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청산도 절로절로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 水 절로 산슈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김인후)


푸른 산도 저절로 푸른 물도 저절로
산도 저절로 물도 저절로 되듯 자연 속의 나도 저절로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란 이 몸, 늙기도 저절로 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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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집 뒷간 뒤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두엇 있었다.
전기도 없이 깜깜하던 밤그늘에 바람이 불 때 마다 밤나무들은 쉬이- 하고 온 잎들을 흔들어대면, 엊그제 잠자리에서 들었던 빨간 보자기 귀신에 파란 보자기 귀신도 나올 듯 무서웠다.
판자쪽을 이어 붙인 문 틈으로 노오란 별들은 쏟아지고 흔들리는 촛불은 금새라도 꺼질 듯 위태 위태 불안 불안하기만 했다.

"아직 밖에 있는거지?"
소년는 몇 번이고 누나가 밖에 서있는질 확인했다.
"빨리 안나오면 나 가버린다."
짖궂은 누나가 재미로 소년을 얼러대면 소년은 징징대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잉잉~, 그러면 엄마한테 이를거야."
"그러니까 서두르라고!"
"나도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상황은 역전되기 마련이었다.
"야, 너 아직 밖에 있지?"
누나는 쪼개진 판자문 사이로 내다보며 묻는다.
"그래~, 빨리 안나오면 가버린다."
"어우, 야아~"

소년은 발 밑으로 떨어진 푸른 밤송이를 쪼개려고 두발로 밟아 본다.
너무 어린 눔이었는지 연한 밤송이는 갈라지지 않고 뭉개지기만 할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밤나무는 잘 익은 밤들이 꽉 찬 갈색 밤송이를 떨구기 시작할 것이다.
짧은 오후내 가을햇살에 밤송이들은 절로 벙그러질 것이고...

바람이 밤나무를 한 번 더 으스스스 떨게 만들며 지나가는 끝엔 별들이 가득하다.
"북두칠성이 큰곰자리라고 했었나?"
"그래, 북극성 건너 W자가 카시오페아자리이고..."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에 W자를 그려본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소슬바람에 가을의 바삭함이 묻어난다.
계절도 밤나무도 소년도 그렇게 절로 절로 익어갔다.


(2011.09.28)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바다로 내려갔다.
아침 산보를 할 때 마다 멀리서 슬쩍슬쩍 한자락씩 비춰주는 바다의 푸른 치맛깃을 따라 오솔길을 내려갔다.
지난 이삼일 동안의 스산했던 날씨를 언제 그랬냐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은 쨍! 이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 몇 점 떠가고 무길도의 바다는 파랗게 시린 빛을 뿜고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꺼내 어깨 너머로 휘딱 들쳐메고 숲 사이 바다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엊그제였던가?
두 달 내내 구름 한 점 없던 아침 하늘에 은회색 구름이 뒤덮이고, 좀처럼 볼 수 없던 강한 바람까지 들더니 종내에는 빗방울마저 서너 시간 동안 뿌려댔다.
이제 다시 우기(雨期)의 시작인가 싶을 정도로 공기도 냉랭해지자 특별히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재킷을 꺼내 입었다.
하긴, 내가 느끼지 못하던 사이 벌써 우리 아파트 앞 연못엔 열두마리 오리가족이 날아들었고, 골프장 주변의 몇몇 나무 끝이 빨그스름하게 변한 것이며, 걸을 때 마다 발길에 채이는 낙엽들이며...
자연은 그렇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도 때를 맞춰 순행하고 있었다.




엊그제였던가?
웹캠 너머 부석부석한 얼굴로 부시시한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 긁적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야아, 내 이삼일 병원에 검사 들어가니까 핸드폰 하지 마라."
내가 언제 핸드폰으로 전화 드린 적이 있던가? ^^;;
"내 말은 이삼일 컴퓨터에 안나오더라도 궁금해 하지 말란 이야기다."
이 정도 말씀하면 좀 알아들었어야 자식놈인데...
워낙 센스가 느린 동네사람이라 무길도한량은 그 말씀의 뜻을 읽지 못했다.




엊그제였던가?
어머닌 물으셨다.

"요즘은 왜 글 쓰는게 좀 뜸하다?"
"사진은 잘 안찍냐?"
글쎄 아이들이 개학하고 그러니까 뭔지 모르게 덩달아 마음만 바빠져서...
통 마음 잡고 앉아서 글 쓸 시간도 없고, 사진 찍으러 나갈 시간도 없고...
두런두런 쓸데 없는 핑계만 주어 섬기고 말았다.
"무길도 앞바다도 안가냐?"
아, 무길도 앞바다!
갑니다, 갑니다용~ ^^;;





삐리리리~
소리도 방정 맞게스리 나의 핸드폰이 몸을 배배 꼬며 징징거리며 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나야."
몇 십년 전, 학교앞 문방구에다 잊고 두고 왔었던 첫째 동생이다.
"엄마가 인공심장판막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되어 상태가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무무...무슨 수술???
"혈관을 통해서 뭘 집어넣고 하는 수술인데 성공적인 모양이야. 3일, 일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경과를 체크한대..."
무길도한량도 모르는 사이에 울 어머니는 심장수술을 하셨단다... ^^;;;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천리 만리 밖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길도 앞바다는 그렇게 파란 모습을 하고 오늘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예전 내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며 뿌연 의식의 주변을 헤매일 때는 어머니께서 곁에서 끝없는 기도로 날 지켜주셨다.
어머니께서 어려우실 때를 함께 못해드리는 이 아들내미를 용서하소서.
어머니 옆에서 바싹바싹 마르는 목으로 서계셨을 연로하신 아버지께도 미안함이... --;;
그동안 낙엽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는 줄은 알았어도 부모님의 세월은 세지 못하였다.
나는 시리도록 파란 무길도의 바닷가에 서서 어머니의 쾌유를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를 지켜주세요.

하얀 조약돌 하나를 들어 힘껏 파란 바다를 향해 날려본다.





(2011.09.20)

2011년 9월 5일 월요일

힘써 하는 싸홈




힘써 하는 싸홈 나리 위한 싸홈인가
옷밥의 뭇텨이셔 할일업서 싸호놋다
아마도 조티디 아니하니 다시 어이하리


                                   (이덕일)


힘써서 하는 저 싸움이 나라를 위한 싸움인가
옷, 밥이 풍족하다 보니 할 일 없어 싸우는 모양이지
아아 그치지 아니하니 이를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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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데다가, 작은 나라에 인구는 과밀하여 생존경쟁을 위하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고학력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그 중 지식은 많으나 현실은 모르는 사람들을 '헛똑똑이' 라고 칭하면 틀린 말일까?
여하간 이러한 헛똑똑이들은 얼마나 많은지...
마치 누가 누가 더 미련한지 시합하는 경연장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불과 60년전의 참상을 잊어버리고 그 강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빠진 헛똑똑이들.
정치세력에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이벤트에 참여하는 헛똑똑이들.
몇 번을 속고도 또 그래도 자신에게 이득이 있을까 하는 미련으로 투표하는 헛똑똑이들.
자신을 왜 뽑아주었는지도 모르는 채 저 잘났다고 아우성치는 헛똑똑이들.
무엇을 위한 투표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기만 하는 헛똑똑이들.
...

너무 종류가 많고 다양하여, 하나 하나 예를 들자면 밤을 새도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도대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헛똑똑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정치적 선동가에 의해, 매스콤에 의해, 블로거에 의해 이용 당하며 이리 저리 휘몰리는 그들은 단지 고학력의 고성능 통신수단으로 무장된 쥐떼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행동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은 좀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나의 행동이 힘써 하는 저 싸움에 돌멩이 하나로 어떻게 작용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은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걸그룹이니 기쁨조니 이런거만 관심을 갖지 말고 말이다.

