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인생은 오십부터...

인생은 오십부터...





벌써 가을이 깊었습니다.
발바닥이 부은 탓으로 아침 산보를 몇일간 쉬었더니, 그새 거리의 나뭇잎들이 온통 제멋대로 때깔자랑입니다.
기온은 약 영상 7도.
새벽비에 포도도 촉촉히 젖고 하얀 구름들 사이로 햇빛도 간간히 내비치는게, 오늘은 걷기에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춘 듯 합니다.
허리와 다리의 근육들도 잘 쉰 덕분에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아침 커피를 한 잔 하고 가뿐한 걸음걸이로 가을길에 나섭니다.




얼마전 국민학교 친구 E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다니던 대기업을 나온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옛날 푸른 나뭇잎들이 우리집 앞 젊은 나무들 가지마다 가득 나부끼던 시절, 꿈 많던 무길도한량과 밤을 새며 이야기하던 그 청춘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멀리 타국의 이름도 모르는 깡촌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무길도한량을 측은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지는 한마디로 이런거 였습니다.
"너 거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




거기에 대한 저의 반론은 이러했습니다.
"나 스스로의 꿈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빠를 따라 온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펼칠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이 나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다.
가장의 형편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제멋대로 휘둘려진다면, 그건 가장이 아이들을 망치는 꼴이 되고 만다.
너에겐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아하, 이렇게 글로 쓰니 좀더 명확해지는데, 아마도 그날은 전화 상태가 안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 서로 나이가 들어 서론, 본론, 결론, 할 말이 많아져 그랬는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정말 받쳐주는 것 같습니다.
빗물에 살짝 젖은 낙엽들 사이로 내딛는 발걸음도 먼지가 일 만큼 힘차고, 이마 위로 땀도 적당히 배어 나오고,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움도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오늘 같으면 평상시 걷는 12 km 보다도 더 많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엔 속보(速步)에 쾌보(快步)로, 빨리 걷고 즐겁게 걸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걸음폭도 좁아지고, 속도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걷기 조차 싫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 때문에 고생했던 30대 초반에도 무지 걸었지만, 오십이 가까운 이제서야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건강 상의 문제로 몇 번의 굴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기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존재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노란불을 켜고 강제로 스톱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여유로운 마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가족의 절실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꿈의 소중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무절제함과 과욕으로 더 크게 건강을 해치고 지금쯤 어느 공원묘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세 바퀴가 다 되어갑니다.
딴 때는 두번째 바퀴 후 중간 지점 정도에 오면 다리에 피로감이 느껴지는데, 오늘은 아직도 그런 기척조차 없습니다.
에라이, 내친 김에 한바퀴를 더 돌기로 마음 먹으며 우리 아파트 입구를 외면하듯이 홱 지나쳐 버립니다.
한바퀴가 4.2 km 인 이 코스의 좋은 점은 중가운데 가로지르는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완전히 한 바퀴 돌던지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오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쁜 점일 수도 있군요. ^^
여하간 오늘은 처음으로 네 바퀴에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같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던지 아니면 말던지...




결국 무길도한량은 16.8 km 를 걷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냈다는 그 성취감은 제법 즐길만 했습니다.
허리를 다친 이후 2-3년 내 이렇게 많이 걸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계속하다보면 무길도한량이 오십살 쯤 되었을 땐 한 번에 한 20 km 도 쉽게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혼자 싱긋이 웃어봅니다.

아, 그리고...
젊었을 적에 꾸었던 꿈들은 언젠간 꼭 이루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단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구요.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오십부터니까 아직도 준비할 시간은 남아있지요.
그 땐 정말 꼭 한 번 날아보고 싶습니다.



(2011.10.30)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Here I Am Lord

Here I Am Lord


                                                        by Dan Schutte




하나님이 부르실 때 결연히 일어나 그 길을 좇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 어려운 일을 망설임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나 나서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과연 나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준비가 되어있을까?
단연코 말하건대, 난 절대 아니다. ^^
저... 하던 일이 남았거든요... (헤벌쭉)
저... 애들은 어떻하지요?...  (긁적긁적)

그때에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며 나서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 노래를 들어보자.
동영상엔 2절이 없으므로 참고하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EcxOkht8w7c (클릭)


          이사야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이사야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절)


I, the Lord of sea and sky,
I have heard My people cry.
All who dwell in dark and sin,
My hand will save.


