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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야후 블로그로 돌아갑니다

야후 블로그로 돌아갑니다







기존에 올렸던 글들 중 사진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두어달쯤 되었습니다.
(오른쪽 리스트 중 Pentax K100 을 누르시면 그 예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재차 사진을 올려보기도 하였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먹통으로 나타나는 사진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습니다.
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일수록 그런 현상은 더 하더군요.
아마 구글에서 용량을 컨트롤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암만 알아보아도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고, 이러다간 포스팅하는 숫자 보다 잃는 사진 숫자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궁리를 하다가 예전에 사용하던 무길도한량의 야후 블로그 "꿈꾸는 낡은 카메라" 를 체크해보니, 저를 떠나게 만들었던 문제점들이 마침 모두 해결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잃기 전에 다시 야후 블로그로 돌아가려 합니다.
1년여 동안 이곳에 띄웠던 내용들을 야후쪽으로 옮기는 작업이 재미없는 일이기는 하나, 행인지 불행인지 포스팅한 것들이 그닥 많지는 않아 마음은 놓입니다.

귀찮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구글로 무길도한량을 찾아오신 분들께 감사와 동시에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노고스러운 발걸음을 저의 야후 블로그로 해주실 걸 부탁드립니다.
링크는 다음과 같으니 한번 콕 누름 만으로도 찾아오실 수 있겠읍니다.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page/1 (클릭)

그동안 깔끔한 쉼터를 제공해주었던 구글에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야후 블로그 "꿈꾸는 낡은 카메라" 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무길도한량 드림

(2012.06.19)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라면 한그릇

라면 한그릇




바야흐로 화사한 봄날의 연속이다.
삼일을 연속으로 햇살이 만발했던 것이 얼마만일까?
10월 중에 시작되었던 우기가 이제 끝이 나는 것인가?
하하,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섣부른 봄빛은 잠시 후의 약 2주간 지속되는, 우기 마무리비가 온 다음에야 진짜 진짜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봄의 여왕 5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또 한 번의 길고 우울한 우기를 짙은 커피향으로 이겨냈음에 자찬이 절로 나온다.

엊그제는 서울에서 울 오마니께서 보내신 위문품이 도착했다.
그게 미국에 오면 이름이 케어 팩키지 (care package) 로 바뀐다.
천만리길 혼자 떨어져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한 누룽지, 김자반, 물기를 쥐어 짠 장아치들...
언제나 할머니 곁을 그리워하는 손녀들을 위한 과자들, 비밀리 꼬불친 오달러 짜리 몇 장...
그 틈바구니로 빨간 포장지의 '뽀빠이'가 눈에 띄었다.
별사탕이 더하여졌기에 이름도 삼양 '별뽀빠이'로 변하였지만, 우리 옛날에 아주 가끔씩 군것질 쾌가 있을 때 소중히 까먹던 그 뽀빠이임에 틀림이 없었다.

옛날과는 사뭇 달라진 겉봉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한다.
"철분 2.25mg 함유 (호!?)
2012.08.07. (이건 유통기한일 터이고...)
김미숙 02 (아마도 2번 생산라인의 감독책임자일 것이고...)
중량 65g, 열량 290kcal (한끼 밥은 되네?)
...
그리고 또 뒷면도 살펴보다가 발견한 한 문구.
"주머니 속에 쏘옥~ 휴대하기 간편해서 OK!"
하하, 누구 주머니인지 참 크기도 하다. ^^

우리 어렸을 적에도 모처럼 뽀빠이 하나 사면 봉지를 싸악 뜯어서 내용물만 바지주머니에 쏟아넣고 돌아다니면서 찔끔찔끔 꺼내먹는 온종일용 주전부리였다.
"야야, 빨리 접어."
"가만 있어봐. 좀 먹고..."
딱지로 글높 별높 따질 때도, 팔방다마로 쌈치기를 하다가도 주머니에서 한웅큼 꺼내 입에 넣고 으드득 으드득 씹어먹던 것이 뽀빠이였다.

물론 제일 먼저 나온 삼양 베이비라면과자도 있었고, 뽀빠이보다 더 고소하고 면발이 가늘었던 10원짜리 롯데 라면땅, 20원짜리 고급형 롯데 자야도 있었다.
내 개인적으론 라면땅을 선호하였지만 그래도 역시 단위금액 당 양이 월등히 많았던 뽀빠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생존해있는 것도 뽀빠이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을 만들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이용하여 만들기 시작했다는 라면땅, 라면과자들...
하지만 나에겐 그 라면부스러기 과자가 크나큰 사치일 뿐이었다.
라면을 끓여 먹기도 힘든 살림에 라면을 부숴 만든 과자라니요...

미아리 산꼭대기 단칸방 시절, 지겹도록 먹던 칼국수와 수제비들 사이로 한줄기 광명이 비치던 날은 바로 어머니가 성북동 라면공장으로 일일견학을 다녀오시던 날이었다.
바람만 불어도 덜컥대던 부엌문짝 사이로 꼬래꼬래한 고기국물 냄새가 퍼져나오고 세발 달린 플라스틱 저녁밥상이 문지방 넘기만을 고대하던 누이와 내가 괜히 신이 나서 방바닥을 콩콩거리며 맴돌았던 그 날.
누이의 그릇에 라면이 한가닥이라도 더 들었을까 사정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기도 했다.

면발 찌끄러기는 커녕 국물 한방울이라도 남길 수 없어 마지막 방울까지 이미 사라진 그릇을  쪽쪽 빨던 나의 모습에 어머닌 그렁한 눈을 하시고 날 당신의 무릎 위로 안아 올리셨다.
"그렇게 맛있어?"
응, 무지 맛있어.
"그래, 우리 다음에도 또 많이 먹자."
난 고개를 얼른 끄덕이면서도 누이의 턱 끝을 행해 달음질치는 라면국물줄기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런... 국물 좀 빨리 핥아랏! 턱 밑으로 떨어진다잉~

라면으로 좋은 저녁을 신나게 먹고 나면 저녁하늘 너머 별들은 더 아름다웠다.
어머니와 함께 견학을 다녀온 집들에서 나온 라면냄새로 온동네가 행복 속에 빠진 듯 했다.
겨우내 걸핏하면 싸움박질이던 석이네 집에서도 환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우린 맑게 빛나는 삼태성을 바라보며 병원에 있는 우리 아가도 생각하며 노래도 불렀다.

날 저무는 하늘엔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비추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그러다보면 누이를 향해 욕심부렸던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누나, 라면 참 맛있지?
"그래, 정말 많이 먹고 싶다."
그래, 나도 정말 많이 많이 배 터지도록 먹고 싶다.
그렇게 라면은 내 가슴 속의 양식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며 가닥가닥 세듯 먹던 누나는 지금 하루에 라면 몇 봉지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라면이 그저 단순한 보리고개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식량의 하나로만 평가되어지던 시절,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유행가를 개사해서 불렀던 노래가 하나 있다.
기억컨대 개그맨 고영수가 만들지 않았나 싶은데, 그 당시 많은 싱건지들이 너도 나도 따라 불렀기 때문에 원작자에 대하여는 나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겠다.


국수가 파마를 하면은 그때는 라면 (워~워~)
라면이 불어서 파마가 풀리면 그때는 우동
우동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그때는 짬뽕 (워~워~)
이러는 내 모습 서러워 울면서 먹으면 그때는 울면
내 인생 꼬여서 하루의 한끼는 김치도 없는 라면


나는 지금 한국에서 라면 한봉지가 얼마인지 알지를 못한다.
종류도 워낙 많을 뿐더러(!) 서로 가격 차이도 많이 나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가는 마켓에서는 어떤 한 일본라면 브랜드를 세일해서 1달러에 6개씩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라면이 묘하게도 나의 첫 삼양라면의 국물 맛과 많이 비슷하기에 다른 비싼 (좋은?) 라면들은 제쳐두고 항상 이것만 찾게 되는 것이다.
소금량에 주의코자 국물은 가급적 손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경우 그 국물의 맛을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빠져있다.
심각한 중독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십여년 전 일본 동경 뒷골목 시장을 지나다 허름한 문짝 위의 '라멘'이란 글씨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
동행했던 매제도 라면을 꽤나 좋아하던지라 신나 했지만, 막상 카운터 너머로 라면이 등장하였을 때 우린 그 '원조 라면'에 놀라고 말았다.
파마를 안한 생머리의 라면!
하지만 주방장이 직접 맛낸 국물은 원조라는 말에 걸맞는, 깔끔한 맛의 고깃국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맛이었다.


생각난 김에,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영양제 보내드리는 편으로 유명한 일본라면 세가지 맛을 한개씩 박스에 동봉했다.
혹시나 두 분 저녁상에 영 국거리가 마뜩찮으실까봐, 혹시나 옛날 단칸방 시절 모처럼 잡수셨던 라면이 생각나실까봐, 혹시나 맵게 만들기 경쟁에 옛라면들처럼 좀 점잖은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실까봐, 또 혹시나 두분이 다투시기라도 해서 서먹서먹하실 때 서로 라면 한 젓가락씩 나눠 잡수시라고...
옛날 코메디언 구봉서씨와 곽규석씨 처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고 말이지. ^^

4월하고도 중순에 들어선 아직까지 공기 중엔 제법 차디찬 기운들이 섞여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뜨-끈한 라면 한사발이 간절한 것은 과거의 아픈 상처의 아련함 때문인지 아니면 죽도록 라면을 사랑하는 어느 오타쿠의 열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산이 그곳에 있어 올랐듯이 라면이 거기 있기에 먹는 것일까?

오늘도 1달러 어치의 라면을 쇼핑카트에 담으며 나는 마냥 행복한 생각에 빠져든다.
하루에 하나씩 6일을 먹을까?
아니, 하나씩 5일 먹고 마지막날에 곱배기로?
당근과 파를 썰고 계란을 풀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식초를 한두방울 넣어줄까?
아니지, 역시 오리지널 국물맛을 즐기려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말아야...
...

즐거운 상상으로 입끝이 씰룩씰룩하다 절로 벌어지는 헤벌죽한 웃음 끝에 계산대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헤비급 점원과 눈이 마주친다.
가만 바라보다가 보니 괜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 버럭 짜증을 낸다.
아니, 왜 1달러에 일곱개면 일곱개지, 여섯개냐고?
"What did you say?"
녀석이 한걸음 내딛으며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아니, 뭐...You have a good price 라고...
그래도 하루에 한개씩 일곱개 맞춰주면 좋을텐데...쩝.



(2012.04.11)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특별한 유전인자

특별한 유전인자








겨우내 지루하던 비가 개인 오후.
나는 의자에 한껏 기댄 채 책상 위로 다리를 뻗고 그 위에 랩탑 컴퓨터를 올려놓고 글을 쓴다.
마당에선 겨우내 치우지 않았던 낙엽들을 불어내느라 정원사의 송풍기의 소리가 웅웅거리고...

아이들은 먼 발치에서 얼마전 구매한 게임기 위(wii)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전자기기나 컴퓨터 게임에 있어서는, 요즘 아이들이 대개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요령을 파악하고 게임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빠르다.
나도 그런 분야에 있어서는 어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초기 수용자)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평균 보단 처지지 않았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곳곳에는 기계식 오락장이 존재했었다
서울역전 육교 근처나, 종로통 신신백화점 뒷켠, 종로 피마골 등에 제법 큰 오락실들이 산재해 있었다.
방앗간에서나 볼 수 있는 피대줄에 곡선 코스를 그려놓고 그것을 따라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하게 만든 것이나, 지금의 두더지잡기 같은 종류의 게임기, 토굴에서 나타나는 북한괴뢰군을 장난감 기관단총으로 쏘아대고 명중되면 뻘건 불이 켜지던 게임 등 지금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계식 오락기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오락실에 브라운관식 오락기들이 들어서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흑백 브라운관을 이용한 블럭격파니, 팩 맨이니, 인베이더니 하는 것들이 나오다가 1980년대 초반 컬러판 '갤러그' 가 나오면서 이름 자체도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뒤의 맥을 잇는 '제비우스' 나 '테트리스' 등이 등장항 무렵에는 여성 매니아들도 꽤 생기고, 데이트 시간 대부분을 전자오락실에서 보내는 커플도 생겨났다.
또 한가지 큰 변화는 게임기들이 전자오락실을 떠나 세상 밖으로까지 진출, 동네 골목골목 문방구니 구멍가게 옆까지 진출하며 온 동네 꼬맹이들의 코 묻은 동전들을 거둬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입시학원들이 종로2가에 몰려있던 1970년대와 일부 유명학원들이 서울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가던 1980년대 초반까지  나는 학교와 전자오락실과 학원을 삼각형 구도로 하여 맴돌았다.
신발바닥이 헤지는 것 만큼이나 검정색 교복 궁둥이도 반질거렸고, 보이스카웃의 준비! 정신에 투철한 나의 바지주머니엔 항상 동전들이 짤랑거리곤 했다.
분식집 라면 한그릇이 200원이면 전자오락게임기는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오락실과 전자오락실, 그리고 구멍가게 옆에 놓인 내 궁둥이 반쪽만한 의자 위에 앉아서 투자한 나의 시간과 동전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나, 한가지 분명 확실한 것은 그것이 나의 현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상당했다는 것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며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이것이 제 정신이었으면, 아니 합리적인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 했을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나의 본능 저 밑에서 작동하는 게임 유전인자의 핑계를 달면 나의 변명에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그러면 이제 나의 두뇌 속에 굳게 자리한 게임유전인자의 모습을 들여다 볼까?

