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야후 블로그로 돌아갑니다

야후 블로그로 돌아갑니다







기존에 올렸던 글들 중 사진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두어달쯤 되었습니다.
(오른쪽 리스트 중 Pentax K100 을 누르시면 그 예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재차 사진을 올려보기도 하였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먹통으로 나타나는 사진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습니다.
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일수록 그런 현상은 더 하더군요.
아마 구글에서 용량을 컨트롤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암만 알아보아도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고, 이러다간 포스팅하는 숫자 보다 잃는 사진 숫자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궁리를 하다가 예전에 사용하던 무길도한량의 야후 블로그 "꿈꾸는 낡은 카메라" 를 체크해보니, 저를 떠나게 만들었던 문제점들이 마침 모두 해결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잃기 전에 다시 야후 블로그로 돌아가려 합니다.
1년여 동안 이곳에 띄웠던 내용들을 야후쪽으로 옮기는 작업이 재미없는 일이기는 하나, 행인지 불행인지 포스팅한 것들이 그닥 많지는 않아 마음은 놓입니다.

귀찮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구글로 무길도한량을 찾아오신 분들께 감사와 동시에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노고스러운 발걸음을 저의 야후 블로그로 해주실 걸 부탁드립니다.
링크는 다음과 같으니 한번 콕 누름 만으로도 찾아오실 수 있겠읍니다.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page/1 (클릭)

그동안 깔끔한 쉼터를 제공해주었던 구글에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야후 블로그 "꿈꾸는 낡은 카메라" 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무길도한량 드림

(2012.06.19)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Guilty Dog






요즘 우리에겐 자기가 잘못하고도 잘못한 줄 모르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 싶습니다.
도대체 어릴 적 가치관교육은 어찌 된 것일까요?

개도 자기가 잘못하면 창피한 줄 아는 세상입니다.
웃기는 소리 말라구요?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아래 비디오 함 보시고 Denver 의 미안해하는 모습을 확인하시길... ^^


http://www.youtube.com/watch?v=58bEHH4twkM&feature=related (클릭!)



(2012.05.19)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You Raise Me Up


You Raise Me Up







"내 영혼이 심히 힘들고 지칠 때나
괴로움이 밀려와 내 마음이 무거울 때면,
당신께서 내 곁으로 오셔서 잠시 앉으실 그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께서 일으켜 주시기에 내가 산 위에 설 수 있고
당신께서 일으켜 주시기에 내가 거친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께 의지할 때 내가 강해지며
당신께서 일으켜 주실 때 내가 능력 이상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첫 부분이 시작될 때면 항상 가슴이 뭉클하고 저려오기 시작하는 것은 꼭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들어도 좋은 이 노래를 사실 어버이날에 띄웠어야 했는데... --;;
너무 아부하는가? ^^;;
아부면 또 어때?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분과 무조건 사랑을 주시는 우리 부모님께 고운 카네이션을 바칩니당~
항상 믿고 의지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당~ ^^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이기적인 줄은 알지만, 또 그것이 인간의 모습 아니겠는가?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고 절대적인 힘이 아쉬울 때가 하나님을 가장 많이 찾을 때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평상시 괜히 쑥스럽고 친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생각하시고 꼭 잡으시길... ^^

유튜브에 있는 동영상 중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를 배경으로 만든 것을 골라 봤다.
처음 그 영화를 보면서 흘리던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죄 짓고 살아야 하는데... ㅉ
용서하소서...

아래 노란색 링크를 과감히 클릭하시고 감사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각 가정 가정의 컴퓨터 마다 일어나길... ^^

http://www.youtube.com/watch?v=sza4rh1YzsM&feature=related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x2)


There is no life - no life without its hunger
Each restless heart beats so imperfectly
But when You come and I am filled with wonder
Sometimes I think I glimpse eternity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x2)


(2012.05.11)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내해 좋다 하고







내해 좋다 하고 남 슬흔 일 하디 말며
남이 한다 하고 義아녀든 좃디 마라
우리는 天性을 딕하여 삼긴 대로 하리라


                                     (변계량)



내가 좋아한다고 해도 남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며
남이 한다고 해도 옳은 일이 아니면 따라하지 말라
우리는 하늘이 주신 성품을 지켜 천성 대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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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고관대작들은 경복궁 주변의 북촌에 주로 기거했고, 반면 벼슬이 떨어진 가난뱅이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은 저만치 떨어진 남산골이었다.
이희승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 를 보면, 이들 남산골 샌님들은 가난에 찌들지언정 선비로서의 꼿꼿한 기개와 절조를 잃지 않고 살았다고 이야기 한다.
꼬장꼬장한 선비들의 고지식함, 자존심, 지조...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지주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 흐르는 풍조들을 보면 마음이 갑갑해져옴을 숨길 수 없다.
옛부터 배워온 미풍양속을 존중하면 수구꼴통 취급받음은 물론이요, 선도적 역할을 하여야 할 대중매체들은 서로 저질화 경쟁을 벌이고, 신성한 교육의 현장은 지식을 파는 돈벌이 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 무지한 줄도 모르고 목소리만 높이는 대중, 또 그를 선동하고 이용해먹는 정치세력들, 어떤 나라에도 밀리지 않을 제도적 구조적 부패와 타락, 그리고 거짓말들...
이러고도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마치 빅뱅을 기다리는 혼돈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면, 집앞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편안한 마음으로 펼칠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매일 기쁜 마음으로 학교를 가고, 선생님의 사랑과 믿음 속에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정직하고 염치가 있어 가족과 이웃과 나라를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호시탐탐 노리는 외적들이 있어도, 나라를 지키는데에는 모두가 힘을 합하여 그 어떤 나라도 우리를 함부로 볼 수 없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국민 모두가 행복해 하는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천성을 딕하여 삼긴 대로 하면 그리 되지 않을까나...? ^^


(2012.05.10)



2012년 5월 8일 화요일

미워할 수 없는 자


미워할 수 없는 자







오늘 천기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요.
맑은 하늘, 밝은 빛, 쾌적한 습도, 상쾌한 산들바람...
내 마음은 뭉개구름 둥실 뜬 파란 하늘 같고요.
뭉개뭉개... 둥실둥실...
이제 무길도의 청풍명월의 시절이 돌아온 모양입니다요.
기분은 그리하여 봄바람 마냥 가벼운데 멀리서 집사람까지 와주었으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요. 





우웅......
그녀의 가벼운 손놀림 끝으로 바리깡은 나의 덥수룩한 머리 위를 질주하며 사방으로 고속도로를 뚫어댔지요.
따지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지 이제 어언 18년의 세월이 흘렀네,
어쩌고 저쩌고...
자꾸 움직이지마!
이렇게 한달에 한번씩 미장원 비용 절약한 것도 따지면 천 불도 넘을거야, 아마?
어쩌고 저쩌고...
움직이지 말라니깐!
반복되는 호령에 샐죽하여 그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지요.
능숙하게 바리깡 날의 깊이를 끼리릭! 조절하고 그녀는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요.
우웅......






우웅...
지금쯤 하늘은 어찌 변했을까 생각하다 이발 후 산보나 제의해볼까 하여 그녀를 불렀지요.
근데 말야...
정적을 깨고 나온 나의 목소리가 목욕탕을 울릴 만큼 컸던지, 깜짝 놀란 그녀의 바리깡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을 나는 느꼈습죠. 
엄마, 난 몰라!
두둥! 바리깡은 당연 스톱 되었지요.
......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니 별 흔적도 없는데 그녀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었습니다요.
거울론 안보일거야.
많이 표시나냐?
거울을 통해 뒷통수를 보려는 듯 두 눈동자를 양끝으로 최대한 굴려가며 내가 물었지요.
응...
흉해?
응...
에이, 쯧.






