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3월 7일 수요일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農夫하리 뉘 이시며
醫員이 病 고치면 北邙山이 저려 하랴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모두가 벼슬을 한다 치면 농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의원이 병을 모두 고친다 치면 북망산에 무덤이 저리도 많을리가 없다
아이야 술잔이나 가득 채워라, 난 내 맘대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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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虛)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여

성주풀이 첫 구절에 낙양성 북쪽의 나즈막한 산으로, 높고 낮은 무덤군들이 십리에 걸쳐 있다고 묘사되고 있는 망산(邙山).
한나라시대 이후로 중국의 모든 황제와 공경대작들이 묻혔다 하는 이 북망산은 이후 죽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빠져나와 저승사자와 함께 오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칭하는 산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집 앞마당에서 하얀 종이국화들이 만발한 상여가 출발했다.
맨 앞에 손종을 치며 상여소리를 하며 길을 인도하는 소리꾼이 서고, 그 뒤로 할아버지 시신이 실린 아름다운 상여가 서고, 뒤로 온갖 만장(輓章)들과 우리 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남자들은 베두루마기에 새끼로 꼰 테를 두른 건(巾)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여자들은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마찬가지로 새끼를 꼬아 만든 테를 둘렀다.
상여 곳곳엔 사람들이 할아버지 가시는 길 노자돈으로 쓰시라고 지폐들을 꽂아놓았다.

출상준비를 하며 긴장이 고조되던 앞마당은 소리꾼의 신호와 함께 상여를 어깨에 맨 상여꾼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다.
항상 목소리가 가장 컸던 큰고모의 "아버지!' 하는 외마디 소리를 필두로 하여 마당 한가득히 크고 작은 흐느낌들이 무너지듯 시작되었고...
할아버지의 상여는 정든 집을 떠나기 싫은 모습으로 주춤주춤 대며 천천히 흔들거리며 골목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상여가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소리꾼과 상여꾼들은 소리를 주고 받았다.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소리꾼이 종을 치며 선창하면 상여꾼들은 후렴처럼 추임새를 주었다.
"어이 어이"
딸랑. 딸랑.
"북망산천 머다먼 길"
"어이 어이"
......

그때의 상여소리는 어린 나의 가슴에도 깊숙히 남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 청승맞게 울리곤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우리와의 마지막 날 모습이었다.
하늘은 쨍쨍하게 햇빛을 내리쬐어 할아버지 상여에 친 광목차양을 푸르게 물들였고, 꽁꽁 언 겨울산은 하얀 서리가 가득하였다.
찬 바람은 몰아쳐 눈물 흐른 뺨들을 서릿장처럼 만들고...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만수(萬壽)하소서!
 
북망산천을 향해 간다고 울어대던 상여였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그곳으로 가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우리 할아버지는 염라대왕이 통치하는 저승이 아닌, 나의 하나님의 밝은 천국으로 가셨을테니까... ^^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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