼로 오른쪽 부분을 먹을 만큼 잘라낼 때 돈까스는 감동의 소리를 내며 빵가루를 떨구었다.
데미그라스 소스도 딱 필요한 양만큼만 뿌려져 있었다.
돈까스를 받아들이는 입 속은 더더욱 가관으로 완전 흥분의 도가니다.
Give me more, Give me more...
한조각을 더 잘라내어 먹을 때쯤엔 나의 입의 양옆은 위로 약 10도 가량 올라갔으리라.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하며 입가심을 한다.

다음은 생선까스의 차례이다.
난형난제...
잘 튀겨낸 생선까스를 먹어보기 전에 돈까스의 맛있음을 논하지 말라!
고, 지금쯤 주방장은 숨어서 나의 모습을 훔쳐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선까스 위를 가로지르며 얹혀져 있는 타르타르소스가 고소함을 더했다.
또 한 번 감동하는 나는 맥주컵을 들어 안보이는 주방장을 위하여 건배를 보낸다.
나의 간 주변에 생기는 지방덩어리를 지금 이 순간엔 생각하지 말기로 하면서...

돈까스와 생선까스를 끝낼 즈음엔 이미 나의 만족도는 100% 가까이로 올라가고 있다.
정식을 안시키고 함박스텍을 시켰으면 소모양의 나무판 위에 철판이 얹혀있는 함박스텍 전용용기에 담겨 나왔을까?
소스와 함께 자글자글 끓는 함박스텍 위에 어떤 집에서는 치즈 한조각을 올려주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달걀반숙도 올려주기도 하는데...
따뜻한 모닝롤을 안시키고 밥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함박스텍과 함께 먹기 위함이었다.
돈까스와 치킨까스가 비워준 자리에 밥을 솔솔 옮겨놓고 (누구 안보지? ^^) 함박스텍 소스에 밥을 비벼가면서... 나이프도 필요없다.
부드럽게 잘 익은 함박스텍은 포크 옆구리로 살짝만 눌러줘도 알아서 잘 잘라지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풍노도와 같이 함박스텍을 즐겨주시고 나면 기다리고 있던 맥주의 마지막 잔으로 소화를 시켜준다.
때 맞춰 나오는 디저트로 커피를 받아들면, 삼천원짜리 정식이 어찌 그리 푸짐하게 느껴지는지... ^^
경양식집 특유의 쓰디쓴 원두커피에 과감하게 프림 둘, 설탕 둘 넣고 휘휘 저어주면 그 향에 취해 저절로 담배 한 대를 당겨 물게 되어있다.
나도 서너 자리 건너편의 여자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식탁 위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속으로 푸우 뿜어보낸다.
먹는 것은 좋은 것이여...

그나저나 일주일치 용돈이 날라갔으니 내일부턴 도시락 싸갖고 다녀야겠군.
교통비나 제대로 남았는지 몰라...?
하루종일 방 구석에 콱 처박혀 지내면 오마니가 돈 떨어진 거 눈치채시고 지원해주지 않으실까?
이런 주말에 미팅건수 들어오면 골치 아픈데...
확실히 경양식은 내 형편에 좀 무리지? --;;
그래도 잘 먹고나니 졸음까지 밀려오니까 기분은 좋구먼... ^^

데모가 시작되었는지 함성소리와 함께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휴교령이라도 떨어질라나...?



















(2011.04.22)

인사유명



인사유명(人死留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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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감기에 골골거리며 심심풀이 인터넷 써핑을 하다가 야후에서 나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에 나의 이름도수록되어 있을까?
똑같은 이름의 다른 '나'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이름을 적고 엔터키를 누르자, 별로 흔하지 않은 내 이름으로도 검색 결과가 무려139,000건이나 나타났다.
성악가, 목사, 사진가, 기업체 사장, 저널리스트...
ㅎㅎ... 진짜의 '나'는 없네...?

386세대로 태어나 486으로 진급한, 베이비부머의 마지막 해 태생, 대학 본고사 폐지 후 첫 입학년생,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찌어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한량스런 삶을 살아가는 40대 후반의 내 얼굴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엔 존재하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 하고, 인사유명(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세상, 부질 없이 이름 석 자 남긴들 또 뭐하겠는가?
...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럼 부진부진 사는 이유는 또 뭔데?
아-,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시작한 생각의 실타래 풀기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마침내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걸 보면 무길도한량이 죽을 때가 가까웠나?
하는 곳으로 의문은 귀착되더라...
'킬리만자로의 표범' 에서의 조용필도 노래했다.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라고.

허나, 이제까지 세상에 이름 석자 떡 하니 새겨둘 짓을 한 적이 없는 무길도한량으로서는,지금에 와서 무엇을 해서 그 자랑스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나 생각하니 앞이 또 캄캄해지기 시작하더라... ^^
그럼, 억지로 이름을 남기는 걸 생각해볼까나?
아, 뭐 그렇다고 해서 어디어디에 폭탄 숨겨놨음메... 하고 경찰서에 전화하고 신문과 TV에 나오고 하는, 그런 식은 피하고 싶다.
그래도 무길도한량의 체면과 위신과 명예와 가오다시가 있질 않겠는가? ^^

위대하시고 영명하신 김 아무개는 솔잎을 취하여 이팝을 만드시고...
또 그 아무개는 가랑잎을 타고 비와 천둥을 몰고 오고... ^^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위와 같은 거짓말을 책에다 담을 필요도 없이 그저 웹에 올리기만 하면 되니, 거짓말로 유명해지기가 훨씬 쉬어진 듯 하다.
옳다구나!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름 석자 남기기란 식은 죽 먹기인 듯 하다.
그저 아무도 기록한 적이 없는 것들을 인터넷에 올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

