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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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0일 목요일

내해 좋다 하고







내해 좋다 하고 남 슬흔 일 하디 말며
남이 한다 하고 義아녀든 좃디 마라
우리는 天性을 딕하여 삼긴 대로 하리라


                                     (변계량)



내가 좋아한다고 해도 남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며
남이 한다고 해도 옳은 일이 아니면 따라하지 말라
우리는 하늘이 주신 성품을 지켜 천성 대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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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고관대작들은 경복궁 주변의 북촌에 주로 기거했고, 반면 벼슬이 떨어진 가난뱅이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은 저만치 떨어진 남산골이었다.
이희승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 를 보면, 이들 남산골 샌님들은 가난에 찌들지언정 선비로서의 꼿꼿한 기개와 절조를 잃지 않고 살았다고 이야기 한다.
꼬장꼬장한 선비들의 고지식함, 자존심, 지조...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지주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 흐르는 풍조들을 보면 마음이 갑갑해져옴을 숨길 수 없다.
옛부터 배워온 미풍양속을 존중하면 수구꼴통 취급받음은 물론이요, 선도적 역할을 하여야 할 대중매체들은 서로 저질화 경쟁을 벌이고, 신성한 교육의 현장은 지식을 파는 돈벌이 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 무지한 줄도 모르고 목소리만 높이는 대중, 또 그를 선동하고 이용해먹는 정치세력들, 어떤 나라에도 밀리지 않을 제도적 구조적 부패와 타락, 그리고 거짓말들...
이러고도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마치 빅뱅을 기다리는 혼돈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면, 집앞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편안한 마음으로 펼칠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매일 기쁜 마음으로 학교를 가고, 선생님의 사랑과 믿음 속에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정직하고 염치가 있어 가족과 이웃과 나라를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호시탐탐 노리는 외적들이 있어도, 나라를 지키는데에는 모두가 힘을 합하여 그 어떤 나라도 우리를 함부로 볼 수 없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국민 모두가 행복해 하는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천성을 딕하여 삼긴 대로 하면 그리 되지 않을까나...? ^^


(2012.05.10)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가마귀 칠하야




가마귀 칠하야 검으며 해오리 늙어 희랴
天生 黑白은 녜부터 잇건마는
엇더타 날 본 님은 검다 희다 하는니


                                       (무명씨)


까마귀가 칠해서 검으며 해오라비는 늙어서 흰 것이랴
원래 희고 검은 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것인데
어째서 날 본 님이 희네 검네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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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님은 왜 그러시는걸까?
아마도 님은 외로워 같이 말동무하고 싶었던게지요. ^^
너무 따지지 말고, 적당히 같이 흥분하면서 토론하며 뜻을 나눠보시지요. 홍홍홍...

어제와 그제는 블로그에 무엇을 좀 써볼까 하여 컴퓨터 앞엘 앉아 그동안 끄적여 놓았던 메모지들도 들여다 보고 이것저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도 보고 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생각의 끄트머리가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내 머리 속도 어지간히 정리가 안되어 있음이 틀림이 없다.

하여 이전과정 중 버그가 발생, 편집이 엉망이었던 작년 7월 3일자 포스팅 "Flight No. 292" 도 손봐 다시 포스팅하고, 이럭저럭 여기저기 떠들쳐 보다 보니 흥미로운 통계가 있어 한 번 올리고자 한다.

그것은 작년 6월 무길도한량이 구글블로그로 옮겨온 이후 방문한 이들에 관한 통계였는데, 특히 나라별 통계가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블로그 독자의 대다수는 한국과 미국에 있음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 다음부터가 참 흥미로워 한 번 순서대로 나열해본다.

3위 러시아 (혹시 푸틴이 감시명령이라도...? ^^)
4위 일본 (재일교포들이 검색을 통해 찾아주셨다고 치자.)
5위 라트비아 (이... 옛 공국에서 무슨 비지네스루다가 찾았을고? ^^)
6위 독일 (L을 비롯한 독일친구들이 있으니 그림만 보러 왔다 치고...)
7위 말레이시아 (??? 이곳에선 뭐 볼려고 이렇게 왔을까?)
8위 캐나다 (캐나다에도 무길도한량의 친구들이 있으니까...)
9위 아일랜드 (왜 찾아오셨을까...정말 궁금하다.)
10위 아랍에미리트 (참 궁금하지용...)
그 외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브라질, 오스트리아, 스페인,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예멘 등등.

그러다 보니, 12억 인구의 중국과 아프리카 대륙에선 한 번도 방문이 없었던 것이 또 신기하기도 하다.
하여간 여러 나라에서 방문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무길도한량은 용기백배!

이유 불문하고 또 어디서 오셨던지 간에 많이 봐주시고 많이 읽어주시면 그보다 더 고마울 것도 없고, 또 무길도한량은 언제든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물론 때론 이야기 구성이 잘 안풀려 포스팅이 더딘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이것저것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니 관심을 두고 봐주시길...
앞으론 외국어 포스팅도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하여간 재미있는 글도 있고, 예쁜 사진들도 있응께 마이 오이소~ ^^


(2012.04.21)




2012년 4월 1일 일요일

어제도 난취하고




어제도 爛醉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긋제 깨엿뜬지 긋그제는 나 몰래라
來日은 西湖에 벗 옴안이 깰똥말똥 하여라


                                         (유천군)

어제도 몹시 취했었는데 오늘도 또 술이구나
그제는 깨었던 것 같고 그끄제는 기억이 없네
내일은 서호에서 벗이 온다니 깨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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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좋네~. ^^
하늘가로 흔들거리는 벚꽃을 벗 삼아 한잔 술을 기울여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멋으로 마시고 향으로 마시고 정으로 마시던 한량스런 술좌석이 그립다.