이렇게 우왕좌왕 갈팡질팡 패싸움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굴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 과거 우리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잖은가.
아마도 조티디 아니하니 다시 어이하리...
어이하리...

에이~, 무길도한량이 정녕 나서야 한단 말인가? ^^


(2011.09.05)

 

2011년 9월 4일 일요일

Hosanna

Hosanna

                                            by Hillsong United




http://www.youtube.com/watch?v=UXCoHxX1OC8 (클릭!)


호산나 : ('우리를 구하옵소서'의 뜻) 예수가 예루살렘에 마지막 입성할 때에 군중들이 외친 말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이르는 말. - 야후! 국어사전

Hosanna : a cry for salvation; while at the same time is a declaration of praise - from Wikipedia

Hillsong United 는 Hillsong Church 라는 유명한 교회의 youth ministry에 속한 4개의 연령별 소그룹이 함께 모였을 때에 스스로를 지칭하던 이름이었다.
1998년 본격적으로 독립적인 선교팀으로 재탄생, 매년 음반을 발표하고 세계순회연주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밴드.
2006년에 이어 올해에도 내한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무길도한량이 이들의 목소리로 듣길 좋아하는 'Hosanna' 도 불렀는지 모르겠다.


I see the king of glory
Coming on the clouds with fire
The whole earth shakes, the whole earth shakes


I see the His love and mercy
Washing over all our sin
The people sing, the people sing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I see a generation
Rising up to take their place
With selfless faith, with selfless faith


I see a near revival
Stirring as we pray and seek
We're on our knees, we're on our knees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eal my heart and make it clean
Open up my eyes to the things unseen
Show me how to love like You have loved me
Break my heart for what breaks Yours
Everything I am for Your Kingdom's cause
As I walk from earth into eternity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Hosanna, Hosanna
Hosanna in the highest


(2011.09.04)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넙으나 너른 들회




넙으나 너른 들회 흐르느니 물이로다
人生이 뎌르로다 어드러로 가는게오
아마도 도라올 길히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무명씨)


넓으나 넓은 들에 흐르는 것이 물이구나
인생도 저렇게 흘러가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아마도 돌아올 길이 없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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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희준은 '하숙생'을 부를 때 인생을 음미하는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이 노래에 깊이를 더했던 것 같다.
한 번 동영상으로 보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WktYRl9WpSY&feature=related (클릭)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요즘 새로운 787 여객기를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는 이곳 조립공장 활주로 건너편에는 여러곳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 한 떼 모여있다.
무길도한량이 비행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눈으로만 봐도 그들은 꽤 오래 전에 생산된 비행기들임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조종설비를 제외한 의자니 천장에 붙은 수납캐빈이니 하는 모든 내장재를 떼어내고 깨끗이 청소를 한 뒤 모든 창문과 출입구를 밀봉을 한다.
그리곤 비행기 전체를 하얀색으로 다시 페인트 칠을 하여 과거를 지워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비행기는 어느날 활주로를 차고 올라 아리조나주의 모하비사막까지의 마지막 비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재활용 콜을 받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이제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영면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공장 한귀퉁이에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탈바꿈을 하며 변해가는 비행기들.
그리고 십중 팔구 마지막일 그 비행을 위해 막상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구름 사이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인생도 또한 그러하리라.
충성하고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에 그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그 인생 헛되진 않았으리라.
......

오늘도 아침길을 걷다가 하얀 옷을 입은 한 비행기의 마지막 비상을 본다.
그곳에서 편히 쉬길...
굿바이.



 (2011.08.31)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그믐달 뜬 새벽


그믐달 뜬 새벽





새벽녘 푸른 어스름 자락 위로 연노랑 하루가 갓 밝아오는데,
까맣게 키가 큰 나무 왼쪽 어깨 위엔 그믐달 하나 간들 걸려있다.
참 예쁘기도 하다.
그 휘어진 곡선의 단아함이며 금가락지처럼 빛나는 색깔하며...
황진이의 눈썹이 저러 하였을까? ^^

옛적 중국 주나라에선 여인들이 본래의 눈썹을 제거하고 검푸른색으로 눈썹을 다시 그려넣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여기서 누에나방(蛾)의 더듬이 모양의 눈썹(眉)을 최고로 쳤다.
여기서부터 아미(蛾眉)라는 단어가 미인(美人)의 상징어가 되었다.
누에나방의 더듬이를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초승달 같은 모습(아래 사진 참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인=아미=초승달 눈썹', 이런 공식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사진출처: http://www.123rere.com/File/Board/200407)

무길도한량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본 것이야 초승달이 아닌 그믐달이 틀림없지만, 그 예쁘기가 초승이니 그믐이니 따질 것도 없는 것이라서 이야기를 내어봤다.
뭐, 어차피 초승달 뒤집으면 그믐달 아니겠는가? ^^
여하간 그 달이 한 남정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아름다웠다는 얘기.

아름다운 달을 보며 이런 감상에 젖는 이가 세상에 어디 무길도한량 뿐이랴?
유명한 소설가 나도향은 '그믐달' 이란 제목으로 '조선문단' 이란 잡지에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후략)"

과연 그는 당대의 문장가이다.
무길도한량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다 표현해버렸으니...
아, 어찌 하늘은 무길도한량을 세상에 내고 또 나도향을 내었단 말인가? --;;;
같은 하늘은 아니라고...?
에헴, 여하간, 좌우지당간에 그의 표현에 삐침 하나 더하고 뺄 곳이 없다.

얼마전 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나타난 달의 모습을 보고 그림의 제작시기를 밝혀낸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독특하게 표현된 달의 모습을 보고 천문학자는 월식 때일거라는 추측 아래 중요 천문현상까지 기록한 '승정원일기' 와 대조, 정확한 배경날짜를 알아낸 것이다.
한편, 우리의 그믐달은 그의 또 다른 그림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에 등장한다.


신윤복,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

보시다시피, 그믐달은 동산 위에 깔린 푸른 어스름 위로 떠올라 있고 밤 사이 기생과 거나하게 마시던 한량은 야금(夜禁: 야간통행금지)를 무릅쓰고(冒) 길을 나서는(行) 모습이다.
밤 열시(2경)쯤에 통금을 알리는 인정(人定)을 치고 새벽 4시경 (5경)에 파루(罷漏)를 하였으며 위반자는 시간 때에 따라 곤장 10~30대의 형을 받았으니 '무릅쓴다'는 표현이 적절도 하겠다.
왼쪽엔, 궁인(宮人) 중 홍의를 입은 사람은 야금위반 곤장을 면케 해주었다는 규칙이 있었던 바, 술 취한 한량과 기생의 2차 나들이에 편의를 봐주어 한량이 감사의 표시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저 달은 알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
아마도 저 한량의 부인은 지금쯤 빨래방망이나 다듬이 방망이 하나 곧추 세우고 안방문 앞에 좌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안으로 드시지요. 나으리."
"네, 부인."
퍽! ^^

또 가슴이 숨뿡 닳아버린 애절한 그믐달을 보며 시인 천양희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믐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어머니...
그 어머니의 등에 엎히어 가면서 아이는 달을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엄마의 걸음이 빨라지면 달도 빨리 쫓아오고, 엄마의 걸음이 늦어지면 달도 천천히 쫓아오고...
아이는 자신의 갈 길을 가지 않고 자꾸만 따라오는 달을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달을 업고 밤길을 갔다.




그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달은 얼음칼처럼 날카로와졌다가도 호박처럼 둥그래졌다간 다시 스러지면서 잊혀질만 하면 또 다시 소생하길 반복한다.

아이는 지금 달보다 육펜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달은 여전히 보이건 보이지 않건 언제나 저만치의 자리에서 아이를 따라온다.
길바닥에 떨어진 육펜스를 찾으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이제 다시 달을 바라볼 것인가?
낡고 깃털이 다 빠져버린 날개를 펼치고 달을 향해 휘적휘적 어깨짓을 할 것인가?
달이 저만치서 내려본다.