18세기 샌드위치의 백작 (Earl of Sandwich) John Montagu 는 카드놀이를 워낙 좋아하여서, 해질 무렵카드를 시작하면 저녁식사를 건너뛰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정 배가 고파지면, 하인에게
"이보게, 두 빵조각 사이에 고기 좀 넣어서 가져오게나."
그러면 출출함을 느끼는 옆에 사람들도,
"The same as Sandwich." (나도 샌드위치백작 것처럼 해줘)...
이렇게 해서 샌드위치 라는 이름이 음식의 이름으로 자리잡았다는 예를 우리는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처음 시작한지 모르는 수 많은 것들이 "저작권" 밖에 방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자, 그러한 것들을 몇몇개만 찾아서 무길도한량의 거짓된 발자취로 인터넷에 기록으로 남겨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들은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아는 바, 절대 무길도한량이 최초의 인물은 아니나, 혹 누가 알겠는가?
백 년이 지나서 남은 기록이 이것 밖에 없다면, 무길도한량이 기록으로 고증될 유일한 역사적 흔적이 되는 것이다. ^^

자, 그럼 시작해보자.

무길도한량이 점점 자라매 다섯살이 되었을 때 이미 천문과 수학에 통달하였더라. ^^
그의 고향에선 토굴 속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관계로 그에 필요한 빈 드럼통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루는 대폿집 아주머니가 가게 안에 놓을 테이블 비용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보고 무길도한량이 말하길,
"아주머니, 드럼통을 세우고 그 위에 쟁반을 얹어서 쓰세요."
하고 말하니, 그것이 대폿집들의 드럼통 테이블의 효시가 되었더라. ^^

마침 옆에 군고구마 장수가 대폿잔을 기울이다가 감탄하며 묻되,
"날 위한 아이디어는 뭐 없겠니?"
하자 무길도한량이 씨익 웃으며 가로되,
"아저씨는 드럼통을 옆으로 눕혀서 가운데 장작불을 넣고 서랍들을 여러개 만들어 고구마를 구우면 번번히 이것 저것 다 꺼내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니 옳커니 하고 박수치며 좋아하더라. ^^

그럴 듯 하지 않은가? ^^
더 기가 막힌 아이디어들을 두어개만 더 무길도한량 몫으로 돌려보자.

무길도한량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새로 나와 전국민의 사랑을 받던 것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N 육개장 사발면' 이라.
야유회에 간 사람들이 스치로폼 용기 위에 붙은 은박뚜껑을 제쳐내고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렸다가 먹었는데, 때론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쩍 벌어져 용기 속의 면이 익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것을 목격한 무길도한량.
"같이 제공된 소독저를 미리 가르지 말고 집게처럼 이용하면 용기와 뚜껑의 밀착성이 좋아져서 맛있는 사발면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하고 시범을 보이니 모든 이가 한결 같이 따라 하더라. ^^

또 그의 고향에선 기름에 재서 구운 김을 상품화하여 은박 봉투에 밀봉하여 팔기 시작했는데, 무길도한량이 보니 잰 김을 봉투에서 꺼내 가위로 자를 때에 많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자르기에도 좋지않고 식탁 위도 지저분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은박 봉투를 먼저 원하는 크기로 접어 꼭꼭 눌러준 후 꺼내면 김이 먹기 좋게 잘라져 있을텐데요..."
김장수가 눈여겨 보았다가 상품판촉회에서 시연을 보이니 사람들이 좋아하고 매출도 급증하였더라. ^^

재미있는데 하나만 더 해볼까?

몹시도 추운 한겨울날이었다.
무길도한량은 요기를 하고자 단골중국집을 찾아들었다.
"짜장 드릴까요?"
항상 짜장만 죽어라 먹어대는 무길도한량을 보며 주인이 물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뜨끈한 짬뽕이 먹고 싶은데... 아, 짜장도 먹고 싶고..."
"짜장과 짬뽕 둘 다 드시지요, 뭐..."
웃으며 대답하는 중국집 주인을 보며 무길도한량이 말하길,
"그릇 한가운데에 벽을 만들어 한쪽엔 짜장을, 한쪽엔 짬뽕을 담으면 어떻겠습니까?"
이에 중국집 주인이 좋아하며 이름을 짬짜면으로 지었다 카더라. ^^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분명 세월이 가면 무길도한량도 청사에 빛나는 이름이 되어 있으리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따라, 오늘 하루도 이름을 남길 궁리를 하며 무길도한량은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서 이름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겠지?

어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가르쳐주이소.
내 후사 할팅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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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달콤한 복수



달콤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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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 땐 제2 외국어 과목이 있었다.
말로만 선택과목이었지, 문과는 무조건 불어, 이과는 무조건 독일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비고사에도 제2외국어는 한 문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업배당도일주일에 한시간씩에 불과하여 선생님 얼굴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새로 온 젊은 독일어선생님은 이같은 현실에 나름 생각을 정해서,
"나는 혼자 강의를 할테니까 원하는 사람은 영어를 공부해도 좋다. 단 떠들면 죽는다."
하고 선언하곤,
"그 대신 너희 반은 오후 첫시간이니까 항상 음료수를 하나씩 교탁에 준비해놓도록! 아, 그리고 참고적으로 말하는데 난 오란씨가 좋다."