주거니 받거니...
주는 이 없으면 혼자 주고 혼자 받고...
안주야 뭐 바랄거 있나?
꽃그림자에 비쳐 나온 달그림자면 최고지...
언제부터 멋이라곤 하나 없이 그저 죽어라 마시기만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봄바람도 좋은데, 모처럼 한량끼를 살려 한 잔 해보실까? ^^
달빛에 시선(詩仙) 이태백의 시나 살살 읊으며 말이지.
가야금 잘 뜯던 명월이도 합석할랑가 모르겠다.
내 일필휘지로 속치마에 시 한 수 써줄 수도 있는데... 헤헤. ^^
어이쿠, 저기 마나님 나오시넹... @~@


月下獨酌


花間一壺酒   꽃 사이로 술 한동이 놓아두고
獨酌無相親   잔을 따르는데 친구가 없네
擧杯邀明月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부르니
對影成三人   마주한 그림자와 더불어 셋이 되네
月旣不解飮   달이야 본래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내 몸의 흉내만 내지만
暫伴月將影   잠시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行樂須及春   이제 봄이 지나기 전에 즐기려 하네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은 노닐고
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흔든다네
醒時同交歡   깨어있을 땐 함께 기쁨을 나누고
醉後各分散   취한 후엔 각각 흩어지네
永結無情遊   이 티 없는 교유를 영원히 맺고자
相期邈雲漢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길 기약하네


(2012.04.01)

2012년 3월 7일 수요일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農夫하리 뉘 이시며
醫員이 病 고치면 北邙山이 저려 하랴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모두가 벼슬을 한다 치면 농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의원이 병을 모두 고친다 치면 북망산에 무덤이 저리도 많을리가 없다
아이야 술잔이나 가득 채워라, 난 내 맘대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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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虛)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여

성주풀이 첫 구절에 낙양성 북쪽의 나즈막한 산으로, 높고 낮은 무덤군들이 십리에 걸쳐 있다고 묘사되고 있는 망산(邙山).
한나라시대 이후로 중국의 모든 황제와 공경대작들이 묻혔다 하는 이 북망산은 이후 죽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빠져나와 저승사자와 함께 오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칭하는 산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집 앞마당에서 하얀 종이국화들이 만발한 상여가 출발했다.
맨 앞에 손종을 치며 상여소리를 하며 길을 인도하는 소리꾼이 서고, 그 뒤로 할아버지 시신이 실린 아름다운 상여가 서고, 뒤로 온갖 만장(輓章)들과 우리 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남자들은 베두루마기에 새끼로 꼰 테를 두른 건(巾)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여자들은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마찬가지로 새끼를 꼬아 만든 테를 둘렀다.
상여 곳곳엔 사람들이 할아버지 가시는 길 노자돈으로 쓰시라고 지폐들을 꽂아놓았다.

출상준비를 하며 긴장이 고조되던 앞마당은 소리꾼의 신호와 함께 상여를 어깨에 맨 상여꾼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다.
항상 목소리가 가장 컸던 큰고모의 "아버지!' 하는 외마디 소리를 필두로 하여 마당 한가득히 크고 작은 흐느낌들이 무너지듯 시작되었고...
할아버지의 상여는 정든 집을 떠나기 싫은 모습으로 주춤주춤 대며 천천히 흔들거리며 골목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상여가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소리꾼과 상여꾼들은 소리를 주고 받았다.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소리꾼이 종을 치며 선창하면 상여꾼들은 후렴처럼 추임새를 주었다.
"어이 어이"
딸랑. 딸랑.
"북망산천 머다먼 길"
"어이 어이"
......

그때의 상여소리는 어린 나의 가슴에도 깊숙히 남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 청승맞게 울리곤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우리와의 마지막 날 모습이었다.
하늘은 쨍쨍하게 햇빛을 내리쬐어 할아버지 상여에 친 광목차양을 푸르게 물들였고, 꽁꽁 언 겨울산은 하얀 서리가 가득하였다.
찬 바람은 몰아쳐 눈물 흐른 뺨들을 서릿장처럼 만들고...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만수(萬壽)하소서!
 
북망산천을 향해 간다고 울어대던 상여였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그곳으로 가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우리 할아버지는 염라대왕이 통치하는 저승이 아닌, 나의 하나님의 밝은 천국으로 가셨을테니까... ^^


(2012.03.07)

2012년 3월 4일 일요일

나모도 아닌 거시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또 그렇다고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켜서이며 속은 또 왜 비었단 말이냐
저렇게 계절없이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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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항상 논란을 일으킵니다.
'대나무' 라는 말 때문이지요.
'벼과'의 다년생 식물이며 나무의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므로 '풀' 이 맞기 때문에 반드시 '대' 라고 불러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옳겠지요.
하지만 '대나무아과'에도 속해 있으니 '대나무' 라고 부르는 것도 틀리지는 않은 거 아닐까요?
꼭 나무의 종류로서 '대나무'가 아닌, 풀로서 이름만 '대나무'인 식물로 말이죠... ^^

맞건 틀리건, 개인적으론 무식하게 그냥 대나무로 부르렵니다. ^^
"짜장면" 이 '자장면' 을 무시하고 쓰이다가 결국 '짜장면' 이 되듯이 세월이 가면 또 압니까?
그냥 '대나무'가 표준말로 정착이 될지...

여하간 그건 그거고, 오늘은 대나무에 대한 좋은 교훈적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스카웃 해왔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하시진 말고요... ^^



고사리와 대나무


                                    
어느날, 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직장도, 친구와도, 신앙적으로도 말이죠...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숲으로 갔죠.


"하나님, 제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이유만 말씀해주시겠어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아라. 고사리들과 대나무들이 보이느냐?
"예, 하나님."


처음 고사리 씨와 대나무 씨를 뿌린 후 나는 햇빛도 쬐어주고 물도 주면서 잘 돌봐주었단다. 
고사리들은 쉽게 자라나기 시작해서 곧 근처를 싱싱한 녹색으로 뒤덮었지.
하지만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단다.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지.


두번째 해가 되자 고사리는 쑥쑥 더 잘 자라면서 번성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역시나 대나무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
그래도 난 대나무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단다.


세번째 해가 되었을 때도 대나무는 감감 무소식이었지만, 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
네번째 해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섯번째 해가 되었을 때,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돋아났단다.
고사리에 비교하면, 그건 참 보잘 것 없고 대단찮은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말야, 6개월 동안 그 작은 대나무는 무려 30 미터가 넘도록 자라버렸단다.


대나무는 뿌리가 자라나는데 5년이란 시간을 쓰면서 생존하기에 필요한 강한 뿌리를 만든거지. 
나는 나의 피조물이 이겨내지 못할 시험을 주지 않는단다.


네가 여태까지 고통 속에 싸워온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너의 뿌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니?
대나무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다.

네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 하지 말아라. 
고사리와 대나무는 서로 쓰임은 다르지만, 그래도 함께 숲을 아름답게 만들지 않니?


언젠가 너의 때가 올거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너도 크게 자랄거야.


"얼마나 크게요?" 내가 여쭈었죠.


대나무는 얼마만큼 자랄 거라고 생각하니?
"자랄 수 있는 만큼 끝까지요."


그래. 네가 자랄 수 있는 만큼 최고로 자라나는 것이 나의 기쁨이란다.


나는 하나님이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숲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당신도 포기하지 않으실겁니다.