예쁜 그믐달이 뜬 새벽이다.

(2011.08.26)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Sweetly Broken

   Sweetly Broken


                                                                  by Jeremy Riddle


"broken" 이라는 단어는 '부러진', '꺾인' 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진다.
예를 들자면,
broken arm : 부러진 팔
broken dream : 꺾인 꿈
등등 인데, 예에서 보듯이 육체적인 고통, 심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그런데, 부러지고 꺾어지긴 했는데 아프지 않고 달콤한, 기분 좋은 느낌이 있을 수 있을까?
Sweetly Broken 이란 결국 자신을 꺾어버리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한 양이 됨을 이야기 한다.
조용히 듣다보면 눈물이 흐르는 노래.
...? 
들어도 안흐른다고?
그럼 흐를 때까지 계속 듣도록! ^^


http://www.youtube.com/watch?v=O5_Z3ZZYLDc (클릭!)




TO THE CROSS I LOOK AND TO THE CROSS I CLING
OF ITS SUFFERING I DO DRINK
OF ITS WORK I DO SING


ON IT MY SAVIOR BOTH BRUISED AND CRUSHED
SHOWED THAT GOD IS LOVE
AND GOD IS JUST


AT THE CROSS YOU BECKON ME
YOU DRAW ME GENTLY TO MY KNEES, AND I AM
LOST FOR WORDS SO LOST IN LOVE
I AM SWEETLY BROKEN WHOLLY SURRENDERED


WHAT A PRICELESS GIFT UNDESERVED LIFE
HAVE I BEEN GIVEN
THROUGH CHRIST CRUCIFIED


YOU CALLED ME OUT OF DEATH
YOU CALLED ME INTO LIFE
AND I WAS UNDER YOUR WRATH
NOW THROUGH THE CROSS I'M RECONCILED

AT THE CROSS YOU BECKON ME
YOU DRAW ME GENTLY TO MY KNEES, AND I AM
LOST FOR WORDS SO LOST IN LOVE
I AM SWEETLY BROKEN WHOLLY SURRENDERED

AT THE CROSS YOU BECKON ME
YOU DRAW ME GENTLY TO MY KNEES, AND I AM
LOST FOR WORDS SO LOST IN LOVE
I AM SWEETLY BROKEN WHOLLY SURRENDERED

IN AWE OF THE CROSS I MUST CONFESS
HOW WONDROUS YOUR REDEEMING LOVE AND
HOW GREAT IS YOUR FAITHFULNESS


AT THE CROSS YOU BECKON ME
YOU DRAW ME GENTLY TO MY KNEES, AND I AM
LOST FOR WORDS SO LOST IN LOVE
I AM SWEETLY BROKEN WHOLLY SURRENDERED


AT THE CROSS YOU BECKON ME
YOU DRAW ME GENTLY TO MY KNEES, AND I AM
LOST FOR WORDS SO LOST IN LOVE
I AM SWEETLY BROKEN WHOLLY SURRENDERED

I'M BROKEN FOR YOU
I'M BROKEN FOR YOU MY LORD
JESUS, WHAT LOVE IS THIS
I AM SWEETLY BROKEN


(2011.08.21)

Amazing Grace

Amazing Grace (My chains are gone)


                                                                by Chris Tomlin







두 말이 필요없는, 무길도한량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우리가 한국에서 아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편집하고 더 첨가하여 새롭게 만들었다.
My Chains Are Gone 이란 부제도 덧붙이고...
원곡도 좋지만 새 버전도 어메이징하기 이를데 없다.
약간 깔깔한 Chris Tomlin의 목소리도 좋고...
나도 좀 저런 목소리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아마 지금쯤 어느 시골 교회 한 귀퉁이에서 기타 치고 있을까? ^^


http://www.youtube.com/watch?v=Y-4NFvI5U9w (클릭)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My chains are gone
I've been set free
My God, my Savior has ransomed me
And like a flood His mercy reigns
Unending love, Amazing grace



The Lord has promised good to me
His word my hope secures
He will my shield and portion be
As long as life endures


My chains are gone
I've been set free
My God, my Savior has ransomed me
And like a flood His mercy reigns
Unending love, Amazing grace

My chains are gone
I've been set free
My God, my Savior has ransomed me
And like a flood His mercy reigns
Unending love, Amazing grace



The earth shall soon dissolve like snow
The sun forbear to shine
But God, Who called me here below
Will be forever mine
Will be forever mine

(2011.08.21 re.)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둘째의 오믈렛



둘째의 오믈렛








"아빠, 어서오세용~"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둘째 녀석이 부엌에서 기웃하며 소리지른다.
말 끝이 올라가는 걸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 모양.
아침에 나가면서 늦잠 잔다고 야단치고 나갔는데, 그새 좀 풀어진 듯 하다.
하기야 나도 저 땐 틈만 나면 낮잠 자고, 늦잠 자고, 저녁밥만 먹고 나면 잠들고...
잠자는 숲속의 왕자가 안된게 신기할 따름이다.

녀석은 그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발휘를 하겠다고 두 팔을 걷어부쳤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 내가 맛있는 오믈렛 해줄께..."
슬쩍 부엌을 들여다보니 도마 위에 양파와 햄을 잘게 썰고 있었다.
밥 공기 안에 날계란 두 개를 담아놓고...
그 정도 양이면 계란 두 개론 좀 부족할거다 하고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한다.
무길도한량도 이젠 요리실력이 웬만큼 늘어서 탁! 보면 척! 안다. ^^





나는 우리 부모님께 무엇을 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슬하에 있을 땐 아마도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우리집엔 워낙 층층으로 여자가 많았기도 하지만, 사내녀석이 고추 떨어질라고 부엌에서 얼씬거린다고 힐난하시던 할머니의 반(反)페미니즘적 사고의 발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멀리 플로리다에 가 한동안 있을 때에, 우리 부모님께선 노구를 이끌고 열여섯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위안하러 와주셨다.
인턴생활로 매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집사람을 대신하여 정의의 사도 무길도한량, 후라이팬 손잡이는 잡았으나...

아마 리포터가 있었다면 이렇게 인터뷰를 했을 것이다.
리포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까?
무길도한량: 아, 예. 우덜은 그저 이가 없으면 잇념으로 한다는 거쥬, 잇념으로...





분명한 것은 잇몸은 분명 이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무길도한량은 나름 자신의 아이디어를 짜내어 식단의 규격화를 추구하였다.
아침: 쏘세지 데친 거, 계란 후라이 또는 삶은 거, 밥, 국물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먹는다.
점심: 라면 (반론 없음), 김치
저녁: 뭐든지 무길도한량이 만드는 거, 김치, 밥, 부모님이 가져오신 김. 이상.
그리고 넉살 좋게 이렇게 말하였다.
먹는게 중요한 건 아니잖유?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

당시 주방장 무길도한량의 저녁메뉴는 이러했던 것 같다.
카레, 카레, 김치볶음밥, 계란볶음밥, 카레, 계란국, 오뎅국, 다시 계란국, 오뎅국(이번엔 계란 풀어서), 카레, 짜장, 부대찌게...
열흘쯤 지나자 무던하게 견디시던 백성들 사이에 분란의 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 암만 식당 가면 다시다 많이 넣는다 해도 한번 가보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네가 해주는 밥, 괜찮긴 한데 좀 맛이 없다.(???)"
아니, 무길도한량이 열심히 만드는데 만족하지 못하신단 말씀인가?




여하간 한식당에 가자는 제안은 무길도한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구성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결국 우리는 차를 몰아 그 동네 제법 한다는 한식당을 찾아갔다.
된장찌게도 시키고 갈비도 굽고 탕수육도 시키고 오징어볶음도 시키고...
둘째녀석의 대표 기도가 끝나고 석쇠에서 지글지글 갈빗살이 익어가자, 비리리리 하시던 부모님의 안색에 화기가 다시 돌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으며 온 가족에게 생기가 넘쳐 흘렀다.