이야기는 내가 대망의 이천년대 초반 그동안 한참 사용했던 애플의 랩탑 매킨토시 파워북 컴퓨터를 어머니께 드리면서 부터 시작된다.
"야, 내가 이것이 뭐에 필요하냐?"
아, 이거 아무것도 몰라도 되고, 여기 있는 화살표만 사용해서 게임하는데 쓰시라고...
"게임? 난 별로 원하지 않는데...?"
이거 게임하면 치매도 예방되고, 소일거리도 되고, 에 또 거시기니 설라무네...

기실 난 이미 속도전쟁에서 하향길을 걷고 있던, 오래된 그 컴퓨터를 갈아치고 싶던 마음에 그것을 처분할 곳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해서, 가르쳐드린 것이 '컬럼스(Columns)' 라는 게임으로 몇 가지 다른 색깔의 벽돌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내려오면 그것을 조종해서 좌우 또는 상하로 같은 색깔이 맞춰지면 벽돌이 터져 없어지는 게임이었다.

처음엔 조금씩 맛뵈기로만 하시던 어머니는 드디어 일단계를 통과하면서 게임의 묘미에 빠져들기 시작들기 시작하셨다.
뾱.뾱.뾱.뾱...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한밤중에...
뾱.뾱.뾱.뾱...
특별한 일이 있으신 경우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켜고 앉아 계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컬럼스게임의 소리가 집안에 일정한 모습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차츰 어머니에게 게임의 중독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충혈된 눈, 부스스한 머리, 간혹 탄 맛과 함께 밥상에 올라오는 밥, 밤샘의 연속...
이러다가 우리집 안 가득히 컬럼들이 가득 채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우리 동네 골목길 초입엔 안성식품이란 구멍가게가 있었다.
길 건너 성대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 안성식품을 지나면서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붉은 벽돌담장.
담장에 붉은 벽돌들이 규칙적으로 얼기설기 쌓아올려진 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입가엔 빙그레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보들. 저기 저걸 이렇게 움직이면 다 터뜨릴 수 있는데...'
컬럼스증후군! --;;

어느 아침.
격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시고 계셨다.
무슨 일이세요?
"넌 저 컴퓨터나 갖다 버려라! 게임인지 뭔지는 왜 가르켜줘서... 쯧."
원래 혈압이 좀 높으시던 어머니가 게임을 하시는 통에 잠이 부족하고 피로가 쌓여 혈압이 안떨어지는 모습에 아버지께서 화를 내시는 거였다.
아버지 곁으로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수그리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컴퓨터를 집어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려는 나의 등 뒤로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리긴... 아까운 컴퓨터를 버리긴 왜 버려요."
하여간 어머니는 그 이후로 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난 어느날.
안성식품 뒤의 예의 그 붉은 벽돌담장 아래로 인형뽑기기계가 등장했다.
동네 많은 꼬맹이들 사이로 풍족하신 몸매의 할머니가 한 분 자리하셨으니, 바로 우리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워낙 손재주가 좋으신 건 내 익히 알지만 이건 어머니께 어려울 것 같았다.
인형뽑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불패의 상무정신으로 무장하신 어머니, 열심히 오르고 또 오르고 동전을 넣고 또 넣으신 끝에 드디어 거의 게임이라면 천재에 가까운 동네 꼬맹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셨다.

무길도한량이 물 건너 온 다음해, 어머니로부터 날아온 소포엔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인형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손녀들도 주고 동네 아이들도 주고 남은걸 깨끗한 것으로 골라 챙겨 보내주신 거였다.
대단한 집중력이시지?
집사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어머니, 요새도 인형 많이 뽑으세요?
"인형은 왜?"
그거 담배뽑는 기계도 있던데, 아들을 위해서 좀... ^^
"에라, 안뽑는다. 이눔아!"
좀 더 생산적인 뽑긴데 역정은 또 왜 내실까? ^^

여러분도 혹 길을 가다가 인형뽑기 앞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보거든 혹 무길도한량을 아시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윗이빨 하나 빠진 입으로 벙긋 웃으시며 막 뽑아낸 인형 하나 선물로 받을지 모르니까... ^^

우월한 게임인자를 가진 그 할머니께선 요즘은 조금 고전적인 단어찾기게임을 즐기신다.
아들은 아마존닷컴에서 열심히 중고책을 사 보내드리고, 이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치매예방'을 외치시며 가로 세로 마구 섞여있는 영어단어들을 찾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가끔 좀 더 무료해지면 컴퓨터를 켜고 카드게임 솔리테어(Solitaire)도 하시기는 하지만 역시 단어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어머니, 그거 열심히 하면 뭐 나와요?
"재밌잖니... 넌 게임 안하냐?"
아, 저도 요즘 애들과 같이 운동하는 게임해요.
"그래, 거기 날씨 탓에 바깥 운동 못할테니 뭐라도 해서 자꾸 움직여야지."

그렇지.
게임 덕분에 어머닌 치매예방 하고 나는 운동도 하고... 좋구만 뭐.
아무래도 게임에 소모한 시간과 정력을 후회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오히려 난 물려주신 이 특별한 유전인자에 감사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대에서 더 발전된 모습으로 발현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을 테고...
게임하자!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당장 '무슨 게임할까?' 하며 달려든다. ^^

어머니, 건강하세요.
스카이프 너머로 윗이빨 하나 빠진 어머니가 헤- 웃으신다.






(2012.03.15)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제목이 좀 점잖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뭐하다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쓰도록 하자.
점잖지 못하다고 말한 것엔, 생겨먹기가 그리 생겨먹은 놈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생겨먹기로만 따지면 평생 양반집 밥상에 오르지 못할 듯한 홍합 같은 놈들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다.
그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며칠 전 무길도한량은 W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햄버거집.
햄버거 레스토랑이라고 쓰려다 좀 이상해서 햄버거집이라고 썼더니 더 느낌이 퀴퀴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하여간 햄버거집.
소위 메이져급 훼스트푸드인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아닌, 나름 이 근동에서는 제대로 만든 햄버거로 유명한 고급 햄버거집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끝에 웨이터의 팔뚝에 얹혀나온 커다란 접시의 내용물은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주전자 뚜껑만한 햄버거빵 위에 집게손가락만한 두께의 다진 고기 패티를 두 개를 넣고, 그 위에 치즈와 야채와 베이컨과 토마토와 버섯을 차곡차곡 얹은 후, 다시 주전자 뚜껑만한 예의 그 빵을 덮은, 어마어마한 높이의 햄버거...
높이가 한 10 센티미터는 될까?
쓰러지지 말라고 햄버거 한가운데 깊숙히 꽂아 넣은 긴 이쑤시개가 더 비척해보였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밑을 받치고 양쪽 중지, 약지, 무명지, 새끼손가락의 6개의 손가락으로 햄버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남은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끝단을 잡아 눌러주며 입 안으로 전진.
햄버거 먹기를 떡 먹기 만큼이나 좋아하여 나름대로는 햄버거 먹는 방법에 도가 텄다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양쪽으로 도리질 쳐 목근육을 이완시키고, 양손가락을 교대로 뚜두둑 소리를 내도록 접어보고, 허공에 가볍게 뿌리며 손가락을 풀어본다.
저게 한 손에 잡힐까?
마주 앉은 W가 나의 표정을 미소를 띄고 지켜본다.
와우!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한 번 쩍 벌려 햄버거의 높이와 내 입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고개를 갸우뚱 하고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날려본다.
와우!
입을 크게 벌려보았지만 암만 해도 첫 한 입에 베어문다는 것에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W의 눈치를 슬쩍 본다.
넌 그거 어떻게 먹을건데?
"잘라서."
간단한 그의 대답은 들었지만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주변머리에 얹힌 감자튀김부터 깨작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햄버거를 반으로 갈랐다.
나도 얼른 따라서 반으로 가른다.

햄버거의 유래가 독일의 도시 햄버그(함부르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
독일 출신의 W의 와이프 L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 놓는다.
"처음 듣는 소린데...?"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 쏘세지)가 프랑크푸르트(Frankfrut)에서, 빈(Wien: 쏘세지)이 비엔나(Vienna)에서 왔듯이 말이지...
독일 사람도 모르는 일이네...쩝.
"햄버거도 따뜻할 때가 더 맛있으니 어서 먹지?"

L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서 접시에 놓인 햄버거를 들어올린다.
전통적인 공략법 대로 햄버거를 잡아 보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하~ 이거 너무 커서 어떻게 먹어야 될질 모르겠는데...?
실수로 내용물을 질질 흘릴까봐 미리 예방접종을 한자락 너스레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를 굳게 잡아 입으로 우겨우겨 넣어본다.
하지만 끝내 맨 위 뚜껑으로 얹힌 햄버거빵은 입 안으로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만다.

건너다 보니 W는 그 높은 키의 햄버거를 재주껏 포크와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며 먹고 있다.
눈은 지그시 내리깔고...
아차...
울 어머니께서 상추쌈을 먹을 땐 항상 눈을 감고 입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손바닥 위에 상추 한 장을 펼치고 밥을 한숟갈 올리고, 고기와 쌈장과 파무침을 얹고 보면 대부분의 상추쌈은 자신의 한 주먹보다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큰 상추쌈을 한 입에 넣기 위해 두 눈을 부릅 뜨고 아구아구 우겨넣다 보면, 그 얼굴 형상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은 악귀의 얼굴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표정을 보고, 없던 감정도 생겨날 수도 있고...
그러니 상추쌈을 먹을 때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으라는 말씀.

요즘 삼겹살이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가 왜 그렇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나 보다.
그 사이 좋던 사람들도 삼겹살 회식 한 번 하고 나면 사이가 더 벌어지는 이유가...
마주보고 앉아 서로 열심히 눈을 부라려대니 안나빠질래야 안나빠질 수가 없겠다. ^^
이혼율도 높다는데, 특히 부부 사이에 삼겹살 마주 앉아 먹지 말자.
아니면 삼겹살을 같이 먹어도 상추쌈은 해서 먹지를 말던지...

옆길로 빠졌나? ^^
여하간 한국에선 상추쌈, 미국에선 햄버거... 이런 음식들은 참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 하겠다.
서로 눈 치켜 뜨고 먹는 음식들을 우리 사회를 위해서 퇴출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일까?
좋은 맘으로 같이 음식 먹으러 와서 나갈 때는 서로 삐져서 나가게 하는...

W는 여전히 눈을 지긋이 내려깔고 예의 그 햄버거를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고 포크를 이용해 재근재근 먹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양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접시 위로 내용물들을 뚝뚝 흘려가며 먹고 있다.
눈 깔아. 눈 깔아...
눈 부릅 뜬 거 이미 봤을거야.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눈 깔아, 눈깔아...

통재로다! 오늘 세상에 점잖지 못한 것들이 무길도한량의 품위를 손상시키는구나... 쩝.






