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갈길히 머다 하나



갈길히 머다 하나 뎌 재 넘어 내 집이라
細路 松林의 달이조차 도다 온다
가득의 굴먹는 나귀를 모라 므삼하리


                                                       (무명씨)


갈길이 멀다 하나 저 고개만 넘으면 내 집이다
오솔길 솔밭 사이로 달까지 돋아 길을 밝혀준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이지 못한 나귀를 재촉하여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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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지방의 숨 막히는 폭염과 습도와 싸우다 돌아온 아내는 무길도에 빠져들었다.

긴 팔을 입어야 할지, 짧은 팔을 입어야 할지 조금은 고민스러우면서도 쾌적한 기온.
쬐어도 쬐어도 덥게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햇볕.
나무들 우거진 숲을 지나며 신선한 나무향을 입은 맑은 공기.
가끔씩 바람에 실려오는 먼 갯내음.
그리고 속세의 번잡함과 소란함을 벗어난 평화로움...
(쓰다보니 좋은 말은 다 골라 썼군. ^^;;)

그래서,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은 휴일 오후, 우리는 도서관 뒷쪽에서 시작하는 걸치(gulch: 침식으로 만들어진 협곡)로 산보를 나가기로 했다.
이미 한번 92번가 공원까지의 구간을 가본 적이 있는 첫째 녀석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장을 섰다.
나를 따르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전나무들 틈 사이로 하늘 가장자리를 보면서, 우리는 최소 수십만년 동안 자연이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어 만든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따라 걸어갔다.
서늘한 골짜기의 기온에 무릎 보다도 높이 자란 고사리들...
바다까지 이어지는 걸치를 따라 우리들의 재잘거림도 이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신이 주신 선물, 어쩌고 저쩌고... ^^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새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로 들어섰고, 비가 그친지 열흘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마르지 않은 진흙길을 군데군데 지나면서 길은 점차 험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맨 앞에서 발걸음도 가볍게 나아가던 첫째 녀석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돌아섰다.
"두갈래 길인데 어느쪽인지 모르겠어..."
"92번가 공원이 걸치 위에 있으니 올라가는 길 아니겠어?"
정세파악에 일가견이 있는 아빠, 무길도한량이 앞장서서 언덕 위로 향한 길로 가기 시작했다.

길은 점차 깎아지른 걸치의 벽 허리께를 향하고, 길폭은 점점 좁아들어 우리는 쓰러져 가로누은 나무를 타고 넘기도 하며 두 발보다 네 발을 이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에게 주의할 곳을 가르쳐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서 용케 버티며 나아갔지만, 종국에 30m 절벽 위에 대롱대롱 버티고 선 네마리의 산양들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 길이 없어?"
뒤에서 아내가 묻는다.
"아니... 길은 있는데... 길이 좁아서 아이들에겐 좀 무리일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돌아가자."
무길도한량이 지친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본다.
"이곳은 지난다 해도 다음이 또 어떨지 모르잖아?"
"그래. 맞다. 돌아가자."
우리는 다시 또 기어서 미끌어지면서 올라왔던 절벽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째가 정확하게 아는 길목까지 되돌아온 우리는 다시 첫째에게 리더를 맡기며 지친 몸에 이끌고 도서관 뒷길을 향해 나아갔다.
"여기서 저 언덕만 올라가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큰 길이 나와."
돌아가는 즐거움에서인지, 아니면 아는 길을 간다는 편안함에서인지 녀석의 발걸음은 날아가는 듯 했다.

"아, 이녀석아, 좀 천천히 좀 가라. 아빠 엄마 숲속에 버리러 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왜 이렇게 빨리 간단 말이냐?"
지치고 힘 빠진 무길도한량은 맨 뒤에 처져 비오듯 땀을 흘리며 쫓아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녀석은 계속되는 무길도한량의 투덜거림도 아랑곳 없이 속도를 내고...
"저 녀석이 아까 절벽에선 꼼짝 못하더니...에잉."

오붓하리라 예상했던 우리가족의 산책은 협곡에서 두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매이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얻은 것도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 한가지로 마음을 통일하고 같이 노력했다는 것.
누구도 잘못한 사람에게 불평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주었다는 것.
힘들었지만 나름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
어이크, 사방에서 베개들이 날라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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