우리는 알량한 학급비에서 돈을 빼 매주 수업시간 마다 오란씨를 한 병씩 갖다받쳤고, 그 댓가(?)로 점심식사 후 나른한 한시간 동안을 자습시간처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때론 정신머리 내놓은 주번녀석이 오란씨를 잊어버려, 계약위반(?) 으로 빳다를 맞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합의는 무난히 지속되었다.
가끔 그가 오란씨에 손을 안대는 경우엔 햇볕 안드는 교실 창가에 잘 두었다가 다음주 수업시간에 또 내놓는 때도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경우였나 보다.
한번은 선생님이 오란씨를 마시려고 병을 잡았다가 눈이 동그래져 주번을 불렀다.
주번이 앞으로 나오자 그는 오란씨 병목을 손바닥으로 감싸더니 한바퀴 빙 돌린 후 그 손바닥으로 주번의 얼굴을 훑어내렸다.
그러자 주번의 얼굴엔 위에서 아래로 회색줄이 다섯가닥이 생기는 거였다.
"기왕 줄 거 좀 먼지라도 털어서 주면 안되냐?"
선생님도 주번도 벌개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고, 
결국 그는 씩씩거리며 오란씨를  남겨두고 교실을 떠났다.

그 오란씨는 다시 햇볕 안드는 창가로 가 일주일을 지냈다.
그리고 다음 주 다시 독일어시간이 돌아오자, 다음주 주번은 거울 앞에 걸려있는 수건을 가지고 정성스레 병목을 닦아준 후 오란씨를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저번 시간에 기분이 안좋았던 독일어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와 의식하지 않는 척 하면서 한시간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그는 그제서야 오란씨가 있었다는 것을 안듯이,
"오호... 또 정성껏 준비를 해줬으니 마셔야 되겠군?"
하곤 오란씨의 병마개를땄다.

언제나 그렇듯 60명의 120개 눈동자가 그의 커다란 아담스 애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꿀떡. 꿀떡. 꿀떡...
여느 때처럼 그 다음에 캬~ 하는 단발마가 뿜어져 나왔어야 했거늘, 오늘은 반응이 이상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맛을 쩝쩝 두어번 다시더니, 주번을 불렀다.
어리둥절 하여 주번이 교단 앞으로 가자 그는 오란씨병을 내밀었다.
"너 마셔."
주번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오란씨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곧 주번은 에퉤퉤 하며 입안의 액체를 뱉어내며 물러섰다.
주번을 쏘아보고 있던 선생님은 험상궂은 얼굴로 반 전체를 둘러보았다.
"너희는 X새끼들이다.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 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지고 놀아? 알았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너희를 대접해줄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빠르게 말을 마치고 나자 그는 벌건 얼굴로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 틈 사이로, 눈을 지긋이 감고 미소를 머금은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지난주 주번 녀석의 느긋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그녀석의 복수였다.
어제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공부했던 아이들의 수근댐에 따르면 지난주 주번녀석이 오란씨를 마셔버리고 그 병에 실례를 했다던가...
다음주 수업시간이 시작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선생님을, 반장과 부반장이 교무실로 찾아가 손이 닳도록 빌고 빌어 겨우겨우 다시 우리반으로 모셔오게 된 것이며, 앞으론 꼭 밀봉된 박카스만을 갖다놓는 것으로써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그의 일성... 등이 뒷이야기.

방위병 J는 우리 사무실에 배치된 제일 쫄병이었다.
아침마다 장교들보다 조금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을 깨끗하게 하고 사무기기들을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아침임무였다.
추가적인 것이라면, 과장님 책상에 신문 챙겨놓는 일, 병과장의 결재난 문서들 받아오는 일, 아, 그리고 아침마다 냉수 한 컵씩 K대위 책상에 떠놓는 일 정도...

매일 K대위 책상 위에 냉수 한 컵 떠놓는 일은 사실 K대위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이었다.
당시 군대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개인적인 일을 지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룰이었기 때문에 대령들도 자신의 구두를 닦기도 하고 은행도 직접 다니곤 하던 때였다.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
그래서 J가 이 일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거였다.

하루는 K대위가 아침체조를 마치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며 마주 앉은 무길도한량에게 말했다.
"난 말예요, 이 아침에 체조하고 시원한 냉수 한 컵 마시는게 얼마나 좋은 줄 모르겠어요. 무길도 중위도 맨날 커피만 마시지 말고 냉수를 한 번 들이켜 봐요.이 지역은 물도 끝내주거든..."
그러다 컵 뚜껑에 눈이 간 K대위.
"이 컵, P소령님한테서 선물 받은건데... 괜찮죠? ...에이, 뚜껑에 먼지가 좀 꼈네..."
그는 컵 뚜껑을열어 눈앞으로 가져가 이리저리 훑어본다.

이어서 컵으로 그의 시선이 내려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컵을 들여다 보던 K대위, 얼굴이 점점 벌개지더니 J를 다급히 부른다.
J가 책상 옆으로 다가오도록 그는 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매일 물 떠다줘서 고마운데 말이지..."
"예..."
"냉수에 물방울이 왜 있지?"
아무 말 못하고 말 없이 서 있는 J.

"너, 침 뱉었지?"
K대위의 질문에 그게 어쩌고 하며 슬금 말꼬리를 흐리는 J.
J의 모습에 더 확신을 갖게 된 K대위, 목부터 벌겋게 상기되기 시작하며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게 처음 아니지?"
J는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푹 떨어뜨린다.
"내가 항상 뚜껑에 난 구멍으로만 마셔서 발견을 못했지, 컵 뚜껑을 열고 마셨으면 오늘처럼 금새 알았을텐데 말야?"
망연자실하여 창 밖을 바라본다.
"하기 싫다면 하기 싫다고 말을 하지..."