무길도한량?
저도 왜 안먹고 싶었을까...
단지 부모님 앞에서 꿋꿋하게 잘 살고 있다는 표를 내기 위해 고집을 부린거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역시나 중요했다.




"아빠, 맛 없으면 안먹어도 돼."
녀석은 조금 불안한 모습으로 오믈렛 접시를 내쪽으로 내민다.
"맛있어 보이는데, 뭐."
반달 모양으로 접힌 오믈렛은 제법 들어간 양파와 햄 덕분으로 두둑해 보인다.
계란은 태우지 않고 노릇노릇 잘 부쳐 내었다.
오믈렛 위에 토마토케챂을 갈짓자로 짜얹으면서 마음을 다져 먹는다.
잔소리 하지 않기. 잔소리 하지 않기. 잔소리 하지 않기...
무조건 칭찬하기. 무조건 칭찬하기. 무조건 칭찬하기...

그리고 녀석에겐 입속에 침이 고이는 시늉을 하며 오믈렛을 젓가락으로 크게 잘라낸다.
한 입을 벌려 오믈렛을 가져오는 동안 오믈렛에서 양파와 햄 조각들이 마구 떨어져 내린다.
계란이 부족하니 양파와 햄이 따로 놀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입 안으로 쑤욱 집어넣는다.
싱거워... 소금, 소금... 파도 좀 넣어주지...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하기...




녀석은 여전히 씹고 있는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나는 한쪽 눈을 실눈으로 뜨면서 볼따귀에 가득한 오믈렛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척, 녀석에게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녀석의 입가에 그리고 눈가에 미소가 번져간다.
"정말?"
"오, 정말 맛있네... 이건 진짜 와우인데?"
나는 순식간에 오믈렛 한덩이를 먹어버린다.
게걸스럽게...
그리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와, 인제 오믈렛은 아빠보다 더 잘 만드는 걸...?"
"다음에 또 해줄께. 먹고 싶을 때 이야기 해."
오호! 그건 생각 좀 더 하기로 하자... ^^
여하튼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은 코끼리도 춤 추게 만든다고 하잖은가.




(2011.08.16)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갈길히 머다 하나



갈길히 머다 하나 뎌 재 넘어 내 집이라
細路 松林의 달이조차 도다 온다
가득의 굴먹는 나귀를 모라 므삼하리


                                                       (무명씨)


갈길이 멀다 하나 저 고개만 넘으면 내 집이다
오솔길 솔밭 사이로 달까지 돋아 길을 밝혀준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이지 못한 나귀를 재촉하여 무엇하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남쪽 지방의 숨 막히는 폭염과 습도와 싸우다 돌아온 아내는 무길도에 빠져들었다.

긴 팔을 입어야 할지, 짧은 팔을 입어야 할지 조금은 고민스러우면서도 쾌적한 기온.
쬐어도 쬐어도 덥게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햇볕.
나무들 우거진 숲을 지나며 신선한 나무향을 입은 맑은 공기.
가끔씩 바람에 실려오는 먼 갯내음.
그리고 속세의 번잡함과 소란함을 벗어난 평화로움...
(쓰다보니 좋은 말은 다 골라 썼군. ^^;;)

그래서,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은 휴일 오후, 우리는 도서관 뒷쪽에서 시작하는 걸치(gulch: 침식으로 만들어진 협곡)로 산보를 나가기로 했다.
이미 한번 92번가 공원까지의 구간을 가본 적이 있는 첫째 녀석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장을 섰다.
나를 따르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전나무들 틈 사이로 하늘 가장자리를 보면서, 우리는 최소 수십만년 동안 자연이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어 만든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따라 걸어갔다.
서늘한 골짜기의 기온에 무릎 보다도 높이 자란 고사리들...
바다까지 이어지는 걸치를 따라 우리들의 재잘거림도 이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신이 주신 선물, 어쩌고 저쩌고... ^^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새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로 들어섰고, 비가 그친지 열흘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마르지 않은 진흙길을 군데군데 지나면서 길은 점차 험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맨 앞에서 발걸음도 가볍게 나아가던 첫째 녀석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돌아섰다.
"두갈래 길인데 어느쪽인지 모르겠어..."
"92번가 공원이 걸치 위에 있으니 올라가는 길 아니겠어?"
정세파악에 일가견이 있는 아빠, 무길도한량이 앞장서서 언덕 위로 향한 길로 가기 시작했다.

길은 점차 깎아지른 걸치의 벽 허리께를 향하고, 길폭은 점점 좁아들어 우리는 쓰러져 가로누은 나무를 타고 넘기도 하며 두 발보다 네 발을 이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에게 주의할 곳을 가르쳐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서 용케 버티며 나아갔지만, 종국에 30m 절벽 위에 대롱대롱 버티고 선 네마리의 산양들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 길이 없어?"
뒤에서 아내가 묻는다.
"아니... 길은 있는데... 길이 좁아서 아이들에겐 좀 무리일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돌아가자."
무길도한량이 지친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본다.
"이곳은 지난다 해도 다음이 또 어떨지 모르잖아?"
"그래. 맞다. 돌아가자."
우리는 다시 또 기어서 미끌어지면서 올라왔던 절벽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째가 정확하게 아는 길목까지 되돌아온 우리는 다시 첫째에게 리더를 맡기며 지친 몸에 이끌고 도서관 뒷길을 향해 나아갔다.
"여기서 저 언덕만 올라가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큰 길이 나와."
돌아가는 즐거움에서인지, 아니면 아는 길을 간다는 편안함에서인지 녀석의 발걸음은 날아가는 듯 했다.

"아, 이녀석아, 좀 천천히 좀 가라. 아빠 엄마 숲속에 버리러 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왜 이렇게 빨리 간단 말이냐?"
지치고 힘 빠진 무길도한량은 맨 뒤에 처져 비오듯 땀을 흘리며 쫓아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녀석은 계속되는 무길도한량의 투덜거림도 아랑곳 없이 속도를 내고...
"저 녀석이 아까 절벽에선 꼼짝 못하더니...에잉."

오붓하리라 예상했던 우리가족의 산책은 협곡에서 두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매이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얻은 것도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 한가지로 마음을 통일하고 같이 노력했다는 것.
누구도 잘못한 사람에게 불평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주었다는 것.
힘들었지만 나름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
어이크, 사방에서 베개들이 날라온다! ^^

2011년 8월 3일 수요일

미나리 한 펄기를



미나리 한 펄기를 캐여서 싯우이다
년대 아니아 우리님께 바자오이다
맛이아 긴지 아니커니와 다시 십어 보소서


                                    (유희춘)


미나리 한 포기를 캐어서 씻겠습니다
다른 데 아니고 우리 님께 바치겠습니다
맛이 좋지 않더라도 자꾸 씹어보십시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는 유명한 애처가(愛妻家)였다.
어느 겨울 승지의 직책으로 대궐에서 숙직할 때 모주 한동이가 생기자, 따로 남기어 일필휘지 시 한 수와 함께 아내에게 보낸다.

눈 내리고 바람 불어 더 추워지니
냉방에 앉아 있을 당신 생각이 나는구료
이 술이 변변치는 않은 술이지만
찬 속을 덥히기엔 충분하리이다.

오버. 애처가 올림

그의 아내는 또 당대 둘째 가면 서러워 할 여류시인 송덕봉.
즉시 마른 붓 끝에 침 묻혀 남편에게 답시를 쓴다.

국화잎에 눈발이 날려도
은대에는 따뜻한 방이 있겠지요
추운 집에서 따뜻한 술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여기서 '은대'는 승정원을 이야기 한다.