당신 인생의 단 하루도 후회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좋은 날들은 당신에게 행복을 주겠지만, 나쁜 날들은 또 당신에게 경험을 주기 때문입니다.
두가지 다 인생에 필요한 것들 아니겠어요? ^^


--- by unknown author


(2012.03.04)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술을 취케 먹고



술을 醉케 먹고 두렷이 안자시니
億萬 시름이 가노라 下直한다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여럿이 둘러앉았으니
억만가지 시름들이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한다
아이야 잔을 가득 채워라, 시름을 이별주로 전송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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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제로서의 술...
수필가 조지 버나드 쇼도  '술은 삶을 꾸려가게끔 버티게 해주는 마취제' 라고 비슷한 뜻으로 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맥베드' 에서 '술은 빨간 코와 잠과 오줌을 가져다준다' 고 했고...
가수 프랭클린 시나트라는 '술은 인간의 가장 나쁜 원수인데,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
사람이 술을 즐겨야지 술이 사람을 갖고 놀면 안될텐데 말이다. ^^

아릴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중 유명한 것 하나를 읽어보자.


A Drinking Song


                             by William Butler Yate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 뿐.
나는 잔을 들고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술이 나오는 멋진 시 라면, 소월의 '님과 벗' 을  또 뺄 수 없다.


님과 벗


                        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香氣로운 때를
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캬~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듯하다.
취하는 것 좋을씨고~ ^^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취하는 것 아니겠는가?
술의 향기에 취하고,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님의 눈빛에 취하고,
세월의 덧없음에 취하고,
사람의 따뜻한 정에 취하고,
......
앞뜰 감나무에 매달린 까치밥에 취하고,
초만원(草滿園) 중국집 탕수육 달초름한 맛에 취하고... ^^

아, 세상 참 살 맛 나지?


(2012.02.21)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늙었다 믈너가쟈



늙었다 믈너가쟈 마음과 의론하니
이 님을 바리고 어드러로 가쟛 말고
마음아 너란 잇거라 몸만 몬저 가리라


                                      (송순)


나도 늙었으니 이제 물러나야지 하고 마음과 의논하였더니
이 님을 버리고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한다
마음아 너는 그럼 남아 있거라, 몸만 먼저 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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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은 중종때 과거에 올라 명종때 벼슬이 우참찬에 이르렀다.
하지만 윤원형 일파의 모의로 피비린내 나는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목격하게 되니, 정치판의 이런 꼴 저런 꼴 보기 싫고 어디 깊은 두메산골에나 숨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간절도 했겠다.
하지만 모리배에 휘둘리는 임금을 버리고 떠나려니 속마음은 편치 않고...

그래서 그는 시조로 표현한대로 마음은 님과 함께 두고 몸만 떠나버리기로 하고,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 은거하며 자신이 지은 면앙정(人+免仰亭)에서 시를 지으며 세월을 낚았다고 한다.
무길도한량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

어제는 두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을 미리 당겨서 차려준다고, 생일케이크에 무지개 초도 무려 마흔 아홉개나 꽂고 카드니 선물이니... 해서 나름대로 용돈을 털었다.
둘째는 아빠 모르게 준비한다고 비를 맞으며 한시간을 넘게 걸어 케익을 사오고...
마흔 아홉번째 이빨 빠진 날.... (이빨이 많기도 하네...^^)
별로 이루어낸 것 없이 또 한 살을 덜컥 먹어버리고 만다.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몸 떠나온 지 이제 몇 년이나 되었을까나?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는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먼 그곳을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못난 칠득이 같은 무리들이 나라를 망치든, 쓰레기 같아 경멸해 마지 않는 또 다른 무리들이 세상을 휘젓든, 그곳은 아직도 무길도한량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지 않을 수 없고, 듣고 싶지 않아도 귀 기울이는 그곳.
하지만 그것은 내가 태어난 지리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부모 형제가 아직도 정 붙이고 살고 있는 감성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려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시인이 마지막에 노래했듯 그려지길 소원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도 소박한 면앙정(人+免仰亭) 한 채를 지어본다.




(2012.02.10)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꿈에도 아니 뵌다
엇던 님이 현마 그 덧에 니졋시라
내 생각 아쉬운 젼차로 님의 탓을 삼노라


                                    (무명씨)


떠나가더니 잊었는지 꿈에서 조차 볼 수가 없다
어떤 님이 설마 그동안에 벌써 날 잊었을까
내가 아쉬워하다 보니 괜히 님의 탓으로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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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짙어 끝내는 날 벌써 잊었는가고 하는 것이 어째 많이 들어본 듯한 스토리다.^^
너무 지나치면 의심까지 하게 되고 종국엔 의부증까지 생기는 거 아닐까 싶다.
현마? (설마?)
무길도한량이 두눈으로 그런 케이스를 똑바로 봤다니깐...?
그 집은 의부증이 심해지다 못해 결국 이혼까지 가고 말았다.
처음엔 세상에 둘 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을 하더니만...

에효~, 남의 집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여하간 남녀 간에도 적당한 선에서 사랑지수(指數)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만큼 상대방에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게 사랑이라잖는가?
부담스러워지고 싶다고?
그럼, 그걸 즐기시던지... ^^

사랑타령은 남는 게 없다.
에이, 노래나 한곡조 듣고 넘어가야겠다.
가사에 묘미가 있으므로 집중하시길...
노래야, 나오너라~
꽝!

http://www.youtube.com/watch?v=nnZzGkVAx4Q (클릭!)


그리움만 쌓이네


                              여 진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대 지금 그 누구를 사랑하는가
굳은 약속 변해버렸나


예전에는 우린 서로 사랑했는데
이젠 맘이 변해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난 너 하나 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아-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2011.10.18)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청춘에 곱던 양자



靑春에 곱던 양자 님으뢰야 도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아르실가
진실로 날인 줄 아라 보면 고대 죽다 셜우랴


                                          (강백년)


청춘에 곱던 모습이 님으로 인해 다 늙었다
이제 님이 보면 난 줄 알아나 보실까
진실로 난 줄 알아보면 당장 죽어도 무엇이 서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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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하고 시작하는 민태원선생의 수필 청춘예찬(靑春禮讚)은 이상(理想)으로 빛나는 젊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이다... (후략)"

그리고 그는 이상(理想)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청춘을 청춘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 그의 유명한 표현 '청춘의 끓는 피',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과는 조금 동떨어지기 시작하는 비(非)청춘들은 어찌 하여야 하는가?
폐부를 찌르도록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젊은 날의 꿈을 안고 스러져야만 하는가?

