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인생은 오십부터...

인생은 오십부터...





벌써 가을이 깊었습니다.
발바닥이 부은 탓으로 아침 산보를 몇일간 쉬었더니, 그새 거리의 나뭇잎들이 온통 제멋대로 때깔자랑입니다.
기온은 약 영상 7도.
새벽비에 포도도 촉촉히 젖고 하얀 구름들 사이로 햇빛도 간간히 내비치는게, 오늘은 걷기에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춘 듯 합니다.
허리와 다리의 근육들도 잘 쉰 덕분에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아침 커피를 한 잔 하고 가뿐한 걸음걸이로 가을길에 나섭니다.




얼마전 국민학교 친구 E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다니던 대기업을 나온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옛날 푸른 나뭇잎들이 우리집 앞 젊은 나무들 가지마다 가득 나부끼던 시절, 꿈 많던 무길도한량과 밤을 새며 이야기하던 그 청춘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멀리 타국의 이름도 모르는 깡촌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무길도한량을 측은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지는 한마디로 이런거 였습니다.
"너 거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




거기에 대한 저의 반론은 이러했습니다.
"나 스스로의 꿈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빠를 따라 온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펼칠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이 나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다.
가장의 형편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제멋대로 휘둘려진다면, 그건 가장이 아이들을 망치는 꼴이 되고 만다.
너에겐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아하, 이렇게 글로 쓰니 좀더 명확해지는데, 아마도 그날은 전화 상태가 안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 서로 나이가 들어 서론, 본론, 결론, 할 말이 많아져 그랬는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정말 받쳐주는 것 같습니다.
빗물에 살짝 젖은 낙엽들 사이로 내딛는 발걸음도 먼지가 일 만큼 힘차고, 이마 위로 땀도 적당히 배어 나오고,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움도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오늘 같으면 평상시 걷는 12 km 보다도 더 많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엔 속보(速步)에 쾌보(快步)로, 빨리 걷고 즐겁게 걸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걸음폭도 좁아지고, 속도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걷기 조차 싫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 때문에 고생했던 30대 초반에도 무지 걸었지만, 오십이 가까운 이제서야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건강 상의 문제로 몇 번의 굴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기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존재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노란불을 켜고 강제로 스톱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여유로운 마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가족의 절실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꿈의 소중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무절제함과 과욕으로 더 크게 건강을 해치고 지금쯤 어느 공원묘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세 바퀴가 다 되어갑니다.
딴 때는 두번째 바퀴 후 중간 지점 정도에 오면 다리에 피로감이 느껴지는데, 오늘은 아직도 그런 기척조차 없습니다.
에라이, 내친 김에 한바퀴를 더 돌기로 마음 먹으며 우리 아파트 입구를 외면하듯이 홱 지나쳐 버립니다.
한바퀴가 4.2 km 인 이 코스의 좋은 점은 중가운데 가로지르는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완전히 한 바퀴 돌던지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오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쁜 점일 수도 있군요. ^^
여하간 오늘은 처음으로 네 바퀴에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같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던지 아니면 말던지...




결국 무길도한량은 16.8 km 를 걷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냈다는 그 성취감은 제법 즐길만 했습니다.
허리를 다친 이후 2-3년 내 이렇게 많이 걸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계속하다보면 무길도한량이 오십살 쯤 되었을 땐 한 번에 한 20 km 도 쉽게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혼자 싱긋이 웃어봅니다.

아, 그리고...
젊었을 적에 꾸었던 꿈들은 언젠간 꼭 이루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단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구요.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오십부터니까 아직도 준비할 시간은 남아있지요.
그 땐 정말 꼭 한 번 날아보고 싶습니다.



(2011.10.30)

댓글 2개:

  1. 오십이 넘은 누님이 생각하기로는, '난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 같으이... 새들에게 날개를 주신 대신 사람에겐 긴 팔다리를 주신 이유는, 날개가진 새처럼 혼자서 멀리 높이 날아다니지 말고, 긴 두 팔로 사랑하는 사람들 품어주면서 다소 느리더라도 긴 두 다리 사용해서 걷거나 뛰어가라는 뜻잉께... 날지 못함에 슬퍼하지 말고 나는 거 너무 동경하지 마시소..지금 두 팔다리로 열심히 푸드덕거리는 그 모습이 바로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이거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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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철학자의 따님다운 말씀...
    난 날기에 쪼끔 뚱뚱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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