(2012.02.15)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그믐달 뜬 새벽


그믐달 뜬 새벽





새벽녘 푸른 어스름 자락 위로 연노랑 하루가 갓 밝아오는데,
까맣게 키가 큰 나무 왼쪽 어깨 위엔 그믐달 하나 간들 걸려있다.
참 예쁘기도 하다.
그 휘어진 곡선의 단아함이며 금가락지처럼 빛나는 색깔하며...
황진이의 눈썹이 저러 하였을까? ^^

옛적 중국 주나라에선 여인들이 본래의 눈썹을 제거하고 검푸른색으로 눈썹을 다시 그려넣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여기서 누에나방(蛾)의 더듬이 모양의 눈썹(眉)을 최고로 쳤다.
여기서부터 아미(蛾眉)라는 단어가 미인(美人)의 상징어가 되었다.
누에나방의 더듬이를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초승달 같은 모습(아래 사진 참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인=아미=초승달 눈썹', 이런 공식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사진출처: http://www.123rere.com/File/Board/200407)

무길도한량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본 것이야 초승달이 아닌 그믐달이 틀림없지만, 그 예쁘기가 초승이니 그믐이니 따질 것도 없는 것이라서 이야기를 내어봤다.
뭐, 어차피 초승달 뒤집으면 그믐달 아니겠는가? ^^
여하간 그 달이 한 남정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아름다웠다는 얘기.

아름다운 달을 보며 이런 감상에 젖는 이가 세상에 어디 무길도한량 뿐이랴?
유명한 소설가 나도향은 '그믐달' 이란 제목으로 '조선문단' 이란 잡지에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후략)"

과연 그는 당대의 문장가이다.
무길도한량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다 표현해버렸으니...
아, 어찌 하늘은 무길도한량을 세상에 내고 또 나도향을 내었단 말인가? --;;;
같은 하늘은 아니라고...?
에헴, 여하간, 좌우지당간에 그의 표현에 삐침 하나 더하고 뺄 곳이 없다.

얼마전 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나타난 달의 모습을 보고 그림의 제작시기를 밝혀낸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독특하게 표현된 달의 모습을 보고 천문학자는 월식 때일거라는 추측 아래 중요 천문현상까지 기록한 '승정원일기' 와 대조, 정확한 배경날짜를 알아낸 것이다.
한편, 우리의 그믐달은 그의 또 다른 그림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에 등장한다.


신윤복,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

보시다시피, 그믐달은 동산 위에 깔린 푸른 어스름 위로 떠올라 있고 밤 사이 기생과 거나하게 마시던 한량은 야금(夜禁: 야간통행금지)를 무릅쓰고(冒) 길을 나서는(行) 모습이다.
밤 열시(2경)쯤에 통금을 알리는 인정(人定)을 치고 새벽 4시경 (5경)에 파루(罷漏)를 하였으며 위반자는 시간 때에 따라 곤장 10~30대의 형을 받았으니 '무릅쓴다'는 표현이 적절도 하겠다.
왼쪽엔, 궁인(宮人) 중 홍의를 입은 사람은 야금위반 곤장을 면케 해주었다는 규칙이 있었던 바, 술 취한 한량과 기생의 2차 나들이에 편의를 봐주어 한량이 감사의 표시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저 달은 알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
아마도 저 한량의 부인은 지금쯤 빨래방망이나 다듬이 방망이 하나 곧추 세우고 안방문 앞에 좌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안으로 드시지요. 나으리."
"네, 부인."
퍽! ^^

또 가슴이 숨뿡 닳아버린 애절한 그믐달을 보며 시인 천양희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믐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어머니...
그 어머니의 등에 엎히어 가면서 아이는 달을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엄마의 걸음이 빨라지면 달도 빨리 쫓아오고, 엄마의 걸음이 늦어지면 달도 천천히 쫓아오고...
아이는 자신의 갈 길을 가지 않고 자꾸만 따라오는 달을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달을 업고 밤길을 갔다.




그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달은 얼음칼처럼 날카로와졌다가도 호박처럼 둥그래졌다간 다시 스러지면서 잊혀질만 하면 또 다시 소생하길 반복한다.

아이는 지금 달보다 육펜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달은 여전히 보이건 보이지 않건 언제나 저만치의 자리에서 아이를 따라온다.
길바닥에 떨어진 육펜스를 찾으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이제 다시 달을 바라볼 것인가?
낡고 깃털이 다 빠져버린 날개를 펼치고 달을 향해 휘적휘적 어깨짓을 할 것인가?
달이 저만치서 내려본다.

예쁜 그믐달이 뜬 새벽이다.

(2011.08.26)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Farewell to Yahoo!


 
Farewell to Yahoo!








2007년 9월 30일 이래, 야후 블로그에 "심심하면 카메라 뜯어보기" 라는 블로그 타이틀로 포스팅을 시작한지 벌써 거의 4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분들과 소중한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무길도한량은 오늘부로 야후를 떠나 새로운 곳에 초막을 짓고자 합니다.
사실 야후의 블로그 업그레이드 이후 그동안 여러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들로 포스팅에 불편을 겪어, 야후 블로그측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야후측으로서도 아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임을 밝혀와 무길도한량은 심사숙고 끝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포스팅을 보시면 아마도 그 구체적인 문제점들의 일부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떠나는 마당에 굳이 야후를 탓하기는 싫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히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무길도한량은 또한 야후에 감사를 드립니다.
4년여의 시간 동안 약 500편에 달하는 보잘것 없는 나의 글들의 거처를 제공하였고, 또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저에게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 멋지고 사용하기 편리한 야후 블로그로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무길도한량은 구X로 자리를 옮겨 '무길도한량의 고물창고' 라는 새로운 문패를 답니다.
그곳은 야후처럼 멋지진 않아도 큰 불편없는 블로그 포스팅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히 감사드리오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길도한량 배상.

(2011.07.25)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의 엉터리 같은 스팸체크 관계로 글이 포스팅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 글에 스팸성이 있다고 하네요. ^^

죄송합니다. (무길도한량 올림)
(2009.08.12)


--- 3일 후

다행히 다시 정상적으로 되는 모양입니다.

(저도 스팸을 좋아하지 않응께... 
단, 통조림 스팸은 좋아하지요.^^)

성원 보내주신 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꾸벅)
항상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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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라의 여인



스톨라의 여인








더위도 식힐 겸 아픈 허리 운동도 할겸 아이들과 목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따땃한 8월 아침 햇살이 눈을 제법 자극하지만, 푸른 숲에 둘러싸인 목장을 보면서 마음이 이내 가벼워졌다.
멀리서 말들이 코파람 부는 소리, 나보다 더 큰 송아지가 엄마 찾는 소리...
학창시절 배웠던 '목장길 따라'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내친 김에 2절도 한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람 고백하기 좋았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랑 고백하기 좋았네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아, 더 멋진 3절도 있는데...
아이들의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진도를 못나가게 한다.

아빠, 아빠,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가 무슨 뜻이야? 
???

아- 아이들은 왜 어른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걸까?
두런 두런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대답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야아~, 저기 양들 좀 봐라~
화제를 얼른 바꾸어 일단 긴급위기상황을 모면해낸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부랴부랴 컴퓨터부터 켜고 스톨라 품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한다.
아빠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는가...
그러나 정확한 답은 찾을 길이 없고, 비스므레한 조각자료들만 찾아낼 수 있다. --;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자료를 잘 찾는다는데, 아무래도 난 아닌가 보다.

일단 슬로바키아 북쪽에 있는 지명에서 Stola 를 찾아냈다. (OK, 요건 쓸만하다)
이 노래가 보헤미아 민요이고 보헤미안 지방이 그 근처에 있으니 일단 stola 는 보헤미안 지방의 한 고장이라고 하자.
이 지방엔 집시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기존 사회의 관습과 질서에 구애되지 않는, 좋은 말로는 자유분방하게, 나쁜 말로는 방랑천리 떠돌아 다니는 습성이 있어 이것이 보헤미안의 뜻처럼 쓰이기도 한다.

다음, poompa 는 정말 찾기가 어려웠는데...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떠돌아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음악해설 중 poompa 를 여성성기를 가르키는 비속어로 쓰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여자를 지칭하는 대(代)명사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stola poompa 는 "스톨라에 사는 여인" 이란 뜻일 수도 있겠고 (마치 '아를르의 여인' 에서 보듯), 끝에 짧게 poom 한 것은 poompa의 애칭으로 poom! 
...안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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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에, 어불성설에,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쪼가리 지식으로 뭔가 그럴싸 하게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몰라 하는 것보단, 그래도 뭔가 끄나풀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인 효과가 더 좋은지 나쁜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3절을 읊어보자.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응 응 응

마지막 여인을 한글로 더 짧게 줄이니 별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 되는 관계로 좀 더 애교스런 다른 말로 바꿨다. 

수 많은 외국 민요들을 채보하고 번역하여 우리들의 즐거운 캠프송 포크송으로 만들어 보급하신, 싱어롱 프로그램의 대가 전석환님께여쭤보아야 할 문제인듯 하다.
'조개껍질 묶어', '목장길 따라', '석별의 정', '사모하는 마음', '그리운 고향', '꼬부랑할머니가' 등등건전가요집에 수록된 수 많은 노래들이 그 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니...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척 나타나셔서 모든 사람을 건전한 노래를 통해 하나로 만들어주시던 전석환님이야말로 통기타의 절대원조라 할 수 있는 분이다.

목장길 따라 산책한 후, 아이들은 가벼운 샤워를 하고 몸을 식히려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릇에 담고있다.
적당히 끼어들어가 스톨라 품파 이야기를 해주어야 되겠는데... 생각하고 틈을 엿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그런 것이 있었는지... 하는 눈치다.
그들은 스톨라의 여인을 목장길에 두고 왔나보다.

에이, 나도 더운데...
먼저 퍼놓은 아이스크림을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당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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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

수박냉차와 딱성냥

수박냉차와 딱성냥





   
         

벌써 밤하늘엔 별들이 한가득 한데 아빤 아직도 오시질 않는다.
평상 한가운데 누워 하나 둘 별을 세던 아랫집 진이는 이젠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포대기에 쌓인 채로 칭얼거리던 동생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어머니 등 뒤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있다.
진이가 대(大)자로 펼쳐누운 평상의 주변을 돌아가며 한귀퉁이씩을 차지한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 소리는 도란도란 들려오고 밤의 한기가 내리는지 서늘해진 저녁 공기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의 따뜻한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엄마,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줘...
엄마가 섬그늘에?
불쑥 꺼내는 소년의 말에 어머니가 되물으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하는거 있잖아.
으응, 그래.
어머니는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저 아래 동네에선 신작로를 내느라 우리 동네 밑에 자리한 바위산을 깨내는 다이너마이트가 수시로 뻥! 뻥! 터지고, 바위가 튀지 않도록 덮은 가마니들은 하늘 높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저러다간 우리 동네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머닌 우리가 그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하루에도 몇차례씩 주의를 주셨다.

때 이른 더위는 어린이날이 지나기 무섭게 반팔이며 양산이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어느날은 수박냉차 아저씨까지 낑낑거리며 짐자전차를 끌고 우리 동네까지 올라왔다.
그가 올라올 때 자전거 뒤켠으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가마니들이 날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졌다.

덥기로는 그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더운 것처럼 보여서, 저렇게 땀을 흘리다간 싣고 온 냉차를 아저씨가 혼자 다 마셔도 부족할 듯 싶었다.
그는 공터 옆 처마 밑 그늘에 털썩 주저앉더니 챙 좁은 밀짚모자를 뒤로 조금 제끼고, 이상한 푸른색 무늬들이 어지럽도록 마구 새겨진 셔츠의 윗단추 두개를 풀었다.
그리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한쪽 끝을 잡고 두어번 탁탁 털어내 손수건을 넓게 펼친 후 얼굴이며 목에 난 땀을 마구 문지른 후 수건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목도리 마냥 뒷목에 걸쳤다.

그가 커다란 수박 한덩이와 얼음이 담긴 냉차통에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를 끌어내려 유리컵에 넣자 유리컵엔 금새 갈색 액체가 가득 차올랐다.
냉차통을 향해 빙 둘러선 아이들을 향해 건배를 하듯 유리컵을 들어보이더니 냉차아저씨는 단숨에 그것을 자신의 긴 목 속으로 털어넣었다.
캬아~, 시원타!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어이 시원해, 어이 시원해 하는 소리를 연방 내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셔츠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가치를 입에 물은 후 딱성냥을 구두굽에 그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이자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탄성.