"얼른 잘못했다고 해, 이녀석아."
옆에서 보던 R사무관이 웃음을 참으며 J를 꾸짖는다.
"아닙니다. 근무 중인 대한민국 공군장교를 위해하려는 녀석은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K대위는 벌떡 일어나 방위병의 팔을 잡아 사무실 밖으로 끌고 나간다.
"무길도 중위, 좀 말려봐요."
R사무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무길도한량을 바라본다.
"괜찮아요, R사무관님도 K대위님 알잖아요?"
"그래도..."

10분쯤 지나 둘은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뽑아들고 싱글벙글 사무실로 돌아왔다.
"영창에 안보냈네요?"
무길도한량이 K대위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묻는다.
"앞으로 잘하기로 했어요. 그대신 내가 일주일에 한번 커피 사주기로 하고..."
빙그시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J를 보며 무길도한량이 묻는다.
"야, 너 솔직히 말해서 몇 번 그랬냐?"
"증말 오늘 처음이어유~."
"그럼 너 왜 아까 대답 안했어?"
"그건 그냥 K대위님 더 약올릴려고 그랬쥬~."
믿거나 말거나... ^^
녀석은 제대할 때까지 매일 냉수를 떠놨고 매주 커피를 얻어마셨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복수는 자행되고 있다.
마냥 당하고만 살것 같은 사람들도 은근히 복수를 한다.
오히려 은근하고 은밀한 그 맛에 달콤함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이유없는 꾸지람에 슬그머니 엄마의 옷에 껌을 붙인 사람.
출근길 신경질내는 고모의 구두 안에 밥풀 두세개 떨구어 놓은 사람.
안놀아주는 삼촌의 노트에 모른척하고 볼펜으로 만화그린 사람.
성질내는 앞좌석 친구의 교복 등의 박음질을 칼로 살짝 끊어놓은 사람.
잘난체 하는 녀석, 채변봉투 몰래 버리는 사람.
나쁜 녀석들 책가방에 있는 김칫병 거꾸로 세워놓는 사람
......
또 뭐 없나...? ^^

약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복수들은 더 큰 희열을 주기도 한다.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여... ^^
가만 있자, 우리 꼬맹이 녀석들이나 나를 향해 몰래 준비하고 있는 복수는 없을까?
우리 사업장 직원들은?
갑자기 뒤가 근질근질거려오는 이유는 또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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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9)

생식은 즐거워



생식(生食)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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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生食)...
을 말함은 불에 익혀먹지 아니하고 날것으로 먹는다는 이야기 이니, 혹 종족유지를 위한 개체의복제 또는 증식(reproduction) 을 말할 때의 생식(生殖)과는 혼동하지 마시길... ^^
물론이야기 주제로선 후자를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전자의 경우로 이야기를 국한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는 '생식' 이란 단어가 생기기 전에서 부터 알게 모르게 생식을많이 하며 살아왔다.
한겨울에 건넌방 냉골에 던져놓은 자루에서 꺼내오는 고구마도 날로 먹었고,
뜨거운 여름 밭에서쑥 뽑아올린 무우를 이빨로 긁어내고 시원하게 깨물어 먹기도 하고,
가을녘 논길을 걸으며 손을 펼치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걸려 올라오는 쌀알도 그렇고,
꽁보리밥에 된장이나 한숟갈 얹어주면,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르는 상추쌈도 그것이리라.
군대에서 생존훈련의 일환으로 뱀이든 개미든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잡아먹은 추억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대에 있을 때의 기억이다.
대구기지에 있던 G중령이 교육자료 수령차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운전병에게 자기집 뒷마당에서 가져왔다는 사과 한 광주리를 들린 채로...
사과들은 그의 말마따나 농약을 치지 않아서 그런지 좀 썩은 놈들도 있었고,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놈도 있었고, 모양도 찌그러진 바가지 마냥 흉측한 것들도 다소 있었으나,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든지 사무실 안은 삽시간에 달콤한 사과향으로 가득했다.

과장님도 방위병도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나씩 집어들고 신나게 와삭와삭거리며 사과파티는 시작되었다.
회의 때문에 한발늦게 도착한 장비담당 L기좌가 눈을 흘기며 들어온다.
"우와~ 섭섭하게 나만 빼고... --;;"
"걱정마세요. 여기 L기좌님꺼 제일 예쁜걸로 하나 챙겨놨습니다."
눈치 빠른 K대위가 재빨리 광주리에서 하나를 꺼내준다.

싱글벙글 빨간 사과를 받아들더니, 한 입을 크게 베어물고 와삭와삭 씹곤 꿀꺽 삼키더만, 그의 전매특허 같은 썰렁한 넉살을 늘어놓는다.
"멀리서 사과를 직접 챙겨오신 G중령님의 사랑에, 제일 예쁜 사과를챙겨주신 K대위님 사랑까지 얹히니, 정말 꿀맛이 따로 없네요."
다들 입안에 사과들이 가득한지라 별 대꾸 없이 웃음으로 썰렁함을 받아준다.

그는 다시 또 한 입 베어먹으려고 입을 쩍 벌리다가, 별안간 동그란 눈을 하며 사과를 유심히 바라본다.
"애개개... 이게 뭐지?"
사과의 한입 베어먹힌 그 자리에 뭔가가 박힌 채로 꾸물대고 있었던 것이다.
"사과벌레로구먼 그랴. 농약 안친 거 맞네...^^"
R사무관이 위로차 끼어든다.
물끄러미 벌레를 바라보던 L기좌, 반웃음 반울음의 애매한 표정으로 R사무관에게 물어본다.
"근데 왜 벌레가 반쪽만 있는거죠?"
"생식 하셨네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K대위가 빙긋이 웃으며 L기좌의 배를 향해 넌지시 합장을 해보인다.