걷는 동안 그녀가 내 뒷통수를 바라보며 자꾸만 실실 웃더만요.
미안해서 어떻하지?
미안한 사람이 왜 자꾸 실실거리고 웃어?
미안하니까...
그녀가 괜히 더 친한 척 자꾸 나의 팔뚝에 매달렸습니다요.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쯧.
아냐, 그래도 앞에서 보면 잘 생겼어...ㅎㅎㅎ
거 왜 말 한마디에 깜짝 놀래고 그래?
ㅎㅎㅎ 괜찮아, 조금 지나면 괜찮을거야...ㅎㅎㅎ
뒷통수에 눈이 없으니 도대체 얼만큼 빵꾸가 났는지 난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녀가 자꾸만 실실 웃는 걸 보니 제법 큰 빵꾸임에 틀림없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습니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전속이 실수했는데...
한 달은 눈 감고 살아가는 수 밖에요... 쯧.
쯧이구 말구요.






저 바다 건너 올림피아산 위로 하늘빛이 끝없는 설레임에서 우울한 코발트로 변하여 갔읍지요.
곧 또 한바탕 차디찬 비를 쏟으려는 기세겠지요.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총총 산보를 마감했습니다요.
우리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모처럼 한 상에 둘러앉아 가족 분위기를 냈습죠.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가던 큰 아이가 주책없이 물었어요.
어? 근데 아빠 뒷머리 왜 그래?
......

엄마가 배고파서 좀 뜯어먹었어.
엄마가...?
그녀는 구석진 천장 끝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척 했구요.







그녀는 근무 후 한달에 한 번 집에 와서도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긴 하죠.
아이들의 요구사항들을 해결해주랴, 한달 동안 무길도한량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집안일을 챙기랴, 교회 친구들을 만나랴, 그리고 또 학위를 위해 공부하랴...
바리깡으로 나의 머리 밀어주랴...

이런 그녀의 바쁜 일상은 간혹 한밤중의 비명으로 연결이 되곤 했습지요.
나쁜 꿈을 꾸곤 벌떡 일어나 옆에서 고이 자고 있는 사람을 마구 혼내거나, 또는 실제로 다리에 쥐가 나 경련이 오는 다리를 붙들고 밤새 괴로워 하는 일들이 종종 있곤 했었구요.







요전엔 이런 일도 있었구만요.
그녀가, 고이 옆에서 잘 자고 있는 무길도한량의 옆구리를 발길로 냅다 질러버린 것이지요.
억!
자던 중에 옆구리에 발길질을 당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린 저 소리 밖에 없더군요.
이... 웬 아닌 밤중에 옆발질인가!
정신이 번쩍 든 무길도한량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질렀습니다요.
왜 그래?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한밤에 별안간 잠을 깨운 무길도한량을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며 부시시시 일어나 앉았더만요.
일어나 앉긴 했지만 그녀의 두 눈에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아챈 무길도한량, 그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그녀를 다시 눕혀 자도록 해줬습니다요.
끙... 내가 참아야지...
다시 누운 그녀가 이불 속으로 고소해하며 웃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요.






여하간 그래도 우리는 잘 살고 있습지요.
바리깡에 머리도 한 줌 뜯겨도, 한밤중에 옆구리에 옆차기 한 번 받아도...
그녀의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하는 가족사랑 속에 잘 살고 있지요.
언젠가 결혼기념일날 호숫가에 둘이 앉아 츄러스 한 줄로 기념식사를 대신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엔 큰 맘 먹고 좋은 포도주 한 병 땄습죠.
헤... 두어 모금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기냥 잠들어버리더군요.
조금만 더 참자. 나중에 지금 고생하는 거 다 갚아주겠다고 이야기 하려 했었는데, 듣지도 않고 말이죠.

그래도 참 미워할 수는 없겠지요?





(2012.05.08)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가마귀 칠하야




가마귀 칠하야 검으며 해오리 늙어 희랴
天生 黑白은 녜부터 잇건마는
엇더타 날 본 님은 검다 희다 하는니


                                       (무명씨)


까마귀가 칠해서 검으며 해오라비는 늙어서 흰 것이랴
원래 희고 검은 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것인데
어째서 날 본 님이 희네 검네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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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님은 왜 그러시는걸까?
아마도 님은 외로워 같이 말동무하고 싶었던게지요. ^^
너무 따지지 말고, 적당히 같이 흥분하면서 토론하며 뜻을 나눠보시지요. 홍홍홍...

어제와 그제는 블로그에 무엇을 좀 써볼까 하여 컴퓨터 앞엘 앉아 그동안 끄적여 놓았던 메모지들도 들여다 보고 이것저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도 보고 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생각의 끄트머리가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내 머리 속도 어지간히 정리가 안되어 있음이 틀림이 없다.

하여 이전과정 중 버그가 발생, 편집이 엉망이었던 작년 7월 3일자 포스팅 "Flight No. 292" 도 손봐 다시 포스팅하고, 이럭저럭 여기저기 떠들쳐 보다 보니 흥미로운 통계가 있어 한 번 올리고자 한다.

그것은 작년 6월 무길도한량이 구글블로그로 옮겨온 이후 방문한 이들에 관한 통계였는데, 특히 나라별 통계가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블로그 독자의 대다수는 한국과 미국에 있음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 다음부터가 참 흥미로워 한 번 순서대로 나열해본다.

3위 러시아 (혹시 푸틴이 감시명령이라도...? ^^)
4위 일본 (재일교포들이 검색을 통해 찾아주셨다고 치자.)
5위 라트비아 (이... 옛 공국에서 무슨 비지네스루다가 찾았을고? ^^)
6위 독일 (L을 비롯한 독일친구들이 있으니 그림만 보러 왔다 치고...)
7위 말레이시아 (??? 이곳에선 뭐 볼려고 이렇게 왔을까?)
8위 캐나다 (캐나다에도 무길도한량의 친구들이 있으니까...)
9위 아일랜드 (왜 찾아오셨을까...정말 궁금하다.)
10위 아랍에미리트 (참 궁금하지용...)
그 외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브라질, 오스트리아, 스페인,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예멘 등등.

그러다 보니, 12억 인구의 중국과 아프리카 대륙에선 한 번도 방문이 없었던 것이 또 신기하기도 하다.
하여간 여러 나라에서 방문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길도한량은 용기백배!

이유 불문하고 또 어디서 오셨던지 간에 많이 봐주시고 많이 읽어주시면 그보다 더 고마울 것도 없고, 또 무길도한량은 언제든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물론 때론 이야기 구성이 잘 안풀려 포스팅이 더딘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이것저것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니 관심을 두고 봐주시길...
앞으론 외국어 포스팅도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하여간 재미있는 글도 있고, 예쁜 사진들도 있응께 마이 오이소~ ^^


(2012.04.21)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Flight No. 292


Flight No. 292































Flight No. 292
동체 길이 47.3m, 높이 13.6m 의 날렵한 모습의 너는 보잉 757-200 기종이다.
San Francisco 에서 이륙, 총 2,600 mile (4,183 km) 을 평균고도 35,000 ft, 평균속도460 kts (850 km/h) 로 약 5시간 동안 날아 목적지 Orlando에 도착할 것이다.
과연... 여름 성수기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좌석들은 빈 곳 하나 없이 채워졌다.
꽁치보일드 마냥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낼숨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내의 산소가 고갈되어갈 무렵, 넌 선심쓰듯 에어콘을 틀어주었다.
그나마 이코노미석 보다 몇 인치 여유있는 Economy-S석을 배정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
이런 말 한 마디도 없이 기장은 다짜고짜 기내 방송을 시작한다.
스피커가 문제 없이 잘 나오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승객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올랜도까지 모시게 될 기장 아무개 올시다...."
사람들은 그의 인삿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각자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있는 에어콘 노즐을 조정하기 바쁘다.
그와 마찬가지로 승무원들도 승객들의 무관심 속에 구명동의 착용법과 비상탈출 요령을 시연해보인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현대인의 생존방법 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듯이...