유희춘이 을사사화에 엮이어 19년 동안 함경도 종성에 유배 되었을 때, 그녀는 그를 돕고자 아득한 북쪽 땅으로 그를 찾아가 유배생활을 같이 한다.


行行遂至 摩天領   (행행수지 마천령)
東海無邊 鏡面平   (동해무변 경면평)
萬里婦人 何事到   (만리부인 하사도)
三從意重 一身輕   (삼종의중 일신경)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오르니
끝없는 동해가 거울처럼 평평하다
만리길을 아녀자가 무슨 일로 왔을꼬
삼종의 길은 중하고 일신은 가벼웠을 뿐.

19년 + 보너스 1년...
무슨 프로선수 계약조건도 아닌 것이, 길기도 참 길었다.
그녀 나이 스물 일곱에 고생길은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함께 한 아내에 유희춘은 감동, 더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선조임금이 들어서면서 그는 복직, 승진...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숙직하다 아내에게 쪽지도 살짝 보내면서... ^^

그래서 우리도 이같이 사랑하며 잘 살리라...
하고 교훈적인 끝맺음으로 오늘 이야기를 맺으리라고 예상하시는 분들, 잠깐!

허허... 그 이야기엔 반전도 있지비.
그 시대의 사대부라면 대부분이 그랬듯이, 유희춘은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했다지?
자식도 여럿 낳고 말이지...
하지만 그녀는 그들마저도 잘 보살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네.

하여간 여자의 팔자라는 건, 차암.... ㅉㅉ


(2011.08.03)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Farewell to Yahoo!


 
Farewell to Yahoo!








2007년 9월 30일 이래, 야후 블로그에 "심심하면 카메라 뜯어보기" 라는 블로그 타이틀로 포스팅을 시작한지 벌써 거의 4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분들과 소중한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무길도한량은 오늘부로 야후를 떠나 새로운 곳에 초막을 짓고자 합니다.
사실 야후의 블로그 업그레이드 이후 그동안 여러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들로 포스팅에 불편을 겪어, 야후 블로그측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야후측으로서도 아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임을 밝혀와 무길도한량은 심사숙고 끝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포스팅을 보시면 아마도 그 구체적인 문제점들의 일부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떠나는 마당에 굳이 야후를 탓하기는 싫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히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무길도한량은 또한 야후에 감사를 드립니다.
4년여의 시간 동안 약 500편에 달하는 보잘것 없는 나의 글들의 거처를 제공하였고, 또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저에게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 멋지고 사용하기 편리한 야후 블로그로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무길도한량은 구X로 자리를 옮겨 '무길도한량의 고물창고' 라는 새로운 문패를 답니다.
그곳은 야후처럼 멋지진 않아도 큰 불편없는 블로그 포스팅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야후 블로그를 통해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히 감사드리오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길도한량 배상.

(2011.07.25)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 포스팅 안됨






야후의 엉터리 같은 스팸체크 관계로 글이 포스팅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 글에 스팸성이 있다고 하네요. ^^

죄송합니다. (무길도한량 올림)
(2009.08.12)


--- 3일 후

다행히 다시 정상적으로 되는 모양입니다.

(저도 스팸을 좋아하지 않응께... 
단, 통조림 스팸은 좋아하지요.^^)

성원 보내주신 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꾸벅)
항상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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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라의 여인



스톨라의 여인








더위도 식힐 겸 아픈 허리 운동도 할겸 아이들과 목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따땃한 8월 아침 햇살이 눈을 제법 자극하지만, 푸른 숲에 둘러싸인 목장을 보면서 마음이 이내 가벼워졌다.
멀리서 말들이 코파람 부는 소리, 나보다 더 큰 송아지가 엄마 찾는 소리...
학창시절 배웠던 '목장길 따라'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내친 김에 2절도 한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람 고백하기 좋았네
숲 근처 올 때 두견새 울어 내 사랑 고백하기 좋았네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 품! 품! 품!


아, 더 멋진 3절도 있는데...
아이들의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진도를 못나가게 한다.

아빠, 아빠, 스톨라 품파 스톨라 품파가 무슨 뜻이야? 
???

아- 아이들은 왜 어른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걸까?
두런 두런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대답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야아~, 저기 양들 좀 봐라~
화제를 얼른 바꾸어 일단 긴급위기상황을 모면해낸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부랴부랴 컴퓨터부터 켜고 스톨라 품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한다.
아빠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는가...
그러나 정확한 답은 찾을 길이 없고, 비스므레한 조각자료들만 찾아낼 수 있다. --;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자료를 잘 찾는다는데, 아무래도 난 아닌가 보다.

일단 슬로바키아 북쪽에 있는 지명에서 Stola 를 찾아냈다. (OK, 요건 쓸만하다)
이 노래가 보헤미아 민요이고 보헤미안 지방이 그 근처에 있으니 일단 stola 는 보헤미안 지방의 한 고장이라고 하자.
이 지방엔 집시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기존 사회의 관습과 질서에 구애되지 않는, 좋은 말로는 자유분방하게, 나쁜 말로는 방랑천리 떠돌아 다니는 습성이 있어 이것이 보헤미안의 뜻처럼 쓰이기도 한다.

다음, poompa 는 정말 찾기가 어려웠는데...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떠돌아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음악해설 중 poompa 를 여성성기를 가르키는 비속어로 쓰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여자를 지칭하는 대(代)명사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stola poompa 는 "스톨라에 사는 여인" 이란 뜻일 수도 있겠고 (마치 '아를르의 여인' 에서 보듯), 끝에 짧게 poom 한 것은 poompa의 애칭으로 poom! 
...안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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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에, 어불성설에, 얼토당토 하지 않지만 쪼가리 지식으로 뭔가 그럴싸 하게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몰라 하는 것보단, 그래도 뭔가 끄나풀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인 효과가 더 좋은지 나쁜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3절을 읊어보자.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무수한 별이 반짝였으나 내 님의 사랑 더욱더 빛나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스톨라 스톨라 스톨라 여인 스톨라 여인 응 응 응

마지막 여인을 한글로 더 짧게 줄이니 별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 되는 관계로 좀 더 애교스런 다른 말로 바꿨다. 

수 많은 외국 민요들을 채보하고 번역하여 우리들의 즐거운 캠프송 포크송으로 만들어 보급하신, 싱어롱 프로그램의 대가 전석환님께여쭤보아야 할 문제인듯 하다.
'조개껍질 묶어', '목장길 따라', '석별의 정', '사모하는 마음', '그리운 고향', '꼬부랑할머니가' 등등건전가요집에 수록된 수 많은 노래들이 그 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니...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척 나타나셔서 모든 사람을 건전한 노래를 통해 하나로 만들어주시던 전석환님이야말로 통기타의 절대원조라 할 수 있는 분이다.

목장길 따라 산책한 후, 아이들은 가벼운 샤워를 하고 몸을 식히려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릇에 담고있다.
적당히 끼어들어가 스톨라 품파 이야기를 해주어야 되겠는데... 생각하고 틈을 엿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그런 것이 있었는지... 하는 눈치다.
그들은 스톨라의 여인을 목장길에 두고 왔나보다.

에이, 나도 더운데...
먼저 퍼놓은 아이스크림을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당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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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

수박냉차와 딱성냥

수박냉차와 딱성냥





   
         

벌써 밤하늘엔 별들이 한가득 한데 아빤 아직도 오시질 않는다.
평상 한가운데 누워 하나 둘 별을 세던 아랫집 진이는 이젠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포대기에 쌓인 채로 칭얼거리던 동생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어머니 등 뒤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있다.
진이가 대(大)자로 펼쳐누운 평상의 주변을 돌아가며 한귀퉁이씩을 차지한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 소리는 도란도란 들려오고 밤의 한기가 내리는지 서늘해진 저녁 공기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의 따뜻한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엄마,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줘...
엄마가 섬그늘에?
불쑥 꺼내는 소년의 말에 어머니가 되물으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하는거 있잖아.
으응, 그래.
어머니는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저 아래 동네에선 신작로를 내느라 우리 동네 밑에 자리한 바위산을 깨내는 다이너마이트가 수시로 뻥! 뻥! 터지고, 바위가 튀지 않도록 덮은 가마니들은 하늘 높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저러다간 우리 동네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머닌 우리가 그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하루에도 몇차례씩 주의를 주셨다.