요즈음엔 곡식들을 갈아 만들어 인스턴트화한 생식들이 또 인기인 모양이다.
면역력을 길러주네, 기초체력을 길러주네 하며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식류 말이다.
이런 종류들이 나오기 전에 방앗간에서 직접 갈아 만든 가루스타일이 있었다.

결혼한 후 첫번째 여름을 나던 무길도한량은, 장가가기 전 집에서 여름이면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미숫가룻물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구수한 미숫가루 좀 사서 시원하게 좀 마실까?"
물었더니, 살림 초년병인 우리 집사람은 또로로롱 친정엄니에게 자문을 구하는 전화를 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금이야 금이야 사위를 사랑하시던 장모님,
"그럴게 아니고... 음, 내게 맡겨라. 내가 준비하마."

몇 일 후, 장모님께선 무언가를 한보따리 싸들고 우리집으로 올라오셨다.
무길도한량이 퇴근을 하자, 지프락 봉지에 채워진 그것들 중 하나를 꺼내 내보이며 집사람은 기쁜 얼굴로 브리핑에 들어갔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이건 열다섯가지 곡물과 머시기와 머시기와 거시기와 거시기...... 그리고 또 솔잎가루까지 갈아서 넣고 만든 미숫가루래.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듣는둥 마는둥 손가락으로 천천히 비닐봉지를 헤집어 보던 무길도한량,
"근데 왜 미숫가루가 녹색이야?"
"아니, 이게 미숫가루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더 넣어 만든, 더 비싸고 더 좋은 미숫가루라니깐? 다 자기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하신건데..."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나 담배 피러 나가던 무길도한량의 뒤로 탄식이 쏟아졌다.

그러길래, 그냥 누런 미숫가루면 되는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고요...? --;;
냉장고에 가득가득 하던, 그 많던 생식가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아하니 우리 집사람도 먹지는 않았던 것 같고... 
무길도한량도 참 엥카죠? ^^

인제 진짜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생식 이야기를 해야겠다.
젊었을 적 무길도한량이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도 닦으러 갔을 때였다.
그곳엔 공부 밖엔 할 일이 없는 한국인들이 다소간 살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방황하는 무길도한량을 불쌍타 여겼는지 곧잘 저녁식사에 초대하곤 하였다.
고맙게 생각한 무길도한량은 빈손이 쑥스러워 항상 디저트용 아이스크림을 한 통씩 사들고 가곤 했고...

어느날 B의 집에서의 일이다.
저녁식사 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유난히 무엇인가를 빠득 빠득 씹어가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무길도한량을 본 B, 웃는 얼굴로 와이프에게 불평을 한다.
"여보, 총각은 피너츠 아이스크림 주고 난 바닐라 아이스크림 주네? 나도 총각처럼 피너츠 아이스크림 줘."
"무슨 말씀이에요? 똑같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드렸는데..."
B의 부인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하며 되묻는다.

"정말이야, 저 총각껀 피너츠 아이스크림이라니까...?"
순간 무길도한량이 한번 더 바드득 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어리둥절한 B의 부인은 부엌으로 가 무길도한량이 사온 아이스크림통을 가지고 나오며 B에게 보여준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아이스크림통에서 무길도한량에게로 옮겨온다.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무길도한량, 천천히 자신의 아이스크림 접시를 내려다 본다.
아!
무길도한량의 플라스틱 포크의 다리 다섯개 중 3개가 반토막이 된상태로 아이스크림 위에 얹혀 있었다.

플라스틱도 생식 가능하지요? ^^;;
씁쓰레한 얼굴로 무길도한량이 묻는다.
"총각, 먹을게 없으면 전화해. 아무거나 먹지 말고..."
안쓰러운표정으로 B가 말한다.
"이런거 먹고 사는거 부모님께서 아셔?"
... 아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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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바람처럼 달려봐

바람처럼 달려봐









































"아효! 399.7 kcal." 
러닝머신 계기판의 붉은 숫자가 멈춰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늘도 씩씩대며 뛰었건만, 연이틀째 0.3 kcal 가 부족해서 400 kcal 고지에 오르지 못한다. 
오, 징한 것... 거친 숨을 몰아쉬랴, 정신없이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랴, 서둘러 답답한 gym 의 문을 열고 나오며 신선한 바람을 만끽해본다. 

순간, 등 뒤로 닫히는 문의 소리, 철컥. 
철컥!!!!? 
지금 철컥이라고 했나? ...... (마음 속에서 울려나오는 베에토벤의 운명교향곡, 빰빰바 밤~) 
황급히 양쪽 바지주머니를 훑어내리고, 바람잠바 등뒤로 붙은 주머니를 만져보고, 바지주머니들을 다시 체크해본다. 없다! 
OH, Noooooooooooooh! 
Oh, no! Acb, acb, acb..... (이럼 안되지, 이성을 되찾자) 
acb, bcb, ccb, dcb, ecb.... 
신분증과 핸드폰과 열쇠꾸러미를 두고 나왔당! 
acb, bcb, ccb, ccb, ecb.... 
욕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신상에 좋다카더만... ^^;;




