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봄날의 비사(悲事)

 
봄날의 비사(悲事)








밤새 봄비가 창을 두드렸다.
그를 반겨 창문을 열어보니, 웬걸...
나뭇가지 가득한 벚꽃이 교태 어린 탄성을 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어제 화사하던 벚꽃은 날 향한 게 아니었네...
가녀린 봄비에 한없이 미소 주는 그 꽃이 미웠다.





그래도 난 차라리 화려한 봄빛에 죽으련다.
옹달샘 가장자리 처연히 돋아난 노란꽃 수선화나
바위 틈새백이로 한무리 피어난 진달래도 좋지만
난 파란 하늘가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이 좋아라.
화냥기 가득하도록 화사한 그 꽃이 좋아라.
그래서 난 차라리 화려한 그 빛에 죽으련다.





그 꽃엔 마성이 있음이 틀림없다.
분홍빛 향기 하늘 끝까지 올려 봄비를 불러낸 걸 보면...
그래도 오늘밤은 달빛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달빛 어린 벚꽃 아래 정신줄 놓은 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래도 오늘은 봄바람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쏟아지는 꽃비에 정신줄 놓은 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리하여 꽃그늘에 앉아 술잔을 주고 받던 날.
작은 원을 그리며 술잔에 떨어진 꽃잎을 보며 우리는 울리라.
청춘처럼 흘러갈 벚꽃의 흐드러짐을 슬퍼하며...
그리곤 마침내 예언처럼 배반의 날은 오고 만다.
사랑했던 비와 바람은 꽃잎을 몰아 눈처럼 휘날리고...
낙화로다! 낙화로다!





새벽녘 젖은 포도엔 철 지난 눈꽃들이 만발한다.
내 눈 속에 밝던 그대의 모습은 아직도 아련하건만,
무표정한 아침 하늘은 또 그렇게 파랗게 밝아왔다.
그리고 어느날 또 한번의 부질없는 맹세는 이루어진다.
내 다시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리 하고...




(20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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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5일 목요일

특별한 유전인자

특별한 유전인자








겨우내 지루하던 비가 개인 오후.
나는 의자에 한껏 기댄 채 책상 위로 다리를 뻗고 그 위에 랩탑 컴퓨터를 올려놓고 글을 쓴다.
마당에선 겨우내 치우지 않았던 낙엽들을 불어내느라 정원사의 송풍기의 소리가 웅웅거리고...

아이들은 먼 발치에서 얼마전 구매한 게임기 위(wii)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전자기기나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는, 요즘 아이들이 대개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요령을 파악하고 게임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빠르다.
나도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어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초기 수용자)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평균 보단 처지지 않았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곳곳에는 기계식 오락장이 존재했었다
서울역전 육교 근처나, 종로통 신신백화점 뒷켠, 종로 피마골 등에 제법 큰 오락실들이 산재해 있었다.
방앗간에서나 볼 수 있는 피대줄에 곡선 코스를 그려놓고 그것을 따라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하게 만든 것이나, 지금의 두더지잡기 같은 종류의 게임기, 토굴에서 나타나는 북한괴뢰군을 장난감 기관단총으로 쏘아대고 명중되면 뻘건 불이 켜지던 게임 등 지금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계식 오락기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오락실에 브라운관식 오락기들이 들어서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흑백 브라운관을 이용한 블럭격파니, 팩 맨이니, 인베이더니 하는 것들이 나오다가 1980년대 초반 컬러판 '갤러그' 가 나오면서 이름 자체도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뒤의 맥을 잇는 '제비우스' 나 '테트리스' 등이 등장항 무렵에는 여성 매니아들도 꽤 생기고, 데이트 시간 대부분을 전자오락실에서 보내는 커플도 생겨났다.
또 한가지 큰 변화는 게임기들이 전자오락실을 떠나 세상 밖으로까지 진출, 동네 골목골목 문방구니 구멍가게 옆까지 진출하며 온 동네 꼬맹이들의 코 묻은 동전들을 거둬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입시학원들이 종로2가에 몰려있던 1970년대와 일부 유명학원들이 서울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가던 1980년대 초반까지  나는 학교와 전자오락실과 학원을 삼각형 구도로 하여 맴돌았다.
신발바닥이 헤지는 것 만큼이나 검정색 교복 궁둥이도 반질거렸고, 보이스카웃의 준비! 정신에 투철한 나의 바지주머니엔 항상 동전들이 짤랑거리곤 했다.
분식집 라면 한그릇이 200원이면 전자오락게임기는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오락실과 전자오락실, 그리고 구멍가게 옆에 놓인 내 궁둥이 반쪽만한 의자 위에 앉아서 투자한 나의 시간과 동전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나, 한가지 분명 확실한 것은 그것이 나의 현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상당했다는 것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며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이것이 제 정신이었으면, 아니 합리적인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 했을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나의 본능 저 밑에서 작동하는 게임 유전인자의 핑계를 달면 나의 변명에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그러면 이제 나의 두뇌 속에 굳게 자리한 게임유전인자의 모습을 들여다 볼까?

