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얼마만에 드는 햇빛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아침해가 온전히 동산에서 떠서 저녁에 서해로 질 때까지, 회색 비구름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종일 싱싱한 햇살이 내리쬔 것이 얼마만일까?
올해 처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겨우내 비닐을 씌워 닫었던 베란다문을 열고 봄기운에 환기도 시켜본다.
반가우이... 어여들 들어오게나. ^^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골목골목은 벌써 꽃들이 한창이고 벚꽃들은 벌써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날려 포도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모처럼의 햇빛을 즐기려고 거리마다 차들은 가득하고 공원들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빵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는 갈매기나 까마귀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이리저리 바쁘게 쏘다닌다.
이 동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나보다...
그동안의 춥고 긴 우기 동안 어느 골짝 어느 동굴 속에들 살고 있었던가.
오늘은 그네들이 은둔해 온 동굴에도 따뜻한 햇살이 부채살 마냥 퍼져들고 풀썩거리며 지게문이 닫힐 때마다 향기로운 봄기운이 따라들어와 그들의 코끝을 간지럽혔으리라.
오래되어 연신 껌뻑거리는 릴 프로젝터의 누런색 그림 속에 등장할 법한, 어머니들이 짠 두툼한 구닥다리 겨울스웨터에서는 끊임없이 먼지가 쿨럭이고, 한 번 말아 걷은 소매 끝엔 겨울의 더께가 맨질맨질하니 앉아있다.
이런 날은 빛 바랜 레코드재킷에서 모처럼 LP판을 꺼내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억 속의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는 옛노래를 듣고싶다.
먼지 걸리는 소리가 지직거리면 브로크 외벽에 덧입힌 시멘트쪼가리가 듬성듬성 떨어져나간 고향 마을의 다방 스피커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먼 향수에 젖어버리고 만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 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원로가수 백설희의 오리지널도 명곡이지만 때론 조용필의 한 맺힌 목소리도 썩 잘 어울린다.
실연한 열 아홉 소녀의 앙가슴에 사무치도록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꽃은 마치 벌써하루하루를 잃으며 살아가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와 닮아있다.
그렇게 봄날들은 가고 그렇게 서른 즈음에 도달하고...
It's just another day...
세상에 어디 가슴에 대못 하나 박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
세상에 어디 가슴에 구멍 한둘 크게 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
나의 청춘은 격정 속에 스러지고 봄날처럼 화사하게 나의 사랑은 간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은 노인네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수 많은 봄날을 보냈을 저 나이에도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감성이 남아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저 나이라면 아마도 좋은 우스개에도 덜덜 미지근하게 그저 희미한 모습으로 빙긋한 웃음을 보이면 그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어제 산에서 나무하다 견디다 못해 시냇물에다 응가를 했걸랑..."
"아침에 드신 된장찌게, 시냇물에 떠내려온 된장으로 만들었걸랑유..."
두 노인네의 얼굴에 핀 검버섯이 봄바람에 꽃잎처럼 쏟아져내린다.
화려한 봄날이 가고 있다.
또 한 해의 봄이 가고 있다.
(201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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