다시 한 번 입가에 씨익 웃음을 새긴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있게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가 길게 내뱉으며 머리에 얹힌 밀짚모자를 내려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겠지?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한 컵에 10원이다.
아이들은 10원이라는 액수에 그만 맥이 탁 풀리는 눈치였다.
이 동네 아이들에게 10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이 아저씨는 모르는 것일까?
10원이면 삼립 크림빵이 하난데...
빠르게 냉랭하게 식어가는 아이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냉차아저씨가 민첩성을 발휘한다.
근데! 이 아저씨가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선 5원에도 줄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입가엔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담배를 한 번 길게 빨아 하늘에 대고 동그라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야아....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지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멋지지?
예!
좋다. 그럼 이 아저씨가 너희들을 위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마.
아이들은 호기심에 부풀어 냉차아저씨의 입으로 모든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아... 냉차 한 잔에 5원에다가 아저씨가 이 딱성냥 하나씩 선물로 주마. 이 딱성냥 있으면 너네 아버지들도 이 아저씨처럼 동그라미 만들 수 있어. 심심할 때 아버지한테 동그라미 만들어달라 그래.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것만도 충분히 신기한데, 동그라미까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의견교환을 하느라 조금 부산해진다.

그 중 나이든 4학년 아이가 손을 들며 질문을 한다.
저는요, 얼음 먹으면 배 아파서 안되는데요?
맞습니다. 얘는 설사쟁이래요.
눈치없이 옆에 선 녀석이 끼어든다.
냉차아저씨는 안됐다는 듯이 혀를 두어번 끌끌 차더니 어쩐다 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다가, 두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낸다.
그래, 아저씨가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눈들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가선다.
아저씨가 말야... 냉차 싫은 사람은 딱성냥 3개를 10원에 주마. 어떠냐?
아이들은 순식간에 각자 집으로 사방팔방 흩어져 간다.

햇볕 내리쬐는 공터엔 냉차아저씨와 소년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년은 햇볕에 눈이 부셔 인상을 쓰며 냉차통을 올려다 보고있다.
너는 왜 안가냐?
아저씨가 물었다.
전 돈이 없는데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엄마도 돈이 없는데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아저씨는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어낸다.
순간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마을 전체가 몸서리를 쳤다.

옛다, 이거 한 잔 마셔라.
아저씬 유리컵에 차디찬 냉차를 가득 부어 소년에게 내밀었다.
아녜요... 안되요. 우리 엄마가 얻어먹는건 거지래요.
소년이 도리질을 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냐, 임마.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인거야. 어서 마셔.
벌써 몇몇 녀석들이 돈을 가지고 공터로 달려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냉차아저씨에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단숨에 냉차를 들이마셨다.
커- 시원한지고... ^^

그날 딱성냥을 산 녀석들 중의 몇몇은 쓸데없이 돈 썼다고 등짝을 후려맞았다고도 하고, 몇몇 녀석은 냉차 먹고 배탈이 났다고도 한다.
냉차도 한 잔 얻어마시고 딱성냥까지 하나 얻은 소년은 밤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를 뵙지 못한 관계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부엌에 몰래 숨겨 놓았다.
어느날 밤 장난끼가 발동한 소년은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와 함께 불장난을 하다가 농 위에 쌓은 이불 위로 늘어진 담요에 불이 옮겨붙어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하여 한동안 그 동네엔 등짝에 손바닥 문신한 녀석들과 종아리에 가로줄 무늬 새긴 녀석들이 공터에 때 이른 모기들처럼 득시글 거렸다고 한다.
바위벽을 깨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폭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2011.06.14)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우리가 어렸을 때 뜻도 모르고 쓰던 단어들이다. (물론 바보는 예외지만... ^^)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맘 편한 한량이란 작자가 하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고 이해하시길... ^^

바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천치: 선천적으로 정신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멍텅구리 : 멍청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으버리: 사전에 안나오나 부산지방에선 '어바리' 라고 쓴다고 하여, 다시 어바리를 찾아봄. 발견!
어바리: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 (하여, 으버리는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인 것으로 추정됨)
쪼다: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쪼다에 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예전에 어느 코미디언이 벤허 영화가 히트 했을 때, 주인공 쥬다 벤허 (Judah Ben-Hur) 가 하도 바보 같고 천치 같고 멍텅구리 같이 답답했던 관계로 "에이, 이 쥬다 같은 녀석아" 하고 놀렸다는데서 '쪼다' 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거야 말로 100% 믿거나 말거나... ^^

여하튼, 무길도한량은 왜 이런 어바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앉았을까?
본래의 쓰임새와 달리, 사실은 이것들이 우리 형제들 간에 통용되던 '욕'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성적인 욕설이나 동물에 빗댄 말들이 우리 집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안쓰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성인들은... ^^) 우리 예삿것들은 화가 나고 폭발해야만 할 때 무언가 대용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쓸 상황이 없다면 또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이란 것이 적당히 부딪히며 살아야 잘 산다고 하지들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놀림말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화가 조금 나면, "바보!"
그거보다 조금 더 나면, "바보천치!"
그거보다도 또 눈꼽 만큼이라도 더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
또 그거보다 더 많이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의 다섯 단계로 세기를 조절하며 표현하기로 우린 약속했다.

누구는 어렸을 때부터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나쁜 XX" 하고 욕하는 것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다섯 단어의 조합을 어느 만큼 빨리 구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고 연구했다.
"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에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이것이 한 단어처럼 수려한 모습으로 유창하게 흘러나왔을 때야 그것이 '잘 사용된' 모습의 욕이 되었지, 천천히 '이런 바보, 천치, 멍텅구리...' 하고 주워 섬긴다면 그건 김이 싹 빠져버려 더 이상 아무 느낌도 매력도 없는 칠성사이다 슈바~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본론으로 가서...
어릴 적 나의 동생들은 순하고 착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사악한 오빠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며 살아왔다.
시집을 가고 아이들을 키우며 이젠 사십이 넘은 지금에도 그러하리 라고 생각은 않지만, 옛날엔 '에구, 이 미련아~' 하며 주먹으로 살짝 알밤만 주어도 3초 이내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구는 여린 녀석들이었다.
오빠의 말을 잘 듣고 같이 잘 놀고 오빠의 잘못에도 부모님께 고자질하지 않고, 혼자 벽 보고 앉아 눈물로 앙금을 녹여내던 의리의 돌쇠들이었다.
(참조: 노변한담 중 '오빠란...'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422 )

오늘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상급반이었던 무길도한량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에헴)
방구석에 들어앉아 몇날 몇일을 프라모델을 만드느라 처박혀 있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노올자~' 하는 소리만 들으면 금새 궁뎅이가 들썩들썩 하여, 참아내질 못하고 곧바로 달려나가야만 했다.
그날도 빠알간 가을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부리나케 신발을 꺾어 신으며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며 현관을 튀어나갈 찰나,
"잠깐 나 좀 보자." --

어머닌 막내를 데리고 시장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무길도한량이 동생 K를 봐주기를 원하셨다.
"어, 축구 가야 하는데..."
그러자 어머닌 무길도한량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시며,
"학교 앞 한씨문방구에서 얘랑 같이 아톰바도 하나씩 먹고... 같이 좀 데려가라."
아톰바!
그렇지 않아도 쓸쓸해져가는 가을바람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아톰바를 거부할 수 있는 자, 게 누가 있나?
(아톰바가 무엇이냐? 삼립인지 샤니인지에서 나온 어묵꼬치바로 호빵통처럼 둥그런 통에서 덥혀 팔았던... 요즘 핫바의 기원이라고나 할까?)

무길도한량은 동생 K를 학교 동문 앞 한씨문방구로 데리고 들어갔다.
먼저 아톰바 하나를 K에게 내밀며 그는 물었다.
"너 추운데 나가서 스탠드에 앉아 축구 볼래? 아니면 따뜻한 여기서 아톰바 먹으면서 기다릴래?"
"여기 있을께."
"자, 그럼 시간이 좀 걸릴거니까 이 오빠 것도 네가 먹어."
"오빤 안먹어?"
"암만 해도 여기에서 기다리는 네가 먹는게 나을것 같다."
"빨리 와야돼."
그는 양손에 아톰바를 든 동생을 뒤로 하고 운동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야호! 짐 덜었다!) ^^

모처럼 인원이 꽉 차 축구는 제대로 재미가 났다.
1대0 이 되고, 1대1 이 되고, 1대2 가 되고, 또 2대2 가 되고... 야호~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국기강하식에 걸려 잠시 애국가가 울리는 동안 꼼짝없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태극기가 내려지는 것을 본 후, 그들은 축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교문을 잠그기 위해 소사아저씨들이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다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저씨들이 휘휘 모는대로 남문을 향하여 아이들과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기며 걸어나갔다.

아이들과 즐거웠던 시간을 되새기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집 앞에 도착한 것은 벌써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땀 젓은 웃도리를 마루에 내려놓으려 할 때 그는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녀왔냐?"
아차!
그는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다시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아차차!

한씨문방구 아줌마의 눈꼬리는 이미 양옆으로 한 15도씩은 치켜 올라가 있었다.
그 옆에서 동생 K는 눈물 콧물을 비오듯 쏟아내며 잉-잉- 울고 있고...
"어떻게 집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를 이렇게 혼자 놔두니? 문도 못닫고 이게 뭐람?"
아줌마가 하는 소리가 앵앵거리며 그의 귀를 때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깜빡 까먹었다.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날 까먹을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는 슬며시 동생의 코트자락을 들어올려서 일단 콧물을 닦아준다.
"미안하다니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긴 골목길을 따라 벌써 보안등이 하나씩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서러운 기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고만 울어라."
이마 옆으로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그는 동생을 달래려 애를 썼다.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엄마한테 다 일러줄거야...잉잉잉~"
"아, 글쎄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골목 초입의 훈이네 집에서 된장찌게 끓이는 냄새가 온동네를 진동하며 풍겨나왔다.
그의 뱃속에서도 동생의 뱃속에서도 합창하듯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났다.
"잉잉잉~ 배두 고파... 잉잉잉~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래... 빨리 가서 우리도 밥 먹자. 제발 좀 그만 울어라잉~"
어둠 속으로 낯 익은 하늘색 대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동생의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오늘도 또 긴긴 밤이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그를 업습해왔다.


(2011.05.10)

가벼운 양식

가벼운 양식






           
정동 MBC에서 덕수궁쪽으로 돌아나가는 그 언저리엔 오래된 경양식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따리아노' 라 하여, 국적 불분명한 경양식집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던 당시에 이탈리안 스타일의 경양식이라고 꼭 꼬집어 표방한 레스토랑이었다.
실내 장식이나 웨이츄레스들의 복장에선 이탈리아의 향기가 났었던 듯 하지만, 그렇다고 메뉴 자체가 100% 이탈리안식은 아니었던... 하지만 그 분위기와 맛이 상당히 괜찮아서 각종 행사치레 하는 사람들이 잘 찾는, 그런 곳이 있었다.
야채스프와 따뜻한 모닝빵이 인상 깊었었다.

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나와 대한문을 지나고 다시 반대편 돌담길로 들어서면 막다른 길 끝으로 영국대사관이 보이는 골목 안으로 세실극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 '세실레스토랑' 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재야 인사들이 모여 독재에 항거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도 갖고 하던 곳으로 TV 뉴스에 자주 나오던, 그런 쪽으로 유명한 경양식집이었다.
젊은 날에 드나들 때에도 항상 뒷통수로 쏟아지는 감시의 눈길을 느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아내와 선 본 날 점심식사를 하러 가 스파게티와 세실정식을 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가격 대비 내용이 충실한 편이었고...

영등포 역전엔 신세계백화점 맞은편으로 제법 큰 '해바라기' 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의 특색은 대부분의 경양식집이 소규모라 음악을 주로 카운터에 있는 오디오를 통해 틀어주었던 것과는 달리, 중앙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있어서 30분 마다 생생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던 곳이었다.
생음악에 감동 먹은 무길도한량이 촌스럽게도 쪽지에 신청곡을 써서 피아니스트에게 건네주려다, 옆에서 지키고 있던 험상궂은 덩치에 의해 눈흘김을 당해 쫓겨날 뻔 했던 곳이었는데 실내장식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개방성이 특징이었고, 거리에선 볼 수 없었던 초미니스커트의 웨이츄레스들이 실내장식을 대신하던 곳.
가장 싼 돈까스정식은 혼자 먹기엔 벅찰 정도로 풍족한 모습이었다.