아, 난 참 플로리다 올랜도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팔자 좋은 여행이다.
플로리다에 올랜도... 좋지?
디즈니 월드가 있는 곳, 입 큰 악어도 있고, 차창을 뿌옇게 채색 해주는 러브버그 (love bugs)도 있고, 빠르기가 번개 같은 새끼손가락 만한 도마뱀들이 개미 만큼이나 우글대는 곳, 제대로 된 나무가 없고 검불들만 우거진 곳...
매일 매일 한낮의 수은주가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고온다습의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곳.
노래가 절로 나오나? 마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를 지나가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우리 집사람이 고군분투하며 앵벌이하고 있는 곳. ^^
집사람이 2년 동안 한 20번이 넘게 무길도를 와줬으니, 나도 한 번 쯤은 답방을 주어야... ^^



























하여, 나는 아이들과 함께 너를 타고 하늘을 난다.
바다처럼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너의 흰 날개깃이 아름답다.
너의 날개 밑으로 산맥들과 협곡들이 구름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나타나고, 이름 모를 플래토(plateau)와 평원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간혹 실가닥처럼 얇은 도로 곁으로 손톱처럼 작은 크기로 마을의 모습들도 보이고...
인간의 소치가 이리도 보잘 것 없는 것이리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시던 그 시선을 상상해본다.

저 멀리 뭉개뭉개 일어나는 것들은 끝 없는 평원을 수놓는 양떼들의 대이동, 희망봉을 끼고 도는 바돌로뮤의 하얀 돛, 깨어져 나온 남극의 빙산 조각...
상상의 깊은 골에서 너는 약간의 터뷸런스(turbulence)에 몸을 움찔한다.
하지만 강력한 쌍발엔진과 날렵하게 광채나는 기체와 잘 훈련된 조종사의 기술로 무장한 너는 별 문제 없이 계속 나아간다.
이렇게 철저하게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나를 내맡긴다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우린 그저 커다란 엔진을 단 채 하늘 높이 던져진 깡통 안을 가득 채운 고기덩어리들에 불과할 뿐이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인가?
외줄타기 처럼 위태위태한 오늘을 살아가기에 우린 심지어 지푸라기라도 한가닥 잡으려 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이렇게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빽이 필요한 시점이다.
눈을 지긋이 감아본다.
해답은 바로 그 순간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When the worries of life lead us to despair, we are not trusting you.
When we seek answers everywhere but from you, we are not trusting you.
When your word to us is clear, but fail to act, we are not trusting you.
Forgive us.

Help us always to turn to you in faith, knowing that you know what is best for us.


아내도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며 수 많은 기도를 올렸으리라.
타박타박 한걸음씩 메마른 사막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리고 한잎 두잎 이제 막 피어오르는 어린 나무들처럼 일어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또 멀리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원과 애정을 담아 우릴 감싸주는 가족들의 안위를 위하여...
절대자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뜨거운 기도를 말이다.




























이제 너는 황금빛으로 불을 밝힌 올랜도의 밤 자락 끝에 우릴 안착시킨다.
우리 집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 적마다 비행기값을 절약하기 위해 600불짜리 직항을 안타고 절반 가격도 안되는 원스탑 노선을 이용한다.
우리도 오늘 원스탑노선으로 엄마 따라하기를 해보았다.
아침 6시 무길도를 떠나 10시 비행기를 타고, 샌스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연결편까지 5시간을 기다리고, 또 5시간을 비행하여 이제 올랜도에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을 하고 있다.
물론 시차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꼬박 하루가 걸린 여정이었다.
우리를 한 번 보기 위해 매달 그녀가 걸어왔을 그 힘든 발길을 생각하며 목이 깔깔해짐을 느낀다.
이제 저 문을 나서면, 그녀는 또 밤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표정에도 기쁜 얼굴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팔을 크게 펼치며 달려와 우리들과 포옹을 나눌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을 기억할 것을 바라 마지 않는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어도 그들의 미래를 위해 아낌 없는 수고와 사랑을 바치는 그녀를 만나러 온 이 날을 말이다.
물론 그녀의 곁엔 항상 하나님의 든든한 빽이 함께 있었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며 항상 두 팔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2011.07.03)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How Great Is Our God

How Great Is Our God
우리 주는 얼마나 위대하신지







첫째 녀석이 학교 밴드의 일원으로 일주일간 파리를 다녀왔다.
너무나 신나 하면서...
유치원 때부터 자폐 걱정을 하며 자랐는데, 물 건너 온 후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한 녀석이 대견하기만 하다.

아마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는 이곳 교육방법이 그 아이에게 잘 맞은 모양이다.
아주 활달해지고, 친구들과 사귐성이 뛰어나고, 긍정적인 모습.
음... maybe too much. ^^
공부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목표를 정하면서 노력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이고...

이젠 서울에서 겁 먹고 풀 죽은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오던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다.
녀석의 밝고 환해진 얼굴을 보면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라도 우리가 이곳에 온 보람이 200% 느껴진다.

아흔 아홉마리의 양 보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소중히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곳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 같다.
감사의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 순간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yu-2g2K7CEI&feature=related (클릭)

The splendor of a King,            
Clothed in majesty                  
Let all the earth rejoice            
All the earth rejoice                  


He wraps himself in Light,        
And darkness tries to hide        
And trembles at His voice        
Trembles at His voice              


How great is our God, sing with me    
How great is our God, and all will see  
How great, how great is our God        


Age to age He stands            
And time is in His hands
Beginning and the end
Beginning and the end


The Godhead Three in One
Father Spirit Son
The Lion and the Lamb
The Lion and the Lamb


Name above all names
Worthy of our praise
My heart will sing
How great is our God


How great is our God, sing with me
How great is our God, and all will see
How great, how great is our God


(2012.04.14)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라면 한그릇

라면 한그릇




바야흐로 화사한 봄날의 연속이다.
삼일을 연속으로 햇살이 만발했던 것이 얼마만일까?
10월 중에 시작되었던 우기가 이제 끝이 나는 것인가?
하하,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섣부른 봄빛은 잠시 후의 약 2주간 지속되는, 우기 마무리비가 온 다음에야 진짜 진짜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봄의 여왕 5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또 한 번의 길고 우울한 우기를 짙은 커피향으로 이겨냈음에 자찬이 절로 나온다.

엊그제는 서울에서 울 오마니께서 보내신 위문품이 도착했다.
그게 미국에 오면 이름이 케어 팩키지 (care package) 로 바뀐다.
천만리길 혼자 떨어져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한 누룽지, 김자반, 물기를 쥐어 짠 장아치들...
언제나 할머니 곁을 그리워하는 손녀들을 위한 과자들, 비밀리 꼬불친 오달러 짜리 몇 장...
그 틈바구니로 빨간 포장지의 '뽀빠이'가 눈에 띄었다.
별사탕이 더하여졌기에 이름도 삼양 '별뽀빠이'로 변하였지만, 우리 옛날에 아주 가끔씩 군것질 쾌가 있을 때 소중히 까먹던 그 뽀빠이임에 틀림이 없었다.

옛날과는 사뭇 달라진 겉봉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한다.
"철분 2.25mg 함유 (호!?)
2012.08.07. (이건 유통기한일 터이고...)
김미숙 02 (아마도 2번 생산라인의 감독책임자일 것이고...)
중량 65g, 열량 290kcal (한끼 밥은 되네?)
...
그리고 또 뒷면도 살펴보다가 발견한 한 문구.
"주머니 속에 쏘옥~ 휴대하기 간편해서 OK!"
하하, 누구 주머니인지 참 크기도 하다. ^^

우리 어렸을 적에도 모처럼 뽀빠이 하나 사면 봉지를 싸악 뜯어서 내용물만 바지주머니에 쏟아넣고 돌아다니면서 찔끔찔끔 꺼내먹는 온종일용 주전부리였다.
"야야, 빨리 접어."
"가만 있어봐. 좀 먹고..."
딱지로 글높 별높 따질 때도, 팔방다마로 쌈치기를 하다가도 주머니에서 한웅큼 꺼내 입에 넣고 으드득 으드득 씹어먹던 것이 뽀빠이였다.