이양하선생의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을 들여다 보자.
"...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후략)"
장년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잖은가.
늙어간다고 코만 쑥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숙미? 노련미? 그런 것들일까?
하기야, 갓 담아내는 보졸레누보 와인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와인은 좋은 환경에서 오래도록 푹- 숙성된 와인이 진국이고, 김치도 금새 담근 겉절이 보단 동토의 지하에서 겨우내 숙성과정을 거친 김장김치라야 김치의 참맛을 보여줄 수 있는거 아니겠는가.
청춘도 좋지만 역시 중요한 건 세월을 따라 농담을 더하고 깊이를 더한 우리 이맘 때가 아닐까 싶다.


오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안돌려진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받으소서
......

봐라!
서러워 말고 그 속에 간직한 힘을 찾으라 안카나.
아직도 괜찮다 아이가...
거, 고개를 들자카이!
어깨 펴고!
이 악물고!
우리 아직 게임 안끝났다고! ^^

인생도 한 50쯤 되어야 세상 단맛, 쓴맛, 매운맛, 신맛... 등등, 여하간 그런 거 골고루 맛보고 이리저리 잘 스며들어 좀더 인간다워지는 거 아닌가?
옛글에도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거기에 순응한다고 했다.
잘 익은 곡주처럼 진한 맛을 풍기는 묵직한 어른이 되자스라.
청춘에 곱던 모습들 다 잃어버렸어도, 질그릇처럼 투박한 삶 속에 숨은 오묘한 힘을  잊지말자.


(2011.10.06)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청산도 절로절로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 水 절로 산슈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김인후)


푸른 산도 저절로 푸른 물도 저절로
산도 저절로 물도 저절로 되듯 자연 속의 나도 저절로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란 이 몸, 늙기도 저절로 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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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집 뒷간 뒤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두엇 있었다.
전기도 없이 깜깜하던 밤그늘에 바람이 불 때 마다 밤나무들은 쉬이- 하고 온 잎들을 흔들어대면, 엊그제 잠자리에서 들었던 빨간 보자기 귀신에 파란 보자기 귀신도 나올 듯 무서웠다.
판자쪽을 이어 붙인 문 틈으로 노오란 별들은 쏟아지고 흔들리는 촛불은 금새라도 꺼질 듯 위태 위태 불안 불안하기만 했다.

"아직 밖에 있는거지?"
소년는 몇 번이고 누나가 밖에 서있는질 확인했다.
"빨리 안나오면 나 가버린다."
짖궂은 누나가 재미로 소년을 얼러대면 소년은 징징대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잉잉~, 그러면 엄마한테 이를거야."
"그러니까 서두르라고!"
"나도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상황은 역전되기 마련이었다.
"야, 너 아직 밖에 있지?"
누나는 쪼개진 판자문 사이로 내다보며 묻는다.
"그래~, 빨리 안나오면 가버린다."
"어우, 야아~"

소년은 발 밑으로 떨어진 푸른 밤송이를 쪼개려고 두발로 밟아 본다.
너무 어린 눔이었는지 연한 밤송이는 갈라지지 않고 뭉개지기만 할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밤나무는 잘 익은 밤들이 꽉 찬 갈색 밤송이를 떨구기 시작할 것이다.
짧은 오후내 가을햇살에 밤송이들은 절로 벙그러질 것이고...

바람이 밤나무를 한 번 더 으스스스 떨게 만들며 지나가는 끝엔 별들이 가득하다.
"북두칠성이 큰곰자리라고 했었나?"
"그래, 북극성 건너 W자가 카시오페아자리이고..."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에 W자를 그려본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소슬바람에 가을의 바삭함이 묻어난다.
계절도 밤나무도 소년도 그렇게 절로 절로 익어갔다.


(2011.09.28)

 

2011년 9월 5일 월요일

힘써 하는 싸홈




힘써 하는 싸홈 나리 위한 싸홈인가
옷밥의 뭇텨이셔 할일업서 싸호놋다
아마도 조티디 아니하니 다시 어이하리


                                   (이덕일)


힘써서 하는 저 싸움이 나라를 위한 싸움인가
옷, 밥이 풍족하다 보니 할 일 없어 싸우는 모양이지
아아 그치지 아니하니 이를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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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데다가, 작은 나라에 인구는 과밀하여 생존경쟁을 위하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고학력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그 중 지식은 많으나 현실은 모르는 사람들을 '헛똑똑이' 라고 칭하면 틀린 말일까?
여하간 이러한 헛똑똑이들은 얼마나 많은지...
마치 누가 누가 더 미련한지 시합하는 경연장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불과 60년전의 참상을 잊어버리고 그 강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빠진 헛똑똑이들.
정치세력에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이벤트에 참여하는 헛똑똑이들.
몇 번을 속고도 또 그래도 자신에게 이득이 있을까 하는 미련으로 투표하는 헛똑똑이들.
자신을 왜 뽑아주었는지도 모르는 채 저 잘났다고 아우성치는 헛똑똑이들.
무엇을 위한 투표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기만 하는 헛똑똑이들.
...

너무 종류가 많고 다양하여, 하나 하나 예를 들자면 밤을 새도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도대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헛똑똑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정치적 선동가에 의해, 매스콤에 의해, 블로거에 의해 이용 당하며 이리 저리 휘몰리는 그들은 단지 고학력의 고성능 통신수단으로 무장된 쥐떼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행동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은 좀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나의 행동이 힘써 하는 저 싸움에 돌멩이 하나로 어떻게 작용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은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걸그룹이니 기쁨조니 이런거만 관심을 갖지 말고 말이다.

이렇게 우왕좌왕 갈팡질팡 패싸움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굴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 과거 우리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잖은가.
아마도 조티디 아니하니 다시 어이하리...
어이하리...

에이~, 무길도한량이 정녕 나서야 한단 말인가? ^^


(2011.09.05)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넙으나 너른 들회




넙으나 너른 들회 흐르느니 물이로다
人生이 뎌르로다 어드러로 가는게오
아마도 도라올 길히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무명씨)


넓으나 넓은 들에 흐르는 것이 물이구나
인생도 저렇게 흘러가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아마도 돌아올 길이 없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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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희준은 '하숙생'을 부를 때 인생을 음미하는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이 노래에 깊이를 더했던 것 같다.
한 번 동영상으로 보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WktYRl9WpSY&feature=related (클릭)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요즘 새로운 787 여객기를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는 이곳 조립공장 활주로 건너편에는 여러곳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 한 떼 모여있다.
무길도한량이 비행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눈으로만 봐도 그들은 꽤 오래 전에 생산된 비행기들임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조종설비를 제외한 의자니 천장에 붙은 수납캐빈이니 하는 모든 내장재를 떼어내고 깨끗이 청소를 한 뒤 모든 창문과 출입구를 밀봉을 한다.
그리곤 비행기 전체를 하얀색으로 다시 페인트 칠을 하여 과거를 지워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비행기는 어느날 활주로를 차고 올라 아리조나주의 모하비사막까지의 마지막 비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재활용 콜을 받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이제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영면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공장 한귀퉁이에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탈바꿈을 하며 변해가는 비행기들.
그리고 십중 팔구 마지막일 그 비행을 위해 막상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구름 사이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인생도 또한 그러하리라.
충성하고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에 그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그 인생 헛되진 않았으리라.
......