때 이른 더위는 어린이날이 지나기 무섭게 반팔이며 양산이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어느날은 수박냉차 아저씨까지 낑낑거리며 짐자전차를 끌고 우리 동네까지 올라왔다.
그가 올라올 때 자전거 뒤켠으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가마니들이 날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졌다.

덥기로는 그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더운 것처럼 보여서, 저렇게 땀을 흘리다간 싣고 온 냉차를 아저씨가 혼자 다 마셔도 부족할 듯 싶었다.
그는 공터 옆 처마 밑 그늘에 털썩 주저앉더니 챙 좁은 밀짚모자를 뒤로 조금 제끼고, 이상한 푸른색 무늬들이 어지럽도록 마구 새겨진 셔츠의 윗단추 두개를 풀었다.
그리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한쪽 끝을 잡고 두어번 탁탁 털어내 손수건을 넓게 펼친 후 얼굴이며 목에 난 땀을 마구 문지른 후 수건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목도리 마냥 뒷목에 걸쳤다.

그가 커다란 수박 한덩이와 얼음이 담긴 냉차통에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를 끌어내려 유리컵에 넣자 유리컵엔 금새 갈색 액체가 가득 차올랐다.
냉차통을 향해 빙 둘러선 아이들을 향해 건배를 하듯 유리컵을 들어보이더니 냉차아저씨는 단숨에 그것을 자신의 긴 목 속으로 털어넣었다.
캬아~, 시원타!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어이 시원해, 어이 시원해 하는 소리를 연방 내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셔츠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가치를 입에 물은 후 딱성냥을 구두굽에 그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이자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탄성.

다시 한 번 입가에 씨익 웃음을 새긴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있게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가 길게 내뱉으며 머리에 얹힌 밀짚모자를 내려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겠지?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한 컵에 10원이다.
아이들은 10원이라는 액수에 그만 맥이 탁 풀리는 눈치였다.
이 동네 아이들에게 10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이 아저씨는 모르는 것일까?
10원이면 삼립 크림빵이 하난데...
빠르게 냉랭하게 식어가는 아이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냉차아저씨가 민첩성을 발휘한다.
근데! 이 아저씨가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선 5원에도 줄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입가엔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담배를 한 번 길게 빨아 하늘에 대고 동그라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야아....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지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멋지지?
예!
좋다. 그럼 이 아저씨가 너희들을 위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마.
아이들은 호기심에 부풀어 냉차아저씨의 입으로 모든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아... 냉차 한 잔에 5원에다가 아저씨가 이 딱성냥 하나씩 선물로 주마. 이 딱성냥 있으면 너네 아버지들도 이 아저씨처럼 동그라미 만들 수 있어. 심심할 때 아버지한테 동그라미 만들어달라 그래.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것만도 충분히 신기한데, 동그라미까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의견교환을 하느라 조금 부산해진다.

그 중 나이든 4학년 아이가 손을 들며 질문을 한다.
저는요, 얼음 먹으면 배 아파서 안되는데요?
맞습니다. 얘는 설사쟁이래요.
눈치없이 옆에 선 녀석이 끼어든다.
냉차아저씨는 안됐다는 듯이 혀를 두어번 끌끌 차더니 어쩐다 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다가, 두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낸다.
그래, 아저씨가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눈들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가선다.
아저씨가 말야... 냉차 싫은 사람은 딱성냥 3개를 10원에 주마. 어떠냐?
아이들은 순식간에 각자 집으로 사방팔방 흩어져 간다.

햇볕 내리쬐는 공터엔 냉차아저씨와 소년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년은 햇볕에 눈이 부셔 인상을 쓰며 냉차통을 올려다 보고있다.
너는 왜 안가냐?
아저씨가 물었다.
전 돈이 없는데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엄마도 돈이 없는데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아저씨는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어낸다.
순간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마을 전체가 몸서리를 쳤다.

옛다, 이거 한 잔 마셔라.
아저씬 유리컵에 차디찬 냉차를 가득 부어 소년에게 내밀었다.
아녜요... 안되요. 우리 엄마가 얻어먹는건 거지래요.
소년이 도리질을 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냐, 임마.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인거야. 어서 마셔.
벌써 몇몇 녀석들이 돈을 가지고 공터로 달려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냉차아저씨에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단숨에 냉차를 들이마셨다.
커- 시원한지고... ^^

그날 딱성냥을 산 녀석들 중의 몇몇은 쓸데없이 돈 썼다고 등짝을 후려맞았다고도 하고, 몇몇 녀석은 냉차 먹고 배탈이 났다고도 한다.
냉차도 한 잔 얻어마시고 딱성냥까지 하나 얻은 소년은 밤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를 뵙지 못한 관계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부엌에 몰래 숨겨 놓았다.
어느날 밤 장난끼가 발동한 소년은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와 함께 불장난을 하다가 농 위에 쌓은 이불 위로 늘어진 담요에 불이 옮겨붙어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하여 한동안 그 동네엔 등짝에 손바닥 문신한 녀석들과 종아리에 가로줄 무늬 새긴 녀석들이 공터에 때 이른 모기들처럼 득시글 거렸다고 한다.
바위벽을 깨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폭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2011.06.14)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우리가 어렸을 때 뜻도 모르고 쓰던 단어들이다. (물론 바보는 예외지만... ^^)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맘 편한 한량이란 작자가 하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고 이해하시길... ^^

바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천치: 선천적으로 정신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멍텅구리 : 멍청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으버리: 사전에 안나오나 부산지방에선 '어바리' 라고 쓴다고 하여, 다시 어바리를 찾아봄. 발견!
어바리: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 (하여, 으버리는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인 것으로 추정됨)
쪼다: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쪼다에 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예전에 어느 코미디언이 벤허 영화가 히트 했을 때, 주인공 쥬다 벤허 (Judah Ben-Hur) 가 하도 바보 같고 천치 같고 멍텅구리 같이 답답했던 관계로 "에이, 이 쥬다 같은 녀석아" 하고 놀렸다는데서 '쪼다' 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거야 말로 100% 믿거나 말거나... ^^

여하튼, 무길도한량은 왜 이런 어바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앉았을까?
본래의 쓰임새와 달리, 사실은 이것들이 우리 형제들 간에 통용되던 '욕'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성적인 욕설이나 동물에 빗댄 말들이 우리 집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안쓰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성인들은... ^^) 우리 예삿것들은 화가 나고 폭발해야만 할 때 무언가 대용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쓸 상황이 없다면 또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이란 것이 적당히 부딪히며 살아야 잘 산다고 하지들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놀림말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화가 조금 나면, "바보!"
그거보다 조금 더 나면, "바보천치!"
그거보다도 또 눈꼽 만큼이라도 더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
또 그거보다 더 많이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의 다섯 단계로 세기를 조절하며 표현하기로 우린 약속했다.