물론 제일 먼저 나온 삼양 베이비라면과자도 있었고, 뽀빠이보다 더 고소하고 면발이 가늘었던 10원짜리 롯데 라면땅, 20원짜리 고급형 롯데 자야도 있었다.
내 개인적으론 라면땅을 선호하였지만 그래도 역시 단위금액 당 양이 월등히 많았던 뽀빠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생존해있는 것도 뽀빠이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을 만들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이용하여 만들기 시작했다는 라면땅, 라면과자들...
하지만 나에겐 그 라면부스러기 과자가 크나큰 사치일 뿐이었다.
라면을 끓여 먹기도 힘든 살림에 라면을 부숴 만든 과자라니요...

미아리 산꼭대기 단칸방 시절, 지겹도록 먹던 칼국수와 수제비들 사이로 한줄기 광명이 비치던 날은 바로 어머니가 성북동 라면공장으로 일일견학을 다녀오시던 날이었다.
바람만 불어도 덜컥대던 부엌문짝 사이로 꼬래꼬래한 고기국물 냄새가 퍼져나오고 세발 달린 플라스틱 저녁밥상이 문지방 넘기만을 고대하던 누이와 내가 괜히 신이 나서 방바닥을 콩콩거리며 맴돌았던 그 날.
누이의 그릇에 라면이 한가닥이라도 더 들었을까 사정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기도 했다.

면발 찌끄러기는 커녕 국물 한방울이라도 남길 수 없어 마지막 방울까지 이미 사라진 그릇을  쪽쪽 빨던 나의 모습에 어머닌 그렁한 눈을 하시고 날 당신의 무릎 위로 안아 올리셨다.
"그렇게 맛있어?"
응, 무지 맛있어.
"그래, 우리 다음에도 또 많이 먹자."
난 고개를 얼른 끄덕이면서도 누이의 턱 끝을 행해 달음질치는 라면국물줄기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런... 국물 좀 빨리 핥아랏! 턱 밑으로 떨어진다잉~

라면으로 좋은 저녁을 신나게 먹고 나면 저녁하늘 너머 별들은 더 아름다웠다.
어머니와 함께 견학을 다녀온 집들에서 나온 라면냄새로 온동네가 행복 속에 빠진 듯 했다.
겨우내 걸핏하면 싸움박질이던 석이네 집에서도 환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우린 맑게 빛나는 삼태성을 바라보며 병원에 있는 우리 아가도 생각하며 노래도 불렀다.

날 저무는 하늘엔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비추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그러다보면 누이를 향해 욕심부렸던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누나, 라면 참 맛있지?
"그래, 정말 많이 먹고 싶다."
그래, 나도 정말 많이 많이 배 터지도록 먹고 싶다.
그렇게 라면은 내 가슴 속의 양식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며 가닥가닥 세듯 먹던 누나는 지금 하루에 라면 몇 봉지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라면이 그저 단순한 보리고개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식량의 하나로만 평가되어지던 시절,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유행가를 개사해서 불렀던 노래가 하나 있다.
기억컨대 개그맨 고영수가 만들지 않았나 싶은데, 그 당시 많은 싱건지들이 너도 나도 따라 불렀기 때문에 원작자에 대하여는 나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겠다.


국수가 파마를 하면은 그때는 라면 (워~워~)
라면이 불어서 파마가 풀리면 그때는 우동
우동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그때는 짬뽕 (워~워~)
이러는 내 모습 서러워 울면서 먹으면 그때는 울면
내 인생 꼬여서 하루의 한끼는 김치도 없는 라면


나는 지금 한국에서 라면 한봉지가 얼마인지 알지를 못한다.
종류도 워낙 많을 뿐더러(!) 서로 가격 차이도 많이 나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가는 마켓에서는 어떤 한 일본라면 브랜드를 세일해서 1달러에 6개씩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라면이 묘하게도 나의 첫 삼양라면의 국물 맛과 많이 비슷하기에 다른 비싼 (좋은?) 라면들은 제쳐두고 항상 이것만 찾게 되는 것이다.
소금량에 주의코자 국물은 가급적 손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경우 그 국물의 맛을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빠져있다.
심각한 중독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십여년 전 일본 동경 뒷골목 시장을 지나다 허름한 문짝 위의 '라멘'이란 글씨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
동행했던 매제도 라면을 꽤나 좋아하던지라 신나 했지만, 막상 카운터 너머로 라면이 등장하였을 때 우린 그 '원조 라면'에 놀라고 말았다.
파마를 안한 생머리의 라면!
하지만 주방장이 직접 맛낸 국물은 원조라는 말에 걸맞는, 깔끔한 맛의 고깃국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맛이었다.


생각난 김에,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영양제 보내드리는 편으로 유명한 일본라면 세가지 맛을 한개씩 박스에 동봉했다.
혹시나 두 분 저녁상에 영 국거리가 마뜩찮으실까봐, 혹시나 옛날 단칸방 시절 모처럼 잡수셨던 라면이 생각나실까봐, 혹시나 맵게 만들기 경쟁에 옛라면들처럼 좀 점잖은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실까봐, 또 혹시나 두분이 다투시기라도 해서 서먹서먹하실 때 서로 라면 한 젓가락씩 나눠 잡수시라고...
옛날 코메디언 구봉서씨와 곽규석씨 처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고 말이지. ^^

4월하고도 중순에 들어선 아직까지 공기 중엔 제법 차디찬 기운들이 섞여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뜨-끈한 라면 한사발이 간절한 것은 과거의 아픈 상처의 아련함 때문인지 아니면 죽도록 라면을 사랑하는 어느 오타쿠의 열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산이 그곳에 있어 올랐듯이 라면이 거기 있기에 먹는 것일까?

오늘도 1달러 어치의 라면을 쇼핑카트에 담으며 나는 마냥 행복한 생각에 빠져든다.
하루에 하나씩 6일을 먹을까?
아니, 하나씩 5일 먹고 마지막날에 곱배기로?
당근과 파를 썰고 계란을 풀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식초를 한두방울 넣어줄까?
아니지, 역시 오리지널 국물맛을 즐기려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말아야...
...

즐거운 상상으로 입끝이 씰룩씰룩하다 절로 벌어지는 헤벌죽한 웃음 끝에 계산대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헤비급 점원과 눈이 마주친다.
가만 바라보다가 보니 괜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 버럭 짜증을 낸다.
아니, 왜 1달러에 일곱개면 일곱개지, 여섯개냐고?
"What did you say?"
녀석이 한걸음 내딛으며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아니, 뭐...You have a good price 라고...
그래도 하루에 한개씩 일곱개 맞춰주면 좋을텐데...쩝.



(2012.04.11)

2012년 4월 1일 일요일

어제도 난취하고




어제도 爛醉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긋제 깨엿뜬지 긋그제는 나 몰래라
來日은 西湖에 벗 옴안이 깰똥말똥 하여라


                                         (유천군)

어제도 몹시 취했었는데 오늘도 또 술이구나
그제는 깨었던 것 같고 그끄제는 기억이 없네
내일은 서호에서 벗이 온다니 깨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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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좋네~. ^^
하늘가로 흔들거리는 벚꽃을 벗 삼아 한잔 술을 기울여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멋으로 마시고 향으로 마시고 정으로 마시던 한량스런 술좌석이 그립다.