오늘도 아침길을 걷다가 하얀 옷을 입은 한 비행기의 마지막 비상을 본다.
그곳에서 편히 쉬길...
굿바이.



 (2011.08.31)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갈길히 머다 하나



갈길히 머다 하나 뎌 재 넘어 내 집이라
細路 松林의 달이조차 도다 온다
가득의 굴먹는 나귀를 모라 므삼하리


                                                       (무명씨)


갈길이 멀다 하나 저 고개만 넘으면 내 집이다
오솔길 솔밭 사이로 달까지 돋아 길을 밝혀준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이지 못한 나귀를 재촉하여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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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지방의 숨 막히는 폭염과 습도와 싸우다 돌아온 아내는 무길도에 빠져들었다.

긴 팔을 입어야 할지, 짧은 팔을 입어야 할지 조금은 고민스러우면서도 쾌적한 기온.
쬐어도 쬐어도 덥게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햇볕.
나무들 우거진 숲을 지나며 신선한 나무향을 입은 맑은 공기.
가끔씩 바람에 실려오는 먼 갯내음.
그리고 속세의 번잡함과 소란함을 벗어난 평화로움...
(쓰다보니 좋은 말은 다 골라 썼군. ^^;;)

그래서,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은 휴일 오후, 우리는 도서관 뒷쪽에서 시작하는 걸치(gulch: 침식으로 만들어진 협곡)로 산보를 나가기로 했다.
이미 한번 92번가 공원까지의 구간을 가본 적이 있는 첫째 녀석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장을 섰다.
나를 따르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전나무들 틈 사이로 하늘 가장자리를 보면서, 우리는 최소 수십만년 동안 자연이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어 만든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따라 걸어갔다.
서늘한 골짜기의 기온에 무릎 보다도 높이 자란 고사리들...
바다까지 이어지는 걸치를 따라 우리들의 재잘거림도 이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신이 주신 선물, 어쩌고 저쩌고... ^^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새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로 들어섰고, 비가 그친지 열흘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마르지 않은 진흙길을 군데군데 지나면서 길은 점차 험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맨 앞에서 발걸음도 가볍게 나아가던 첫째 녀석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돌아섰다.
"두갈래 길인데 어느쪽인지 모르겠어..."
"92번가 공원이 걸치 위에 있으니 올라가는 길 아니겠어?"
정세파악에 일가견이 있는 아빠, 무길도한량이 앞장서서 언덕 위로 향한 길로 가기 시작했다.

길은 점차 깎아지른 걸치의 벽 허리께를 향하고, 길폭은 점점 좁아들어 우리는 쓰러져 가로누은 나무를 타고 넘기도 하며 두 발보다 네 발을 이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에게 주의할 곳을 가르쳐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서 용케 버티며 나아갔지만, 종국에 30m 절벽 위에 대롱대롱 버티고 선 네마리의 산양들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 길이 없어?"
뒤에서 아내가 묻는다.
"아니... 길은 있는데... 길이 좁아서 아이들에겐 좀 무리일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돌아가자."
무길도한량이 지친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본다.
"이곳은 지난다 해도 다음이 또 어떨지 모르잖아?"
"그래. 맞다. 돌아가자."
우리는 다시 또 기어서 미끌어지면서 올라왔던 절벽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째가 정확하게 아는 길목까지 되돌아온 우리는 다시 첫째에게 리더를 맡기며 지친 몸에 이끌고 도서관 뒷길을 향해 나아갔다.
"여기서 저 언덕만 올라가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큰 길이 나와."
돌아가는 즐거움에서인지, 아니면 아는 길을 간다는 편안함에서인지 녀석의 발걸음은 날아가는 듯 했다.

"아, 이녀석아, 좀 천천히 좀 가라. 아빠 엄마 숲속에 버리러 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왜 이렇게 빨리 간단 말이냐?"
지치고 힘 빠진 무길도한량은 맨 뒤에 처져 비오듯 땀을 흘리며 쫓아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녀석은 계속되는 무길도한량의 투덜거림도 아랑곳 없이 속도를 내고...
"저 녀석이 아까 절벽에선 꼼짝 못하더니...에잉."

오붓하리라 예상했던 우리가족의 산책은 협곡에서 두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매이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얻은 것도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 한가지로 마음을 통일하고 같이 노력했다는 것.
누구도 잘못한 사람에게 불평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주었다는 것.
힘들었지만 나름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
어이크, 사방에서 베개들이 날라온다! ^^

2011년 8월 3일 수요일

미나리 한 펄기를



미나리 한 펄기를 캐여서 싯우이다
년대 아니아 우리님께 바자오이다
맛이아 긴지 아니커니와 다시 십어 보소서


                                    (유희춘)


미나리 한 포기를 캐어서 씻겠습니다
다른 데 아니고 우리 님께 바치겠습니다
맛이 좋지 않더라도 자꾸 씹어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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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명한 애처가(愛妻家)였다.
어느 겨울 승지의 직책으로 대궐에서 숙직할 때 모주 한동이가 생기자, 따로 남기어 일필휘지 시 한 수와 함께 아내에게 보낸다.

눈 내리고 바람 불어 더 추워지니
냉방에 앉아 있을 당신 생각이 나는구료
이 술이 변변치는 않은 술이지만
찬 속을 덥히기엔 충분하리이다.

오버. 애처가 올림

그의 아내는 또 당대 둘째 가면 서러워 할 여류시인 송덕봉.
즉시 마른 붓 끝에 침 묻혀 남편에게 답시를 쓴다.

국화잎에 눈발이 날려도
은대에는 따뜻한 방이 있겠지요
추운 집에서 따뜻한 술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여기서 '은대'는 승정원을 이야기 한다.

유희춘이 을사사화에 엮이어 19년 동안 함경도 종성에 유배 되었을 때, 그녀는 그를 돕고자 아득한 북쪽 땅으로 그를 찾아가 유배생활을 같이 한다.