아침마다 30분씩 달리기 시작한 지 꼭 한달이 되었다.
그 땐, 30분 동안 빠르게 걷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속 3.5 mile (5.6 km) 로 뛰어서 약 200kcal 를 소모시켰다.
그러다가 날이 가면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서 지금은 5 mile/hr (8 km/hr) 로 절반, 4.2 mile/hr (6.7 km/h) 로 절반 정도 뛰는데 그 칼로리 소모가 거의 400 kcal 에 육박하고 있다.
언젠가는 30분에 500 kcal 씩 하루에 2회 하여, 도합 하루 1000 kcal 소모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달리기를 아침 저녁 2회로 늘리면 그 목표도 가시권내로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 전에 먼저 한 회당 500 kcal 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 400 kcal 고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왜 뛰냐고? ^^
에... 런닝머신이 있으니까 뛴다... 는 건 아니고~ ^^
뜀뛰기를 좋아해서...? (농담이 좀 진하시넹~)
The truth is... 몸무게가 닥상 몬다이 데시까라.... 설라무네... ^^ (아무도 못알아들었겠지? *^_^*)
여하간 뛴다.
오늘도 뛰고, 어제도 뛰고, 또 내일도 뛴다.




지겹지 않을까?
와 안 지겹겠습니꺼?
아침이면 아침마다 차리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 5분이 싫어서, 몸을 베베 꼬아보기도 하고, 무릎이 좀 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따라 아이들이 지각하여 버스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근데 오늘 따라 왜 허리도 하나도 안아프고, 종아리 근육도 상쾌하며, 아이들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일어나고 학교갈 준비도 잘 하는 것인지... 나 원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제...
하여, 할 수 없이 나도 쭈빗쭈빗 일어나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수건 하나 질끈 목에 동여 매고 (이거 잘못하면 죽는다!), 만에 하나 반백의 용사 쓰러질 날 생각해서 신분증이며 핸드폰이며 다 챙겨 주머니에 넣고 매일 gym 으로 가지 않겠남?

뛰는 그 순간 순간의 지루함 또 말하면 무엇할까마는, 그래도 혹시 들을 사람 있을까봐 이야기는 해본다.
우리 중학교 들어갈 무렵 ASIA 자동차에서 P9AMC 라는 버스를 새로 내놨는데, 이 버스의 특징은 버스로서는 처음으로 바디를 각지게 만들어서 마치 두부 반모 달려가는 희얀한 형상에, 달리면서 자꾸 물방구 뀌듯이 간간히 췩! 췩! 하는 소리를 추임새처럼 내는 것이었다.
뭐 벌써 눈치 빠른 사람들이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무길도한량의 저의를 200 뽀센또 알겠지만서도...
여하간 나도 달리면서 췩! 이다.
그리고 췩!
그리고 한 번 더 췩!
이렇게 삼세번은 해야 고관절도 잘 돌아가고 무릎팍도 당겨 올라가고 속도도 덩달아 올라간다.
가만있자... 왜 이야기가 이쪽으로 빠졌는지가 불분명한데... ^^




오, 그렇지, 지루함!
달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방법은 ... (근데 진짜 달리는 동안이 정말 지루하다) 좀 고상한 걸로 이야기해야지...
블로그에 쓸 글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 ^^
여러가지 소재들이 구름처럼 솟아났다 안개처럼 스러지고, 그 다음날이면 다시 또 나팔꽃 마냥 피어났다 또 사그러들고...
많은 구슬들이 맹글어졌구만서도 꿰어야 보배라고, 막상 꿰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분명 언젠가는 이 떠오른 생각들이 또 블로그에 오르기는 하겠지만, 뛰면서 마무리 짓는 것은 아직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아, 그래 어젠 여기까지 생각했지... 그래서 어찌 어찌 하다가 저찌 저찌 하다가 이렇게 풀어나가자... 근데 여긴 좀 논리적으로 안맞네...
하는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땀은 뚝뚝 떨어지고, 숨은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 계기판 위의 빨간 숫자들은 번쩍이며 바뀌고 있다.
이제 10분 밖에 안지났어? 헉헉...

예전에 지방간이 있었을 땐 하루에 녹차를 여덟잔씩을 쓰도록 진하게 마시고, 4시간씩을 무작정 걸었었다.
그래도 그 땐 길가에 돋은 풀꽃도 좀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고, 때론 라디오도 듣고 해서 좀 덜 지루했는데...
뛰는 건 좀 상황이 다르네용~ ^^
그래도 여하간 절반까지 오면, 이제부터 진짜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군대훈련 받을 때 옆사람의 총과 군장까지 어깨에 더 얹고 뛰던 생각도 하고, 다들 지쳐 힘들어 할 때 큰 소리로 구령 붙여주며 뛰던 생각도 해보고, 해병대의 '해'자와도 상관 없으면서 악이다! 깡이다! 하도 구령붙여 보기도 하고......
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괜히 혈압 펌프질하는 소리가 겁나게 울려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도 막상 20분 고비가 지나가고 나면, 이제부턴 희망과의 싸움이다. (?)
야~ 벌써 300 kcal 넘었네...
오, 1.5 mile 지점 통과야...
......
인제 오늘은 그만 뛰어도 되지 않을까?
한달 전 처음 뛰기 시작할 땐 30분 동안 이만큼도 못했잖아?
멀리 보이는 아이스커피숖을 상상하는 이때쯤엔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당신과 나아 사이에 저 바다가 읍썼다며언~"
왜 하필 그 노래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여하간 그런 뽕작이 뛰어나오고 노래가 숨이 가빠 더이상 지속되지 않을 때가 되면, 이제 레이스는 홈 스트레치로 들어섰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5분 동안의 마지막 피치!
머릿속으로 그리는 우리 동네 좌표로 따지면, 커피숍에서부터의 마지막 1.5블럭에 해당되는 거리이다.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너고 향나무 펜스를 끼고 쭈욱 내달리다가 오른쪽으로 잔디밭이 펼쳐지는 지점에 서있는 키 높은 벚나무까지의 일직선 구간이다.
숨은 하악하악 대고 땀은 도저히 닦을 수 없을 만큼 흘러내리고 있지만 다리가 내는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지는 듯 하다.
이제 거의 다 온거야...헉헉헉.
350 kcal, 360 kcal, 370 kcal...




