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가마귀 칠하야




가마귀 칠하야 검으며 해오리 늙어 희랴
天生 黑白은 녜부터 잇건마는
엇더타 날 본 님은 검다 희다 하는니


                                       (무명씨)


까마귀가 칠해서 검으며 해오라비는 늙어서 흰 것이랴
원래 희고 검은 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것인데
어째서 날 본 님이 희네 검네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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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님은 왜 그러시는걸까?
아마도 님은 외로워 같이 말동무하고 싶었던게지요. ^^
너무 따지지 말고, 적당히 같이 흥분하면서 토론하며 뜻을 나눠보시지요. 홍홍홍...

어제와 그제는 블로그에 무엇을 좀 써볼까 하여 컴퓨터 앞엘 앉아 그동안 끄적여 놓았던 메모지들도 들여다 보고 이것저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도 보고 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생각의 끄트머리가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내 머리 속도 어지간히 정리가 안되어 있음이 틀림이 없다.

하여 이전과정 중 버그가 발생, 편집이 엉망이었던 작년 7월 3일자 포스팅 "Flight No. 292" 도 손봐 다시 포스팅하고, 이럭저럭 여기저기 떠들쳐 보다 보니 흥미로운 통계가 있어 한 번 올리고자 한다.

그것은 작년 6월 무길도한량이 구글블로그로 옮겨온 이후 방문한 이들에 관한 통계였는데, 특히 나라별 통계가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블로그 독자의 대다수는 한국과 미국에 있음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 다음부터가 참 흥미로워 한 번 순서대로 나열해본다.

3위 러시아 (혹시 푸틴이 감시명령이라도...? ^^)
4위 일본 (재일교포들이 검색을 통해 찾아주셨다고 치자.)
5위 라트비아 (이... 옛 공국에서 무슨 비지네스루다가 찾았을고? ^^)
6위 독일 (L을 비롯한 독일친구들이 있으니 그림만 보러 왔다 치고...)
7위 말레이시아 (??? 이곳에선 뭐 볼려고 이렇게 왔을까?)
8위 캐나다 (캐나다에도 무길도한량의 친구들이 있으니까...)
9위 아일랜드 (왜 찾아오셨을까...정말 궁금하다.)
10위 아랍에미리트 (참 궁금하지용...)
그 외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브라질, 오스트리아, 스페인,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예멘 등등.

그러다 보니, 12억 인구의 중국과 아프리카 대륙에선 한 번도 방문이 없었던 것이 또 신기하기도 하다.
하여간 여러 나라에서 방문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길도한량은 용기백배!

이유 불문하고 또 어디서 오셨던지 간에 많이 봐주시고 많이 읽어주시면 그보다 더 고마울 것도 없고, 또 무길도한량은 언제든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물론 때론 이야기 구성이 잘 안풀려 포스팅이 더딘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이것저것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니 관심을 두고 봐주시길...
앞으론 외국어 포스팅도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하여간 재미있는 글도 있고, 예쁜 사진들도 있응께 마이 오이소~ ^^


(2012.04.21)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Flight No. 292


Flight No. 292































Flight No. 292
동체 길이 47.3m, 높이 13.6m 의 날렵한 모습의 너는 보잉 757-200 기종이다.
San Francisco 에서 이륙, 총 2,600 mile (4,183 km) 을 평균고도 35,000 ft, 평균속도460 kts (850 km/h) 로 약 5시간 동안 날아 목적지 Orlando에 도착할 것이다.
과연... 여름 성수기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좌석들은 빈 곳 하나 없이 채워졌다.
꽁치보일드 마냥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낼숨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내의 산소가 고갈되어갈 무렵, 넌 선심쓰듯 에어콘을 틀어주었다.
그나마 이코노미석 보다 몇 인치 여유있는 Economy-S석을 배정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
이런 말 한 마디도 없이 기장은 다짜고짜 기내 방송을 시작한다.
스피커가 문제 없이 잘 나오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승객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올랜도까지 모시게 될 기장 아무개 올시다...."
사람들은 그의 인삿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각자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있는 에어콘 노즐을 조정하기 바쁘다.
그와 마찬가지로 승무원들도 승객들의 무관심 속에 구명동의 착용법과 비상탈출 요령을 시연해보인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현대인의 생존방법 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듯이...