行行遂至 摩天領   (행행수지 마천령)
東海無邊 鏡面平   (동해무변 경면평)
萬里婦人 何事到   (만리부인 하사도)
三從意重 一身輕   (삼종의중 일신경)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오르니
끝없는 동해가 거울처럼 평평하다
만리길을 아녀자가 무슨 일로 왔을꼬
삼종의 길은 중하고 일신은 가벼웠을 뿐.

19년 + 보너스 1년...
무슨 프로선수 계약조건도 아닌 것이, 길기도 참 길었다.
그녀 나이 스물 일곱에 고생길은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함께 한 아내에 유희춘은 감동, 더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선조임금이 들어서면서 그는 복직, 승진...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숙직하다 아내에게 쪽지도 살짝 보내면서... ^^

그래서 우리도 이같이 사랑하며 잘 살리라...
하고 교훈적인 끝맺음으로 오늘 이야기를 맺으리라고 예상하시는 분들, 잠깐!

허허... 그 이야기엔 반전도 있지비.
그 시대의 사대부라면 대부분이 그랬듯이, 유희춘은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했다지?
자식도 여럿 낳고 말이지...
하지만 그녀는 그들마저도 잘 보살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네.

하여간 여자의 팔자라는 건, 차암.... ㅉㅉ


(2011.08.03)

2011년 7월 16일 토요일

삿갓세 되롱이 닙고




삿갓세 되롱이 닙고 細雨中에 호믜 메고
山田을 홋매다가 綠陰에 누어시니
牧童이 牛羊을 모라 잠든 날을 깨와다
  
                                      
                                     (김굉필)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고 가는 비 맞으며 호미를 들어
산간의 밭을 매다가 나무 그늘에 잠시 누웠는데
목동이 소와 양을 몰고 지나가서 잠든 내가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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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어귀에 들어선 무길도엔 오늘 흩뿌리듯 이슬비가 내린다.
가는 비에 싱그러운 초색이 더해지는 이 맘 때쯤이면 막걸리와 따끈한 빈대떡이 생각나겠지만, 여기선 체면을 쪼금 차리면셔... ^^

아래층에 사는 Dottie 할머니는 비가 오는 덕분에 일광욕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옆집 Tony는 잔디 깎는 날이 아닌지 집안에서 잠잠하고...
건너편 목사님댁도 움직임 없이 조용하다.

베란다에 나가 앉아 나뭇가지에 걸쳤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릴 들으며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이 순간, 이 공기가 누군가에게는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행복함을 느낀다.
또 이 때 이 순간이 다시 올 수 없기에 이 순간은 또 소중하다.
죽어라 일 하는 것도 나중을 위해 소중하지만, 순간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소중하지 않겠는가.
ㅋ~ 난 역시 한량이라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이슬비 맞으며 밭에 나가 호미질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일하다 잠시 노곤한 몸을 쉬고저 나무 그늘을 찾아 누울 사람도 있겠고...
소와 양을 몰고 풀 뜯기러 나가는 사람도 있겠고...
또 이 모든 장면을 보고 모듬고 다듬어 한 줄 시로 만든 이도 있겠고...
무엇을 하든 시간은 각자에게 주어진 모양대로 돌아가며 째깍거린다.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어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려트니
문전에 수성어적이 잠든 날을 깨와다
                                         (유성원)

목동이 소양을 몰고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깬 김굉필과 어부들 피리소리에 잠을 깬 유성원...
누구의 단잠을 더 망쳤는지 모르지만 그 어딘가로 퇴침이 날아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다.
대감마님, 소인이 나으리의 단잠을 망친 죄로 시나 한 수 들려 드리이까?
쩝... 그러려므나.
멀리 고려시대 정지상이 지은 송인(送人)이란 시조 올씨다. ^^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비가 잦아드는 긴 강둑에 풀빛이 짙어지는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님을 떠나보내는 남포에는 슬픈 노래가 구슬프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대동강물이 어느 때나 마를 수 있을까?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하여지는데...

그래서 무어..?
그냥 시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습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용~ ^^
(2011.07.08)

녹양이 천만사인들






綠楊이 千萬絲인들 가는 春風 잡아매며
探花蜂蝶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思郞이 重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이원익)



푸른 버들이 천가닥 만가닥일지라도 가는 봄바람을 어찌 잡아맬 것이며
꽃을 찾는 벌과 나비일지라도 지는 꽃을 어찌하랴
아무리 사랑이 깊어도 가는 님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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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도 가수 인순이의 가창력과 댄스는 알아주지만, 1978년 발표한 희자매의 1집 앨범에는 분위기가 제법 다른 노래가 하나가 들어있었다.
김소월의 시, 안치행 작곡의 '실버들' 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오랜만에 노래를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xDGEWDTRh44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갖되이 실버들이 바람에 늙고
이 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 못이루리


많이 비슷하지요? ^^
아마도 오리 이원익대감이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나보다.
그의 시조가 무려 3,4 백년 후에 다시 대중가요로 힛트했으니...
네 번의 영의정에 청백리로 살아온 그의 가슴 속에도 때론 뜨거움이 있었나보다.
혹은 앗싸! 앗싸!! 하는 추임새라도 은근히 마음 속에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리오빠~^^)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다가왔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듯 하다.
사랑은 어차피 아련한 먼 기억 속의 색종이처럼 따스함으로 시작되고, 안온함으로 시작되고, 아름다움으로 시작되지 않던가.
혹은 누구의 싯귀처럼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사랑은 오지 않았던가.
떠나간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아스라함에 있지 않던가.
기억은 흐릿할수록 신비함을 더해주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다.

정작 걱정하고 힘들어 하고 원하지 않는 부분은 항상 마지막에 오는 법이다.

경험 많은 나도 겪었었고, 사회에 갓 첫 발자욱을 내딘 조카녀석도 겪었고,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우리 아이들도 겪을 일이기에 항상 헤어짐을 말하긴 참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리 대감 말씀처럼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가고... 오고... 또 가고...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 늘 그러 하기에 우리가 집착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인생이라는 대단원의 막은 결국 헤어짐이 아니던가.