누구는 어렸을 때부터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나쁜 XX" 하고 욕하는 것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다섯 단어의 조합을 어느 만큼 빨리 구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고 연구했다.
"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에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이것이 한 단어처럼 수려한 모습으로 유창하게 흘러나왔을 때야 그것이 '잘 사용된' 모습의 욕이 되었지, 천천히 '이런 바보, 천치, 멍텅구리...' 하고 주워 섬긴다면 그건 김이 싹 빠져버려 더 이상 아무 느낌도 매력도 없는 칠성사이다 슈바~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본론으로 가서...
어릴 적 나의 동생들은 순하고 착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사악한 오빠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며 살아왔다.
시집을 가고 아이들을 키우며 이젠 사십이 넘은 지금에도 그러하리 라고 생각은 않지만, 옛날엔 '에구, 이 미련아~' 하며 주먹으로 살짝 알밤만 주어도 3초 이내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구는 여린 녀석들이었다.
오빠의 말을 잘 듣고 같이 잘 놀고 오빠의 잘못에도 부모님께 고자질하지 않고, 혼자 벽 보고 앉아 눈물로 앙금을 녹여내던 의리의 돌쇠들이었다.
(참조: 노변한담 중 '오빠란...'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422 )

오늘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상급반이었던 무길도한량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에헴)
방구석에 들어앉아 몇날 몇일을 프라모델을 만드느라 처박혀 있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노올자~' 하는 소리만 들으면 금새 궁뎅이가 들썩들썩 하여, 참아내질 못하고 곧바로 달려나가야만 했다.
그날도 빠알간 가을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부리나케 신발을 꺾어 신으며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며 현관을 튀어나갈 찰나,
"잠깐 나 좀 보자." --

어머닌 막내를 데리고 시장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무길도한량이 동생 K를 봐주기를 원하셨다.
"어, 축구 가야 하는데..."
그러자 어머닌 무길도한량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시며,
"학교 앞 한씨문방구에서 얘랑 같이 아톰바도 하나씩 먹고... 같이 좀 데려가라."
아톰바!
그렇지 않아도 쓸쓸해져가는 가을바람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아톰바를 거부할 수 있는 자, 게 누가 있나?
(아톰바가 무엇이냐? 삼립인지 샤니인지에서 나온 어묵꼬치바로 호빵통처럼 둥그런 통에서 덥혀 팔았던... 요즘 핫바의 기원이라고나 할까?)

무길도한량은 동생 K를 학교 동문 앞 한씨문방구로 데리고 들어갔다.
먼저 아톰바 하나를 K에게 내밀며 그는 물었다.
"너 추운데 나가서 스탠드에 앉아 축구 볼래? 아니면 따뜻한 여기서 아톰바 먹으면서 기다릴래?"
"여기 있을께."
"자, 그럼 시간이 좀 걸릴거니까 이 오빠 것도 네가 먹어."
"오빤 안먹어?"
"암만 해도 여기에서 기다리는 네가 먹는게 나을것 같다."
"빨리 와야돼."
그는 양손에 아톰바를 든 동생을 뒤로 하고 운동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야호! 짐 덜었다!) ^^

모처럼 인원이 꽉 차 축구는 제대로 재미가 났다.
1대0 이 되고, 1대1 이 되고, 1대2 가 되고, 또 2대2 가 되고... 야호~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국기강하식에 걸려 잠시 애국가가 울리는 동안 꼼짝없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태극기가 내려지는 것을 본 후, 그들은 축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교문을 잠그기 위해 소사아저씨들이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다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저씨들이 휘휘 모는대로 남문을 향하여 아이들과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기며 걸어나갔다.

아이들과 즐거웠던 시간을 되새기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집 앞에 도착한 것은 벌써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땀 젓은 웃도리를 마루에 내려놓으려 할 때 그는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녀왔냐?"
아차!
그는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다시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아차차!

한씨문방구 아줌마의 눈꼬리는 이미 양옆으로 한 15도씩은 치켜 올라가 있었다.
그 옆에서 동생 K는 눈물 콧물을 비오듯 쏟아내며 잉-잉- 울고 있고...
"어떻게 집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를 이렇게 혼자 놔두니? 문도 못닫고 이게 뭐람?"
아줌마가 하는 소리가 앵앵거리며 그의 귀를 때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깜빡 까먹었다.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날 까먹을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는 슬며시 동생의 코트자락을 들어올려서 일단 콧물을 닦아준다.
"미안하다니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긴 골목길을 따라 벌써 보안등이 하나씩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서러운 기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고만 울어라."
이마 옆으로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그는 동생을 달래려 애를 썼다.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엄마한테 다 일러줄거야...잉잉잉~"
"아, 글쎄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골목 초입의 훈이네 집에서 된장찌게 끓이는 냄새가 온동네를 진동하며 풍겨나왔다.
그의 뱃속에서도 동생의 뱃속에서도 합창하듯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났다.
"잉잉잉~ 배두 고파... 잉잉잉~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래... 빨리 가서 우리도 밥 먹자. 제발 좀 그만 울어라잉~"
어둠 속으로 낯 익은 하늘색 대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동생의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오늘도 또 긴긴 밤이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그를 업습해왔다.


(2011.05.10)

가벼운 양식

가벼운 양식






           
정동 MBC에서 덕수궁쪽으로 돌아나가는 그 언저리엔 오래된 경양식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따리아노' 라 하여, 국적 불분명한 경양식집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던 당시에 이탈리안 스타일의 경양식이라고 꼭 꼬집어 표방한 레스토랑이었다.
실내 장식이나 웨이츄레스들의 복장에선 이탈리아의 향기가 났었던 듯 하지만, 그렇다고 메뉴 자체가 100% 이탈리안식은 아니었던... 하지만 그 분위기와 맛이 상당히 괜찮아서 각종 행사치레 하는 사람들이 잘 찾는, 그런 곳이 있었다.
야채스프와 따뜻한 모닝빵이 인상 깊었었다.

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나와 대한문을 지나고 다시 반대편 돌담길로 들어서면 막다른 길 끝으로 영국대사관이 보이는 골목 안으로 세실극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 '세실레스토랑' 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재야 인사들이 모여 독재에 항거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도 갖고 하던 곳으로 TV 뉴스에 자주 나오던, 그런 쪽으로 유명한 경양식집이었다.
젊은 날에 드나들 때에도 항상 뒷통수로 쏟아지는 감시의 눈길을 느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아내와 선 본 날 점심식사를 하러 가 스파게티와 세실정식을 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가격 대비 내용이 충실한 편이었고...

영등포 역전엔 신세계백화점 맞은편으로 제법 큰 '해바라기' 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의 특색은 대부분의 경양식집이 소규모라 음악을 주로 카운터에 있는 오디오를 통해 틀어주었던 것과는 달리, 중앙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있어서 30분 마다 생생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던 곳이었다.
생음악에 감동 먹은 무길도한량이 촌스럽게도 쪽지에 신청곡을 써서 피아니스트에게 건네주려다, 옆에서 지키고 있던 험상궂은 덩치에 의해 눈흘김을 당해 쫓겨날 뻔 했던 곳이었는데 실내장식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개방성이 특징이었고, 거리에선 볼 수 없었던 초미니스커트의 웨이츄레스들이 실내장식을 대신하던 곳.
가장 싼 돈까스정식은 혼자 먹기엔 벅찰 정도로 풍족한 모습이었다.

보신각 뒷쪽으로는 꽤 많은 경양식집들이 빌딩 지하마다 위치하고 있었는데, 수 많은 대학가 미팅들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또 수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들이 깨어져나간 역사적인 지역으로 '반줄', '일과 이분의 일', '오감도' 등등의 경양식들이 유명했다.
가수 현인, 가수 전영의 탱고 '서울야곡' 의 가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2절에 보면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이곳 경양식집들은 맛 보다는 만남의 장소로서의 분위기 창출에 충실했던 면이 있었다.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노래를 안듣고 그냥 갈 수는 없겠다.
http://www.youtube.com/watch?v=2G8j1gN6JQU (클릭!)

