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둘째의 오믈렛



둘째의 오믈렛








"아빠, 어서오세용~"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둘째 녀석이 부엌에서 기웃하며 소리지른다.
말 끝이 올라가는 걸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 모양.
아침에 나가면서 늦잠 잔다고 야단치고 나갔는데, 그새 좀 풀어진 듯 하다.
하기야 나도 저 땐 틈만 나면 낮잠 자고, 늦잠 자고, 저녁밥만 먹고 나면 잠들고...
잠자는 숲속의 왕자가 안된게 신기할 따름이다.

녀석은 그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발휘를 하겠다고 두 팔을 걷어부쳤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 내가 맛있는 오믈렛 해줄께..."
슬쩍 부엌을 들여다보니 도마 위에 양파와 햄을 잘게 썰고 있었다.
밥 공기 안에 날계란 두 개를 담아놓고...
그 정도 양이면 계란 두 개론 좀 부족할거다 하고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한다.
무길도한량도 이젠 요리실력이 웬만큼 늘어서 탁! 보면 척! 안다. ^^





나는 우리 부모님께 무엇을 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슬하에 있을 땐 아마도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우리집엔 워낙 층층으로 여자가 많았기도 하지만, 사내녀석이 고추 떨어질라고 부엌에서 얼씬거린다고 힐난하시던 할머니의 반(反)페미니즘적 사고의 발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멀리 플로리다에 가 한동안 있을 때에, 우리 부모님께선 노구를 이끌고 열여섯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위안하러 와주셨다.
인턴생활로 매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집사람을 대신하여 정의의 사도 무길도한량, 후라이팬 손잡이는 잡았으나...

아마 리포터가 있었다면 이렇게 인터뷰를 했을 것이다.
리포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까?
무길도한량: 아, 예. 우덜은 그저 이가 없으면 잇념으로 한다는 거쥬, 잇념으로...





분명한 것은 잇몸은 분명 이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무길도한량은 나름 자신의 아이디어를 짜내어 식단의 규격화를 추구하였다.
아침: 쏘세지 데친 거, 계란 후라이 또는 삶은 거, 밥, 국물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먹는다.
점심: 라면 (반론 없음), 김치
저녁: 뭐든지 무길도한량이 만드는 거, 김치, 밥, 부모님이 가져오신 김. 이상.
그리고 넉살 좋게 이렇게 말하였다.
먹는게 중요한 건 아니잖유?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

당시 주방장 무길도한량의 저녁메뉴는 이러했던 것 같다.
카레, 카레, 김치볶음밥, 계란볶음밥, 카레, 계란국, 오뎅국, 다시 계란국, 오뎅국(이번엔 계란 풀어서), 카레, 짜장, 부대찌게...
열흘쯤 지나자 무던하게 견디시던 백성들 사이에 분란의 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 암만 식당 가면 다시다 많이 넣는다 해도 한번 가보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네가 해주는 밥, 괜찮긴 한데 좀 맛이 없다.(???)"
아니, 무길도한량이 열심히 만드는데 만족하지 못하신단 말씀인가?




여하간 한식당에 가자는 제안은 무길도한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구성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결국 우리는 차를 몰아 그 동네 제법 한다는 한식당을 찾아갔다.
된장찌게도 시키고 갈비도 굽고 탕수육도 시키고 오징어볶음도 시키고...
둘째녀석의 대표 기도가 끝나고 석쇠에서 지글지글 갈빗살이 익어가자, 비리리리 하시던 부모님의 안색에 화기가 다시 돌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으며 온 가족에게 생기가 넘쳐 흘렀다.

무길도한량?
저도 왜 안먹고 싶었을까...
단지 부모님 앞에서 꿋꿋하게 잘 살고 있다는 표를 내기 위해 고집을 부린거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역시나 중요했다.




"아빠, 맛 없으면 안먹어도 돼."
녀석은 조금 불안한 모습으로 오믈렛 접시를 내쪽으로 내민다.
"맛있어 보이는데, 뭐."
반달 모양으로 접힌 오믈렛은 제법 들어간 양파와 햄 덕분으로 두둑해 보인다.
계란은 태우지 않고 노릇노릇 잘 부쳐 내었다.
오믈렛 위에 토마토케챂을 갈짓자로 짜얹으면서 마음을 다져 먹는다.
잔소리 하지 않기. 잔소리 하지 않기. 잔소리 하지 않기...
무조건 칭찬하기. 무조건 칭찬하기. 무조건 칭찬하기...

그리고 녀석에겐 입속에 침이 고이는 시늉을 하며 오믈렛을 젓가락으로 크게 잘라낸다.
한 입을 벌려 오믈렛을 가져오는 동안 오믈렛에서 양파와 햄 조각들이 마구 떨어져 내린다.
계란이 부족하니 양파와 햄이 따로 놀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입 안으로 쑤욱 집어넣는다.
싱거워... 소금, 소금... 파도 좀 넣어주지...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하기...




녀석은 여전히 씹고 있는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나는 한쪽 눈을 실눈으로 뜨면서 볼따귀에 가득한 오믈렛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척, 녀석에게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녀석의 입가에 그리고 눈가에 미소가 번져간다.
"정말?"
"오, 정말 맛있네... 이건 진짜 와우인데?"
나는 순식간에 오믈렛 한덩이를 먹어버린다.
게걸스럽게...
그리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와, 인제 오믈렛은 아빠보다 더 잘 만드는 걸...?"
"다음에 또 해줄께. 먹고 싶을 때 이야기 해."
오호! 그건 생각 좀 더 하기로 하자... ^^
여하튼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하기....
칭찬은 코끼리도 춤 추게 만든다고 하잖은가.




(2011.08.16)


댓글 2개:

  1. ㅋㅋㅋㅋ 참 잘했어요~~~ 칭찬하기,잔소리않기,칭찬하기,잔소리않기,칭찬하기,잔소리않기,칭찬하기,잔소리않기....^^

    답글삭제
  2. 애 둘 키우고나면 성불할 것 같네...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