I who made the stars of night,
I will make their darkness bright.
Who will bear My light to them?
Whom shall I sta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the Lord of snow and rain,
I have born My people pain.
I have wept for love of them,
They turn away.


I will break their hearts of stone,
Give them hearts for love alone.
I will speak My word to them,
Whom shall I se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the Lord of wind and flame,
I will tend the poor and lame.
I will set a feast for them,
My hand will save.


Finest bread I will provide,
Till their hearts be satisfied.
I will give My life to them,
Whom shall I se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2011.10.19)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꿈에도 아니 뵌다
엇던 님이 현마 그 덧에 니졋시라
내 생각 아쉬운 젼차로 님의 탓을 삼노라


                                    (무명씨)


떠나가더니 잊었는지 꿈에서 조차 볼 수가 없다
어떤 님이 설마 그동안에 벌써 날 잊었을까
내가 아쉬워하다 보니 괜히 님의 탓으로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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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짙어 끝내는 날 벌써 잊었는가고 하는 것이 어째 많이 들어본 듯한 스토리다.^^
너무 지나치면 의심까지 하게 되고 종국엔 의부증까지 생기는 거 아닐까 싶다.
현마? (설마?)
무길도한량이 두눈으로 그런 케이스를 똑바로 봤다니깐...?
그 집은 의부증이 심해지다 못해 결국 이혼까지 가고 말았다.
처음엔 세상에 둘 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을 하더니만...

에효~, 남의 집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여하간 남녀 간에도 적당한 선에서 사랑지수(指數)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만큼 상대방에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게 사랑이라잖는가?
부담스러워지고 싶다고?
그럼, 그걸 즐기시던지... ^^

사랑타령은 남는 게 없다.
에이, 노래나 한곡조 듣고 넘어가야겠다.
가사에 묘미가 있으므로 집중하시길...
노래야, 나오너라~
꽝!

http://www.youtube.com/watch?v=nnZzGkVAx4Q (클릭!)


그리움만 쌓이네


                              여 진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대 지금 그 누구를 사랑하는가
굳은 약속 변해버렸나


예전에는 우린 서로 사랑했는데
이젠 맘이 변해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난 너 하나 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아-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2011.10.18)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멍해져야 하는 시간

멍해져야 하는 시간







        멍하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새로 글 쓴 것 있어?"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중언부언 하며 매끄럽지 못한 글일 망정, 그래도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뭘 하길래 그리 바빠 글 올리는 것이 뜸 할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기도 한다.
한 번 물어보자.
바쁘요?
쯧...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쩝. ^^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새벽별 보며 일어나 12km 를 걷고, 출근하여 잔소리 두어 마디 하고, 돌아와 집안일! --;
아이들 맞이하여 멕이고 공부 좀 감독하고, 저녁 준비하고 멕이고 치우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사람과 스카이프 좀 하고, 곧 이어 한국에 계신 오마니가 로그온 상태이시면 또 스카이프 좀 하고...
그렇게 바쁜 일정은 아닌데 말이지.
더더군다나 나 보다 더 바쁜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그 정도를 불평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 뿐만이 아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적당히 멍해지는 시간인 것 같다.
일상으로 부터의 오만 가지 상념으로 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해지는 시간 말이다.
멍하게 높푸르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게 끝없는 외침을 쏟아내는 바다를 바라보고, 멍하게 시간을 색칠하는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멍하게 먼 기억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바라보고, 그리고 멍하게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그런 멍한 시간이...




하기야 멍해질 수 있는 것도 축복임에 틀림없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인생사 생활고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끝 없는 번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나도 좀 멍해지는 시간이 있고 싶다구요...
하고 외치고 싶은 영혼이 얼마나 많을 지는 안봐도 훤한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멍하게 있지 않도록 철저한 훈련과 윽박지름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이, 무길도한량! 공부시간에 딴 생각야? 이리 나왓!"