지금이야 곳곳에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들이 사방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양식집이란게 그리 많지 않아서 '너, 또랑에 가서 썰어봤어?' 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낯선 곳 중의 하나였고, 레스토랑들도 정통을 표방하기엔 좀 미안했던지 '가벼운' 이란 표현을 붙여 경양식이라고 부르던 것이 현실이었다.
중요한 만남을 갖는데, 어디 가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삼겹살 구워 쌈 싸먹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국밥 한 그릇씩 놓고 마주 앉거나 입 가장자리에 진한 짜장 묻혀가면서 이야기 하기도 그런 경우들에는 경양식집이 신발 안 벗고 간편히 의자에 앉아 폼 잡으며 먹기에 제 격이라서 그런지 제법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래도 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여전히 가격은 높아, 제법 용돈을 많이 받던 무길도한량도 맘 먹고 한 번 가서 칼질하고 오면 일주일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음식들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걸 어찌하랴...

그곳의 음식이 어쨌었길래...?
아, 그거야 경양식집에 가서 한 번 썰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식도락이 있지 않았겠남?
우선, 거기에서 주로 파는 메뉴를 주욱 한 번 나열해보자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그리고 스파게티가 있었고, 칼질하는 종류로는 돈까스, 함박스텍, 비후스텍, 비후까스 그리고 정식 등이 있었고, 안주론 멕시칸샐러드, 과일샐러드 등등...
아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맛이 심히 그리우나 풀 길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

대부분의 경양식집들은 빌딩 지하나 2층에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좀 어두침침한 분위기에서 테이블마다 개별 조명이 있고 여기저기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가 당시엔 터부처럼 느껴지던 여자들의 흡연인구 증가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조용한 음악은 흐르고 여기저기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 나즈막하게 도란도란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단정히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는 통가죽으로 커버를 씌운 메뉴판과 따뜻한 보리차를 유리잔에 담아 내어온다.
무엇을 먹어볼까나...
서너 테이블 건너에 앉은 여자가 후우 하며 테이블 위로 드리워진 백열전등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어올린다.

이 집의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위해서는 정식을 시키는 것이 좋다.
정식엔 돈까스와 생선까스와 함박스텍이 조금씩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식하고 OB 라거 하나 주세요.
스프는 야채스프 하고 크림스프가 있습니다.
크림스프로 주시고요.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밥으로 주세요 한다.
네, 잠시 후에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웨이터는 빼앗듯 메뉴판을 거둬가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우리 식구가 처음 경양식집으로 고기를 썰러 갔던 날,
처음 먹어본 크림스프의 맛은 천상의 음식처럼 우리의 뇌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언제나 아껴먹기를 좋아하고, 항상 좋아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먹는 막내 동생은 한 입 먹은 크림스프가 너무도 맛이 있어서 그것을 제일 나중에 먹고자 남겨두었다.
웨이터가 메인코스 음식를 가지고 와 배열하면서 스프그릇과 숟가락들을 거둬 가버리자 막내 동생은 빼앗긴 자신의 몫이 안타까워 울어버렸다.
한그릇쯤 다시 줄 수도 있었을텐데, 비정한 웨이터는 남은 스프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스프는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지금도 그 크림스프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웨이터는 나이프와 포크와 숟가락을 차례로 배열하고 샐러드접시와 크림스프와 맥주를 내려놓았다.
고깃부스러기가 점점이 박힌 누리끼한 크림스프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얄팍한 접시 위에 살짝 깔려 나온 스프의 양은 한 네 스푼이나 될까?
좀 넉넉한 마음으로 주었으면 좋았을걸...
올리버 트위스트도 아니고 스프를 더 달라 그럴 수도 없고...쯧.
야채샐러드 위엔 케챺과 마요네즈를 적당히 꿀과 함께 섞은 소스가 올려져 있어 포크로 두어번 저어 떠먹으면 그 맛도 제법 괜찮았다.
맥주로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니 벌써 배 저 밑에서 빨리 음식 들여보내라고 신호를 보낸다.

정식 접시는 제법 큼지막한 것이 보기에 기분이 좋았다.
바삭하게 튀겨낸 얇은 돈까스가 왼편에, 역시 마찬가지로 잘 튀겨낸 생선까스가 중앙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함박스텍 조각이 두어개 양송이버섯을 이고 제일 오른쪽으로 자리헀다.
접시 윗켠으론 삶은 당근 두어쪽, 삶은 완두콩과 옥수수알이 약간씩 그리고 마카로니가 서너쪽 차례대로 담겨있다.
같이 나온 밥 접시엔 하얀 쌀밥이 아까의 크림스프 마냥 납작하게 깔려있고 간간히 밥 위에 까만 깨를 몇 뿌려놓았다.
깔끔하게 자른 노란 단무지 몇 조각도 작은 접시에 별도로 담겨 나왔다.

먼저 정식 접시에 얹혀나온 가니쉬 위에 토마토케챺을 뿌려주시고...
아삭하는 소리를 내는 돈까스의 왼쪽을 포크로 잡고 칼로 오른쪽 부분을 먹을 만큼 잘라낼 때 돈까스는 감동의 소리를 내며 빵가루를 떨구었다.
데미그라스 소스도 딱 필요한 양만큼만 뿌려져 있었다.
돈까스를 받아들이는 입 속은 더더욱 가관으로 완전 흥분의 도가니다.
Give me more, Give me more...
한조각을 더 잘라내어 먹을 때쯤엔 나의 입의 양옆은 위로 약 10도 가량 올라갔으리라.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하며 입가심을 한다.

다음은 생선까스의 차례이다.
난형난제...
잘 튀겨낸 생선까스를 먹어보기 전에 돈까스의 맛있음을 논하지 말라!
고, 지금쯤 주방장은 숨어서 나의 모습을 훔쳐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선까스 위를 가로지르며 얹혀져 있는 타르타르소스가 고소함을 더했다.
또 한 번 감동하는 나는 맥주컵을 들어 안보이는 주방장을 위하여 건배를 보낸다.
나의 간 주변에 생기는 지방덩어리를 지금 이 순간엔 생각하지 말기로 하면서...

돈까스와 생선까스를 끝낼 즈음엔 이미 나의 만족도는 100% 가까이로 올라가고 있다.
정식을 안시키고 함박스텍을 시켰으면 소모양의 나무판 위에 철판이 얹혀있는 함박스텍 전용용기에 담겨 나왔을까?
소스와 함께 자글자글 끓는 함박스텍 위에 어떤 집에서는 치즈 한조각을 올려주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달걀반숙도 올려주기도 하는데...
따뜻한 모닝롤을 안시키고 밥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함박스텍과 함께 먹기 위함이었다.
돈까스와 치킨까스가 비워준 자리에 밥을 솔솔 옮겨놓고 (누구 안보지? ^^) 함박스텍 소스에 밥을 비벼가면서... 나이프도 필요없다.
부드럽게 잘 익은 함박스텍은 포크 옆구리로 살짝만 눌러줘도 알아서 잘 잘라지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풍노도와 같이 함박스텍을 즐겨주시고 나면 기다리고 있던 맥주의 마지막 잔으로 소화를 시켜준다.
때 맞춰 나오는 디저트로 커피를 받아들면, 삼천원짜리 정식이 어찌 그리 푸짐하게 느껴지는지... ^^
경양식집 특유의 쓰디쓴 원두커피에 과감하게 프림 둘, 설탕 둘 넣고 휘휘 저어주면 그 향에 취해 저절로 담배 한 대를 당겨 물게 되어있다.
나도 서너 자리 건너편의 여자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식탁 위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속으로 푸우 뿜어보낸다.
먹는 것은 좋은 것이여...

그나저나 일주일치 용돈이 날라갔으니 내일부턴 도시락 싸갖고 다녀야겠군.
교통비나 제대로 남았는지 몰라...?
하루종일 방 구석에 콱 처박혀 지내면 오마니가 돈 떨어진 거 눈치채시고 지원해주지 않으실까?
이런 주말에 미팅건수 들어오면 골치 아픈데...
확실히 경양식은 내 형편에 좀 무리지? --;;
그래도 잘 먹고나니 졸음까지 밀려오니까 기분은 좋구먼... ^^

데모가 시작되었는지 함성소리와 함께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휴교령이라도 떨어질라나...?



















(201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