이야기는 내가 대망의 이천년대 초반 그동안 한참 사용했던 애플의 랩탑 매킨토시 파워북 컴퓨터를 어머니께 드리면서 부터 시작된다.
"야, 내가 이것이 뭐에 필요하냐?"
아, 이거 아무것도 몰라도 되고, 여기 있는 화살표만 사용해서 게임하는데 쓰시라고...
"게임? 난 별로 원하지 않는데...?"
이거 게임하면 치매도 예방되고, 소일거리도 되고, 에 또 거시기니 설라무네...

기실 난 이미 속도전쟁에서 하향길을 걷고 있던, 오래된 그 컴퓨터를 갈아치고 싶던 마음에 그것을 처분할 곳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해서, 가르쳐드린 것이 '컬럼스(Columns)' 라는 게임으로 몇 가지 다른 색깔의 벽돌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내려오면 그것을 조종해서 좌우 또는 상하로 같은 색깔이 맞춰지면 벽돌이 터져 없어지는 게임이었다.

처음엔 조금씩 맛뵈기로만 하시던 어머니는 드디어 일단계를 통과하면서 게임의 묘미에 빠져들기 시작들기 시작하셨다.
뾱.뾱.뾱.뾱...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한밤중에...
뾱.뾱.뾱.뾱...
특별한 일이 있으신 경우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켜고 앉아 계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컬럼스게임의 소리가 집안에 일정한 모습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차츰 어머니에게 게임의 중독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충혈된 눈, 부스스한 머리, 간혹 탄 맛과 함께 밥상에 올라오는 밥, 밤샘의 연속...
이러다가 우리집 안 가득히 컬럼들이 가득 채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우리 동네 골목길 초입엔 안성식품이란 구멍가게가 있었다.
길 건너 성대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 안성식품을 지나면서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붉은 벽돌담장.
담장에 붉은 벽돌들이 규칙적으로 얼기설기 쌓아올려진 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입가엔 빙그레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보들. 저기 저걸 이렇게 움직이면 다 터뜨릴 수 있는데...'
컬럼스증후군! --;;

어느 아침.
격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시고 계셨다.
무슨 일이세요?
"넌 저 컴퓨터나 갖다 버려라! 게임인지 뭔지는 왜 가르켜줘서... 쯧."
원래 혈압이 좀 높으시던 어머니가 게임을 하시는 통에 잠이 부족하고 피로가 쌓여 혈압이 안떨어지는 모습에 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는 거였다.
아버지 곁으로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수그리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컴퓨터를 집어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려는 나의 등 뒤로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리긴... 아까운 컴퓨터를 버리긴 왜 버려요."
하여간 어머니는 그 이후로 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난 어느날.
안성식품 뒤의 예의 그 붉은 벽돌담장 아래로 인형뽑기기계가 등장했다.
동네 많은 꼬맹이들 사이로 풍족하신 몸매의 할머니가 한 분 자리하셨으니, 바로 우리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워낙 손재주가 좋으신 건 내 익히 알지만 이건 어머니께 어려울 것 같았다.
인형뽑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불패의 상무정신으로 무장하신 어머니, 열심히 오르고 또 오르고 동전을 넣고 또 넣으신 끝에 드디어 거의 게임이라면 천재에 가까운 동네 꼬맹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셨다.