얼마전 우리 교회의, 나와 동갑인 한 아주마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헤어짐은 마치 그런 것이다.
언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닥칠지 모르지만 헤어짐에 익숙해지고 순응하는 것이 살 길 아닐까? ^^
마음 아픈 이들에게 조병화 시인의 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를 권해본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 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리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 일세

실은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2011.06.17)

시절이 태평토다

   

      
時節이 太平토다 이 모미 한가커니
竹林 深處에 午鷄聲 아니런들
깁히 든 一場 華胥夢을 어느 벗이 깨오리
                                                        

                                                         (성 혼)

이 몸이 한가한 걸 보니 시절이 태평스럽구나
대나무 숲 깊은 곳에 낮 닭 울음소리 없었다면
깊히 든 좋은 꿈에서 어느 벗이 날 깨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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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한 봄바람에 꽃잎은 하염없이 지고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고 어디 하나 소리치는 사람도 없다.
시절이 태평하도다.
음...돈 버는 건 차치하고... ^^

성혼의 시조를 읽으려다 잘 모르는 것들이 있어 조사를 해본다.
먼저, 오계성(午鷄聲).
닭이 불빛에 민감하여 새벽에 주로 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우찌 한낮에 우는 닭 이야기를 했을까?
죽림 심처와 닭도 어울리지 않는데, 한낮에 우는 닭울음도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성혼은 남송때의 시인 범성대(范成大)를 떠올린 것은 아닐까?
그의 시 사시전원잡흥(四時田園雜興)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柳花深巷午雞聲(유화심항오계성)
: 버드나무꽃 날리는 깊은 골목길 한낮 닭 울음소리


옛부터 한낮에 우는 닭은 미친 닭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이 흔하지 않은 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범성대의 싯구에서도 나타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서산대사도 한낮의 닭울음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다고 하지 않던가.
저 닭이 왜 그 때 그 곳에서 울었는지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다음은 화서몽(華胥夢)인데,
이건 도가(道家)의 경전 중 '열자(列子)' 의 황제편(黃帝篇)에서 왔다.
황제(공손헌원)가 어느날 낮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 놀러가서, 그곳에서 이상향 또는 이상국가를 발견하고 꿈에서 깨어나 그 도(道)를 펼쳐 천하를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이다.
그 화서씨의 나라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냐고?
거긴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도 이해의 관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했다고...
뭐, 꿈 이야기 이니까 따따부따 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고... ^^
그냥 꿈이 아니고 화서몽이라고 명시한 이유는 자나 깨나 성혼의 생각에 나라생각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냄이 아니겠는가.
시조해석에선 그냥 '좋은 꿈'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마치 대입참고서라도 쓰는 기분이다. ^^
읽다보니 궁금증이 생겨서 같이 문제를 푸는 기분으로 떠들어봤으니 이해하시길...

세치 혀로 선동질만 일삼으며 억대 연봉을 받아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그냥 좀 잠시라도 대나무 숲에 들어가 다같이 낮잠을 주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화서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냥 푹 주무셨으면 좋겠다.
그 다음 낮닭이 울 때까지... ^^
Bye Bye.

(2011.06.11)


어전에 실언하고



御前에 失言하고 特命으로 냇치신이
이 몸 갈 띄 업서 西湖로 차자간이
밤중만 닷드는 소릐에 戀君誠이 새로왜라

                                                       (구인후)


임금님 앞에서 실언하여 특명으로 물러가라 하시니
갈 곳 몰라 하다가 한강가 서호를 찾아갔다
밤중에 닻 드는 소리에 임금님 그리는 마음만이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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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特命)으로 내치시니...ㅋㅋㅋ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짐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그리 아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결심을 했다지 않소?"
"전하!"
"여봐라! 선전관께서 퇴궐하신다니 특별히 궐 밖까지 모시도록 해라."
"예이~"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예전에 우리 친구 S는 빈한한 생활 속에서 다섯명의 형제와 함께 자라났다.
생활고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하고 씩씩하게 자라다보니 서로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였다.
특히, 별 반찬 없이 밥만 고봉으로 올라오는 밥상머리에서의 경쟁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젓가락을 암만 휘저어도 건질 거 하나 없는 멀건 된장찌게에 어쩌다 두부라도 뜨는 날에는 쇠숟가락 마다 살기가 어리는 날이었다.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 없이 정신없이 숟가락을 왕복시키다 보면 때때로 숟가락 부딪히는 금속성소리도 나고 그에 따라 긴장은 고조되어 가고...
그리고 누군가는 마지막 두부조각을 차지하여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하엿차! 아무도 안드시네?"
"하랏차! 신이 내리신 마지막 축복!"
쨍!
숟가락 두 개는 두부 한조각을 양분하며 불꽃처럼 부딪히고 두 젊은이의 양미간은 급격히 조여든다.
둘째와 넷째와의 눈싸움에 다른 형제들도 밥 먹기를 멈추고 긴장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양보해라, 잉?"
"내가 먼저 잡았는데, 왜?"
"죽을래?"
맘 약한 넷째는 그만 눈물이 핑 돌며 두살 많은 둘째형으로부터 숟가락을 물린다.

"이놈 시키!"
둘째는 등으로 불 같은 통증을 느끼며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른 숟가락을 거둬 들였다.
부엌에서 숭늉을 가져오시다가 두 형제간의 대치상황을 목격한 어머니의 두툼한 손바닥이 소매 없는 런닝셔츠를 입은 둘째의 넓은 등에 불벼락처럼 내려친 것이다.
"못난 놈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싸워?"
지정학적인 위치 덕에 불벼락을 면한 넷째는 고소함에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흐른다.
그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둘째.
"이눔 시키가 아직도...! 너 숟가락 내려놓고 이리 좀 들어와라. 기도 좀 하자."

기도 좀 하자???!!!!!!!!!
그것은 S네 집안의 특명(特命)이었다.
독실한 신앙을 갖고 계신 S의 어머니는 조그만 쪽방을 따로이 마련하시고 그곳을 기도실로 사용하셨는데, 한 번 기도를 시작하시면 두 시간도 좋고, 세시간도 좋고, 네 시간도 좋고...
그곳에 한 번 특명을 받고 끌려 들어가는 날에는 성한 걸음으로 기도실을 벗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 시간, 네 시간을 무릎 꿇고 앉아 어머니와 함께 회개의 기도를 한 후 그들은 뱀처럼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눈물로 문지방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여섯 아들을 별 탈 없이 길러내신 S네 집 어머니의 가정교육 비결이었다.

