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그믐달 뜬 새벽


그믐달 뜬 새벽





새벽녘 푸른 어스름 자락 위로 연노랑 하루가 갓 밝아오는데,
까맣게 키가 큰 나무 왼쪽 어깨 위엔 그믐달 하나 간들 걸려있다.
참 예쁘기도 하다.
그 휘어진 곡선의 단아함이며 금가락지처럼 빛나는 색깔하며...
황진이의 눈썹이 저러 하였을까? ^^

옛적 중국 주나라에선 여인들이 본래의 눈썹을 제거하고 검푸른색으로 눈썹을 다시 그려넣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여기서 누에나방(蛾)의 더듬이 모양의 눈썹(眉)을 최고로 쳤다.
여기서부터 아미(蛾眉)라는 단어가 미인(美人)의 상징어가 되었다.
누에나방의 더듬이를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초승달 같은 모습(아래 사진 참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인=아미=초승달 눈썹', 이런 공식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사진출처: http://www.123rere.com/File/Board/200407)

무길도한량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본 것이야 초승달이 아닌 그믐달이 틀림없지만, 그 예쁘기가 초승이니 그믐이니 따질 것도 없는 것이라서 이야기를 내어봤다.
뭐, 어차피 초승달 뒤집으면 그믐달 아니겠는가? ^^
여하간 그 달이 한 남정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아름다웠다는 얘기.

아름다운 달을 보며 이런 감상에 젖는 이가 세상에 어디 무길도한량 뿐이랴?
유명한 소설가 나도향은 '그믐달' 이란 제목으로 '조선문단' 이란 잡지에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후략)"

과연 그는 당대의 문장가이다.
무길도한량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다 표현해버렸으니...
아, 어찌 하늘은 무길도한량을 세상에 내고 또 나도향을 내었단 말인가? --;;;
같은 하늘은 아니라고...?
에헴, 여하간, 좌우지당간에 그의 표현에 삐침 하나 더하고 뺄 곳이 없다.

얼마전 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나타난 달의 모습을 보고 그림의 제작시기를 밝혀낸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독특하게 표현된 달의 모습을 보고 천문학자는 월식 때일거라는 추측 아래 중요 천문현상까지 기록한 '승정원일기' 와 대조, 정확한 배경날짜를 알아낸 것이다.
한편, 우리의 그믐달은 그의 또 다른 그림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에 등장한다.


신윤복, 야금모행도(夜禁冒行圖)

보시다시피, 그믐달은 동산 위에 깔린 푸른 어스름 위로 떠올라 있고 밤 사이 기생과 거나하게 마시던 한량은 야금(夜禁: 야간통행금지)를 무릅쓰고(冒) 길을 나서는(行) 모습이다.
밤 열시(2경)쯤에 통금을 알리는 인정(人定)을 치고 새벽 4시경 (5경)에 파루(罷漏)를 하였으며 위반자는 시간 때에 따라 곤장 10~30대의 형을 받았으니 '무릅쓴다'는 표현이 적절도 하겠다.
왼쪽엔, 궁인(宮人) 중 홍의를 입은 사람은 야금위반 곤장을 면케 해주었다는 규칙이 있었던 바, 술 취한 한량과 기생의 2차 나들이에 편의를 봐주어 한량이 감사의 표시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저 달은 알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
아마도 저 한량의 부인은 지금쯤 빨래방망이나 다듬이 방망이 하나 곧추 세우고 안방문 앞에 좌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안으로 드시지요. 나으리."
"네, 부인."
퍽! ^^

또 가슴이 숨뿡 닳아버린 애절한 그믐달을 보며 시인 천양희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믐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어머니...
그 어머니의 등에 엎히어 가면서 아이는 달을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엄마의 걸음이 빨라지면 달도 빨리 쫓아오고, 엄마의 걸음이 늦어지면 달도 천천히 쫓아오고...
아이는 자신의 갈 길을 가지 않고 자꾸만 따라오는 달을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본다.
엄마, 달이 자꾸 따라와.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달을 업고 밤길을 갔다.




그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달은 얼음칼처럼 날카로와졌다가도 호박처럼 둥그래졌다간 다시 스러지면서 잊혀질만 하면 또 다시 소생하길 반복한다.

아이는 지금 달보다 육펜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달은 여전히 보이건 보이지 않건 언제나 저만치의 자리에서 아이를 따라온다.
길바닥에 떨어진 육펜스를 찾으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이제 다시 달을 바라볼 것인가?
낡고 깃털이 다 빠져버린 날개를 펼치고 달을 향해 휘적휘적 어깨짓을 할 것인가?
달이 저만치서 내려본다.

예쁜 그믐달이 뜬 새벽이다.

(201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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