무길도한량이 물 건너 온 다음해, 어머니로부터 날아온 소포엔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인형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손녀들도 주고 동네 아이들도 주고 남은걸 깨끗한 것으로 골라 챙겨 보내주신 거였다.
대단한 집중력이시지?
집사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어머니, 요새도 인형 많이 뽑으세요?
"인형은 왜?"
그거 담배뽑는 기계도 있던데, 아들을 위해서 좀... ^^
"에라, 안뽑는다. 이눔아!"
좀 더 생산적인 뽑긴데 역정은 또 왜 내실까? ^^

여러분도 혹 길을 가다가 인형뽑기 앞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보거든 혹 무길도한량을 아시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윗이빨 하나 빠진 입으로 벙긋 웃으시며 막 뽑아낸 인형 하나 선물로 받을지 모르니까... ^^

우월한 게임인자를 가진 그 할머니께선 요즘은 조금 고전적인 단어찾기게임을 즐기신다.
아들은 아마존닷컴에서 열심히 중고책을 사 보내드리고, 이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치매예방'을 외치시며 가로 세로 마구 섞여있는 영어단어들을 찾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가끔 좀 더 무료해지면 컴퓨터를 켜고 카드게임 솔리테어(Solitaire)도 하시기는 하지만 역시 단어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어머니, 그거 열심히 하면 뭐 나와요?
"재밌잖니... 넌 게임 안하냐?"
아, 저도 요즘 애들과 같이 운동하는 게임해요.
"그래, 거기 날씨 탓에 바깥 운동 못할테니 뭐라도 해서 자꾸 움직여야지."

그렇지.
게임 덕분에 어머닌 치매예방 하고 나는 운동도 하고... 좋구만 뭐.
아무래도 게임에 소모한 시간과 정력을 후회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오히려 난 물려주신 이 특별한 유전인자에 감사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대에서 더 발전된 모습으로 발현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을 테고...
게임하자!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당장 '무슨 게임할까?' 하며 달려든다. ^^

어머니, 건강하세요.
스카이프 너머로 윗이빨 하나 빠진 어머니가 헤- 웃으신다.






(2012.03.15)

2012년 3월 7일 수요일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農夫하리 뉘 이시며
醫員이 病 고치면 北邙山이 저려 하랴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모두가 벼슬을 한다 치면 농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의원이 병을 모두 고친다 치면 북망산에 무덤이 저리도 많을리가 없다
아이야 술잔이나 가득 채워라, 난 내 맘대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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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虛)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여

성주풀이 첫 구절에 낙양성 북쪽의 나즈막한 산으로, 높고 낮은 무덤군들이 십리에 걸쳐 있다고 묘사되고 있는 망산(邙山).
한나라시대 이후로 중국의 모든 황제와 공경대작들이 묻혔다 하는 이 북망산은 이후 죽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빠져나와 저승사자와 함께 오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칭하는 산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집 앞마당에서 하얀 종이국화들이 만발한 상여가 출발했다.
맨 앞에 손종을 치며 상여소리를 하며 길을 인도하는 소리꾼이 서고, 그 뒤로 할아버지 시신이 실린 아름다운 상여가 서고, 뒤로 온갖 만장(輓章)들과 우리 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남자들은 베두루마기에 새끼로 꼰 테를 두른 건(巾)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여자들은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마찬가지로 새끼를 꼬아 만든 테를 둘렀다.
상여 곳곳엔 사람들이 할아버지 가시는 길 노자돈으로 쓰시라고 지폐들을 꽂아놓았다.

출상준비를 하며 긴장이 고조되던 앞마당은 소리꾼의 신호와 함께 상여를 어깨에 맨 상여꾼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다.
항상 목소리가 가장 컸던 큰고모의 "아버지!' 하는 외마디 소리를 필두로 하여 마당 한가득히 크고 작은 흐느낌들이 무너지듯 시작되었고...
할아버지의 상여는 정든 집을 떠나기 싫은 모습으로 주춤주춤 대며 천천히 흔들거리며 골목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상여가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소리꾼과 상여꾼들은 소리를 주고 받았다.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소리꾼이 종을 치며 선창하면 상여꾼들은 후렴처럼 추임새를 주었다.
"어이 어이"
딸랑. 딸랑.
"북망산천 머다먼 길"
"어이 어이"
......

