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곶감을 먹으며 감나무를 떠올리다







때 아닌 가을이야기 한 꼭지.

해 마다 가을이 깊을 때면 우리집 마당 드높은 감나무엔 빠알간 홍시들이 주렁주렁 주렁주렁 열리곤 했다.
긴 장대로 곧추 세워 홍시를 따기 시작하면, 아버지께선 창문 너머로로 내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얘, 꼭대기 것들은 까치밥이니 남겨 두거라."
우리집 장대가 턱 없이 짧아, 감나무의 절반 밖에 미치지 않음에도 항상 확인을 하시곤 했다.
어머니께선 소쿠리 쟁반에 내가 따다 실수로 떨어뜨린 홍시들을 주우시고...
"얘, 좀 살살 혀라. 떨구는 게 반이다."
주홍색 홍시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들 사이로 말갛게 빛을 냈다.





잘 익은 홍시들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곤 했다.
밤 사이에도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는데, 가만히 듣고 있노라 치면 그 소리가 달랐다.
툭!
이건 마당 잔디밭에 떨어지는 소리로 대개 떨어진 홍시들은 절반으로 쩍 갈라졌다.
푸석!
이건 감나무 밑에 자리한 메마른 소철나무 위로 떨어지는 소리. 간혹 성한 눔들이 발견된다.
퍽!
이건 마당가로 세워놓은 정원석들 위로 떨어지는 소리. 건질 것은 하나 없이 처참한 모습.
아이고!
이건 달밤에 감 주으러 나오신 할머니 머리에 감 떨어진 소리. 완전 뭉그러진다. ^^





덕분에 아침 햇살이 내려쬘 무렵이면 마당가에 내놓은 다딤이돌 위엔 그나마 쓸만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홍시들이 열을 지어 놓여있곤 했다.
그 중 가장 괜찮은 것 두엇은 아버지 퇴근하시면 피로회복제로...
두엇은 가끔 마실오시는 어머니 친구분들의 스낵으로...
또 두엇은 홍시라면 입이 홍시만하게 벌어지던 우리 집사람을 위하여...
또 두엇은 가을마당을 거닐다 마당가에 쪼그려 앉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 감 따놓은게 있네? 맛나겠는데... 한번 먹어볼까?'
온전한 감은 먹어도 될까 눈치를 보지만, 이미 깨진 감이야... ^^
그리고 때론 반건시도 만들고, 실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감나무였지만 기실 감나무를 심으신 아버지의 목적은 그 열매를 먹고자 함이 아니라, 그 나무의 자라남을 보시기 위함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관상용이었던 셈이다.
서울 시내 주택가 마당 한가운데 3층집 높이의 감나무가 관상용이라?
그래서 어느날 무길도한량은 그것에 관해 여쭈었다.
우리 감나무가 관상용이란 무슨 뜻이온지요?
"과실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함이 아니니 말하자면 '관상용'이란 것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의미는 좀 다르단다. 눈을 즐겁게 하려면 소나무처럼 더 멋진 나무들을 심었지 않겠니?"
그렇다면 우리 감나무엔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 내가 우리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를 심은 뜻은..."





예로 부터 감나무는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나무라고 불리는데,
첫째,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할 수 있으니 문(文)이 있고,
둘째, 나무가지가 단단하여 화살대를 만들 수 있으니 무(武)가 있으며,
셋째,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표리부동하지 않으니 충(忠)이 있고,
넷째,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 되도록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으며,
다섯째, 노인이 치아를 다 잃어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가 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집 감나무에서 광채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감나무를 심은 뜻을 알고 나니 우리집 감이 더더욱 맛이 있었다... ^^
말하자면, 감나무는 한 집안을 바로 이끌기 위한 아버지의 모토를 대변하는 셈이었다.