보신각 뒷쪽으로는 꽤 많은 경양식집들이 빌딩 지하마다 위치하고 있었는데, 수 많은 대학가 미팅들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또 수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들이 깨어져나간 역사적인 지역으로 '반줄', '일과 이분의 일', '오감도' 등등의 경양식들이 유명했다.
가수 현인, 가수 전영의 탱고 '서울야곡' 의 가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2절에 보면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이곳 경양식집들은 맛 보다는 만남의 장소로서의 분위기 창출에 충실했던 면이 있었다.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노래를 안듣고 그냥 갈 수는 없겠다.
http://www.youtube.com/watch?v=2G8j1gN6JQU (클릭!)

지금이야 곳곳에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들이 사방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양식집이란게 그리 많지 않아서 '너, 또랑에 가서 썰어봤어?' 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낯선 곳 중의 하나였고, 레스토랑들도 정통을 표방하기엔 좀 미안했던지 '가벼운' 이란 표현을 붙여 경양식이라고 부르던 것이 현실이었다.
중요한 만남을 갖는데, 어디 가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삼겹살 구워 쌈 싸먹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국밥 한 그릇씩 놓고 마주 앉거나 입 가장자리에 진한 짜장 묻혀가면서 이야기 하기도 그런 경우들에는 경양식집이 신발 안 벗고 간편히 의자에 앉아 폼 잡으며 먹기에 제 격이라서 그런지 제법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래도 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여전히 가격은 높아, 제법 용돈을 많이 받던 무길도한량도 맘 먹고 한 번 가서 칼질하고 오면 일주일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음식들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걸 어찌하랴...

그곳의 음식이 어쨌었길래...?
아, 그거야 경양식집에 가서 한 번 썰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식도락이 있지 않았겠남?
우선, 거기에서 주로 파는 메뉴를 주욱 한 번 나열해보자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그리고 스파게티가 있었고, 칼질하는 종류로는 돈까스, 함박스텍, 비후스텍, 비후까스 그리고 정식 등이 있었고, 안주론 멕시칸샐러드, 과일샐러드 등등...
아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맛이 심히 그리우나 풀 길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

대부분의 경양식집들은 빌딩 지하나 2층에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좀 어두침침한 분위기에서 테이블마다 개별 조명이 있고 여기저기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가 당시엔 터부처럼 느껴지던 여자들의 흡연인구 증가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조용한 음악은 흐르고 여기저기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 나즈막하게 도란도란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단정히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는 통가죽으로 커버를 씌운 메뉴판과 따뜻한 보리차를 유리잔에 담아 내어온다.
무엇을 먹어볼까나...
서너 테이블 건너에 앉은 여자가 후우 하며 테이블 위로 드리워진 백열전등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어올린다.

이 집의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위해서는 정식을 시키는 것이 좋다.
정식엔 돈까스와 생선까스와 함박스텍이 조금씩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식하고 OB 라거 하나 주세요.
스프는 야채스프 하고 크림스프가 있습니다.
크림스프로 주시고요.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밥으로 주세요 한다.
네, 잠시 후에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웨이터는 빼앗듯 메뉴판을 거둬가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우리 식구가 처음 경양식집으로 고기를 썰러 갔던 날,
처음 먹어본 크림스프의 맛은 천상의 음식처럼 우리의 뇌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언제나 아껴먹기를 좋아하고, 항상 좋아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먹는 막내 동생은 한 입 먹은 크림스프가 너무도 맛이 있어서 그것을 제일 나중에 먹고자 남겨두었다.
웨이터가 메인코스 음식를 가지고 와 배열하면서 스프그릇과 숟가락들을 거둬 가버리자 막내 동생은 빼앗긴 자신의 몫이 안타까워 울어버렸다.
한그릇쯤 다시 줄 수도 있었을텐데, 비정한 웨이터는 남은 스프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스프는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지금도 그 크림스프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웨이터는 나이프와 포크와 숟가락을 차례로 배열하고 샐러드접시와 크림스프와 맥주를 내려놓았다.
고깃부스러기가 점점이 박힌 누리끼한 크림스프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얄팍한 접시 위에 살짝 깔려 나온 스프의 양은 한 네 스푼이나 될까?
좀 넉넉한 마음으로 주었으면 좋았을걸...
올리버 트위스트도 아니고 스프를 더 달라 그럴 수도 없고...쯧.
야채샐러드 위엔 케챺과 마요네즈를 적당히 꿀과 함께 섞은 소스가 올려져 있어 포크로 두어번 저어 떠먹으면 그 맛도 제법 괜찮았다.
맥주로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니 벌써 배 저 밑에서 빨리 음식 들여보내라고 신호를 보낸다.

정식 접시는 제법 큼지막한 것이 보기에 기분이 좋았다.
바삭하게 튀겨낸 얇은 돈까스가 왼편에, 역시 마찬가지로 잘 튀겨낸 생선까스가 중앙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함박스텍 조각이 두어개 양송이버섯을 이고 제일 오른쪽으로 자리헀다.
접시 윗켠으론 삶은 당근 두어쪽, 삶은 완두콩과 옥수수알이 약간씩 그리고 마카로니가 서너쪽 차례대로 담겨있다.
같이 나온 밥 접시엔 하얀 쌀밥이 아까의 크림스프 마냥 납작하게 깔려있고 간간히 밥 위에 까만 깨를 몇 뿌려놓았다.
깔끔하게 자른 노란 단무지 몇 조각도 작은 접시에 별도로 담겨 나왔다.

먼저 정식 접시에 얹혀나온 가니쉬 위에 토마토케챺을 뿌려주시고...
아삭하는 소리를 내는 돈까스의 왼쪽을 포크로 잡고 칼로 오른쪽 부분을 먹을 만큼 잘라낼 때 돈까스는 감동의 소리를 내며 빵가루를 떨구었다.
데미그라스 소스도 딱 필요한 양만큼만 뿌려져 있었다.
돈까스를 받아들이는 입 속은 더더욱 가관으로 완전 흥분의 도가니다.
Give me more, Give me more...
한조각을 더 잘라내어 먹을 때쯤엔 나의 입의 양옆은 위로 약 10도 가량 올라갔으리라.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하며 입가심을 한다.

다음은 생선까스의 차례이다.
난형난제...
잘 튀겨낸 생선까스를 먹어보기 전에 돈까스의 맛있음을 논하지 말라!
고, 지금쯤 주방장은 숨어서 나의 모습을 훔쳐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선까스 위를 가로지르며 얹혀져 있는 타르타르소스가 고소함을 더했다.
또 한 번 감동하는 나는 맥주컵을 들어 안보이는 주방장을 위하여 건배를 보낸다.
나의 간 주변에 생기는 지방덩어리를 지금 이 순간엔 생각하지 말기로 하면서...

돈까스와 생선까스를 끝낼 즈음엔 이미 나의 만족도는 100% 가까이로 올라가고 있다.
정식을 안시키고 함박스텍을 시켰으면 소모양의 나무판 위에 철판이 얹혀있는 함박스텍 전용용기에 담겨 나왔을까?
소스와 함께 자글자글 끓는 함박스텍 위에 어떤 집에서는 치즈 한조각을 올려주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달걀반숙도 올려주기도 하는데...
따뜻한 모닝롤을 안시키고 밥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함박스텍과 함께 먹기 위함이었다.
돈까스와 치킨까스가 비워준 자리에 밥을 솔솔 옮겨놓고 (누구 안보지? ^^) 함박스텍 소스에 밥을 비벼가면서... 나이프도 필요없다.
부드럽게 잘 익은 함박스텍은 포크 옆구리로 살짝만 눌러줘도 알아서 잘 잘라지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풍노도와 같이 함박스텍을 즐겨주시고 나면 기다리고 있던 맥주의 마지막 잔으로 소화를 시켜준다.
때 맞춰 나오는 디저트로 커피를 받아들면, 삼천원짜리 정식이 어찌 그리 푸짐하게 느껴지는지... ^^
경양식집 특유의 쓰디쓴 원두커피에 과감하게 프림 둘, 설탕 둘 넣고 휘휘 저어주면 그 향에 취해 저절로 담배 한 대를 당겨 물게 되어있다.
나도 서너 자리 건너편의 여자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식탁 위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속으로 푸우 뿜어보낸다.
먹는 것은 좋은 것이여...

그나저나 일주일치 용돈이 날라갔으니 내일부턴 도시락 싸갖고 다녀야겠군.
교통비나 제대로 남았는지 몰라...?
하루종일 방 구석에 콱 처박혀 지내면 오마니가 돈 떨어진 거 눈치채시고 지원해주지 않으실까?
이런 주말에 미팅건수 들어오면 골치 아픈데...
확실히 경양식은 내 형편에 좀 무리지? --;;
그래도 잘 먹고나니 졸음까지 밀려오니까 기분은 좋구먼... ^^

데모가 시작되었는지 함성소리와 함께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휴교령이라도 떨어질라나...?



















(2011.04.22)

인사유명



인사유명(人死留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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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감기에 골골거리며 심심풀이 인터넷 써핑을 하다가 야후에서 나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에 나의 이름도수록되어 있을까?
똑같은 이름의 다른 '나'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이름을 적고 엔터키를 누르자, 별로 흔하지 않은 내 이름으로도 검색 결과가 무려139,000건이나 나타났다.
성악가, 목사, 사진가, 기업체 사장, 저널리스트...
ㅎㅎ... 진짜의 '나'는 없네...?

386세대로 태어나 486으로 진급한, 베이비부머의 마지막 해 태생, 대학 본고사 폐지 후 첫 입학년생,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찌어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한량스런 삶을 살아가는 40대 후반의 내 얼굴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엔 존재하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 하고, 인사유명(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세상, 부질 없이 이름 석 자 남긴들 또 뭐하겠는가?
...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럼 부진부진 사는 이유는 또 뭔데?
아-,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시작한 생각의 실타래 풀기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마침내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걸 보면 무길도한량이 죽을 때가 가까웠나?
하는 곳으로 의문은 귀착되더라...
'킬리만자로의 표범' 에서의 조용필도 노래했다.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라고.

허나, 이제까지 세상에 이름 석자 떡 하니 새겨둘 짓을 한 적이 없는 무길도한량으로서는,지금에 와서 무엇을 해서 그 자랑스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나 생각하니 앞이 또 캄캄해지기 시작하더라... ^^
그럼, 억지로 이름을 남기는 걸 생각해볼까나?
아, 뭐 그렇다고 해서 어디어디에 폭탄 숨겨놨음메... 하고 경찰서에 전화하고 신문과 TV에 나오고 하는, 그런 식은 피하고 싶다.
그래도 무길도한량의 체면과 위신과 명예와 가오다시가 있질 않겠는가? ^^

위대하시고 영명하신 김 아무개는 솔잎을 취하여 이팝을 만드시고...
또 그 아무개는 가랑잎을 타고 비와 천둥을 몰고 오고... ^^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위와 같은 거짓말을 책에다 담을 필요도 없이 그저 웹에 올리기만 하면 되니, 거짓말로 유명해지기가 훨씬 쉬어진 듯 하다.
옳다구나!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름 석자 남기기란 식은 죽 먹기인 듯 하다.
그저 아무도 기록한 적이 없는 것들을 인터넷에 올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

18세기 샌드위치의 백작 (Earl of Sandwich) John Montagu 는 카드놀이를 워낙 좋아하여서, 해질 무렵카드를 시작하면 저녁식사를 건너뛰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정 배가 고파지면, 하인에게
"이보게, 두 빵조각 사이에 고기 좀 넣어서 가져오게나."
그러면 출출함을 느끼는 옆에 사람들도,
"The same as Sandwich." (나도 샌드위치백작 것처럼 해줘)...
이렇게 해서 샌드위치 라는 이름이 음식의 이름으로 자리잡았다는 예를 우리는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처음 시작한지 모르는 수 많은 것들이 "저작권" 밖에 방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자, 그러한 것들을 몇몇개만 찾아서 무길도한량의 거짓된 발자취로 인터넷에 기록으로 남겨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들은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아는 바, 절대 무길도한량이 최초의 인물은 아니나, 혹 누가 알겠는가?
백 년이 지나서 남은 기록이 이것 밖에 없다면, 무길도한량이 기록으로 고증될 유일한 역사적 흔적이 되는 것이다. ^^

자, 그럼 시작해보자.