물론 아무 때나 멍해지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작업을 하다가 등의 경우엔, 중간에 멍해졌다간 충분히 위험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 경우들이므로 피해야 하겠지만, 이런 때를 제외하곤 누구든지 아주 잠시만의 시간이라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조심은 하여야 한다.
직장 상사는 근본적으로 멍해져 있는 직원들을 싫어한다.
아내들은 저 양반이 또 여왕봉다방 김마담 생각하고 있나 의심할 수도 있다.




멍해지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머리 속에 찌든 상념의 때를 털어버려야 한다.
가슴 속 틈바구니 마다 골골이 맺힌 감정의 찌끄러기들을 청소해내야 한다.
자신을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격리하여 쉴 틈을 가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잠시만이라도 멍해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무길도한량의 모두를 위한 소소한 생각이고... ^^




무길도한량도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멍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무길도한량은 멍해지는 시간이 없이 극도로 긴장된 생활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고... --;
문제는, 요즘 들어 무길도한량은 멍해지는 시간 끝에 곧잘 정신줄 놓고 코를 골아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어... 나이 탓인가? ^^)  
이곳 저곳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들여다 보다가, 지난 이야기들을 엮을 모티브들을 정리하다가, 인터넷으로 소재거리들을 찾다가... 잠시 멍한 상태로... 그리고 곧 이어서... 쩝. --;
그러니까 멍해지는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

자주 글 못쓰는 이유를 만들다 봉께 별 말도 안되는... ^^;;
아주 팔자가 늘어진다고 자랑을 하지요? ^^;;
무길도한량이었습니당~ ^^




(2011.10.16)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청춘에 곱던 양자



靑春에 곱던 양자 님으뢰야 도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아르실가
진실로 날인 줄 아라 보면 고대 죽다 셜우랴


                                          (강백년)


청춘에 곱던 모습이 님으로 인해 다 늙었다
이제 님이 보면 난 줄 알아나 보실까
진실로 난 줄 알아보면 당장 죽어도 무엇이 서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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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하고 시작하는 민태원선생의 수필 청춘예찬(靑春禮讚)은 이상(理想)으로 빛나는 젊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이다... (후략)"

그리고 그는 이상(理想)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청춘을 청춘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 그의 유명한 표현 '청춘의 끓는 피',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과는 조금 동떨어지기 시작하는 비(非)청춘들은 어찌 하여야 하는가?
폐부를 찌르도록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젊은 날의 꿈을 안고 스러져야만 하는가?

이양하선생의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을 들여다 보자.
"...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후략)"
장년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잖은가.
늙어간다고 코만 쑥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숙미? 노련미? 그런 것들일까?
하기야, 갓 담아내는 보졸레누보 와인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와인은 좋은 환경에서 오래도록 푹- 숙성된 와인이 진국이고, 김치도 금새 담근 겉절이 보단 동토의 지하에서 겨우내 숙성과정을 거친 김장김치라야 김치의 참맛을 보여줄 수 있는거 아니겠는가.
청춘도 좋지만 역시 중요한 건 세월을 따라 농담을 더하고 깊이를 더한 우리 이맘 때가 아닐까 싶다.


오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안돌려진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받으소서
......

봐라!
서러워 말고 그 속에 간직한 힘을 찾으라 안카나.
아직도 괜찮다 아이가...
거, 고개를 들자카이!
어깨 펴고!
이 악물고!
우리 아직 게임 안끝났다고! ^^

인생도 한 50쯤 되어야 세상 단맛, 쓴맛, 매운맛, 신맛... 등등, 여하간 그런 거 골고루 맛보고 이리저리 잘 스며들어 좀더 인간다워지는 거 아닌가?
옛글에도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거기에 순응한다고 했다.
잘 익은 곡주처럼 진한 맛을 풍기는 묵직한 어른이 되자스라.
청춘에 곱던 모습들 다 잃어버렸어도, 질그릇처럼 투박한 삶 속에 숨은 오묘한 힘을  잊지말자.


(2011.10.06)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열 일곱해 동안

 
열 일곱해 동안






이제 바야흐로 가을은 본격적인 듯 하다.
아침산보를 돌 때 마다 마주치며 인사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하얗게 '하-이-' 하며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기온도 얼추 10도 내외까지 떨어진 듯 하고, 빨간색으로 변한 나무들의 숫자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구름 가득한 은회색 하늘가로 뿌옇게 동은 터오르고 또 하루의 흔적 없는 시간은 시작된다.
Where did you go?

