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5월 8일 화요일

미워할 수 없는 자


미워할 수 없는 자







오늘 천기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요.
맑은 하늘, 밝은 빛, 쾌적한 습도, 상쾌한 산들바람...
내 마음은 뭉개구름 둥실 뜬 파란 하늘 같고요.
뭉개뭉개... 둥실둥실...
이제 무길도의 청풍명월의 시절이 돌아온 모양입니다요.
기분은 그리하여 봄바람 마냥 가벼운데 멀리서 집사람까지 와주었으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요. 





우웅......
그녀의 가벼운 손놀림 끝으로 바리깡은 나의 덥수룩한 머리 위를 질주하며 사방으로 고속도로를 뚫어댔지요.
따지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지 이제 어언 18년의 세월이 흘렀네,
어쩌고 저쩌고...
자꾸 움직이지마!
이렇게 한달에 한번씩 미장원 비용 절약한 것도 따지면 천 불도 넘을거야, 아마?
어쩌고 저쩌고...
움직이지 말라니깐!
반복되는 호령에 샐죽하여 그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지요.
능숙하게 바리깡 날의 깊이를 끼리릭! 조절하고 그녀는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요.
우웅......






우웅...
지금쯤 하늘은 어찌 변했을까 생각하다 이발 후 산보나 제의해볼까 하여 그녀를 불렀지요.
근데 말야...
정적을 깨고 나온 나의 목소리가 목욕탕을 울릴 만큼 컸던지, 깜짝 놀란 그녀의 바리깡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을 나는 느꼈습죠. 
엄마, 난 몰라!
두둥! 바리깡은 당연 스톱 되었지요.
......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니 별 흔적도 없는데 그녀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었습니다요.
거울론 안보일거야.
많이 표시나냐?
거울을 통해 뒷통수를 보려는 듯 두 눈동자를 양끝으로 최대한 굴려가며 내가 물었지요.
응...
흉해?
응...
에이, 쯧.






걷는 동안 그녀가 내 뒷통수를 바라보며 자꾸만 실실 웃더만요.
미안해서 어떻하지?
미안한 사람이 왜 자꾸 실실거리고 웃어?
미안하니까...
그녀가 괜히 더 친한 척 자꾸 나의 팔뚝에 매달렸습니다요.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쯧.
아냐, 그래도 앞에서 보면 잘 생겼어...ㅎㅎㅎ
거 왜 말 한마디에 깜짝 놀래고 그래?
ㅎㅎㅎ 괜찮아, 조금 지나면 괜찮을거야...ㅎㅎㅎ
뒷통수에 눈이 없으니 도대체 얼만큼 빵꾸가 났는지 난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녀가 자꾸만 실실 웃는 걸 보니 제법 큰 빵꾸임에 틀림없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습니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전속이 실수했는데...
한 달은 눈 감고 살아가는 수 밖에요... 쯧.
쯧이구 말구요.






저 바다 건너 올림피아산 위로 하늘빛이 끝없는 설레임에서 우울한 코발트로 변하여 갔읍지요.
곧 또 한바탕 차디찬 비를 쏟으려는 기세겠지요.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총총 산보를 마감했습니다요.
우리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모처럼 한 상에 둘러앉아 가족 분위기를 냈습죠.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가던 큰 아이가 주책없이 물었어요.
어? 근데 아빠 뒷머리 왜 그래?
......

엄마가 배고파서 좀 뜯어먹었어.
엄마가...?
그녀는 구석진 천장 끝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척 했구요.







그녀는 근무 후 한달에 한 번 집에 와서도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긴 하죠.
아이들의 요구사항들을 해결해주랴, 한달 동안 무길도한량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집안일을 챙기랴, 교회 친구들을 만나랴, 그리고 또 학위를 위해 공부하랴...
바리깡으로 나의 머리 밀어주랴...

이런 그녀의 바쁜 일상은 간혹 한밤중의 비명으로 연결이 되곤 했습지요.
나쁜 꿈을 꾸곤 벌떡 일어나 옆에서 고이 자고 있는 사람을 마구 혼내거나, 또는 실제로 다리에 쥐가 나 경련이 오는 다리를 붙들고 밤새 괴로워 하는 일들이 종종 있곤 했었구요.







요전엔 이런 일도 있었구만요.
그녀가, 고이 옆에서 잘 자고 있는 무길도한량의 옆구리를 발길로 냅다 질러버린 것이지요.
억!
자던 중에 옆구리에 발길질을 당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린 저 소리 밖에 없더군요.
이... 웬 아닌 밤중에 옆발질인가!
정신이 번쩍 든 무길도한량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질렀습니다요.
왜 그래?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한밤에 별안간 잠을 깨운 무길도한량을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며 부시시시 일어나 앉았더만요.
일어나 앉긴 했지만 그녀의 두 눈에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아챈 무길도한량, 그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그녀를 다시 눕혀 자도록 해줬습니다요.
끙... 내가 참아야지...
다시 누운 그녀가 이불 속으로 고소해하며 웃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요.






여하간 그래도 우리는 잘 살고 있습지요.
바리깡에 머리도 한 줌 뜯겨도, 한밤중에 옆구리에 옆차기 한 번 받아도...
그녀의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하는 가족사랑 속에 잘 살고 있지요.
언젠가 결혼기념일날 호숫가에 둘이 앉아 츄러스 한 줄로 기념식사를 대신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엔 큰 맘 먹고 좋은 포도주 한 병 땄습죠.
헤... 두어 모금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기냥 잠들어버리더군요.
조금만 더 참자. 나중에 지금 고생하는 거 다 갚아주겠다고 이야기 하려 했었는데, 듣지도 않고 말이죠.

그래도 참 미워할 수는 없겠지요?





(2012.05.08)

댓글 3개:

  1. I am studying sleep disorders now,such as sleep terror disorder, sleep talking disorder,sleep walking disorder etc. Anyway, there is no "sleep kicking disorder"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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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ybe the name is "Sleep Side-Kicking Disorder". Try th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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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I hate to sleep alone. I need somebody who can be kicked during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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