아, 난 참 플로리다 올랜도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팔자 좋은 여행이다.
플로리다에 올랜도... 좋지?
디즈니 월드가 있는 곳, 입 큰 악어도 있고, 차창을 뿌옇게 채색 해주는 러브버그 (love bugs)도 있고, 빠르기가 번개 같은 새끼손가락 만한 도마뱀들이 개미 만큼이나 우글대는 곳, 제대로 된 나무가 없고 검불들만 우거진 곳...
매일 매일 한낮의 수은주가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고온다습의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곳.
노래가 절로 나오나? 마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를 지나가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우리 집사람이 고군분투하며 앵벌이하고 있는 곳. ^^
집사람이 2년 동안 한 20번이 넘게 무길도를 와줬으니, 나도 한 번 쯤은 답방을 주어야... ^^



























하여, 나는 아이들과 함께 너를 타고 하늘을 난다.
바다처럼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너의 흰 날개깃이 아름답다.
너의 날개 밑으로 산맥들과 협곡들이 구름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나타나고, 이름 모를 플래토(plateau)와 평원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간혹 실가닥처럼 얇은 도로 곁으로 손톱처럼 작은 크기로 마을의 모습들도 보이고...
인간의 소치가 이리도 보잘 것 없는 것이리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시던 그 시선을 상상해본다.

저 멀리 뭉개뭉개 일어나는 것들은 끝 없는 평원을 수놓는 양떼들의 대이동, 희망봉을 끼고 도는 바돌로뮤의 하얀 돛, 깨어져 나온 남극의 빙산 조각...
상상의 깊은 골에서 너는 약간의 터뷸런스(turbulence)에 몸을 움찔한다.
하지만 강력한 쌍발엔진과 날렵하게 광채나는 기체와 잘 훈련된 조종사의 기술로 무장한 너는 별 문제 없이 계속 나아간다.
이렇게 철저하게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나를 내맡긴다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우린 그저 커다란 엔진을 단 채 하늘 높이 던져진 깡통 안을 가득 채운 고기덩어리들에 불과할 뿐이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인가?
외줄타기 처럼 위태위태한 오늘을 살아가기에 우린 심지어 지푸라기라도 한가닥 잡으려 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이렇게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빽이 필요한 시점이다.
눈을 지긋이 감아본다.
해답은 바로 그 순간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When the worries of life lead us to despair, we are not trusting you.
When we seek answers everywhere but from you, we are not trusting you.
When your word to us is clear, but fail to act, we are not trusting you.
Forgive us.

Help us always to turn to you in faith, knowing that you know what is best for us.


아내도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며 수 많은 기도를 올렸으리라.
타박타박 한걸음씩 메마른 사막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리고 한잎 두잎 이제 막 피어오르는 어린 나무들처럼 일어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또 멀리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원과 애정을 담아 우릴 감싸주는 가족들의 안위를 위하여...
절대자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뜨거운 기도를 말이다.




























이제 너는 황금빛으로 불을 밝힌 올랜도의 밤 자락 끝에 우릴 안착시킨다.
우리 집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 적마다 비행기값을 절약하기 위해 600불짜리 직항을 안타고 절반 가격도 안되는 원스탑 노선을 이용한다.
우리도 오늘 원스탑노선으로 엄마 따라하기를 해보았다.
아침 6시 무길도를 떠나 10시 비행기를 타고, 샌스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연결편까지 5시간을 기다리고, 또 5시간을 비행하여 이제 올랜도에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을 하고 있다.
물론 시차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꼬박 하루가 걸린 여정이었다.
우리를 한 번 보기 위해 매달 그녀가 걸어왔을 그 힘든 발길을 생각하며 목이 깔깔해짐을 느낀다.
이제 저 문을 나서면, 그녀는 또 밤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표정에도 기쁜 얼굴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팔을 크게 펼치며 달려와 우리들과 포옹을 나눌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을 기억할 것을 바라 마지 않는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어도 그들의 미래를 위해 아낌 없는 수고와 사랑을 바치는 그녀를 만나러 온 이 날을 말이다.
물론 그녀의 곁엔 항상 하나님의 든든한 빽이 함께 있었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며 항상 두 팔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2011.07.03)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How Great Is Our God

How Great Is Our God
우리 주는 얼마나 위대하신지







첫째 녀석이 학교 밴드의 일원으로 일주일간 파리를 다녀왔다.
너무나 신나 하면서...
유치원 때부터 자폐 걱정을 하며 자랐는데, 물 건너 온 후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한 녀석이 대견하기만 하다.