이맘때엔 TV 속의 기상통보관은 매일 똑같은 예보를 계속하곤 한다.
"네, 월요일엔 흐리고 비, 화요일엔 흐리고 비, 수요일엔 흐리고 비, 목요일에도 흐리고 비, 금요일에도, 네, 별로 특별한 거 없습니다. 역시 흐리고 비. 토요일에도 마찬가지로 흐리고 비...
헤헤, 아, 일요일엔 한 두어시간 햇빛이 드는 곳도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론 흐리고 비가 오겠습니다. 이상, 일기예보를 마치겠습니다."
참 돈 많이 받고 할 일 없는 직업이다. ^^
"아, 잠깐, 일기예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퀴즈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헤헤."
궁시렁대는 내 말을 알아들었나보다.
"우리 지방이 10월 중 하루종일 해가 쨍쨍했던 마지막 해는 언제였을까요?"
아이구~, 차암 퀴즈 재미있다.




엊그젠 수만리 거리를 두고 웹캠 속에 마주 앉은 두 비(非)청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오늘이 그날이네?"
"올핸 잊지 않고 기억했네..."
"그래도 몇 번째인지 잘 모르지?"
"열 몇번째지, 아마?" ^^
우린 유치원 아이들 마냥 손가락으로 한해 한해 꼽아가며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열 다섯, 열 여섯, 열 일곱!"
"와-, 벌써 열 일곱번째네?"
"그렇지? 세월도 참..."
"하나도 안늙은 기분인데..."
"그러게, 그래도 벌써 17년이야."




그랬다.
벌써 열 일곱해가 흐른거였다.
뭐... 그래도 아직 이십년도 안되었잖아?
용케들 잘 살고 있다. ^^
"수고했네, 십 칠년 동안."
"고마웠어, 십 칠년 동안."
그래, 그동안 고마웠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지...
십 칠년이란 세월이 한 번을 더 지나갈지, 두번을 더 지나갈지, 세번을... (이건 좀 너무 많은가?) ... 여하간 같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세상 많고 많은 돌멩이들 중 두 모진 돌멩이가 어느날 만나, 서로 부딪치고 깨어지고 갈아지고 부숴지면서 십 칠년이란 시간을 버텨냈다.
물론 우리 부모님 금혼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험한 세상에 서로 믿고 의지하며 6205날을 지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졌다.
기념 노래라도 한 곡...?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어? 이건 그걸 기념하는 노래가 아닌데... ^^
가만 있자... 어, 이런게 있네?




There's lots of things         
With which I'm blessed,      
Tho' my life's been both sunny and blue, 
But of all my blessings,
This one's the best:
To have a friend like you.
내 인생고락 간에
수 많은 축복을 받았지
하지만 그 중 제일은
당신과 같은 친구를 가졌다는 거.


In times of trouble
Friends will say,
"Just ask... I'll help you through it."
But you don't wait for me to ask,
You just get up
And you do it!
어려울 때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만 해... 내 끝까지 도울께."
하지만 당신은 나의 부탁을 기다리지 않고
그 즉시 일어나 날 도왔지


And I can think
Of nothing in life
That I could more wisely do,
Than know a friend,
And be a friend,
And love a friend... like you.
생각컨대 내 인생에서
당신과 같은 친구를 사귀게 되고,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것 보다
더 잘 했던 일도 없었던 것 같아.


                       (Author Unknown)





맞지... 이만한 친구 보내주심에 감사드리고...
또 이만큼 자리잡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고...
워낙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지겹지는 않았음에 감사드리고...
부모님 슬하를 떠나 한 가정을 세우고 두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음에 감사드리고...
공황으로 가진 돈이 바닥나, 호숫가에서 츄러스 하나씩 들고 기념만찬을 대신했던 2년전의 기념일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고...
비록 떨어져 있지만, 매일 웹캠으로 얼굴이나마 보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아직도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날들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감사드릴 일들은 더더욱 많아짐에 또 감사드리고... ^^

힘들어도 잘 참아내고 이겨내는 나의 친구를 위하여 건배!
더 좋은 날이 올거야...
웹캠 너머 어두운 방에서 그녀가 화이팅을 외친다.
화이팅!
나도 화이팅!




(201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