지난 연말,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곶감과 동생네 시아버님께서 보내주신 곶감을 냉동실에 잘 보관하고 있다가, 열대지방에서 오랜만에 올라온 집사람에게 꺼내놓았다.
비닐포장을 하고 페이퍼타올로 두어겹 잘 싸둔 덕분에 벌써 두어달이 지났음에도 곶감들은 가장자리에 엷은 성에들만 끼였을 뿐, 가운데 부분은 말캉말캉하였다.
한겨울 수정과에 띄운 곶감 정도의 온도나 될까?
여하간 한 10분 상온에 놔뒀다가 먹으니 그 맛이 여전했다. (장모님, 사장어른 감사합니다.^^)
워낙에 감을 좋아하는 집사람은 곶감 꺼내먹는 재미로 매일 밤이 즐겁고... ^^
그래서 옛말에 '곶감 빼먹는 재미' 라는 표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우린 잘 먹었... 먹고 있다. (다음번을 위해 아끼느라 냉동실에 아직도 좀 남겨놓았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우린 우리집 감나무의 소식을 모른다.
단지 그 근처가 대부분 연립주택들로 메꿔졌다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정이품송 마냥 잘 생긴 그 감나무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감나무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 했던 그 이상(理想)들은 홍시로, 반건시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고, 작은 감 씨앗 속에 들어있는 하얀 숟가락처럼 우리 마음 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곶감을 먹다가 그 수려한 모습의 감나무가 생각이 났다.
그 감나무를 올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생각이 났다.
 




(2012.02.29)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술을 취케 먹고



술을 醉케 먹고 두렷이 안자시니
億萬 시름이 가노라 下直한다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여럿이 둘러앉았으니
억만가지 시름들이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한다
아이야 잔을 가득 채워라, 시름을 이별주로 전송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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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제로서의 술...
수필가 조지 버나드 쇼도  '술은 삶을 꾸려가게끔 버티게 해주는 마취제' 라고 비슷한 뜻으로 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맥베드' 에서 '술은 빨간 코와 잠과 오줌을 가져다준다' 고 했고...
가수 프랭클린 시나트라는 '술은 인간의 가장 나쁜 원수인데,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
사람이 술을 즐겨야지 술이 사람을 갖고 놀면 안될텐데 말이다. ^^

아릴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중 유명한 것 하나를 읽어보자.


A Drinking Song


                             by William Butler Yate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 뿐.
나는 잔을 들고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술이 나오는 멋진 시 라면, 소월의 '님과 벗' 을  또 뺄 수 없다.


님과 벗


                        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香氣로운 때를
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캬~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듯하다.
취하는 것 좋을씨고~ ^^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취하는 것 아니겠는가?
술의 향기에 취하고,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님의 눈빛에 취하고,
세월의 덧없음에 취하고,
사람의 따뜻한 정에 취하고,
......
앞뜰 감나무에 매달린 까치밥에 취하고,
초만원(草滿園) 중국집 탕수육 달초름한 맛에 취하고... ^^

아, 세상 참 살 맛 나지?


(2012.02.21)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참 점잖지 못한 것들







제목이 좀 점잖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뭐하다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쓰도록 하자.
점잖지 못하다고 말한 것엔, 생겨먹기가 그리 생겨먹은 놈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생겨먹기로만 따지면 평생 양반집 밥상에 오르지 못할 듯한 홍합 같은 놈들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다.
그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며칠 전 무길도한량은 W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햄버거집.
햄버거 레스토랑이라고 쓰려다 좀 이상해서 햄버거집이라고 썼더니 더 느낌이 퀴퀴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하여간 햄버거집.
소위 메이져급 훼스트푸드인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아닌, 나름 이 근동에서는 제대로 만든 햄버거로 유명한 고급 햄버거집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끝에 웨이터의 팔뚝에 얹혀나온 커다란 접시의 내용물은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주전자 뚜껑만한 햄버거빵 위에 집게손가락만한 두께의 다진 고기 패티를 두 개를 넣고, 그 위에 치즈와 야채와 베이컨과 토마토와 버섯을 차곡차곡 얹은 후, 다시 주전자 뚜껑만한 예의 그 빵을 덮은, 어마어마한 높이의 햄버거...
높이가 한 10 센티미터는 될까?
쓰러지지 말라고 햄버거 한가운데 깊숙히 꽂아 넣은 긴 이쑤시개가 더 비척해보였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밑을 받치고 양쪽 중지, 약지, 무명지, 새끼손가락의 6개의 손가락으로 햄버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남은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의 끝단을 잡아 눌러주며 입 안으로 전진.
햄버거 먹기를 떡 먹기 만큼이나 좋아하여 나름대로는 햄버거 먹는 방법에 도가 텄다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양쪽으로 도리질 쳐 목근육을 이완시키고, 양손가락을 교대로 뚜두둑 소리를 내도록 접어보고, 허공에 가볍게 뿌리며 손가락을 풀어본다.
저게 한 손에 잡힐까?
마주 앉은 W가 나의 표정을 미소를 띄고 지켜본다.
와우!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한 번 쩍 벌려 햄버거의 높이와 내 입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고개를 갸우뚱 하고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날려본다.
와우!
입을 크게 벌려보았지만 암만 해도 첫 한 입에 베어문다는 것에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W의 눈치를 슬쩍 본다.
넌 그거 어떻게 먹을건데?
"잘라서."
간단한 그의 대답은 들었지만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주변머리에 얹힌 감자튀김부터 깨작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햄버거를 반으로 갈랐다.
나도 얼른 따라서 반으로 가른다.