무길도한량이 점점 자라매 다섯살이 되었을 때 이미 천문과 수학에 통달하였더라. ^^
그의 고향에선 토굴 속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관계로 그에 필요한 빈 드럼통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루는 대폿집 아주머니가 가게 안에 놓을 테이블 비용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보고 무길도한량이 말하길,
"아주머니, 드럼통을 세우고 그 위에 쟁반을 얹어서 쓰세요."
하고 말하니, 그것이 대폿집들의 드럼통 테이블의 효시가 되었더라. ^^

마침 옆에 군고구마 장수가 대폿잔을 기울이다가 감탄하며 묻되,
"날 위한 아이디어는 뭐 없겠니?"
하자 무길도한량이 씨익 웃으며 가로되,
"아저씨는 드럼통을 옆으로 눕혀서 가운데 장작불을 넣고 서랍들을 여러개 만들어 고구마를 구우면 번번히 이것 저것 다 꺼내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니 옳커니 하고 박수치며 좋아하더라. ^^

그럴 듯 하지 않은가? ^^
더 기가 막힌 아이디어들을 두어개만 더 무길도한량 몫으로 돌려보자.

무길도한량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새로 나와 전국민의 사랑을 받던 것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N 육개장 사발면' 이라.
야유회에 간 사람들이 스치로폼 용기 위에 붙은 은박뚜껑을 제쳐내고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렸다가 먹었는데, 때론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쩍 벌어져 용기 속의 면이 익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것을 목격한 무길도한량.
"같이 제공된 소독저를 미리 가르지 말고 집게처럼 이용하면 용기와 뚜껑의 밀착성이 좋아져서 맛있는 사발면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하고 시범을 보이니 모든 이가 한결 같이 따라 하더라. ^^

또 그의 고향에선 기름에 재서 구운 김을 상품화하여 은박 봉투에 밀봉하여 팔기 시작했는데, 무길도한량이 보니 잰 김을 봉투에서 꺼내 가위로 자를 때에 많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자르기에도 좋지않고 식탁 위도 지저분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은박 봉투를 먼저 원하는 크기로 접어 꼭꼭 눌러준 후 꺼내면 김이 먹기 좋게 잘라져 있을텐데요..."
김장수가 눈여겨 보았다가 상품판촉회에서 시연을 보이니 사람들이 좋아하고 매출도 급증하였더라. ^^

재미있는데 하나만 더 해볼까?

몹시도 추운 한겨울날이었다.
무길도한량은 요기를 하고자 단골중국집을 찾아들었다.
"짜장 드릴까요?"
항상 짜장만 죽어라 먹어대는 무길도한량을 보며 주인이 물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뜨끈한 짬뽕이 먹고 싶은데... 아, 짜장도 먹고 싶고..."
"짜장과 짬뽕 둘 다 드시지요, 뭐..."
웃으며 대답하는 중국집 주인을 보며 무길도한량이 말하길,
"그릇 한가운데에 벽을 만들어 한쪽엔 짜장을, 한쪽엔 짬뽕을 담으면 어떻겠습니까?"
이에 중국집 주인이 좋아하며 이름을 짬짜면으로 지었다 카더라. ^^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분명 세월이 가면 무길도한량도 청사에 빛나는 이름이 되어 있으리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따라, 오늘 하루도 이름을 남길 궁리를 하며 무길도한량은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서 이름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겠지?

어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가르쳐주이소.
내 후사 할팅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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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달콤한 복수



달콤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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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 땐 제2 외국어 과목이 있었다.
말로만 선택과목이었지, 문과는 무조건 불어, 이과는 무조건 독일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비고사에도 제2외국어는 한 문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업배당도일주일에 한시간씩에 불과하여 선생님 얼굴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새로 온 젊은 독일어선생님은 이같은 현실에 나름 생각을 정해서,
"나는 혼자 강의를 할테니까 원하는 사람은 영어를 공부해도 좋다. 단 떠들면 죽는다."
하고 선언하곤,
"그 대신 너희 반은 오후 첫시간이니까 항상 음료수를 하나씩 교탁에 준비해놓도록! 아, 그리고 참고적으로 말하는데 난 오란씨가 좋다."

우리는 알량한 학급비에서 돈을 빼 매주 수업시간 마다 오란씨를 한 병씩 갖다받쳤고, 그 댓가(?)로 점심식사 후 나른한 한시간 동안을 자습시간처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때론 정신머리 내놓은 주번녀석이 오란씨를 잊어버려, 계약위반(?) 으로 빳다를 맞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합의는 무난히 지속되었다.
가끔 그가 오란씨에 손을 안대는 경우엔 햇볕 안드는 교실 창가에 잘 두었다가 다음주 수업시간에 또 내놓는 때도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경우였나 보다.
한번은 선생님이 오란씨를 마시려고 병을 잡았다가 눈이 동그래져 주번을 불렀다.
주번이 앞으로 나오자 그는 오란씨 병목을 손바닥으로 감싸더니 한바퀴 빙 돌린 후 그 손바닥으로 주번의 얼굴을 훑어내렸다.
그러자 주번의 얼굴엔 위에서 아래로 회색줄이 다섯가닥이 생기는 거였다.
"기왕 줄 거 좀 먼지라도 털어서 주면 안되냐?"
선생님도 주번도 벌개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고, 
결국 그는 씩씩거리며 오란씨를  남겨두고 교실을 떠났다.

그 오란씨는 다시 햇볕 안드는 창가로 가 일주일을 지냈다.
그리고 다음 주 다시 독일어시간이 돌아오자, 다음주 주번은 거울 앞에 걸려있는 수건을 가지고 정성스레 병목을 닦아준 후 오란씨를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저번 시간에 기분이 안좋았던 독일어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와 의식하지 않는 척 하면서 한시간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그는 그제서야 오란씨가 있었다는 것을 안듯이,
"오호... 또 정성껏 준비를 해줬으니 마셔야 되겠군?"
하곤 오란씨의 병마개를땄다.

언제나 그렇듯 60명의 120개 눈동자가 그의 커다란 아담스 애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꿀떡. 꿀떡. 꿀떡...
여느 때처럼 그 다음에 캬~ 하는 단발마가 뿜어져 나왔어야 했거늘, 오늘은 반응이 이상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맛을 쩝쩝 두어번 다시더니, 주번을 불렀다.
어리둥절 하여 주번이 교단 앞으로 가자 그는 오란씨병을 내밀었다.
"너 마셔."
주번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오란씨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곧 주번은 에퉤퉤 하며 입안의 액체를 뱉어내며 물러섰다.
주번을 쏘아보고 있던 선생님은 험상궂은 얼굴로 반 전체를 둘러보았다.
"너희는 X새끼들이다.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 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지고 놀아? 알았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너희를 대접해줄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빠르게 말을 마치고 나자 그는 벌건 얼굴로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 틈 사이로, 눈을 지긋이 감고 미소를 머금은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지난주 주번 녀석의 느긋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그녀석의 복수였다.
어제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공부했던 아이들의 수근댐에 따르면 지난주 주번녀석이 오란씨를 마셔버리고 그 병에 실례를 했다던가...
다음주 수업시간이 시작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선생님을, 반장과 부반장이 교무실로 찾아가 손이 닳도록 빌고 빌어 겨우겨우 다시 우리반으로 모셔오게 된 것이며, 앞으론 꼭 밀봉된 박카스만을 갖다놓는 것으로써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그의 일성... 등이 뒷이야기.

방위병 J는 우리 사무실에 배치된 제일 쫄병이었다.
아침마다 장교들보다 조금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을 깨끗하게 하고 사무기기들을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아침임무였다.
추가적인 것이라면, 과장님 책상에 신문 챙겨놓는 일, 병과장의 결재난 문서들 받아오는 일, 아, 그리고 아침마다 냉수 한 컵씩 K대위 책상에 떠놓는 일 정도...

매일 K대위 책상 위에 냉수 한 컵 떠놓는 일은 사실 K대위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이었다.
당시 군대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개인적인 일을 지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룰이었기 때문에 대령들도 자신의 구두를 닦기도 하고 은행도 직접 다니곤 하던 때였다.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
그래서 J가 이 일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 거였다.

하루는 K대위가 아침체조를 마치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며 마주 앉은 무길도한량에게 말했다.
"난 말예요, 이 아침에 체조하고 시원한 냉수 한 컵 마시는게 얼마나 좋은 줄 모르겠어요. 무길도 중위도 맨날 커피만 마시지 말고 냉수를 한 번 들이켜 봐요.이 지역은 물도 끝내주거든..."
그러다 컵 뚜껑에 눈이 간 K대위.
"이 컵, P소령님한테서 선물 받은건데... 괜찮죠? ...에이, 뚜껑에 먼지가 좀 꼈네..."
그는 컵 뚜껑을열어 눈앞으로 가져가 이리저리 훑어본다.

이어서 컵으로 그의 시선이 내려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컵을 들여다 보던 K대위, 얼굴이 점점 벌개지더니 J를 다급히 부른다.
J가 책상 옆으로 다가오도록 그는 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매일 물 떠다줘서 고마운데 말이지..."
"예..."
"냉수에 물방울이 왜 있지?"
아무 말 못하고 말 없이 서 있는 J.

"너, 침 뱉었지?"
K대위의 질문에 그게 어쩌고 하며 슬금 말꼬리를 흐리는 J.
J의 모습에 더 확신을 갖게 된 K대위, 목부터 벌겋게 상기되기 시작하며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게 처음 아니지?"
J는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푹 떨어뜨린다.
"내가 항상 뚜껑에 난 구멍으로만 마셔서 발견을 못했지, 컵 뚜껑을 열고 마셨으면 오늘처럼 금새 알았을텐데 말야?"
망연자실하여 창 밖을 바라본다.
"하기 싫다면 하기 싫다고 말을 하지..."

"얼른 잘못했다고 해, 이녀석아."
옆에서 보던 R사무관이 웃음을 참으며 J를 꾸짖는다.
"아닙니다. 근무 중인 대한민국 공군장교를 위해하려는 녀석은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K대위는 벌떡 일어나 방위병의 팔을 잡아 사무실 밖으로 끌고 나간다.
"무길도 중위, 좀 말려봐요."
R사무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무길도한량을 바라본다.
"괜찮아요, R사무관님도 K대위님 알잖아요?"
"그래도..."