주거니 받거니...
주는 이 없으면 혼자 주고 혼자 받고...
안주야 뭐 바랄거 있나?
꽃그림자에 비쳐 나온 달그림자면 최고지...
언제부터 멋이라곤 하나 없이 그저 죽어라 마시기만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봄바람도 좋은데, 모처럼 한량끼를 살려 한 잔 해보실까? ^^
달빛에 시선(詩仙) 이태백의 시나 살살 읊으며 말이지.
가야금 잘 뜯던 명월이도 합석할랑가 모르겠다.
내 일필휘지로 속치마에 시 한 수 써줄 수도 있는데... 헤헤. ^^
어이쿠, 저기 마나님 나오시넹... @~@


月下獨酌


花間一壺酒   꽃 사이로 술 한동이 놓아두고
獨酌無相親   잔을 따르는데 친구가 없네
擧杯邀明月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부르니
對影成三人   마주한 그림자와 더불어 셋이 되네
月旣不解飮   달이야 본래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내 몸의 흉내만 내지만
暫伴月將影   잠시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行樂須及春   이제 봄이 지나기 전에 즐기려 하네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은 노닐고
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흔든다네
醒時同交歡   깨어있을 땐 함께 기쁨을 나누고
醉後各分散   취한 후엔 각각 흩어지네
永結無情遊   이 티 없는 교유를 영원히 맺고자
相期邈雲漢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길 기약하네


(2012.04.01)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봄날의 비사(悲事)

 
봄날의 비사(悲事)








밤새 봄비가 창을 두드렸다.
그를 반겨 창문을 열어보니, 웬걸...
나뭇가지 가득한 벚꽃이 교태 어린 탄성을 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어제 화사하던 벚꽃은 날 향한 게 아니었네...
가녀린 봄비에 한없이 미소 주는 그 꽃이 미웠다.





그래도 난 차라리 화려한 봄빛에 죽으련다.
옹달샘 가장자리 처연히 돋아난 노란꽃 수선화나
바위 틈새백이로 한무리 피어난 진달래도 좋지만
난 파란 하늘가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이 좋아라.
화냥기 가득하도록 화사한 그 꽃이 좋아라.
그래서 난 차라리 화려한 그 빛에 죽으련다.





그 꽃엔 마성이 있음이 틀림없다.
분홍빛 향기 하늘 끝까지 올려 봄비를 불러낸 걸 보면...
그래도 오늘밤은 달빛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달빛 어린 벚꽃 아래 정신줄 놓은 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래도 오늘은 봄바람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쏟아지는 꽃비에 정신줄 놓은 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리하여 꽃그늘에 앉아 술잔을 주고 받던 날.
작은 원을 그리며 술잔에 떨어진 꽃잎을 보며 우리는 울리라.
청춘처럼 흘러갈 벚꽃의 흐드러짐을 슬퍼하며...
그리곤 마침내 예언처럼 배반의 날은 오고 만다.
사랑했던 비와 바람은 꽃잎을 몰아 눈처럼 휘날리고...
낙화로다! 낙화로다!





새벽녘 젖은 포도엔 철 지난 눈꽃들이 만발한다.
내 눈 속에 밝던 그대의 모습은 아직도 아련하건만,
무표정한 아침 하늘은 또 그렇게 파랗게 밝아왔다.
그리고 어느날 또 한번의 부질없는 맹세는 이루어진다.
내 다시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리 하고...




(20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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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5일 목요일

특별한 유전인자

특별한 유전인자








겨우내 지루하던 비가 개인 오후.
나는 의자에 한껏 기댄 채 책상 위로 다리를 뻗고 그 위에 랩탑 컴퓨터를 올려놓고 글을 쓴다.
마당에선 겨우내 치우지 않았던 낙엽들을 불어내느라 정원사의 송풍기의 소리가 웅웅거리고...

아이들은 먼 발치에서 얼마전 구매한 게임기 위(wii)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전자기기나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는, 요즘 아이들이 대개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요령을 파악하고 게임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빠르다.
나도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어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초기 수용자)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평균 보단 처지지 않았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곳곳에는 기계식 오락장이 존재했었다
서울역전 육교 근처나, 종로통 신신백화점 뒷켠, 종로 피마골 등에 제법 큰 오락실들이 산재해 있었다.
방앗간에서나 볼 수 있는 피대줄에 곡선 코스를 그려놓고 그것을 따라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하게 만든 것이나, 지금의 두더지잡기 같은 종류의 게임기, 토굴에서 나타나는 북한괴뢰군을 장난감 기관단총으로 쏘아대고 명중되면 뻘건 불이 켜지던 게임 등 지금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계식 오락기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오락실에 브라운관식 오락기들이 들어서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흑백 브라운관을 이용한 블럭격파니, 팩 맨이니, 인베이더니 하는 것들이 나오다가 1980년대 초반 컬러판 '갤러그' 가 나오면서 이름 자체도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뒤의 맥을 잇는 '제비우스' 나 '테트리스' 등이 등장항 무렵에는 여성 매니아들도 꽤 생기고, 데이트 시간 대부분을 전자오락실에서 보내는 커플도 생겨났다.
또 한가지 큰 변화는 게임기들이 전자오락실을 떠나 세상 밖으로까지 진출, 동네 골목골목 문방구니 구멍가게 옆까지 진출하며 온 동네 꼬맹이들의 코 묻은 동전들을 거둬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입시학원들이 종로2가에 몰려있던 1970년대와 일부 유명학원들이 서울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가던 1980년대 초반까지  나는 학교와 전자오락실과 학원을 삼각형 구도로 하여 맴돌았다.
신발바닥이 헤지는 것 만큼이나 검정색 교복 궁둥이도 반질거렸고, 보이스카웃의 준비! 정신에 투철한 나의 바지주머니엔 항상 동전들이 짤랑거리곤 했다.
분식집 라면 한그릇이 200원이면 전자오락게임기는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오락실과 전자오락실, 그리고 구멍가게 옆에 놓인 내 궁둥이 반쪽만한 의자 위에 앉아서 투자한 나의 시간과 동전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나, 한가지 분명 확실한 것은 그것이 나의 현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상당했다는 것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며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이것이 제 정신이었으면, 아니 합리적인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 했을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나의 본능 저 밑에서 작동하는 게임 유전인자의 핑계를 달면 나의 변명에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그러면 이제 나의 두뇌 속에 굳게 자리한 게임유전인자의 모습을 들여다 볼까?

이야기는 내가 대망의 이천년대 초반 그동안 한참 사용했던 애플의 랩탑 매킨토시 파워북 컴퓨터를 어머니께 드리면서 부터 시작된다.
"야, 내가 이것이 뭐에 필요하냐?"
아, 이거 아무것도 몰라도 되고, 여기 있는 화살표만 사용해서 게임하는데 쓰시라고...
"게임? 난 별로 원하지 않는데...?"
이거 게임하면 치매도 예방되고, 소일거리도 되고, 에 또 거시기니 설라무네...

기실 난 이미 속도전쟁에서 하향길을 걷고 있던, 오래된 그 컴퓨터를 갈아치고 싶던 마음에 그것을 처분할 곳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해서, 가르쳐드린 것이 '컬럼스(Columns)' 라는 게임으로 몇 가지 다른 색깔의 벽돌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내려오면 그것을 조종해서 좌우 또는 상하로 같은 색깔이 맞춰지면 벽돌이 터져 없어지는 게임이었다.