햄버거의 유래가 독일의 도시 햄버그(함부르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
독일 출신의 W의 와이프 L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 놓는다.
"처음 듣는 소린데...?"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 쏘세지)가 프랑크푸르트(Frankfrut)에서, 빈(Wien: 쏘세지)이 비엔나(Vienna)에서 왔듯이 말이지...
독일 사람도 모르는 일이네...쩝.
"햄버거도 따뜻할 때가 더 맛있으니 어서 먹지?"

L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서 접시에 놓인 햄버거를 들어올린다.
전통적인 공략법 대로 햄버거를 잡아 보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하~ 이거 너무 커서 어떻게 먹어야 될질 모르겠는데...?
실수로 내용물을 질질 흘릴까봐 미리 예방접종을 한자락 너스레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집게손가락으로 햄버거를 굳게 잡아 입으로 우겨우겨 넣어본다.
하지만 끝내 맨 위 뚜껑으로 얹힌 햄버거빵은 입 안으로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만다.

건너다 보니 W는 그 높은 키의 햄버거를 재주껏 포크와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며 먹고 있다.
눈은 지그시 내리깔고...
아차...
울 어머니께서 상추쌈을 먹을 땐 항상 눈을 감고 입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손바닥 위에 상추 한 장을 펼치고 밥을 한숟갈 올리고, 고기와 쌈장과 파무침을 얹고 보면 대부분의 상추쌈은 자신의 한 주먹보다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큰 상추쌈을 한 입에 넣기 위해 두 눈을 부릅 뜨고 아구아구 우겨넣다 보면, 그 얼굴 형상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은 악귀의 얼굴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표정을 보고, 없던 감정도 생겨날 수도 있고...
그러니 상추쌈을 먹을 때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으라는 말씀.

요즘 삼겹살이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가 왜 그렇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나 보다.
그 사이 좋던 사람들도 삼겹살 회식 한 번 하고 나면 사이가 더 벌어지는 이유가...
마주보고 앉아 서로 열심히 눈을 부라려대니 안나빠질래야 안나빠질 수가 없겠다. ^^
이혼율도 높다는데, 특히 부부 사이에 삼겹살 마주 앉아 먹지 말자.
아니면 삼겹살을 같이 먹어도 상추쌈은 해서 먹지를 말던지...

옆길로 빠졌나? ^^
여하간 한국에선 상추쌈, 미국에선 햄버거... 이런 음식들은 참 점잖지 못한 것들이라 하겠다.
서로 눈 치켜 뜨고 먹는 음식들을 우리 사회를 위해서 퇴출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일까?
좋은 맘으로 같이 음식 먹으러 와서 나갈 때는 서로 삐져서 나가게 하는...

W는 여전히 눈을 지긋이 내려깔고 예의 그 햄버거를 나이프로 조각조각 잘라내고 포크를 이용해 재근재근 먹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양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접시 위로 내용물들을 뚝뚝 흘려가며 먹고 있다.
눈 깔아. 눈 깔아...
눈 부릅 뜬 거 이미 봤을거야.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눈 깔아, 눈깔아...

통재로다! 오늘 세상에 점잖지 못한 것들이 무길도한량의 품위를 손상시키는구나... 쩝.






(2012.02.15)

2012년 2월 13일 월요일

He Knows My Name

He Knows My Name







얼마 전, 어머님께서 심장판막수술 이후 많이 안좋으시던 때의 일이다.
아버님께선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성경구절을 붓글씨로 쓰시고 족자로 만드셨고, 어머님께서는 그 족자를 걸어놓고 약해질 때 마다 그 구절을 읽으며 마음에 힘을 얻으셨다고 한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이사야 41:10)"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빽 보다도 더 든든한 빽이 어디 있으랴.
권세 높은 미국 대통령의 빽 보다도, 돈 많은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의 빽 보다도, 지켜주시고 위안해주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다시 일어서기에 든든한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시편 23장 4절에도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고 나와있다.


