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바다로 내려갔다.
아침 산보를 할 때 마다 멀리서 슬쩍슬쩍 한자락씩 비춰주는 바다의 푸른 치맛깃을 따라 오솔길을 내려갔다.
지난 이삼일 동안의 스산했던 날씨를 언제 그랬냐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은 쨍! 이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 몇 점 떠가고 무길도의 바다는 파랗게 시린 빛을 뿜고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꺼내 어깨 너머로 휘딱 들쳐메고 숲 사이 바다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엊그제였던가?
두 달 내내 구름 한 점 없던 아침 하늘에 은회색 구름이 뒤덮이고, 좀처럼 볼 수 없던 강한 바람까지 들더니 종내에는 빗방울마저 서너 시간 동안 뿌려댔다.
이제 다시 우기(雨期)의 시작인가 싶을 정도로 공기도 냉랭해지자 특별히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재킷을 꺼내 입었다.
하긴, 내가 느끼지 못하던 사이 벌써 우리 아파트 앞 연못엔 열두마리 오리가족이 날아들었고, 골프장 주변의 몇몇 나무 끝이 빨그스름하게 변한 것이며, 걸을 때 마다 발길에 채이는 낙엽들이며...
자연은 그렇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도 때를 맞춰 순행하고 있었다.




엊그제였던가?
웹캠 너머 부석부석한 얼굴로 부시시한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 긁적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야아, 내 이삼일 병원에 검사 들어가니까 핸드폰 하지 마라."
내가 언제 핸드폰으로 전화 드린 적이 있던가? ^^;;
"내 말은 이삼일 컴퓨터에 안나오더라도 궁금해 하지 말란 이야기다."
이 정도 말씀하면 좀 알아들었어야 자식놈인데...
워낙 센스가 느린 동네사람이라 무길도한량은 그 말씀의 뜻을 읽지 못했다.




엊그제였던가?
어머닌 물으셨다.

"요즘은 왜 글 쓰는게 좀 뜸하다?"
"사진은 잘 안찍냐?"
글쎄 아이들이 개학하고 그러니까 뭔지 모르게 덩달아 마음만 바빠져서...
통 마음 잡고 앉아서 글 쓸 시간도 없고, 사진 찍으러 나갈 시간도 없고...
두런두런 쓸데 없는 핑계만 주어 섬기고 말았다.
"무길도 앞바다도 안가냐?"
아, 무길도 앞바다!
갑니다, 갑니다용~ ^^;;





삐리리리~
소리도 방정 맞게스리 나의 핸드폰이 몸을 배배 꼬며 징징거리며 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나야."
몇 십년 전, 학교앞 문방구에다 잊고 두고 왔었던 첫째 동생이다.
"엄마가 인공심장판막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되어 상태가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무무...무슨 수술???
"혈관을 통해서 뭘 집어넣고 하는 수술인데 성공적인 모양이야. 3일, 일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경과를 체크한대..."
무길도한량도 모르는 사이에 울 어머니는 심장수술을 하셨단다... ^^;;;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천리 만리 밖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길도 앞바다는 그렇게 파란 모습을 하고 오늘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예전 내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며 뿌연 의식의 주변을 헤매일 때는 어머니께서 곁에서 끝없는 기도로 날 지켜주셨다.
어머니께서 어려우실 때를 함께 못해드리는 이 아들내미를 용서하소서.
어머니 옆에서 바싹바싹 마르는 목으로 서계셨을 연로하신 아버지께도 미안함이... --;;
그동안 낙엽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는 줄은 알았어도 부모님의 세월은 세지 못하였다.
나는 시리도록 파란 무길도의 바닷가에 서서 어머니의 쾌유를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를 지켜주세요.

하얀 조약돌 하나를 들어 힘껏 파란 바다를 향해 날려본다.





(2011.09.20)

댓글 3개:

  1. 어제 통화했겠지만...
    엄마 많이 좋아졌으니 넘 걱정마시길...오빠도 언니도...

    정말 감사한 일주일이었음...*^^*

    답글삭제
  2.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좋아지셔서 엊그제는 예배도 보셨답니다.
    그저 내내 건강하시기만 소망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