10분쯤 지나 둘은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뽑아들고 싱글벙글 사무실로 돌아왔다.
"영창에 안보냈네요?"
무길도한량이 K대위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묻는다.
"앞으로 잘하기로 했어요. 그대신 내가 일주일에 한번 커피 사주기로 하고..."
빙그시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J를 보며 무길도한량이 묻는다.
"야, 너 솔직히 말해서 몇 번 그랬냐?"
"증말 오늘 처음이어유~."
"그럼 너 왜 아까 대답 안했어?"
"그건 그냥 K대위님 더 약올릴려고 그랬쥬~."
믿거나 말거나... ^^
녀석은 제대할 때까지 매일 냉수를 떠놨고 매주 커피를 얻어마셨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복수는 자행되고 있다.
마냥 당하고만 살것 같은 사람들도 은근히 복수를 한다.
오히려 은근하고 은밀한 그 맛에 달콤함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이유없는 꾸지람에 슬그머니 엄마의 옷에 껌을 붙인 사람.
출근길 신경질내는 고모의 구두 안에 밥풀 두세개 떨구어 놓은 사람.
안놀아주는 삼촌의 노트에 모른척하고 볼펜으로 만화그린 사람.
성질내는 앞좌석 친구의 교복 등의 박음질을 칼로 살짝 끊어놓은 사람.
잘난체 하는 녀석, 채변봉투 몰래 버리는 사람.
나쁜 녀석들 책가방에 있는 김칫병 거꾸로 세워놓는 사람
......
또 뭐 없나...? ^^

약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복수들은 더 큰 희열을 주기도 한다.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여... ^^
가만 있자, 우리 꼬맹이 녀석들이나 나를 향해 몰래 준비하고 있는 복수는 없을까?
우리 사업장 직원들은?
갑자기 뒤가 근질근질거려오는 이유는 또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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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9)

생식은 즐거워



생식(生食)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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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生食)...
을 말함은 불에 익혀먹지 아니하고 날것으로 먹는다는 이야기 이니, 혹 종족유지를 위한 개체의복제 또는 증식(reproduction) 을 말할 때의 생식(生殖)과는 혼동하지 마시길... ^^
물론이야기 주제로선 후자를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전자의 경우로 이야기를 국한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는 '생식' 이란 단어가 생기기 전에서 부터 알게 모르게 생식을많이 하며 살아왔다.
한겨울에 건넌방 냉골에 던져놓은 자루에서 꺼내오는 고구마도 날로 먹었고,
뜨거운 여름 밭에서쑥 뽑아올린 무우를 이빨로 긁어내고 시원하게 깨물어 먹기도 하고,
가을녘 논길을 걸으며 손을 펼치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걸려 올라오는 쌀알도 그렇고,
꽁보리밥에 된장이나 한숟갈 얹어주면,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르는 상추쌈도 그것이리라.
군대에서 생존훈련의 일환으로 뱀이든 개미든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잡아먹은 추억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대에 있을 때의 기억이다.
대구기지에 있던 G중령이 교육자료 수령차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운전병에게 자기집 뒷마당에서 가져왔다는 사과 한 광주리를 들린 채로...
사과들은 그의 말마따나 농약을 치지 않아서 그런지 좀 썩은 놈들도 있었고,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놈도 있었고, 모양도 찌그러진 바가지 마냥 흉측한 것들도 다소 있었으나,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든지 사무실 안은 삽시간에 달콤한 사과향으로 가득했다.

과장님도 방위병도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나씩 집어들고 신나게 와삭와삭거리며 사과파티는 시작되었다.
회의 때문에 한발늦게 도착한 장비담당 L기좌가 눈을 흘기며 들어온다.
"우와~ 섭섭하게 나만 빼고... --;;"
"걱정마세요. 여기 L기좌님꺼 제일 예쁜걸로 하나 챙겨놨습니다."
눈치 빠른 K대위가 재빨리 광주리에서 하나를 꺼내준다.

싱글벙글 빨간 사과를 받아들더니, 한 입을 크게 베어물고 와삭와삭 씹곤 꿀꺽 삼키더만, 그의 전매특허 같은 썰렁한 넉살을 늘어놓는다.
"멀리서 사과를 직접 챙겨오신 G중령님의 사랑에, 제일 예쁜 사과를챙겨주신 K대위님 사랑까지 얹히니, 정말 꿀맛이 따로 없네요."
다들 입안에 사과들이 가득한지라 별 대꾸 없이 웃음으로 썰렁함을 받아준다.

그는 다시 또 한 입 베어먹으려고 입을 쩍 벌리다가, 별안간 동그란 눈을 하며 사과를 유심히 바라본다.
"애개개... 이게 뭐지?"
사과의 한입 베어먹힌 그 자리에 뭔가가 박힌 채로 꾸물대고 있었던 것이다.
"사과벌레로구먼 그랴. 농약 안친 거 맞네...^^"
R사무관이 위로차 끼어든다.
물끄러미 벌레를 바라보던 L기좌, 반웃음 반울음의 애매한 표정으로 R사무관에게 물어본다.
"근데 왜 벌레가 반쪽만 있는거죠?"
"생식 하셨네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K대위가 빙긋이 웃으며 L기좌의 배를 향해 넌지시 합장을 해보인다.

요즈음엔 곡식들을 갈아 만들어 인스턴트화한 생식들이 또 인기인 모양이다.
면역력을 길러주네, 기초체력을 길러주네 하며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식류 말이다.
이런 종류들이 나오기 전에 방앗간에서 직접 갈아 만든 가루스타일이 있었다.

결혼한 후 첫번째 여름을 나던 무길도한량은, 장가가기 전 집에서 여름이면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미숫가룻물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구수한 미숫가루 좀 사서 시원하게 좀 마실까?"
물었더니, 살림 초년병인 우리 집사람은 또로로롱 친정엄니에게 자문을 구하는 전화를 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금이야 금이야 사위를 사랑하시던 장모님,
"그럴게 아니고... 음, 내게 맡겨라. 내가 준비하마."

몇 일 후, 장모님께선 무언가를 한보따리 싸들고 우리집으로 올라오셨다.
무길도한량이 퇴근을 하자, 지프락 봉지에 채워진 그것들 중 하나를 꺼내 내보이며 집사람은 기쁜 얼굴로 브리핑에 들어갔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이건 열다섯가지 곡물과 머시기와 머시기와 거시기와 거시기...... 그리고 또 솔잎가루까지 갈아서 넣고 만든 미숫가루래.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듣는둥 마는둥 손가락으로 천천히 비닐봉지를 헤집어 보던 무길도한량,
"근데 왜 미숫가루가 녹색이야?"
"아니, 이게 미숫가루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더 넣어 만든, 더 비싸고 더 좋은 미숫가루라니깐? 다 자기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하신건데..."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나 담배 피러 나가던 무길도한량의 뒤로 탄식이 쏟아졌다.

그러길래, 그냥 누런 미숫가루면 되는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고요...? --;;
냉장고에 가득가득 하던, 그 많던 생식가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아하니 우리 집사람도 먹지는 않았던 것 같고... 
무길도한량도 참 엥카죠? ^^

인제 진짜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생식 이야기를 해야겠다.
젊었을 적 무길도한량이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도 닦으러 갔을 때였다.
그곳엔 공부 밖엔 할 일이 없는 한국인들이 다소간 살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방황하는 무길도한량을 불쌍타 여겼는지 곧잘 저녁식사에 초대하곤 하였다.
고맙게 생각한 무길도한량은 빈손이 쑥스러워 항상 디저트용 아이스크림을 한 통씩 사들고 가곤 했고...

어느날 B의 집에서의 일이다.
저녁식사 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유난히 무엇인가를 빠득 빠득 씹어가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무길도한량을 본 B, 웃는 얼굴로 와이프에게 불평을 한다.
"여보, 총각은 피너츠 아이스크림 주고 난 바닐라 아이스크림 주네? 나도 총각처럼 피너츠 아이스크림 줘."
"무슨 말씀이에요? 똑같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드렸는데..."
B의 부인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하며 되묻는다.

"정말이야, 저 총각껀 피너츠 아이스크림이라니까...?"
순간 무길도한량이 한번 더 바드득 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어리둥절한 B의 부인은 부엌으로 가 무길도한량이 사온 아이스크림통을 가지고 나오며 B에게 보여준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아이스크림통에서 무길도한량에게로 옮겨온다.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무길도한량, 천천히 자신의 아이스크림 접시를 내려다 본다.
아!
무길도한량의 플라스틱 포크의 다리 다섯개 중 3개가 반토막이 된상태로 아이스크림 위에 얹혀 있었다.

플라스틱도 생식 가능하지요? ^^;;
씁쓰레한 얼굴로 무길도한량이 묻는다.
"총각, 먹을게 없으면 전화해. 아무거나 먹지 말고..."
안쓰러운표정으로 B가 말한다.
"이런거 먹고 사는거 부모님께서 아셔?"
... 아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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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달려라, 토끼!



달려라, 토끼!






적어도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진, 그는 항상 달리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상품을 받기 위해 죽을똥 살똥 달려대는 운동회에서는 선생님들의 자질구레한 심부름꺼리를 찾아 본부석 주변을 얼쩡거리거나 각 종목 결승점 근처에서 물주전자를 들고 배회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 자발적인 심부름꾼이 근처에서 어물쩡거리며 대기하고 있으면 좋아했다.

"어? 너 왜 여깄어? 너도 빨리 가서 뛰어!"
그러다가 눈치 하나도 없는 담임선생님에게 재수없이 들키면,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친구들이 뜀박질 준비하고 있는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운동모자를 뒤로 돌려쓴 놈, 무슨 육상선수나 되는 양 구부린 다리를 가슴 높이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놈,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이쪽 저쪽 발목을 돌려보는 놈, 혼자서 준비 땅 하며 출발연습을 하는 놈 등등의 아이들 틈 사이로 자신이 뛰어야 할 100미터코스가 내다보였다.

저쯤이 좋겠군...
그는 말없이 혼자 빙긋이 웃으며 직선코스에서 곡선코스로 이어지는 부분을 주시했다.
약30미터 거리쯤 될까?
운동모자 위로 10월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면서 귀 옆으로 땀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준비!...땅!
귀가 먹먹해질 만큼이나 큰 총소리에 혼비백산하며 그는 쫓기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출발과 동시에 벌써 많은 친구들이 그보다 두어 걸음 앞서 나가 있었다.
10미터...
20미터...
마지막 남은 두세명 마저도그를 추월하게 되면서,이제 마악 그가 꼴찌로 떨어지는 즈음이었다.
30미터 통과.

앗!
그의 두 발이 꼬이면서 그는 곡선코스가 시작되는 그곳에서 중심을 잃고 나뒹굴고 말았다.
코스를 따라 주욱 늘어선 학부형들이 파란 하늘과 함께 빙글 돌아갔다.
안타까운듯 흘러나오는 탄성. 
동정으로 혀 차는 소리.
맨땅에 넘어지느라 무릎이 긇히고 아팠지만 그는 천천히 다시 일어나 입을 악물고 절룩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골인하여 벌써 한산해진 결승점을 그는 천천히많은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여유있게 꼴찌로 골인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로 부터 쏟아지는 걱정어린 격려와 위로...
작전 성공. ^^
어차피 꼴찌로 창피를 당할바엔 감동의 꼴찌를 하는 것이 그 시대 운동회엔 어울리는 것이었다.
어쩌면그는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이 초등학교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악한 마음을 가진 앙팡테리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런 식이었다.
몇 년 동안 한번도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달리기를 꺼려했다.
달리면 뭐해?
또, 달려서 지면 창피하잖아?
그런 그의 마음에 발동을 걸어준 이는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체육시간에 편을 갈라 축구를 하고 있던 그에게, 체육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리 근육을 보니, 조금만 열심히 뛰면 차범근 보다도 빠르겠는걸?"
???
"한번 있는 힘을 다해 뛰어보지 않을래?"
하기 싫어하는 그를 10명의 아이들과 나란히 세웠다.
"딱 한 번만 해보는 거다."

결국 성의를 보이며 열심히 뛴 그는 10명 중 학교대표 육상선수에 이어 두번째로 골인을 했다.
"그것 봐라. 너도 열심히 하면 잘 뛸 수 있는데..."
그 자신도 믿기 어려웠지만, 그는 차츰 그렇게 달리기에 자신감을 붙여갔다.
고등학교에서도 잘 뛰었고, 대학교에서도 지치지 않고 뛰었고, 군대에 가서도 끝까지 뛰었다.
그는 자신이 토끼띠라서 잘 뛴다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차범근선수에게도 은퇴의 시간이 오고, 맨발의 아베베도 더 이상 마라톤코스를 달리고 싶지 않는 때가 오는 법이다.
체육선생님이 권하는 운동선수가 되는 길을 가진 않았지만, 그도 더 이상 달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나오는 배, 커지는 엉덩이, 넘어서는 몸무게, 더 날씬해지는 하체...
무엇을 딱히 탓할 수도 없게 점차 그는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토끼도 은퇴를 할까?

어느날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
그가 운영하는 사업장으로 한 명의 틴에이저가 들어왔다.
마침 직원 한 명은 화장실에, 또 다른 직원 한 명은 사무실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주위엔 아무도 없어서 그가 이손님을 대하게 되었다.
"급해서 그러는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무선전화기들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가 빈 것을 보니 직원들이 사무실로 다 가져간 모양.
할 수 없이 그는 전화기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간다.
순간,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업장 문밖으로 뛰어나가는 재빠른 발자욱 소리.
그는 전화기를 집으려다 뭔가 짚히는것이 있어 바로 뒤로 돌아 뛰어나갔다.
카운터쪽을 돌아 문쪽으로 뛰어가며 카운터 위를 흘겨보았다.