재빠른 무길도한량도 얼른 부탁드려 똑같은 족자를 갖게 되었다. ^^


창조주의 든든한 빽이 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분께서 절 아주 잘 알거든요...
그리구요, 제가 필요해 부르면 바로 바로 응답해주시거든요..." ^^
그런 노래다.

http://www.youtube.com/watch?v=NXKWsfbizB4&feature=related (클릭)
  

I have a Maker                               나에겐 창조주가 계십니다
He formed my heart                      그분께서 내 마음을 빚으셨지요
Before even time began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My life was in His hands               내 생명은 그분의 손 안에 있었어요

He knows my name                       그분께선 내 이름을 아신답니다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분께선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그분께선 내 눈물 한방울 한방을을 보시고
And hears me when I call              내가 부를 때 마다 응답해주신답니다


I have a Father                              나에겐 아버지가 계십니다
He calls me His own                      그분께서 날 당신의 친자라고 불러주시죠
He'll never leave me                      그리고 그분께선 내가 어디로 다니던지
No matter where I go                     결코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답니다

He knows my name                       그분께선 내 이름을 아신답니다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분께선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그분께선 내 눈물 한방울 한방울을 보시고
And Hears me when I call              내가 부를 때 마다 응답해주신답니다

(2012.02.13)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늙었다 믈너가쟈



늙었다 믈너가쟈 마음과 의론하니
이 님을 바리고 어드러로 가쟛 말고
마음아 너란 잇거라 몸만 몬저 가리라


                                      (송순)


나도 늙었으니 이제 물러나야지 하고 마음과 의논하였더니
이 님을 버리고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한다
마음아 너는 그럼 남아 있거라, 몸만 먼저 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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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은 중종때 과거에 올라 명종때 벼슬이 우참찬에 이르렀다.
하지만 윤원형 일파의 모의로 피비린내 나는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목격하게 되니, 정치판의 이런 꼴 저런 꼴 보기 싫고 어디 깊은 두메산골에나 숨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간절도 했겠다.
하지만 모리배에 휘둘리는 임금을 버리고 떠나려니 속마음은 편치 않고...

그래서 그는 시조로 표현한대로 마음은 님과 함께 두고 몸만 떠나버리기로 하고,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 은거하며 자신이 지은 면앙정(人+免仰亭)에서 시를 지으며 세월을 낚았다고 한다.
무길도한량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

어제는 두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을 미리 당겨서 차려준다고, 생일케이크에 무지개 초도 무려 마흔 아홉개나 꽂고 카드니 선물이니... 해서 나름대로 용돈을 털었다.
둘째는 아빠 모르게 준비한다고 비를 맞으며 한시간을 넘게 걸어 케익을 사오고...
마흔 아홉번째 이빨 빠진 날.... (이빨이 많기도 하네...^^)
별로 이루어낸 것 없이 또 한 살을 덜컥 먹어버리고 만다.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몸 떠나온 지 이제 몇 년이나 되었을까나?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는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먼 그곳을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못난 칠득이 같은 무리들이 나라를 망치든, 쓰레기 같아 경멸해 마지 않는 또 다른 무리들이 세상을 휘젓든, 그곳은 아직도 무길도한량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지 않을 수 없고, 듣고 싶지 않아도 귀 기울이는 그곳.
하지만 그것은 내가 태어난 지리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부모 형제가 아직도 정 붙이고 살고 있는 감성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려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시인이 마지막에 노래했듯 그려지길 소원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도 소박한 면앙정(人+免仰亭) 한 채를 지어본다.




(2012.02.10)

2012년 2월 6일 월요일

The Lord's Prayer (주기도문)

The Lord's Prayer (주기도문)







1935년 미국의 Albert Hay Malotte 은 주기도문에 곡을 붙였다.
그리고 당시 톱가수였던 John Charles Thomas가 라디오방송에서 이 노래를 부른 이후 신앙적으로 감동받은 수 많은 가수들이 자신의 앨범에 포함시키는 유명한 곡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흑백TV 시절 'KBS 주말의 명화'에, 최고의 테너 Mario Lanza가 주연한 뮤지컬 코메디  Because You're Mine (1952) 이라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소개가 된 적이 있다. (불행히도 한국말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미군에 징집된 오페라가수역으로 나오는 Mario Lanza 는 여러가지 주옥같은 곡들을 시원스레 불러주는데, 특히 교회에서 The Lord's Prayer (주기도문)을 부르는 장면이 사람들의 가슴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 노래는 찬송가식으로 첫머리를 따 Our Father 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래 동영상 보시고 감화 감동되시는 하루가 되시길... ^^

http://www.youtube.com/watch?v=YDxvBNR7ciI  (클릭해주세용~)