그리고 시간이 남은 마지막 1분을 가르키면, 속도계를 4.2 mile/hr 로 내려놓는다.
현재 375 kcal.
30초가 남았을 때, 3.7 mile/hr 로 재조정.
현재 388 kcal.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며 드디어 목표점에 도달한다.
399.7 kcal.
아까비...
오늘은 400 을 넘기려고 했는데...
acb, bcb, ccb...

내일은 중간에 5mile/hr 로 뛰기 시작하는 포인트를 좀 더 앞으로 당겨봐야겠다.
후... 여하간 수고했네. 또 하루 넘어섰지?
답답한 gym을 벗어나 바깥의 싱그러운 바람을 빨리 맞고파...
빨리 바람을....
끼이익... 철컥!




이제야 처음 벌어진 상황으로 돌아왔다.
무길도 동네 주민여러부운...
하고 방송을 때릴 수도 없고, 너무 아침 일찍이라 옆집 문 두드리기도 뭐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시간이 되면 방법을 강구하기로 한다.
오늘따라 쓸쓸한 날씨 때문인지 풀장에 오는 사람들도 하나도 없네.
매일 나하고 런닝머신을 두고 시간싸움 하던 노인네는 왜 오늘따라 보이질 않는건지... 쩝.
그래도 흠뻑 땀을 흘리고 열어가는 또 하루가 상쾌하기만 하다.
내일도 또 뛰능겨.
바람처럼 말이징~




(2011.06.07)

그 노인네의 자랑거리

그 노인네의 자랑거리









그는 항상 오른쪽 발을 약간 끌며 건물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걷는다.
그리곤 가게문을 향해 90도로 정확하게 우향우한 후 유리문 손잡이를 잡아 당긴다.
뿌옇게 김 서린 듯한 안경 속에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언제나 먼 곳을 여행하고 있다.
잘 정돈된 백발의 카이제르 수염은 잊혀진 날의 훈장처럼 그의 코 밑에서 유세를 한다.
언제나 처럼 카키색 방수재킷 위로 푸른색 배낭을 매고 머리 위엔 짙은 남색 등산모.
영락없는 등산객 차림의 그가 가게 안을 휘- 둘러 보다가 나를 발견한다.

또 언제나 처럼 반가운 표정을 하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그.
배낭을 내려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지퍼를 열고 안을 뒤적이어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한다.
곧 그 무언가를 찾았는지 나를 향해 빙긋 미소를 던지며 집게 손가락을 힘차게 치켜세워 보인다.
얼핏 보기에 오래된 신문처럼 누렇게 변한 종이조각을 꺼내 들고있다.
그는 복사기들을 향하여 잠시 시선을 주더니 나를 향해 복사기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큰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우갸갸갸 으거 우갸갸거거..."





오우케이.
나는 잘 알아 들었다는 듯이 그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여주며 카운터를 빙 돌아 그에게로 간다.
그는 다시 한 번 종이조각을 흔들며 복사기 위에 얹으며 손가락으로 1장을 표시해 보인다.
"으갸갸가..."
복사기의 밝은 불빛이 엷은 신문지를 투과하며 그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밥이나 제대로 먹었는지... 까칠하게 골 깊은그의 얼굴엔 윤기가 없다.
잠자리와 샤워할 곳은 해결하는지 그는 그래도 항상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복사되어 나온 것은 오래된 신문기사 스크랩이다.
커다란 흑백사진이 함께 한 제법 큰 박스기사엔 "oo고교 풋볼스타, 명문대 진학" 이란 제목이 달려있다.
할아버지 기사예요?
손가락으로 사진의 남자를 가르키며 슬몃 물어본다.
그는 사진 속의 남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손가락으로 얼굴 윤곽선을 따라간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 얼핏 눈물이 어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복사기 옆의 이면지통에서 종이를 하나 꺼낸 그는 거기에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쓴다.
"내 아들이라네."
"스무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먼저 갔지..."
노인의 글씨는 점점 더 떨리며 더 꼬부랑거리고 끝내는 그는 하여금 클리넥스를 꺼내 코를 한 번 팽- 풀게 한다.
미안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잘 생겼지? 나의 가장 큰 자랑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어깨를 위로하며 가볍게 두들긴다.

노인은 내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기사를 읽는 동안 두어번 더 코를 풀고 간간히 유리창 밖의 회색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복사한 기사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침을 묻혀가며 봉투 뚜껑을 붙였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아들자랑을 이렇게 보내는 모양이다.
봉투엔 예의 떨리는 꼬부랑 글씨로 주소를 썼고 그 위에 우표 한 장을 약 10도 정도 비스듬하게 붙였다.
나는 그에게서 그의 소중한 보물을 두손으로 정중하게 받아든 후에 카운터 앞에 있는 우편함에 잘 넣어주었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치세우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뒤로 돌아 가게문을 열고 나갔다.
여전히 오른발을 약간씩 끌며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한참을 지켜보았다.