아마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는 이곳 교육방법이 그 아이에게 잘 맞은 모양이다.
아주 활달해지고, 친구들과 사귐성이 뛰어나고, 긍정적인 모습.
음... maybe too much. ^^
공부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목표를 정하면서 노력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이고...

이젠 서울에서 겁 먹고 풀 죽은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오던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다.
녀석의 밝고 환해진 얼굴을 보면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라도 우리가 이곳에 온 보람이 200% 느껴진다.

아흔 아홉마리의 양 보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소중히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곳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 같다.
감사의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 순간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yu-2g2K7CEI&feature=related (클릭)

The splendor of a King,            
Clothed in majesty                  
Let all the earth rejoice            
All the earth rejoice                  


He wraps himself in Light,        
And darkness tries to hide        
And trembles at His voice        
Trembles at His voice              


How great is our God, sing with me    
How great is our God, and all will see  
How great, how great is our God        


Age to age He stands            
And time is in His hands
Beginning and the end
Beginning and the end


The Godhead Three in One
Father Spirit Son
The Lion and the Lamb
The Lion and the Lamb


Name above all names
Worthy of our praise
My heart will sing
How great is our God


How great is our God, sing with me
How great is our God, and all will see
How great, how great is our God


(2012.04.14)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라면 한그릇

라면 한그릇




바야흐로 화사한 봄날의 연속이다.
삼일을 연속으로 햇살이 만발했던 것이 얼마만일까?
10월 중에 시작되었던 우기가 이제 끝이 나는 것인가?
하하,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섣부른 봄빛은 잠시 후의 약 2주간 지속되는, 우기 마무리비가 온 다음에야 진짜 진짜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봄의 여왕 5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또 한 번의 길고 우울한 우기를 짙은 커피향으로 이겨냈음에 자찬이 절로 나온다.

엊그제는 서울에서 울 오마니께서 보내신 위문품이 도착했다.
그게 미국에 오면 이름이 케어 팩키지 (care package) 로 바뀐다.
천만리길 혼자 떨어져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한 누룽지, 김자반, 물기를 쥐어 짠 장아치들...
언제나 할머니 곁을 그리워하는 손녀들을 위한 과자들, 비밀리 꼬불친 오달러 짜리 몇 장...
그 틈바구니로 빨간 포장지의 '뽀빠이'가 눈에 띄었다.
별사탕이 더하여졌기에 이름도 삼양 '별뽀빠이'로 변하였지만, 우리 옛날에 아주 가끔씩 군것질 쾌가 있을 때 소중히 까먹던 그 뽀빠이임에 틀림이 없었다.

옛날과는 사뭇 달라진 겉봉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한다.
"철분 2.25mg 함유 (호!?)
2012.08.07. (이건 유통기한일 터이고...)
김미숙 02 (아마도 2번 생산라인의 감독책임자일 것이고...)
중량 65g, 열량 290kcal (한끼 밥은 되네?)
...
그리고 또 뒷면도 살펴보다가 발견한 한 문구.
"주머니 속에 쏘옥~ 휴대하기 간편해서 OK!"
하하, 누구 주머니인지 참 크기도 하다. ^^

우리 어렸을 적에도 모처럼 뽀빠이 하나 사면 봉지를 싸악 뜯어서 내용물만 바지주머니에 쏟아넣고 돌아다니면서 찔끔찔끔 꺼내먹는 온종일용 주전부리였다.
"야야, 빨리 접어."
"가만 있어봐. 좀 먹고..."
딱지로 글높 별높 따질 때도, 팔방다마로 쌈치기를 하다가도 주머니에서 한웅큼 꺼내 입에 넣고 으드득 으드득 씹어먹던 것이 뽀빠이였다.