The Lord's Prayer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by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


Amen



(2012.02.06)

2012년 2월 3일 금요일

겨울이야기

겨울이야기






서울의 수은주가 몇십년만의 강추위를 기록할 즈음 이곳엔 폭설이 쏟아졌다.
며칠 동안이나 눈꽃들이 하늘에서 맴돌며 맴돌며 쏟아져 내렸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 같은 제설제 사용을 금지한 이후 첫 큰 눈이라 어쩔까 싶었는데, 역시나 광주리로 쏟아붓는 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설차량들도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차도와 보도의 구분도 사라질 만큼 눈이 쌓이자 체인 친 suv들만 제 세상을 만난 듯...
아니네...
휴교령이 떨어져 일주일을 놀게 된 아이들과 덩달아 뛰어대는 강아지들이 더 즐거워 보인다.
경사 난 우리 첫째는 근처 골프장 언덕으로 아이들과 눈썰매 타러 가고...




우리도 어렸을 땐 눈만 오면 신이 났고 겨울이 즐거웠다.
지금이야 전국에 스키다 눈썰매다 해서 겨울을 즐길 곳이 많지만 딱히 갈 곳이 없고 교통도 불편했던 예전엔 나무판 밑에 굵은 철사를 붙여 만든 썰매나, 끽 해야 아이스 스케이트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마땅치 않으면 질질 흐르는 시퍼런 코를 소매 끝으로 바짝 닦아가면서 온동네 쏘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팽이돌리기 같은 것들이 우리들의 재미였다.
아, 코 밑을 꺼멓게 그을리는 불깡통 돌리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 중 나는 팽이돌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나무팽이들은 나무를 깎아 만든 몸통을 잘 골라 구입하여 위 아래로 총알심을 박아 만들었다.
그리고 돌려보아 팽이가 떨지 않고 잘 도는지를 살피는 중심교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후에야 울긋불긋한 크레용으로 색깔을 칠하여 자기만의 팽이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찍기' 종목으로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팽이가 뽀개지는 일도 있었기에, 다치지 않도록 평상시에 왁스를 칠하기도 하여 매끄럽게 표면을 유지해주는 등 정성을 쏟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톱밥팽이는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로의 일체품으로 나왔기 때문에 별 애착이 갈 수가 없었다.
나무팽이들이 좀더 편리하지만 못생긴 톱밥팽이들에게 차츰 자리를 내주면서 개성은 사라지고 재미는 줄어들고 말았다.
멋을 모르는 것이 문제...




어느날, 밤새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 한강 중지도엔 아이스 스케이장이 생기곤 했다.
빙질은 좋고 오뎅천막도 있었지만 우리집에서 걸어가기엔 좀 먼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좀더 쉽게 스케이트를 타러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의 샛강에 나가 얼음판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가끔 결빙이 약한 곳에서 사람이 빠져죽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또 겁이 나 한동안 샛강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내미의 겨울운동을 위하여 아버지는 자전거 한대 값을 선뜻 투자하여 스케이트를 사주셨지만, 인프라가 따라주지 않았던 시대의 현실이었다.
또 이 일은 나중에 무길도한량과 몇몇 친구들이 학교 등록금을 동원하여 스케이장을 만들었다가, 서울의 결빙일이 십여일 밖에 안될 정도로 유난히도 따뜻했던 겨울 때문에 쪽박 찬 경험의 근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그래도 그 땐 대체로 참 추웠다.
아마도 지금처럼 방한복도 시원찮기도 했지만 실제로 당시의 겨울이 지금보다도 훨씬 추웠던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한강물이 어는 일은 거의 매 겨울 다반사였을 뿐더러 한 번은 강추위로 서울 시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진 적도 있을 정도였다.
어느 늦은 가을날, 무길도한량의 아버지께서는 물품대금 대신 뜨게실을 한 트럭 싣고 오셨다.
대략 라면박스 크기 상자로 100개 정도의 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날 이후 우리집의 모든 여자들은 대바늘 두 짝을 항시 휴대하고 다녔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이 올 때까지 안방, 건넌방, 부엌이고 할 것 없이 두 대바늘 비비작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덩달아 무길도한량의 뜨개옷들의 갯수도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곤색 스웨터, 곤색 바지, 곤색 조끼, 갈색 도쿠리, 갈색 스웨터, 갈색 바지... 이번엔 녹색 도쿠리, 녹색 스웨터, 심심풀이 녹색 목도리, 이번엔 방울 달린 녹색 모자...또...또...
이에 취미를 붙인 작은 고모는 급기야 편물기계까지 구입하게 되고...
우리 어머닌 그 때 무길도한량에게 짜주신 녹색 방울모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 ^^




