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2월 3일 금요일

겨울이야기

겨울이야기






서울의 수은주가 몇십년만의 강추위를 기록할 즈음 이곳엔 폭설이 쏟아졌다.
며칠 동안이나 눈꽃들이 하늘에서 맴돌며 맴돌며 쏟아져 내렸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 같은 제설제 사용을 금지한 이후 첫 큰 눈이라 어쩔까 싶었는데, 역시나 광주리로 쏟아붓는 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설차량들도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차도와 보도의 구분도 사라질 만큼 눈이 쌓이자 체인 친 suv들만 제 세상을 만난 듯...
아니네...
휴교령이 떨어져 일주일을 놀게 된 아이들과 덩달아 뛰어대는 강아지들이 더 즐거워 보인다.
경사 난 우리 첫째는 근처 골프장 언덕으로 아이들과 눈썰매 타러 가고...




우리도 어렸을 땐 눈만 오면 신이 났고 겨울이 즐거웠다.
지금이야 전국에 스키다 눈썰매다 해서 겨울을 즐길 곳이 많지만 딱히 갈 곳이 없고 교통도 불편했던 예전엔 나무판 밑에 굵은 철사를 붙여 만든 썰매나, 끽 해야 아이스 스케이트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마땅치 않으면 질질 흐르는 시퍼런 코를 소매 끝으로 바짝 닦아가면서 온동네 쏘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팽이돌리기 같은 것들이 우리들의 재미였다.
아, 코 밑을 꺼멓게 그을리는 불깡통 돌리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 중 나는 팽이돌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나무팽이들은 나무를 깎아 만든 몸통을 잘 골라 구입하여 위 아래로 총알심을 박아 만들었다.
그리고 돌려보아 팽이가 떨지 않고 잘 도는지를 살피는 중심교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후에야 울긋불긋한 크레용으로 색깔을 칠하여 자기만의 팽이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찍기' 종목으로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팽이가 뽀개지는 일도 있었기에, 다치지 않도록 평상시에 왁스를 칠하기도 하여 매끄럽게 표면을 유지해주는 등 정성을 쏟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톱밥팽이는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로의 일체품으로 나왔기 때문에 별 애착이 갈 수가 없었다.
나무팽이들이 좀더 편리하지만 못생긴 톱밥팽이들에게 차츰 자리를 내주면서 개성은 사라지고 재미는 줄어들고 말았다.
멋을 모르는 것이 문제...




어느날, 밤새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 한강 중지도엔 아이스 스케이장이 생기곤 했다.
빙질은 좋고 오뎅천막도 있었지만 우리집에서 걸어가기엔 좀 먼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좀더 쉽게 스케이트를 타러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의 샛강에 나가 얼음판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가끔 결빙이 약한 곳에서 사람이 빠져죽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또 겁이 나 한동안 샛강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내미의 겨울운동을 위하여 아버지는 자전거 한대 값을 선뜻 투자하여 스케이트를 사주셨지만, 인프라가 따라주지 않았던 시대의 현실이었다.
또 이 일은 나중에 무길도한량과 몇몇 친구들이 학교 등록금을 동원하여 스케이장을 만들었다가, 서울의 결빙일이 십여일 밖에 안될 정도로 유난히도 따뜻했던 겨울 때문에 쪽박 찬 경험의 근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그래도 그 땐 대체로 참 추웠다.
아마도 지금처럼 방한복도 시원찮기도 했지만 실제로 당시의 겨울이 지금보다도 훨씬 추웠던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한강물이 어는 일은 거의 매 겨울 다반사였을 뿐더러 한 번은 강추위로 서울 시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진 적도 있을 정도였다.
어느 늦은 가을날, 무길도한량의 아버지께서는 물품대금 대신 뜨게실을 한 트럭 싣고 오셨다.
대략 라면박스 크기 상자로 100개 정도의 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날 이후 우리집의 모든 여자들은 대바늘 두 짝을 항시 휴대하고 다녔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이 올 때까지 안방, 건넌방, 부엌이고 할 것 없이 두 대바늘 비비작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덩달아 무길도한량의 뜨개옷들의 갯수도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곤색 스웨터, 곤색 바지, 곤색 조끼, 갈색 도쿠리, 갈색 스웨터, 갈색 바지... 이번엔 녹색 도쿠리, 녹색 스웨터, 심심풀이 녹색 목도리, 이번엔 방울 달린 녹색 모자...또...또...
이에 취미를 붙인 작은 고모는 급기야 편물기계까지 구입하게 되고...
우리 어머닌 그 때 무길도한량에게 짜주신 녹색 방울모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 ^^




눈이 쌓이고 얼고 해도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한 겨울날, 아버지께서는 경사진 눈길을 내려오던 중 그만 쭐끈덕 미끌어지셨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나란히 걷던 무길도한량이 동작이 늦어 잡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지만 다행히 다치신 데는 없으셨다.
미끌어지신 것이 괜히 무안하신지,
"야아, 그래도 내가 말이야 고등학교때 낙법을 배워서... 넘어지는 게 좀 달랐지?"
이에, 또 편안하시게 맞장구 쳐드리지 못하는 성격의 무길도한량,
"아, 예. 꼭 거북이 뒤집어지듯 넘어지시던데요?" ^^
하지만 인제는 그렇게 대답 안하고 이렇게 대답하리라 마음 먹어본다.
"예, 아버지.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 같으셨습니다." ^^




아무리 아름다운 눈꽃들이 사방에서 휘날리고 그 눈의 소용돌이 속에 오붓하게 고립된다 해도 아프면 그 어느 것이 예뻐 보이랴.
눈썰매 타러 간 첫째녀석이나 여느 사람이나 매 한가지로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치지 않기를...
건강으로 걱정하시던 우리 오마니와 또 다른 분들은 서설(瑞雪)로 위안 받으시고, 모두 봄과 함께 벌떡 벌떡 일어나시기를 소원해본다.



(2012.02.02)

댓글 4개:

  1. 눈 내린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구만, 그 때 누님도 덧버선, 머플러, 모자, 여러가지 짜 보았던 기억이 나는구만... 서울은 올해 한 두 번 눈이 왔을 뿐이라 눈도 그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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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생활은 눈을 보면 30초 동안 '아름답네...' 하다가 그 이후엔 "퇴근길 막히겠구만...'. '에이, 어제 세차했는데...', '길이 얼지 말아야 할텐데...' 이런 것들이 더 생각나게 만들듯 함. 은퇴하면 이리로 오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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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It is a weird feeling. I mean when I see the ocean,I want to be a part of the ocean. When I see the snow, I want to be a part of the snow. I wish someone bury me in the snow. I think I am an extreme naturalist sor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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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거늘... 하나도 이상할 거이 없구만. ^^
    너무 빠지다가 안나오면 좀 곤란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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