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제목이 좀 점잖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뭐하다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쓰도록 하자.
점잖지 못하다고 말한 것엔, 생겨먹기가 그리 생겨먹은 놈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생겨먹기로만 따지면 평생 양반집 밥상에 오르지 못할 듯한 홍합 같은 놈들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다.
그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며칠 전 무길도한량은 W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햄버거집.
햄버거 레스토랑이라고 쓰려다 좀 이상해서 햄버거집이라고 썼더니 더 느낌이 퀴퀴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하여간 햄버거집.
소위 메이져급 훼스트푸드인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아닌, 나름 이 근동에서는 제대로 만든 햄버거로 유명한 고급 햄버거집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끝에 웨이터의 팔뚝에 얹혀나온 커다란 접시의 내용물은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주전자 뚜껑만한 햄버거빵 위에 집게손가락만한 두께의 다진 고기 패티를 두 개를 넣고, 그 위에 치즈와 야채와 베이컨과 토마토와 버섯을 차곡차곡 얹은 후, 다시 주전자 뚜껑만한 예의 그 빵을 덮은, 어마어마한 높이의 햄버거...
높이가 한 10 센티미터는 될까?
쓰러지지 말라고 햄버거 한가운데 깊숙히 꽂아 넣은 긴 이쑤시개가 더 비척해보였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밑을 받치고 양쪽 중지, 약지, 무명지, 새끼손가락의 6개의 손가락으로 햄버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남은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끝단을 잡아 눌러주며 입 안으로 전진.
햄버거 먹기를 떡 먹기 만큼이나 좋아하여 나름대로는 햄버거 먹는 방법에 도가 텄다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양쪽으로 도리질 쳐 목근육을 이완시키고, 양손가락을 교대로 뚜두둑 소리를 내도록 접어보고, 허공에 가볍게 뿌리며 손가락을 풀어본다.
저게 한 손에 잡힐까?
마주 앉은 W가 나의 표정을 미소를 띄고 지켜본다.
와우!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한 번 쩍 벌려 햄버거의 높이와 내 입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고개를 갸우뚱 하고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날려본다.
와우!
입을 크게 벌려보았지만 암만 해도 첫 한 입에 베어문다는 것에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W의 눈치를 슬쩍 본다.
넌 그거 어떻게 먹을건데?
"잘라서."
간단한 그의 대답은 들었지만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주변머리에 얹힌 감자튀김부터 깨작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햄버거를 반으로 갈랐다.
나도 얼른 따라서 반으로 가른다.

햄버거의 유래가 독일의 도시 햄버그(함부르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
독일 출신의 W의 와이프 L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 놓는다.
"처음 듣는 소린데...?"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 쏘세지)가 프랑크푸르트(Frankfrut)에서, 빈(Wien: 쏘세지)이 비엔나(Vienna)에서 왔듯이 말이지...
독일 사람도 모르는 일이네...쩝.
"햄버거도 따뜻할 때가 더 맛있으니 어서 먹지?"

L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서 접시에 놓인 햄버거를 들어올린다.
전통적인 공략법 대로 햄버거를 잡아 보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하~ 이거 너무 커서 어떻게 먹어야 될질 모르겠는데...?
실수로 내용물을 질질 흘릴까봐 미리 예방접종을 한자락 너스레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를 굳게 잡아 입으로 우겨우겨 넣어본다.
하지만 끝내 맨 위 뚜껑으로 얹힌 햄버거빵은 입 안으로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만다.

건너다 보니 W는 그 높은 키의 햄버거를 재주껏 포크와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며 먹고 있다.
눈은 지그시 내리깔고...
아차...
울 어머니께서 상추쌈을 먹을 땐 항상 눈을 감고 입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손바닥 위에 상추 한 장을 펼치고 밥을 한숟갈 올리고, 고기와 쌈장과 파무침을 얹고 보면 대부분의 상추쌈은 자신의 한 주먹보다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큰 상추쌈을 한 입에 넣기 위해 두 눈을 부릅 뜨고 아구아구 우겨넣다 보면, 그 얼굴 형상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은 악귀의 얼굴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표정을 보고, 없던 감정도 생겨날 수도 있고...
그러니 상추쌈을 먹을 때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으라는 말씀.

요즘 삼겹살이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가 왜 그렇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나 보다.
그 사이 좋던 사람들도 삼겹살 회식 한 번 하고 나면 사이가 더 벌어지는 이유가...
마주보고 앉아 서로 열심히 눈을 부라려대니 안나빠질래야 안나빠질 수가 없겠다. ^^
이혼율도 높다는데, 특히 부부 사이에 삼겹살 마주 앉아 먹지 말자.
아니면 삼겹살을 같이 먹어도 상추쌈은 해서 먹지를 말던지...

옆길로 빠졌나? ^^
여하간 한국에선 상추쌈, 미국에선 햄버거... 이런 음식들은 참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 하겠다.
서로 눈 치켜 뜨고 먹는 음식들을 우리 사회를 위해서 퇴출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일까?
좋은 맘으로 같이 음식 먹으러 와서 나갈 때는 서로 삐져서 나가게 하는...

W는 여전히 눈을 지긋이 내려깔고 예의 그 햄버거를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고 포크를 이용해 재근재근 먹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양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접시 위로 내용물들을 뚝뚝 흘려가며 먹고 있다.
눈 깔아. 눈 깔아...
눈 부릅 뜬 거 이미 봤을거야.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눈 깔아, 눈깔아...

통재로다! 오늘 세상에 점잖지 못한 것들이 무길도한량의 품위를 손상시키는구나... 쩝.






(2012.02.15)

댓글 4개:

  1. ㅋㅋㅋ 늦게라도 내리깔고 점잔 좀 떨지 그랬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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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먹다보니 맛있어서 정신을 잃었었을까...?
    다시는 맛있는 데에 안데리고 갈것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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