불우이웃돕기성금 모금함!
사업장엔, 연말이면 항상 카운터 위에 크리넥스 두 개 정도 크기의 불우이웃돕기성금모금함을 놓고있었는데, 그것을 들고 뛴 모양이다.
이 녀석이 가져갈 것이 따로 있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문밖으로 뛰어나가자 녀석이 저만치 모금함을 끼고 달아난다.
내가 왕년엔...

뚱뚱해진 토끼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쿵쾅... (이 정도면 거의 하마급 토끼인데... --;;)
전력질주를 시작하니 몸무게의 균형이 안맞는지 뭔가 박자가 잘 안맞는다.
숨이 턱턱 거리면서 턱 밑까지 차오른다.
헉헉, 거기 서! 헉헉...
달려라, 토끼야.

녀석은 건물 코너에 자전거까지 미리 준비해놓았던 모양이다.
코너에 다다르자 흘낏 그를 돌아보더니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신나게 밟아나가기 시작한다.
번개 같은 솜씨로 화단을 건너 뛰고 셔츠자락을 뒤로 날개처럼 휘날리며 달려간다.
으랏차차!
그도 옛날을 생각하며 화단을 뛰어넘고 (한쪽 발만 성공) 죽어라 달려보지만, 자전거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고... 끝내는 시야에서 놓치고 만다.
토끼야, 토끼야, 뚱뚱해진 토끼야... --;;

숨을 쉭쉭, 땀을 뻘뻘 흘리며 사업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 십대가 아침나절 사업장에 왔었던 걸 기억해낸다.
그렇지! 이녀석, 넌 잡았다.
아침에 왔을 때 모금함을 눈여겨 보았다가 사람이 뜸한 시간을 골라 훔치러 온 모양이었다.
그는 아침 동안의 사업내역을 조사하여 녀석에 대한 정보를 끄집어 내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넘겨준다.

늙은 토끼가 느릴 순 있어도 영리한 걸 잊으면안되지... ^^
토끼는 늙어도 토끼인거야.

2010년 호랑이의 해가 저물어가 2011년 토끼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흔히 토끼의 장점은 임기웅변이 좋고, 잔꾀가 많으며, 재주가 있고, 부지런하며, 판단이 신중한 것이라고 하며, 단점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구설이 많고, 경솔하고 자만해지기 쉽다 라고 이야기한다.
운세나 토정비결을 무작정 믿자는 것이 아니라, 믿건 안믿건 토끼의 해엔 토끼의 좋은 점들만 배우고 받아들여서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이면 연신 우년신(年新 又年新) 아니겠는가?


PS. 경찰은 녀석을 잡아, 모았던 성금 $172 중 $124 를 회수하였다.
삼진아웃제 때문에 토끼는 인정을 보여 녀석을 기소하지 않기로 하였다.
도둑을 쫓아서 뛰어다닌 토끼는 몇 년이 지난 오늘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절대 본받아선 안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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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짜장이 땡기는 날



짜장이 땡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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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중 "crave" 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를 원하다 또는 갈망하다' 하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wish, desire, long for 같은 단어들 보다 훨씬 의미가 강한 것이 crave 이다.
특별히 food craving 하면, '어떤 음식을 향한 강렬한 욕구' 를 말하는데,
임산부가 단무지나 오이피클을 미칠 것 같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군대 훈련병들이 달디 단 쵸코파이를 죽어라 찾는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그 예가 될것이다.

잠시 막간을 이용하여 영어문장 두어개를 소개해본다면,
What do you crave? (무엇을미치도록 좋아하십니까?)
When you are pregnant, do you cravepickles? (임신중엔 피클이 엄청 땡기나요?)^^

우리 아이들이 피자 라는 것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는 없다.
생각컨대, 서울에 있던 우리집 앞에 피자헛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다섯살 여섯살 하던 두 녀석을 위해 피자 한 판을 시켰다가 그 먹어대는 기세에, 은근히 한조각 얻어먹으려 했던 내 손가락 두개가 민망한 꼴을 당했던 것이 그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a,b,c 세글자도 제대로 모르던 코흘리개 두 녀석을 끌고 물 건너 이곳으로 건너온, 몇년 전 일이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붙잡아 앉혀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J야, 학교 갔다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사탕 주면서 아저씨랑 같이 가자면 넌 어떻게 할래?"
"No! 하고 말할거야."
첫째 녀석이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며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오는 답을 준다.
그렇지, 그렇지...

이번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의 차례다.
"H야, 너는 백설공주처럼 아주 예쁜 언니가 피자 사줄께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할래?"
나름 똑똑해서 선뜻 예상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답을 준비하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
아하!, 피자라는 것이 녀석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지금은 두녀석 다 찐득한 우리의 '밥'에 중독되어, 밖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밥통 열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멀리서 피자의 냄새만 흘러나와도 녀석들의 정신이 혼미해지던 때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가장 빨리 배운 단어가 p.i.z.z.a. 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무길도한량은 음식 앞에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부처라도 된다는 말인가?
에헤-, 그럴리가...
음식 있는 곳에 사람 마음이 있다고... (가만, 음식이 아니고 돈이었던가? ^^)
여하간 무길도한량도 위대한 피조물의 하나인지라, 어찌 그 푸드 크래이빙 (혹은 음식탐닉?)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좋아하는 음식만 따지며 지내도 일년 하고도 35일은 더 이야기 할 수 있으되, 오늘은 아주 간략히 아주 간단한 것으로 두글자짜리 하나만 이야기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
중국집의 두글자 메뉴 중의 하나, 바로 짜장이다. ^^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 짜장의 의미는 특별했다.
무엇이 제일 먹고 싶으냐 물으면, 백인백색으로 그 대답이 다 다를 것 같지만서도, (우리땐) 무려 65%의 사람들이 짜장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어떻게 아냐고?
소재가 빈곤하여 막대한지면을 무엇으로 메울까 고민하던 학교 교지 편집위원들이만들어낸, 심심풀이 앙케이트를 통해 나온 결과가 그러하였다.

그래서 특별한 날들, 즉 입학식, 졸업식, 생일, 단오날(이건 아닌가?)...등등의 날엔 중국집 한켠에 뜨뜻하게 바닥에 불 들어오는 방에 자리잡고 앉아 후룩 쩝, 후룩 쩝...
간혹 가다 운좋은 날은 탕슉 (이 친군 두글자 메뉴 중에 가장 비싸다)도 한접시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주로 아버님께서 함께 하신 날의 메뉴이고, 다른 날엔 주로 짜장 내지는 짬뽕이 대세였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입가에 흑갈색 짜장을 묻히면서뿌듯한 마음으로 한그릇 비워내는 짜장만큼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없었다.

후룩 쩝, 후룩 쩝... 하고 반쯤 먹을라 하면, 그제서야 짜장을 다 비비신 어머닌,
"많이 먹어라."
(화이고, 벌써 반은 먹었는디...) --;
어머니 잡수시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 그때부턴 단무지와 양파를 열심히 먹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난 한번도 곱배기를 시켜본 적이 없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집 짜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일이었기에, 짜장면 곱배기라는 것은 항상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일 따름이었다.
나중에 아버님께서 돈을 많이 버셔서, 매일 탕수육을 시켜먹어도 괜찮을 때가 되어서는 이미 나의 사랑이 보통 짜장으로도 충분할 만큼으로 감소되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 곧바로 몰려온 IMF의 거센 파도를 맞아 싸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사업장이 있던 동네엔, 서울에서 가장 싼 짜장면집이라고 TV뉴스에까지 나온 중국집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침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사업장으로 가는 외길목 코너에 떡 버티고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 길로 출근을 하노라면, 벌써 점심 때를 위하여 짜장을 볶는다, 양파를 볶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사람을 반 미치게 만들곤 했다.
그때부터 사업장에 도착할 때까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짜장, 짜장, 짜장... 하며 걷다보면 자연스레 또 하루의 점심메뉴는 결정이 되고 만다.
아... 오늘 점심에도 맛있는 짜장을 먹어야겠다. ^^

점심 무렵, 중국집 빨간 오토바이가 은색가방을 매달고 들이치면 우리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냥반, 또 아침에 짜장 냄새 맡은 모양이네...
맨날 제일 싼 짜장면만 드신다고 동네에 소문 다 났슈...
회장님도 맨날 짜장이시더니, 부자가 어찌 그리 똑같으시데요?
심지어는 중국집 배달하는 사람이 말하길,
내일은 짜장 시켜도 짜장 안가져와유. 무조건 볶음밥 가져올팅게...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IMF를 짜장과 함께 보냈다.

물론 그 중국집이 있는 허름한 건물이나 사방에 짬뽕 국물이 묻은 그 빨간 오토바이나 배달하는 사람의 옷의 청결 상태로 말하자면...
두 번 다시 시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여하간 재료를 최고로 아끼고도 그 짜장의 맛은 좋았다.
깨끗한 중국집 찾으면 맛있는 곳이 없다...
주방에 들어가보면 다신 중국집 못간다... 등등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특별히 점심 약속손님이있을 경우만 빼곤 난 항상 변함없는 짜돌이였다.

어느날 이었을까?
거래처에서 온 손님 한명도 나와 같은 중국집에서 우동을 시켜먹기로 했다.
그날 따라, 이젠 무길도한량을 짜장으로부터 졸업시켜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현장의 한 직원이 와서 중국집의 나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가 있어봐서 아는디유...
웬만하면 손님이 있으면 그러지 않을텐데, 그 손님은 현장의 그 직원과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 현장직원의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같이 댓거리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짜장과 우동은 도착을 하고...
한석봉이 일필휘지로 내려 갈기듯이 나무젓가락은 짙은 갈색 짜장 위로 면을 뒤집어주고, 한편으론 세심하게 떡을 썰던 석봉의 어머니 칼질처럼 짜장 묻지 않은 면이 없도록 꼼꼼히 뒤집어 주었다.
예전엔 이 집도 수타(手打)였는데...
배가 고팠었던지 손님은 벌써 그릇에서 입으로 바쁘게 우동을 끌어올리고 있다.

첫 개시를 위하여 면 위로 푹 꽂은 두 젓가락을 이제 막 휘돌리며 짜장을 감는 순간,
"악!"
마주 앉은 사람의 두눈이 순식간에 곤두서며 면이 가득 든 입을 떡 벌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왜 그러세요?
그는 떡 벌린 입으로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자신의 우동을 가르킨다.
아... --;;

그의 맑은 우동물 속에는 하얀 면을 배경으로 초록색 시금치와 주황색 당근이 얹혔는데, 그 사이로 엷은 갈색의 녀석 하나가 온탕에 들어앉은 육십대 아저씨의 포즈로 누워있다.
예전부터 중국집 짜장단지에 녀석들이 많다는 이야긴 많이 듣긴 들었지만...
그는 멋모르고 허겁지겁 두어젓갈 먹은 자신에 신경질이 나는 모양인지 젓가락을 내려놓고먼산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간혹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혹시 녀석들이 뇌 속으로...?

그래도 난 아직도 짜장면 든 젓가락을 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내꺼에 있던건 아닌데...난 계속 먹어도 되지 않을까....?
순간 우리 현장직원이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잽싸게 젓가락을 빼앗아 내동댕이치곤 그릇들을 가지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쩝... 아직 맛도 못봤는데...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한 때 열렬히, 미치도록 사랑하던 중국집 짜장과의 기억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무슨 마법의 주술처럼 내 머리 속으로 스며들어와 결국엔 먹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 영험한 고소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설사 그 맛이 갈색의 녀석들과 함께 잘 볶은 짜장의 맛이었다 해도 말이다.
너희가 짜장을 아느냐? ^^

요즈음은 고기와 호박과 양파를 썰어넣고 장에서 사온 볶은 짜장을 넣고 가끔 짜장면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암만 열심히 만들어도 그곳의 그 맛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같이 있다.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그 집을 찾을까?
하지만 답은 글쎄다.
그 집이 그대로 있을런지도 모르겠거니와 다시 찾을 용기가 없는 것도 같다.

유리창 위로 빗물이 짜장처럼흐르는 오늘은 심히 짜장이 땡기는 날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맛있는 짜장을 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벌레는 빼고...

What do you cra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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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