물론 제일 먼저 나온 삼양 베이비라면과자도 있었고, 뽀빠이보다 더 고소하고 면발이 가늘었던 10원짜리 롯데 라면땅, 20원짜리 고급형 롯데 자야도 있었다.
내 개인적으론 라면땅을 선호하였지만 그래도 역시 단위금액 당 양이 월등히 많았던 뽀빠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생존해있는 것도 뽀빠이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을 만들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이용하여 만들기 시작했다는 라면땅, 라면과자들...
하지만 나에겐 그 라면부스러기 과자가 크나큰 사치일 뿐이었다.
라면을 끓여 먹기도 힘든 살림에 라면을 부숴 만든 과자라니요...

미아리 산꼭대기 단칸방 시절, 지겹도록 먹던 칼국수와 수제비들 사이로 한줄기 광명이 비치던 날은 바로 어머니가 성북동 라면공장으로 일일견학을 다녀오시던 날이었다.
바람만 불어도 덜컥대던 부엌문짝 사이로 꼬래꼬래한 고기국물 냄새가 퍼져나오고 세발 달린 플라스틱 저녁밥상이 문지방 넘기만을 고대하던 누이와 내가 괜히 신이 나서 방바닥을 콩콩거리며 맴돌았던 그 날.
누이의 그릇에 라면이 한가닥이라도 더 들었을까 사정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기도 했다.

면발 찌끄러기는 커녕 국물 한방울이라도 남길 수 없어 마지막 방울까지 이미 사라진 그릇을  쪽쪽 빨던 나의 모습에 어머닌 그렁한 눈을 하시고 날 당신의 무릎 위로 안아 올리셨다.
"그렇게 맛있어?"
응, 무지 맛있어.
"그래, 우리 다음에도 또 많이 먹자."
난 고개를 얼른 끄덕이면서도 누이의 턱 끝을 행해 달음질치는 라면국물줄기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런... 국물 좀 빨리 핥아랏! 턱 밑으로 떨어진다잉~

라면으로 좋은 저녁을 신나게 먹고 나면 저녁하늘 너머 별들은 더 아름다웠다.
어머니와 함께 견학을 다녀온 집들에서 나온 라면냄새로 온동네가 행복 속에 빠진 듯 했다.
겨우내 걸핏하면 싸움박질이던 석이네 집에서도 환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우린 맑게 빛나는 삼태성을 바라보며 병원에 있는 우리 아가도 생각하며 노래도 불렀다.

날 저무는 하늘엔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비추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그러다보면 누이를 향해 욕심부렸던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누나, 라면 참 맛있지?
"그래, 정말 많이 먹고 싶다."
그래, 나도 정말 많이 많이 배 터지도록 먹고 싶다.
그렇게 라면은 내 가슴 속의 양식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며 가닥가닥 세듯 먹던 누나는 지금 하루에 라면 몇 봉지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라면이 그저 단순한 보리고개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식량의 하나로만 평가되어지던 시절,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유행가를 개사해서 불렀던 노래가 하나 있다.
기억컨대 개그맨 고영수가 만들지 않았나 싶은데, 그 당시 많은 싱건지들이 너도 나도 따라 불렀기 때문에 원작자에 대하여는 나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겠다.


국수가 파마를 하면은 그때는 라면 (워~워~)
라면이 불어서 파마가 풀리면 그때는 우동
우동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그때는 짬뽕 (워~워~)
이러는 내 모습 서러워 울면서 먹으면 그때는 울면
내 인생 꼬여서 하루의 한끼는 김치도 없는 라면


나는 지금 한국에서 라면 한봉지가 얼마인지 알지를 못한다.
종류도 워낙 많을 뿐더러(!) 서로 가격 차이도 많이 나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가는 마켓에서는 어떤 한 일본라면 브랜드를 세일해서 1달러에 6개씩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라면이 묘하게도 나의 첫 삼양라면의 국물 맛과 많이 비슷하기에 다른 비싼 (좋은?) 라면들은 제쳐두고 항상 이것만 찾게 되는 것이다.
소금량에 주의코자 국물은 가급적 손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경우 그 국물의 맛을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빠져있다.
심각한 중독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십여년 전 일본 동경 뒷골목 시장을 지나다 허름한 문짝 위의 '라멘'이란 글씨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
동행했던 매제도 라면을 꽤나 좋아하던지라 신나 했지만, 막상 카운터 너머로 라면이 등장하였을 때 우린 그 '원조 라면'에 놀라고 말았다.
파마를 안한 생머리의 라면!
하지만 주방장이 직접 맛낸 국물은 원조라는 말에 걸맞는, 깔끔한 맛의 고깃국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맛이었다.