처음엔 조금씩 맛뵈기로만 하시던 어머니는 드디어 일단계를 통과하면서 게임의 묘미에 빠져들기 시작들기 시작하셨다.
뾱.뾱.뾱.뾱...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한밤중에...
뾱.뾱.뾱.뾱...
특별한 일이 있으신 경우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켜고 앉아 계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컬럼스게임의 소리가 집안에 일정한 모습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차츰 어머니에게 게임의 중독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충혈된 눈, 부스스한 머리, 간혹 탄 맛과 함께 밥상에 올라오는 밥, 밤샘의 연속...
이러다가 우리집 안 가득히 컬럼들이 가득 채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우리 동네 골목길 초입엔 안성식품이란 구멍가게가 있었다.
길 건너 성대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 안성식품을 지나면서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붉은 벽돌담장.
담장에 붉은 벽돌들이 규칙적으로 얼기설기 쌓아올려진 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입가엔 빙그레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보들. 저기 저걸 이렇게 움직이면 다 터뜨릴 수 있는데...'
컬럼스증후군! --;;

어느 아침.
격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시고 계셨다.
무슨 일이세요?
"넌 저 컴퓨터나 갖다 버려라! 게임인지 뭔지는 왜 가르켜줘서... 쯧."
원래 혈압이 좀 높으시던 어머니가 게임을 하시는 통에 잠이 부족하고 피로가 쌓여 혈압이 안떨어지는 모습에 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는 거였다.
아버지 곁으로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수그리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컴퓨터를 집어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려는 나의 등 뒤로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리긴... 아까운 컴퓨터를 버리긴 왜 버려요."
하여간 어머니는 그 이후로 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난 어느날.
안성식품 뒤의 예의 그 붉은 벽돌담장 아래로 인형뽑기기계가 등장했다.
동네 많은 꼬맹이들 사이로 풍족하신 몸매의 할머니가 한 분 자리하셨으니, 바로 우리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워낙 손재주가 좋으신 건 내 익히 알지만 이건 어머니께 어려울 것 같았다.
인형뽑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불패의 상무정신으로 무장하신 어머니, 열심히 오르고 또 오르고 동전을 넣고 또 넣으신 끝에 드디어 거의 게임이라면 천재에 가까운 동네 꼬맹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셨다.

무길도한량이 물 건너 온 다음해, 어머니로부터 날아온 소포엔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인형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손녀들도 주고 동네 아이들도 주고 남은걸 깨끗한 것으로 골라 챙겨 보내주신 거였다.
대단한 집중력이시지?
집사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어머니, 요새도 인형 많이 뽑으세요?
"인형은 왜?"
그거 담배뽑는 기계도 있던데, 아들을 위해서 좀... ^^
"에라, 안뽑는다. 이눔아!"
좀 더 생산적인 뽑긴데 역정은 또 왜 내실까? ^^

여러분도 혹 길을 가다가 인형뽑기 앞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보거든 혹 무길도한량을 아시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윗이빨 하나 빠진 입으로 벙긋 웃으시며 막 뽑아낸 인형 하나 선물로 받을지 모르니까... ^^

우월한 게임인자를 가진 그 할머니께선 요즘은 조금 고전적인 단어찾기게임을 즐기신다.
아들은 아마존닷컴에서 열심히 중고책을 사 보내드리고, 이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치매예방'을 외치시며 가로 세로 마구 섞여있는 영어단어들을 찾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가끔 좀 더 무료해지면 컴퓨터를 켜고 카드게임 솔리테어(Solitaire)도 하시기는 하지만 역시 단어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어머니, 그거 열심히 하면 뭐 나와요?
"재밌잖니... 넌 게임 안하냐?"
아, 저도 요즘 애들과 같이 운동하는 게임해요.
"그래, 거기 날씨 탓에 바깥 운동 못할테니 뭐라도 해서 자꾸 움직여야지."

그렇지.
게임 덕분에 어머닌 치매예방 하고 나는 운동도 하고... 좋구만 뭐.
아무래도 게임에 소모한 시간과 정력을 후회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오히려 난 물려주신 이 특별한 유전인자에 감사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대에서 더 발전된 모습으로 발현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을 테고...
게임하자!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당장 '무슨 게임할까?' 하며 달려든다. ^^

어머니, 건강하세요.
스카이프 너머로 윗이빨 하나 빠진 어머니가 헤- 웃으신다.






(2012.03.15)

2012년 3월 7일 수요일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農夫하리 뉘 이시며
醫員이 病 고치면 北邙山이 저려 하랴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모두가 벼슬을 한다 치면 농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의원이 병을 모두 고친다 치면 북망산에 무덤이 저리도 많을리가 없다
아이야 술잔이나 가득 채워라, 난 내 맘대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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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虛)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여

성주풀이 첫 구절에 낙양성 북쪽의 나즈막한 산으로, 높고 낮은 무덤군들이 십리에 걸쳐 있다고 묘사되고 있는 망산(邙山).
한나라시대 이후로 중국의 모든 황제와 공경대작들이 묻혔다 하는 이 북망산은 이후 죽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빠져나와 저승사자와 함께 오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칭하는 산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집 앞마당에서 하얀 종이국화들이 만발한 상여가 출발했다.
맨 앞에 손종을 치며 상여소리를 하며 길을 인도하는 소리꾼이 서고, 그 뒤로 할아버지 시신이 실린 아름다운 상여가 서고, 뒤로 온갖 만장(輓章)들과 우리 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남자들은 베두루마기에 새끼로 꼰 테를 두른 건(巾)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여자들은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마찬가지로 새끼를 꼬아 만든 테를 둘렀다.
상여 곳곳엔 사람들이 할아버지 가시는 길 노자돈으로 쓰시라고 지폐들을 꽂아놓았다.

출상준비를 하며 긴장이 고조되던 앞마당은 소리꾼의 신호와 함께 상여를 어깨에 맨 상여꾼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다.
항상 목소리가 가장 컸던 큰고모의 "아버지!' 하는 외마디 소리를 필두로 하여 마당 한가득히 크고 작은 흐느낌들이 무너지듯 시작되었고...
할아버지의 상여는 정든 집을 떠나기 싫은 모습으로 주춤주춤 대며 천천히 흔들거리며 골목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상여가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소리꾼과 상여꾼들은 소리를 주고 받았다.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소리꾼이 종을 치며 선창하면 상여꾼들은 후렴처럼 추임새를 주었다.
"어이 어이"
딸랑. 딸랑.
"북망산천 머다먼 길"
"어이 어이"
......

그때의 상여소리는 어린 나의 가슴에도 깊숙히 남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 청승맞게 울리곤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우리와의 마지막 날 모습이었다.
하늘은 쨍쨍하게 햇빛을 내리쬐어 할아버지 상여에 친 광목차양을 푸르게 물들였고, 꽁꽁 언 겨울산은 하얀 서리가 가득하였다.
찬 바람은 몰아쳐 눈물 흐른 뺨들을 서릿장처럼 만들고...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만수(萬壽)하소서!
 
북망산천을 향해 간다고 울어대던 상여였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그곳으로 가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우리 할아버지는 염라대왕이 통치하는 저승이 아닌, 나의 하나님의 밝은 천국으로 가셨을테니까... ^^


(2012.03.07)

2012년 3월 4일 일요일

나모도 아닌 거시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또 그렇다고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켜서이며 속은 또 왜 비었단 말이냐
저렇게 계절없이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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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항상 논란을 일으킵니다.
'대나무' 라는 말 때문이지요.
'벼과'의 다년생 식물이며 나무의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므로 '풀' 이 맞기 때문에 반드시 '대' 라고 불러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옳겠지요.
하지만 '대나무아과'에도 속해 있으니 '대나무' 라고 부르는 것도 틀리지는 않은 거 아닐까요?
꼭 나무의 종류로서 '대나무'가 아닌, 풀로서 이름만 '대나무'인 식물로 말이죠... ^^

맞건 틀리건, 개인적으론 무식하게 그냥 대나무로 부르렵니다. ^^
"짜장면" 이 '자장면' 을 무시하고 쓰이다가 결국 '짜장면' 이 되듯이 세월이 가면 또 압니까?
그냥 '대나무'가 표준말로 정착이 될지...

여하간 그건 그거고, 오늘은 대나무에 대한 좋은 교훈적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스카웃 해왔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하시진 말고요... ^^



고사리와 대나무


                                    
어느날, 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직장도, 친구와도, 신앙적으로도 말이죠...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숲으로 갔죠.


"하나님, 제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이유만 말씀해주시겠어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아라. 고사리들과 대나무들이 보이느냐?
"예, 하나님."


처음 고사리 씨와 대나무 씨를 뿌린 후 나는 햇빛도 쬐어주고 물도 주면서 잘 돌봐주었단다. 
고사리들은 쉽게 자라나기 시작해서 곧 근처를 싱싱한 녹색으로 뒤덮었지.
하지만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단다.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지.