우리집 말 잘 안듣는 녀석들을 위해서도 특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너, 이리와. 두 시간짜리 기도!"
"네 이놈, 넌 네 시간짜리 기도닷!"
상상만 해도 즐거움에 몸서리가 쳐지는구나. ㅎㅎㅎ

가만, 근데 난 두 시간, 네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



(2011.05.21)

곳 디고 속닙 나니





곳 디고 속닙 나니 시졀도 변하거다
믈 소개 푸른 버레 나뷔 되야 나다닌다
뉘라서 조화를 자바 千變萬化하는고

                                                     (신 흠)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는구나
물 속에 푸른 벌레 나비 되어 날아다닌다
누가 조화를 부려 이처럼 천변만화하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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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때의 학자 신흠은 선조가 죽으며 영창대군을 부탁했던 일곱 대신 중의 하나였다.
그의 한시 중 유명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오동은 천년이 되어도 소리가 변하지 않고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바탕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 온다


아마도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첫 구절을 좋아할 것이고, 기생은 둘째 구절을 좋아할 터...
오동나무집이니, 버드나무집이니 하는 음식점들 중에도 이런 구절을 써붙인 곳들을 본 적이 있다.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비결을 간직한 할머니도 이 구절을 이용할까?

우리 동네에 자그만한 한식당이 하나 생겼다.
처음엔 메뉴 메뉴 마다 그 내용이 알차기 그지 없는데다가 맛도 좋아서, 부엌에서 그렇지 않아도 구부러진 허리를 한 번 들썩이는 법 없이 요리하시는 할머니의 솜씨와 카운터에서 싱글벙글 열심히 일하는 젊은 주인네를 사방팔방 칭찬하고 선전하고 다녔었다.
오징어볶음에 오징어가 제법이고, 두부찌개엔 두부가 제법이고, 우거지갈비국에 우거지와 갈비가 차고 넘쳐, 제대로 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다는게 참으로 즐거웠다.

참으로 순진도 했다...난. --
두세 달이 지나고 모처럼 양코백이 W와 L을 그 집으로 초대하여 간 날은 실망으로 배를 가득 채워온 날이었다.
오징어볶음엔 볶음용 멸치만한 오징어 쪼가리만 몇 개 들어 있었고, 제육볶음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시킨 우거지갈비국은 갈비는 기대하지 않는다 쳐도 우거지도 몇줄기 없는 멀건 된장국에 다름 아니었다.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젊은 주인장의 국그릇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래, 처음이니까 오프닝 프로모션으로 재료도 올바르게 쓰고 솜씨 좋은 주방 할머니도 모셔왔을거야.
하다보니 채산성도 좀 떨어지고 단골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니 좀 덜 열심히 해도 매출은 유지되고...
에라, 이... 
차라리 물가 핑계를 대고 가격을 올리는 것이 나았으리라.

그 집이 손님이 점점 떨어지다 보면 몇개월 안지나서 권리금 얹어 또 어떤 사람에게 넘겨버리고 말겠지...
내 일 아니니 알 바 아니다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지 싶다.
당신에게도 그곳에 터를 닦던 초심(初心) 이 있지 않았을까?
당신도 자라면서 숱하게 동심을 우려먹었던 과자업체나 아이스크림업체에게 똑같이 당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서 당신의 변심을 모를 것 같소이까?

천년의 소리, 천년의 맛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본에 충실한 정직함을 기대하는 이 몸은 언젠가 그 젊은 주인장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정도로 다시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진짜로 채산이 안맞아서, 정말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서, 질을 떨어뜨렸다면 내 돈 더 낼께.
차카게 살자...

(2011.05.15)

간밤의 우던 여흘




 




















간밤의 우던 여흘 슬피 우러 디내거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
뎌 믈이 거스리 흐르가뎌 나도 우러 네리라

                                                      (원 호)


간밤에 울며 흐르던 여울물이 슬프게 울며 흘러갔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그 눈물을 흘러 보냈나보다
저 물이 거슬러 흘러준다면 나도 울어 흘러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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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는 일들이 영 신통치가 않다.
아이들과는 자꾸만 사소한 일도 충돌이 생기고, 사업장에선 직원들 하는 일들이 영 마뜩잖고...
그동안 허리가 안좋다는 핑계로 뒹굴던 몸은 광 앞에 턱 버티고 앉은 보리 가마니나 다를 바 없고, 버튼 잘못 눌러 턱! 하니 업그레이드한 야후 블로그는 영 신통칠 않아 아직도 많은 폴더들이 빈 채로 남아있고...
우기는 끝이 나고 따땃한 봄볕이 들어야 할 내 창가엔 아직도 소슬바람 스산하고...
아침부터 이유없이 바빠 바이올린 연습 말아먹기 일쑤인데다 정신마저 산란하여 글 쓰는 것도 영 쉽질 않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여흰 우리 우렁각시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매일매일이 고달픔의 연속이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뭔가 진전은 있는거지?"
아내는 두번 세번 나에게 스스로를 확인해본다.
그럼... 그렇고 말고...지금 잘하고 있는거야.
"근데 왜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안보이지?"
글쎄... 나중에 결과가 말해주지 않겠어?
아내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차마 끝내지 못하고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오년만 버티자.
"오년이면 뭐가 달라지나?"
음... 오년 후 아이들 대학 보내고나면 일단 우리 둘이 합칠 수는 있잖아?
"합치면 뭐가 달라져?"
그럼~, 내가 재밌게 해줄께. ^^
시무룩하던 얼굴에 피식 힘 없는 웃음이 번져난다.
거봐, 웃잖아...
기가 막힌 듯 한번 더, 그리고 조금 더 큰 웃음이 그녀에게서 터져나온다.

처음 물 건너 이곳으로 올 때 내가 그녀에게 해준 말은,
"지금부터 우린 맨 땅에 헤딩하기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야 돼."
그 때 그녀는 그것이 죠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아무도 알 지 못하고 어디 한군데 기댈 곳도 없는 낯선 타향살이는 기실 맨 땅에 헤딩하기 보다도 더 어려웠다.
유산계급에서 무산계급으로의 변화는 차라리 가장 쉬운 것이었다.
숱한 도전과 좌절을 거치면서도 끝없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채찍질하면서 끝내 일어서기 까지의  시간들...
그녀는 남들이 하기 힘들어 하는 위치까지 올랐지만,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을 마주하고 있다.

다시 힘을 내야지...
난 그저 멀리서 굳게 주먹을 흔들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응원가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미안하구나, 난 항상 도움이 되어주질 못하네...
누군 힘들어 하는데 개기름 번지르르 흐르는 화색 좋은 얼굴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더 미안할 따름이다.
어... 나도 열심히 살려고 해... 아이들 뒷바라지도 열심히 하고, 사업장도 열심히 챙기고, 바이올린도 열심히 배우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뭐냐 이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놀고 더 열심히 즐긴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는군...)
그리고, 복권도 열심히 살께.
(잘한다, 돈 벌어다 주니까 쓸데없는 데다가 돈이나 써질르고...)
글쎄,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네...
여하간 화이팅이여, 우리 우렁각시!

(201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