눈이 쌓이고 얼고 해도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한 겨울날, 아버지께서는 경사진 눈길을 내려오던 중 그만 쭐끈덕 미끌어지셨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나란히 걷던 무길도한량이 동작이 늦어 잡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지만 다행히 다치신 데는 없으셨다.
미끌어지신 것이 괜히 무안하신지,
"야아, 그래도 내가 말이야 고등학교때 낙법을 배워서... 넘어지는 게 좀 달랐지?"
이에, 또 편안하시게 맞장구 쳐드리지 못하는 성격의 무길도한량,
"아, 예. 꼭 거북이 뒤집어지듯 넘어지시던데요?" ^^
하지만 인제는 그렇게 대답 안하고 이렇게 대답하리라 마음 먹어본다.
"예, 아버지.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 같으셨습니다." ^^




아무리 아름다운 눈꽃들이 사방에서 휘날리고 그 눈의 소용돌이 속에 오붓하게 고립된다 해도 아프면 그 어느 것이 예뻐 보이랴.
눈썰매 타러 간 첫째녀석이나 여느 사람이나 매 한가지로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치지 않기를...
건강으로 걱정하시던 우리 오마니와 또 다른 분들은 서설(瑞雪)로 위안 받으시고, 모두 봄과 함께 벌떡 벌떡 일어나시기를 소원해본다.



(2012.02.02)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인생은 오십부터...

인생은 오십부터...





벌써 가을이 깊었습니다.
발바닥이 부은 탓으로 아침 산보를 몇일간 쉬었더니, 그새 거리의 나뭇잎들이 온통 제멋대로 때깔자랑입니다.
기온은 약 영상 7도.
새벽비에 포도도 촉촉히 젖고 하얀 구름들 사이로 햇빛도 간간히 내비치는게, 오늘은 걷기에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춘 듯 합니다.
허리와 다리의 근육들도 잘 쉰 덕분에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아침 커피를 한 잔 하고 가뿐한 걸음걸이로 가을길에 나섭니다.




얼마전 국민학교 친구 E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다니던 대기업을 나온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옛날 푸른 나뭇잎들이 우리집 앞 젊은 나무들 가지마다 가득 나부끼던 시절, 꿈 많던 무길도한량과 밤을 새며 이야기하던 그 청춘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멀리 타국의 이름도 모르는 깡촌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무길도한량을 측은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요지는 한마디로 이런거 였습니다.
"너 거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




거기에 대한 저의 반론은 이러했습니다.
"나 스스로의 꿈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빠를 따라 온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펼칠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이 나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다.
가장의 형편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제멋대로 휘둘려진다면, 그건 가장이 아이들을 망치는 꼴이 되고 만다.
너에겐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아하, 이렇게 글로 쓰니 좀더 명확해지는데, 아마도 그날은 전화 상태가 안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 서로 나이가 들어 서론, 본론, 결론, 할 말이 많아져 그랬는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정말 받쳐주는 것 같습니다.
빗물에 살짝 젖은 낙엽들 사이로 내딛는 발걸음도 먼지가 일 만큼 힘차고, 이마 위로 땀도 적당히 배어 나오고,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움도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오늘 같으면 평상시 걷는 12 km 보다도 더 많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엔 속보(速步)에 쾌보(快步)로, 빨리 걷고 즐겁게 걸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걸음폭도 좁아지고, 속도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걷기 조차 싫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 때문에 고생했던 30대 초반에도 무지 걸었지만, 오십이 가까운 이제서야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건강 상의 문제로 몇 번의 굴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기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존재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노란불을 켜고 강제로 스톱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여유로운 마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가족의 절실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꿈의 소중함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무절제함과 과욕으로 더 크게 건강을 해치고 지금쯤 어느 공원묘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세 바퀴가 다 되어갑니다.
딴 때는 두번째 바퀴 후 중간 지점 정도에 오면 다리에 피로감이 느껴지는데, 오늘은 아직도 그런 기척조차 없습니다.
에라이, 내친 김에 한바퀴를 더 돌기로 마음 먹으며 우리 아파트 입구를 외면하듯이 홱 지나쳐 버립니다.
한바퀴가 4.2 km 인 이 코스의 좋은 점은 중가운데 가로지르는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완전히 한 바퀴 돌던지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오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쁜 점일 수도 있군요. ^^
여하간 오늘은 처음으로 네 바퀴에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같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던지 아니면 말던지...