두번째 해가 되자 고사리는 쑥쑥 더 잘 자라면서 번성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역시나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단다.


세번째 해가 되었을 때도 대나무는 감감 무소식이었지만, 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
네번째 해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섯번째 해가 되었을 때,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돋아났단다.
고사리에 비교하면, 그건 참 보잘 것 없고 대단찮은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말야, 6개월 동안 그 작은 대나무는 무려 30 미터가 넘도록 자라버렸단다.


대나무는 뿌리가 자라나는데 5년이란 시간을 쓰면서 생존하기에 필요한 강한 뿌리를 만든거지. 
나는 나의 피조물이 이겨내지 못할 시험을 주지 않는단다.


네가 여태까지 고통 속에 싸워온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너의 뿌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니?
대나무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다.

네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 하지 말아라. 
고사리와 대나무는 서로 쓰임은 다르지만, 그래도 함께 숲을 아름답게 만들지 않니?


언젠가 너의 때가 올거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너도 크게 자랄거야.


"얼마나 크게요?" 내가 여쭈었죠.


대나무는 얼마만큼 자랄 거라고 생각하니?
"자랄 수 있는 만큼 끝까지요."


그래. 네가 자랄 수 있는 만큼 최고로 자라나는 것이 나의 기쁨이란다.


나는 하나님이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숲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당신도 포기하지 않으실겁니다.


당신 인생의 단 하루도 후회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좋은 날들은 당신에게 행복을 주겠지만, 나쁜 날들은 또 당신에게 경험을 주기 때문입니다.
두가지 다 인생에 필요한 것들 아니겠어요? ^^


--- by unknown author


(2012.03.04)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때 아닌 가을이야기 한 꼭지.

해 마다 가을이 깊을 때면 우리집 마당 드높은 감나무엔 빠알간 홍시들이 주렁주렁 주렁주렁 열리곤 했다.
긴 장대로 곧추 세워 홍시를 따기 시작하면, 아버지께선 창문 너머로로 내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얘, 꼭대기 것들은 까치밥이니 남겨 두거라."
우리집 장대가 턱 없이 짧아, 감나무의 절반 밖에 미치지 않음에도 항상 확인을 하시곤 했다.
어머니께선 소쿠리 쟁반에 내가 따다 실수로 떨어뜨린 홍시들을 주우시고...
"얘, 좀 살살 혀라. 떨구는 게 반이다."
주홍색 홍시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들 사이로 말갛게 빛을 냈다.





잘 익은 홍시들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곤 했다.
밤 사이에도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는데, 가만히 듣고 있노라 치면 그 소리가 달랐다.
툭!
이건 마당 잔디밭에 떨어지는 소리로 대개 떨어진 홍시들은 절반으로 쩍 갈라졌다.
푸석!
이건 감나무 밑에 자리한 메마른 소철나무 위로 떨어지는 소리. 간혹 성한 눔들이 발견된다.
퍽!
이건 마당가로 세워놓은 정원석들 위로 떨어지는 소리. 건질 것은 하나 없이 처참한 모습.
아이고!
이건 달밤에 감 주으러 나오신 할머니 머리에 감 떨어진 소리. 완전 뭉그러진다. ^^





덕분에 아침 햇살이 내려쬘 무렵이면 마당가에 내놓은 다딤이돌 위엔 그나마 쓸만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홍시들이 열을 지어 놓여있곤 했다.
그 중 가장 괜찮은 것 두엇은 아버지 퇴근하시면 피로회복제로...
두엇은 가끔 마실오시는 어머니 친구분들의 스낵으로...
또 두엇은 홍시라면 입이 홍시만하게 벌어지던 우리 집사람을 위하여...
또 두엇은 가을마당을 거닐다 마당가에 쪼그려 앉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 감 따놓은게 있네? 맛나겠는데... 한번 먹어볼까?'
온전한 감은 먹어도 될까 눈치를 보지만, 이미 깨진 감이야... ^^
그리고 때론 반건시도 만들고, 실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감나무였지만 기실 감나무를 심으신 아버지의 목적은 그 열매를 먹고자 함이 아니라, 그 나무의 자라남을 보시기 위함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관상용이었던 셈이다.
서울 시내 주택가 마당 한가운데 3층집 높이의 감나무가 관상용이라?
그래서 어느날 무길도한량은 그것에 관해 여쭈었다.
우리 감나무가 관상용이란 무슨 뜻이온지요?
"과실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함이 아니니 말하자면 '관상용'이란 것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의미는 좀 다르단다. 눈을 즐겁게 하려면 소나무처럼 더 멋진 나무들을 심었지 않겠니?"
그렇다면 우리 감나무엔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 내가 우리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를 심은 뜻은..."





예로 부터 감나무는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나무라고 불리는데,
첫째,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할 수 있으니 문(文)이 있고,
둘째, 나무가지가 단단하여 화살대를 만들 수 있으니 무(武)가 있으며,
셋째,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표리부동하지 않으니 충(忠)이 있고,
넷째,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 되도록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으며,
다섯째, 노인이 치아를 다 잃어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가 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집 감나무에서 광채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감나무를 심은 뜻을 알고 나니 우리집 감이 더더욱 맛이 있었다... ^^
말하자면, 감나무는 한 집안을 바로 이끌기 위한 아버지의 모토를 대변하는 셈이었다.





지난 연말,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곶감과 동생네 시아버님께서 보내주신 곶감을 냉동실에 잘 보관하고 있다가, 열대지방에서 오랜만에 올라온 집사람에게 꺼내놓았다.
비닐포장을 하고 페이퍼타올로 두어겹 잘 싸둔 덕분에 벌써 두어달이 지났음에도 곶감들은 가장자리에 엷은 성에들만 끼였을 뿐, 가운데 부분은 말캉말캉하였다.
한겨울 수정과에 띄운 곶감 정도의 온도나 될까?
여하간 한 10분 상온에 놔뒀다가 먹으니 그 맛이 여전했다. (장모님, 사장어른 감사합니다.^^)
워낙에 감을 좋아하는 집사람은 곶감 꺼내먹는 재미로 매일 밤이 즐겁고... ^^
그래서 옛말에 '곶감 빼먹는 재미' 라는 표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우린 잘 먹었... 먹고 있다. (다음번을 위해 아끼느라 냉동실에 아직도 좀 남겨놓았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우린 우리집 감나무의 소식을 모른다.
단지 그 근처가 대부분 연립주택들로 메꿔졌다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정이품송 마냥 잘 생긴 그 감나무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감나무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 했던 그 이상(理想)들은 홍시로, 반건시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고, 작은 감 씨앗 속에 들어있는 하얀 숟가락처럼 우리 마음 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곶감을 먹다가 그 수려한 모습의 감나무가 생각이 났다.
그 감나무를 올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생각이 났다.
 




(2012.02.29)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술을 취케 먹고



술을 醉케 먹고 두렷이 안자시니
億萬 시름이 가노라 下直한다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여럿이 둘러앉았으니
억만가지 시름들이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한다
아이야 잔을 가득 채워라, 시름을 이별주로 전송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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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제로서의 술...
수필가 조지 버나드 쇼도  '술은 삶을 꾸려가게끔 버티게 해주는 마취제' 라고 비슷한 뜻으로 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맥베드' 에서 '술은 빨간 코와 잠과 오줌을 가져다준다' 고 했고...
가수 프랭클린 시나트라는 '술은 인간의 가장 나쁜 원수인데,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
사람이 술을 즐겨야지 술이 사람을 갖고 놀면 안될텐데 말이다. ^^

아릴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중 유명한 것 하나를 읽어보자.


A Drinking Song


                             by William Butler Yate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 뿐.
나는 잔을 들고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술이 나오는 멋진 시 라면, 소월의 '님과 벗' 을  또 뺄 수 없다.