그때의 상여소리는 어린 나의 가슴에도 깊숙히 남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 청승맞게 울리곤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우리와의 마지막 날 모습이었다.
하늘은 쨍쨍하게 햇빛을 내리쬐어 할아버지 상여에 친 광목차양을 푸르게 물들였고, 꽁꽁 언 겨울산은 하얀 서리가 가득하였다.
찬 바람은 몰아쳐 눈물 흐른 뺨들을 서릿장처럼 만들고...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만수(萬壽)하소서!
 
북망산천을 향해 간다고 울어대던 상여였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그곳으로 가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우리 할아버지는 염라대왕이 통치하는 저승이 아닌, 나의 하나님의 밝은 천국으로 가셨을테니까... ^^


(2012.03.07)

2012년 3월 4일 일요일

나모도 아닌 거시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또 그렇다고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켜서이며 속은 또 왜 비었단 말이냐
저렇게 계절없이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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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항상 논란을 일으킵니다.
'대나무' 라는 말 때문이지요.
'벼과'의 다년생 식물이며 나무의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므로 '풀' 이 맞기 때문에 반드시 '대' 라고 불러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옳겠지요.
하지만 '대나무아과'에도 속해 있으니 '대나무' 라고 부르는 것도 틀리지는 않은 거 아닐까요?
꼭 나무의 종류로서 '대나무'가 아닌, 풀로서 이름만 '대나무'인 식물로 말이죠... ^^

맞건 틀리건, 개인적으론 무식하게 그냥 대나무로 부르렵니다. ^^
"짜장면" 이 '자장면' 을 무시하고 쓰이다가 결국 '짜장면' 이 되듯이 세월이 가면 또 압니까?
그냥 '대나무'가 표준말로 정착이 될지...

여하간 그건 그거고, 오늘은 대나무에 대한 좋은 교훈적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스카웃 해왔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하시진 말고요... ^^



고사리와 대나무


                                    
어느날, 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직장도, 친구와도, 신앙적으로도 말이죠...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숲으로 갔죠.


"하나님, 제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이유만 말씀해주시겠어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아라. 고사리들과 대나무들이 보이느냐?
"예, 하나님."


처음 고사리 씨와 대나무 씨를 뿌린 후 나는 햇빛도 쬐어주고 물도 주면서 잘 돌봐주었단다. 
고사리들은 쉽게 자라나기 시작해서 곧 근처를 싱싱한 녹색으로 뒤덮었지.
하지만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단다.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지.


두번째 해가 되자 고사리는 쑥쑥 더 잘 자라면서 번성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역시나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단다.


세번째 해가 되었을 때도 대나무는 감감 무소식이었지만, 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
네번째 해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섯번째 해가 되었을 때,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돋아났단다.
고사리에 비교하면, 그건 참 보잘 것 없고 대단찮은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말야, 6개월 동안 그 작은 대나무는 무려 30 미터가 넘도록 자라버렸단다.


대나무는 뿌리가 자라나는데 5년이란 시간을 쓰면서 생존하기에 필요한 강한 뿌리를 만든거지. 
나는 나의 피조물이 이겨내지 못할 시험을 주지 않는단다.


네가 여태까지 고통 속에 싸워온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너의 뿌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니?
대나무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다.

네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 하지 말아라. 
고사리와 대나무는 서로 쓰임은 다르지만, 그래도 함께 숲을 아름답게 만들지 않니?


언젠가 너의 때가 올거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너도 크게 자랄거야.


"얼마나 크게요?" 내가 여쭈었죠.


대나무는 얼마만큼 자랄 거라고 생각하니?
"자랄 수 있는 만큼 끝까지요."


그래. 네가 자랄 수 있는 만큼 최고로 자라나는 것이 나의 기쁨이란다.


나는 하나님이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숲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당신도 포기하지 않으실겁니다.


당신 인생의 단 하루도 후회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좋은 날들은 당신에게 행복을 주겠지만, 나쁜 날들은 또 당신에게 경험을 주기 때문입니다.
두가지 다 인생에 필요한 것들 아니겠어요? ^^


--- by unknown author


(2012.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