결국 무길도한량은 16.8 km 를 걷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냈다는 그 성취감은 제법 즐길만 했습니다.
허리를 다친 이후 2-3년 내 이렇게 많이 걸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계속하다보면 무길도한량이 오십살 쯤 되었을 땐 한 번에 한 20 km 도 쉽게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혼자 싱긋이 웃어봅니다.

아, 그리고...
젊었을 적에 꾸었던 꿈들은 언젠간 꼭 이루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단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구요.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오십부터니까 아직도 준비할 시간은 남아있지요.
그 땐 정말 꼭 한 번 날아보고 싶습니다.



(2011.10.30)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Here I Am Lord

Here I Am Lord


                                                        by Dan Schutte




하나님이 부르실 때 결연히 일어나 그 길을 좇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 어려운 일을 망설임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나 나서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과연 나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준비가 되어있을까?
단연코 말하건대, 난 절대 아니다. ^^
저... 하던 일이 남았거든요... (헤벌쭉)
저... 애들은 어떻하지요?...  (긁적긁적)

그때에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며 나서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 노래를 들어보자.
동영상엔 2절이 없으므로 참고하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EcxOkht8w7c (클릭)


          이사야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이사야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절)


I, the Lord of sea and sky,
I have heard My people cry.
All who dwell in dark and sin,
My hand will save.


I who made the stars of night,
I will make their darkness bright.
Who will bear My light to them?
Whom shall I sta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the Lord of snow and rain,
I have born My people pain.
I have wept for love of them,
They turn away.


I will break their hearts of stone,
Give them hearts for love alone.
I will speak My word to them,
Whom shall I se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the Lord of wind and flame,
I will tend the poor and lame.
I will set a feast for them,
My hand will save.


Finest bread I will provide,
Till their hearts be satisfied.
I will give My life to them,
Whom shall I send?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2011.10.19)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가더니 니즌 양하야 꿈에도 아니 뵌다
엇던 님이 현마 그 덧에 니졋시라
내 생각 아쉬운 젼차로 님의 탓을 삼노라


                                    (무명씨)


떠나가더니 잊었는지 꿈에서 조차 볼 수가 없다
어떤 님이 설마 그동안에 벌써 날 잊었을까
내가 아쉬워하다 보니 괜히 님의 탓으로 돌려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리움이 짙어 끝내는 날 벌써 잊었는가고 하는 것이 어째 많이 들어본 듯한 스토리다.^^
너무 지나치면 의심까지 하게 되고 종국엔 의부증까지 생기는 거 아닐까 싶다.
현마? (설마?)
무길도한량이 두눈으로 그런 케이스를 똑바로 봤다니깐...?
그 집은 의부증이 심해지다 못해 결국 이혼까지 가고 말았다.
처음엔 세상에 둘 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을 하더니만...

에효~, 남의 집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여하간 남녀 간에도 적당한 선에서 사랑지수(指數)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만큼 상대방에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게 사랑이라잖는가?
부담스러워지고 싶다고?
그럼, 그걸 즐기시던지... ^^

사랑타령은 남는 게 없다.
에이, 노래나 한곡조 듣고 넘어가야겠다.
가사에 묘미가 있으므로 집중하시길...
노래야, 나오너라~
꽝!

http://www.youtube.com/watch?v=nnZzGkVAx4Q (클릭!)