님과 벗


                        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香氣로운 때를
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캬~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듯하다.
취하는 것 좋을씨고~ ^^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취하는 것 아니겠는가?
술의 향기에 취하고,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님의 눈빛에 취하고,
세월의 덧없음에 취하고,
사람의 따뜻한 정에 취하고,
......
앞뜰 감나무에 매달린 까치밥에 취하고,
초만원(草滿園) 중국집 탕수육 달초름한 맛에 취하고... ^^

아, 세상 참 살 맛 나지?


(2012.02.21)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제목이 좀 점잖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뭐하다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쓰도록 하자.
점잖지 못하다고 말한 것엔, 생겨먹기가 그리 생겨먹은 놈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생겨먹기로만 따지면 평생 양반집 밥상에 오르지 못할 듯한 홍합 같은 놈들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다.
그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며칠 전 무길도한량은 W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햄버거집.
햄버거 레스토랑이라고 쓰려다 좀 이상해서 햄버거집이라고 썼더니 더 느낌이 퀴퀴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하여간 햄버거집.
소위 메이져급 훼스트푸드인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아닌, 나름 이 근동에서는 제대로 만든 햄버거로 유명한 고급 햄버거집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끝에 웨이터의 팔뚝에 얹혀나온 커다란 접시의 내용물은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주전자 뚜껑만한 햄버거빵 위에 집게손가락만한 두께의 다진 고기 패티를 두 개를 넣고, 그 위에 치즈와 야채와 베이컨과 토마토와 버섯을 차곡차곡 얹은 후, 다시 주전자 뚜껑만한 예의 그 빵을 덮은, 어마어마한 높이의 햄버거...
높이가 한 10 센티미터는 될까?
쓰러지지 말라고 햄버거 한가운데 깊숙히 꽂아 넣은 긴 이쑤시개가 더 비척해보였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밑을 받치고 양쪽 중지, 약지, 무명지, 새끼손가락의 6개의 손가락으로 햄버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남은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끝단을 잡아 눌러주며 입 안으로 전진.
햄버거 먹기를 떡 먹기 만큼이나 좋아하여 나름대로는 햄버거 먹는 방법에 도가 텄다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양쪽으로 도리질 쳐 목근육을 이완시키고, 양손가락을 교대로 뚜두둑 소리를 내도록 접어보고, 허공에 가볍게 뿌리며 손가락을 풀어본다.
저게 한 손에 잡힐까?
마주 앉은 W가 나의 표정을 미소를 띄고 지켜본다.
와우!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한 번 쩍 벌려 햄버거의 높이와 내 입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고개를 갸우뚱 하고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날려본다.
와우!
입을 크게 벌려보았지만 암만 해도 첫 한 입에 베어문다는 것에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W의 눈치를 슬쩍 본다.
넌 그거 어떻게 먹을건데?
"잘라서."
간단한 그의 대답은 들었지만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주변머리에 얹힌 감자튀김부터 깨작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햄버거를 반으로 갈랐다.
나도 얼른 따라서 반으로 가른다.

햄버거의 유래가 독일의 도시 햄버그(함부르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
독일 출신의 W의 와이프 L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 놓는다.
"처음 듣는 소린데...?"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 쏘세지)가 프랑크푸르트(Frankfrut)에서, 빈(Wien: 쏘세지)이 비엔나(Vienna)에서 왔듯이 말이지...
독일 사람도 모르는 일이네...쩝.
"햄버거도 따뜻할 때가 더 맛있으니 어서 먹지?"

L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서 접시에 놓인 햄버거를 들어올린다.
전통적인 공략법 대로 햄버거를 잡아 보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하~ 이거 너무 커서 어떻게 먹어야 될질 모르겠는데...?
실수로 내용물을 질질 흘릴까봐 미리 예방접종을 한자락 너스레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를 굳게 잡아 입으로 우겨우겨 넣어본다.
하지만 끝내 맨 위 뚜껑으로 얹힌 햄버거빵은 입 안으로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만다.

건너다 보니 W는 그 높은 키의 햄버거를 재주껏 포크와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며 먹고 있다.
눈은 지그시 내리깔고...
아차...
울 어머니께서 상추쌈을 먹을 땐 항상 눈을 감고 입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손바닥 위에 상추 한 장을 펼치고 밥을 한숟갈 올리고, 고기와 쌈장과 파무침을 얹고 보면 대부분의 상추쌈은 자신의 한 주먹보다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큰 상추쌈을 한 입에 넣기 위해 두 눈을 부릅 뜨고 아구아구 우겨넣다 보면, 그 얼굴 형상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은 악귀의 얼굴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표정을 보고, 없던 감정도 생겨날 수도 있고...
그러니 상추쌈을 먹을 때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으라는 말씀.

요즘 삼겹살이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가 왜 그렇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나 보다.
그 사이 좋던 사람들도 삼겹살 회식 한 번 하고 나면 사이가 더 벌어지는 이유가...
마주보고 앉아 서로 열심히 눈을 부라려대니 안나빠질래야 안나빠질 수가 없겠다. ^^
이혼율도 높다는데, 특히 부부 사이에 삼겹살 마주 앉아 먹지 말자.
아니면 삼겹살을 같이 먹어도 상추쌈은 해서 먹지를 말던지...

옆길로 빠졌나? ^^
여하간 한국에선 상추쌈, 미국에선 햄버거... 이런 음식들은 참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 하겠다.
서로 눈 치켜 뜨고 먹는 음식들을 우리 사회를 위해서 퇴출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일까?
좋은 맘으로 같이 음식 먹으러 와서 나갈 때는 서로 삐져서 나가게 하는...

W는 여전히 눈을 지긋이 내려깔고 예의 그 햄버거를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고 포크를 이용해 재근재근 먹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양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접시 위로 내용물들을 뚝뚝 흘려가며 먹고 있다.
눈 깔아. 눈 깔아...
눈 부릅 뜬 거 이미 봤을거야.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눈 깔아, 눈깔아...

통재로다! 오늘 세상에 점잖지 못한 것들이 무길도한량의 품위를 손상시키는구나... 쩝.






(2012.02.15)

2012년 2월 13일 월요일

He Knows My Name

He Knows My Name







얼마 전, 어머님께서 심장판막수술 이후 많이 안좋으시던 때의 일이다.
아버님께선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성경구절을 붓글씨로 쓰시고 족자로 만드셨고, 어머님께서는 그 족자를 걸어놓고 약해질 때 마다 그 구절을 읽으며 마음에 힘을 얻으셨다고 한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이사야 41:10)"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빽 보다도 더 든든한 빽이 어디 있으랴.
권세 높은 미국 대통령의 빽 보다도, 돈 많은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의 빽 보다도, 지켜주시고 위안해주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다시 일어서기에 든든한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시편 23장 4절에도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고 나와있다.


재빠른 무길도한량도 얼른 부탁드려 똑같은 족자를 갖게 되었다. ^^


창조주의 든든한 빽이 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분께서 절 아주 잘 알거든요...
그리구요, 제가 필요해 부르면 바로 바로 응답해주시거든요..." ^^
그런 노래다.

http://www.youtube.com/watch?v=NXKWsfbizB4&feature=related (클릭)
  

I have a Maker                               나에겐 창조주가 계십니다
He formed my heart                      그분께서 내 마음을 빚으셨지요
Before even time began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My life was in His hands               내 생명은 그분의 손 안에 있었어요

He knows my name                       그분께선 내 이름을 아신답니다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분께선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그분께선 내 눈물 한방울 한방을을 보시고
And hears me when I call              내가 부를 때 마다 응답해주신답니다


I have a Father                              나에겐 아버지가 계십니다
He calls me His own                      그분께서 날 당신의 친자라고 불러주시죠
He'll never leave me                      그리고 그분께선 내가 어디로 다니던지
No matter where I go                     결코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답니다

He knows my name                       그분께선 내 이름을 아신답니다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분께선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그분께선 내 눈물 한방울 한방울을 보시고
And Hears me when I call              내가 부를 때 마다 응답해주신답니다

(201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