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때 아닌 가을이야기 한 꼭지.

해 마다 가을이 깊을 때면 우리집 마당 드높은 감나무엔 빠알간 홍시들이 주렁주렁 주렁주렁 열리곤 했다.
긴 장대로 곧추 세워 홍시를 따기 시작하면, 아버지께선 창문 너머로로 내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얘, 꼭대기 것들은 까치밥이니 남겨 두거라."
우리집 장대가 턱 없이 짧아, 감나무의 절반 밖에 미치지 않음에도 항상 확인을 하시곤 했다.
어머니께선 소쿠리 쟁반에 내가 따다 실수로 떨어뜨린 홍시들을 주우시고...
"얘, 좀 살살 혀라. 떨구는 게 반이다."
주홍색 홍시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들 사이로 말갛게 빛을 냈다.





잘 익은 홍시들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곤 했다.
밤 사이에도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는데, 가만히 듣고 있노라 치면 그 소리가 달랐다.
툭!
이건 마당 잔디밭에 떨어지는 소리로 대개 떨어진 홍시들은 절반으로 쩍 갈라졌다.
푸석!
이건 감나무 밑에 자리한 메마른 소철나무 위로 떨어지는 소리. 간혹 성한 눔들이 발견된다.
퍽!
이건 마당가로 세워놓은 정원석들 위로 떨어지는 소리. 건질 것은 하나 없이 처참한 모습.
아이고!
이건 달밤에 감 주으러 나오신 할머니 머리에 감 떨어진 소리. 완전 뭉그러진다. ^^





덕분에 아침 햇살이 내려쬘 무렵이면 마당가에 내놓은 다딤이돌 위엔 그나마 쓸만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홍시들이 열을 지어 놓여있곤 했다.
그 중 가장 괜찮은 것 두엇은 아버지 퇴근하시면 피로회복제로...
두엇은 가끔 마실오시는 어머니 친구분들의 스낵으로...
또 두엇은 홍시라면 입이 홍시만하게 벌어지던 우리 집사람을 위하여...
또 두엇은 가을마당을 거닐다 마당가에 쪼그려 앉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 감 따놓은게 있네? 맛나겠는데... 한번 먹어볼까?'
온전한 감은 먹어도 될까 눈치를 보지만, 이미 깨진 감이야... ^^
그리고 때론 반건시도 만들고, 실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감나무였지만 기실 감나무를 심으신 아버지의 목적은 그 열매를 먹고자 함이 아니라, 그 나무의 자라남을 보시기 위함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관상용이었던 셈이다.
서울 시내 주택가 마당 한가운데 3층집 높이의 감나무가 관상용이라?
그래서 어느날 무길도한량은 그것에 관해 여쭈었다.
우리 감나무가 관상용이란 무슨 뜻이온지요?
"과실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함이 아니니 말하자면 '관상용'이란 것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의미는 좀 다르단다. 눈을 즐겁게 하려면 소나무처럼 더 멋진 나무들을 심었지 않겠니?"
그렇다면 우리 감나무엔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 내가 우리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를 심은 뜻은..."





예로 부터 감나무는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나무라고 불리는데,
첫째,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할 수 있으니 문(文)이 있고,
둘째, 나무가지가 단단하여 화살대를 만들 수 있으니 무(武)가 있으며,
셋째,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표리부동하지 않으니 충(忠)이 있고,
넷째,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 되도록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으며,
다섯째, 노인이 치아를 다 잃어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가 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집 감나무에서 광채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감나무를 심은 뜻을 알고 나니 우리집 감이 더더욱 맛이 있었다... ^^
말하자면, 감나무는 한 집안을 바로 이끌기 위한 아버지의 모토를 대변하는 셈이었다.





지난 연말,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곶감과 동생네 시아버님께서 보내주신 곶감을 냉동실에 잘 보관하고 있다가, 열대지방에서 오랜만에 올라온 집사람에게 꺼내놓았다.
비닐포장을 하고 페이퍼타올로 두어겹 잘 싸둔 덕분에 벌써 두어달이 지났음에도 곶감들은 가장자리에 엷은 성에들만 끼였을 뿐, 가운데 부분은 말캉말캉하였다.
한겨울 수정과에 띄운 곶감 정도의 온도나 될까?
여하간 한 10분 상온에 놔뒀다가 먹으니 그 맛이 여전했다. (장모님, 사장어른 감사합니다.^^)
워낙에 감을 좋아하는 집사람은 곶감 꺼내먹는 재미로 매일 밤이 즐겁고... ^^
그래서 옛말에 '곶감 빼먹는 재미' 라는 표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우린 잘 먹었... 먹고 있다. (다음번을 위해 아끼느라 냉동실에 아직도 좀 남겨놓았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우린 우리집 감나무의 소식을 모른다.
단지 그 근처가 대부분 연립주택들로 메꿔졌다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정이품송 마냥 잘 생긴 그 감나무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감나무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 했던 그 이상(理想)들은 홍시로, 반건시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고, 작은 감 씨앗 속에 들어있는 하얀 숟가락처럼 우리 마음 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곶감을 먹다가 그 수려한 모습의 감나무가 생각이 났다.
그 감나무를 올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생각이 났다.
 




(2012.02.29)

댓글 2개:

  1. I did not eat a persimmon. I did eat the persimmon covered with the love and memories. The persimmon stays in my hear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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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들이 변비를 일으킨다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군... 아직도 가슴에 머무르고 있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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