사실 그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우린 매년 똑같은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년 내내 한마디 하지 않는 그는 그의 아들 기사를 어딘가로 부칠 때만 저렇게 신이 나고 열심히 설명도 하고 그랬다.
나는 또 천연덕스럽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또 똑같은 반응으로 화답을 하고...
그 노인네의 유일한 자랑거리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안좋은 것일까...?
하긴 오죽 거짓말을 많이 했으면, 우리집 가훈을 '정직'으로 정하셨을까? ^^

나도 자랑할 만한 무언가를 남겼어야 했는데...
우리 부모님도 남들처럼 자랑하실 만한 그 무언가를 내가 해놨어야 하는데...
물론 그런거 없어도 우리 부모님은 날 사랑하실 거라는 건 안다.
그래도 역시 티미한 아들 보단 좀 또렷한 아들이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쇠퇴하시는 기억 속에 오래 뚜렷하게 존재하려면 말이다. ^^

인생은 오십부터라는데, 이제 시작하면 늦지는 않았을까? ^^




(2011.05.11)

우린 괜찮여



우린 괜찮여










"잘 봐라."
녀석은 하나, 둘에 두 손을 바짝 가슴팍까지 끌어 당겼다가 셋에 뛰어나가듯 솟구치며 팔을 쭈욱 뻗어 돌팔매를 한다.
채 20여 미터도 제대로 날지 못하였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동생에겐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기만 하다.
"엉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멀리 던져?"
"그러니까 내가 던질 때 잘 봐... 리듬을 타란 말야."
답답해하는 엉아의 표정을 보면서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하며 되묻는다.
"리듬?"
"그래, 하나 둘 셋 하는 리듬 말이야."
엉아는 다시 똑같은 자세로 작은 조약돌을 바다 멀리 날려보낸다.





바로 옆에선 좀더 고난도의 기술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봐라, 마. 이리 이리 이리 하마 되잖나?"
갓 초등학교나 들어갔을까 싶은 쌍동이는 아빠의 폼을 눈여겨 보았다가 그대로 따라 해보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이리 이리 이리 했는데 와 안 튀나?"
"좀더 팔을 눕히고 수면과 평행으로 깔아주는게 중요하다고 안카나."
하지만 두번째에도 아이들의 돌들은 퐁! 하는 외마디와 함께 입수- 튀어나오질 않는다.
"안되는데?"
"마, 내도 물제비 성공하는데 쫌 걸렸다 아이가..."
머리 벗겨진 아버지는 어험, 어험 하는 표정을 하며 다시 아이들에게 돌을 잡는 법을 보여준다.





내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진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을까?
솔직히 대부분의 한국가정들이 그렇듯이 나의 기초교육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글씨 쓰기, 이불 개기, 책상 정리 등등 가정의 일원으로서 자리잡기에 꼭 필요한 초등공민교육은 말이다.
무길도한량이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께서는 사회생활에 대한 것들을 가르치지 않으셨나 싶다.
특히 식사예절은 좀 엄격한 편이셨다.
소리내며 먹지않기, 입 안에 무엇을 넣고 말하지 않기, 밥 먹을 때 다른 거 안하기 (예를 들면 TV나 신문) 등등.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걸 기억한다.
물론 그 당시엔 에이, 또 그 잔소리.... 하는 마음이 90% 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것이 오히려 그립기만 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여러번 듣고 또 들었던 콩쥐팥쥐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매일 밤 조르듯이...
그 잔소리가 더 듣고 싶다.




세월은 점점 흘러 이젠 그 잔소리 마저도 들을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처음 야구글러브를 사주셨을 때 공을 같이 주고 받고 (어린 나는 아버지 볼이 생각보다 강해서 손이 아파 곧 그만 두었지만),
테니스를 같이 치고 (내가 좀 안정적인 수준에 이르렀을 땐 아버진 테니스 공 쫓아다니시기에 너무 연로해지셨다),
세상사를 이야기 하고 (주로 듣는 것이 내 몫이겠지만), 
가족 대소사를 의논하고 (주로 난 비서역할이었지만)...

그리고 많이 반복하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 (아주 많이...)...
이젠 그 이야기들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 고소해지고 더 흥미로워져서 매일 매일 더 듣고 싶은 마음이다.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시던 이야기, 같이 무엇인가 하던 그 시간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는 내게로 흘러왔다.
그 목소리가, 그 눈길이 그립기만 하다.




예전에 TV에서 한 때 즐겨보던 '고향에서 온 편지' 라는 것이 생각난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란히 서서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잉~ 첫째야, 두째야, 시째야. 우릴랑 걱정말고 몸 건강히 잘 있거라~"
할머니 한 말씀 마치실 때 쯤 옆에 계신 할아버진 할머니 몸 주위로 달라붙는 모기를 향하여 에프킬라, 취이익!
"길동이 길순이도 잘 있으니 너희도 잘 지내거라~."
이도 절반은 성치 않은 듯 하신 할머니 한 말씀 끝나면, 할아버진 또 에프킬라, 취이익!
기운이 딸리고 서있는 것 조차도 힘들어 보이던 모든 노인네들이지만 자식들에겐 다 당신들은 걱정 말란다. ^^
우린 괜찮여...
너희만 괜찮으면 우린 괜찮여...



이 바다 건너 보이지 않는 그곳에 계셔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시옵고...
이 아들내미도 잘 지내고 있응게 두 분도 건강하시고 큰 근심 없이 잘 지내시길...

벚꽃이 하염없이 날리는 바닷가에서 즐거운 사람들을 보며 하릴없는 감상에 젖어본다.
나도 돌 하나 집어들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저 바다를 향해 던져본다.
아부지...
어무이...
건강하이소~




(2011.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