생각난 김에,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영양제 보내드리는 편으로 유명한 일본라면 세가지 맛을 한개씩 박스에 동봉했다.
혹시나 두 분 저녁상에 영 국거리가 마뜩찮으실까봐, 혹시나 옛날 단칸방 시절 모처럼 잡수셨던 라면이 생각나실까봐, 혹시나 맵게 만들기 경쟁에 옛라면들처럼 좀 점잖은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실까봐, 또 혹시나 두분이 다투시기라도 해서 서먹서먹하실 때 서로 라면 한 젓가락씩 나눠 잡수시라고...
옛날 코메디언 구봉서씨와 곽규석씨 처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고 말이지. ^^

4월하고도 중순에 들어선 아직까지 공기 중엔 제법 차디찬 기운들이 섞여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뜨-끈한 라면 한사발이 간절한 것은 과거의 아픈 상처의 아련함 때문인지 아니면 죽도록 라면을 사랑하는 어느 오타쿠의 열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산이 그곳에 있어 올랐듯이 라면이 거기 있기에 먹는 것일까?

오늘도 1달러 어치의 라면을 쇼핑카트에 담으며 나는 마냥 행복한 생각에 빠져든다.
하루에 하나씩 6일을 먹을까?
아니, 하나씩 5일 먹고 마지막날에 곱배기로?
당근과 파를 썰고 계란을 풀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식초를 한두방울 넣어줄까?
아니지, 역시 오리지널 국물맛을 즐기려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말아야...
...

즐거운 상상으로 입끝이 씰룩씰룩하다 절로 벌어지는 헤벌죽한 웃음 끝에 계산대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헤비급 점원과 눈이 마주친다.
가만 바라보다가 보니 괜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 버럭 짜증을 낸다.
아니, 왜 1달러에 일곱개면 일곱개지, 여섯개냐고?
"What did you say?"
녀석이 한걸음 내딛으며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아니, 뭐...You have a good price 라고...
그래도 하루에 한개씩 일곱개 맞춰주면 좋을텐데...쩝.



(2012.04.11)

2012년 4월 1일 일요일

어제도 난취하고




어제도 爛醉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긋제 깨엿뜬지 긋그제는 나 몰래라
來日은 西湖에 벗 옴안이 깰똥말똥 하여라


                                         (유천군)

어제도 몹시 취했었는데 오늘도 또 술이구나
그제는 깨었던 것 같고 그끄제는 기억이 없네
내일은 서호에서 벗이 온다니 깨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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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좋네~. ^^
하늘가로 흔들거리는 벚꽃을 벗 삼아 한잔 술을 기울여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멋으로 마시고 향으로 마시고 정으로 마시던 한량스런 술좌석이 그립다.

주거니 받거니...
주는 이 없으면 혼자 주고 혼자 받고...
안주야 뭐 바랄거 있나?
꽃그림자에 비쳐 나온 달그림자면 최고지...
언제부터 멋이라곤 하나 없이 그저 죽어라 마시기만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봄바람도 좋은데, 모처럼 한량끼를 살려 한 잔 해보실까? ^^
달빛에 시선(詩仙) 이태백의 시나 살살 읊으며 말이지.
가야금 잘 뜯던 명월이도 합석할랑가 모르겠다.
내 일필휘지로 속치마에 시 한 수 써줄 수도 있는데... 헤헤. ^^
어이쿠, 저기 마나님 나오시넹... @~@


月下獨酌


花間一壺酒   꽃 사이로 술 한동이 놓아두고
獨酌無相親   잔을 따르는데 친구가 없네
擧杯邀明月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부르니
對影成三人   마주한 그림자와 더불어 셋이 되네
月旣不解飮   달이야 본래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내 몸의 흉내만 내지만
暫伴月將影   잠시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行樂須及春   이제 봄이 지나기 전에 즐기려 하네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은 노닐고
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흔든다네
醒時同交歡   깨어있을 땐 함께 기쁨을 나누고
醉後各分散   취한 후엔 각각 흩어지네
永結無情遊   이 티 없는 교유를 영원히 맺고자
相期邈雲漢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길 기약하네


(201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