그리움만 쌓이네


                              여 진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대 지금 그 누구를 사랑하는가
굳은 약속 변해버렸나


예전에는 우린 서로 사랑했는데
이젠 맘이 변해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난 너 하나 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아-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2011.10.18)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멍해져야 하는 시간

멍해져야 하는 시간







        멍하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새로 글 쓴 것 있어?"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중언부언 하며 매끄럽지 못한 글일 망정, 그래도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뭘 하길래 그리 바빠 글 올리는 것이 뜸 할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기도 한다.
한 번 물어보자.
바쁘요?
쯧...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쩝. ^^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새벽별 보며 일어나 12km 를 걷고, 출근하여 잔소리 두어 마디 하고, 돌아와 집안일! --;
아이들 맞이하여 멕이고 공부 좀 감독하고, 저녁 준비하고 멕이고 치우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집사람과 스카이프 좀 하고, 곧 이어 한국에 계신 오마니가 로그온 상태이시면 또 스카이프 좀 하고...
그렇게 바쁜 일정은 아닌데 말이지.
더더군다나 나 보다 더 바쁜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그 정도를 불평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 뿐만이 아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적당히 멍해지는 시간인 것 같다.
일상으로 부터의 오만 가지 상념으로 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해지는 시간 말이다.
멍하게 높푸르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게 끝없는 외침을 쏟아내는 바다를 바라보고, 멍하게 시간을 색칠하는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멍하게 먼 기억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바라보고, 그리고 멍하게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그런 멍한 시간이...




하기야 멍해질 수 있는 것도 축복임에 틀림없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인생사 생활고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끝 없는 번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나도 좀 멍해지는 시간이 있고 싶다구요...
하고 외치고 싶은 영혼이 얼마나 많을 지는 안봐도 훤한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멍하게 있지 않도록 철저한 훈련과 윽박지름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이, 무길도한량! 공부시간에 딴 생각야? 이리 나왓!"




물론 아무 때나 멍해지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작업을 하다가 등의 경우엔, 중간에 멍해졌다간 충분히 위험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 경우들이므로 피해야 하겠지만, 이런 때를 제외하곤 누구든지 아주 잠시만의 시간이라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조심은 하여야 한다.
직장 상사는 근본적으로 멍해져 있는 직원들을 싫어한다.
아내들은 저 양반이 또 여왕봉다방 김마담 생각하고 있나 의심할 수도 있다.




멍해지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머리 속에 찌든 상념의 때를 털어버려야 한다.
가슴 속 틈바구니 마다 골골이 맺힌 감정의 찌끄러기들을 청소해내야 한다.
자신을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격리하여 쉴 틈을 가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잠시만이라도 멍해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무길도한량의 모두를 위한 소소한 생각이고... ^^




무길도한량도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멍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무길도한량은 멍해지는 시간이 없이 극도로 긴장된 생활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고... --;
문제는, 요즘 들어 무길도한량은 멍해지는 시간 끝에 곧잘 정신줄 놓고 코를 골아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어... 나이 탓인가? ^^)  
이곳 저곳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들여다 보다가, 지난 이야기들을 엮을 모티브들을 정리하다가, 인터넷으로 소재거리들을 찾다가... 잠시 멍한 상태로... 그리고 곧 이어서... 쩝. --;
그러니까 멍해지는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

자주 글 못쓰는 이유를 만들다 봉께 별 말도 안되는... ^^;;
아주 팔자가 늘어진다고 자랑을 하지요? ^^;;
무길도한량이었습니당~ ^^




(2011.10.16)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청춘에 곱던 양자



靑春에 곱던 양자 님으뢰야 도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아르실가
진실로 날인 줄 아라 보면 고대 죽다 셜우랴


                                          (강백년)


청춘에 곱던 모습이 님으로 인해 다 늙었다
이제 님이 보면 난 줄 알아나 보실까
진실로 난 줄 알아보면 당장 죽어도 무엇이 서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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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하고 시작하는 민태원선생의 수필 청춘예찬(靑春禮讚)은 이상(理想)으로 빛나는 젊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이다... (후략)"

그리고 그는 이상(理想)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청춘을 청춘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 그의 유명한 표현 '청춘의 끓는 피',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과는 조금 동떨어지기 시작하는 비(非)청춘들은 어찌 하여야 하는가?
폐부를 찌르도록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젊은 날의 꿈을 안고 스러져야만 하는가?

이양하선생의 수필 신록예찬(新綠禮讚)을 들여다 보자.
"...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후략)"
장년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잖은가.
늙어간다고 코만 쑥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숙미? 노련미? 그런 것들일까?
하기야, 갓 담아내는 보졸레누보 와인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와인은 좋은 환경에서 오래도록 푹- 숙성된 와인이 진국이고, 김치도 금새 담근 겉절이 보단 동토의 지하에서 겨우내 숙성과정을 거친 김장김치라야 김치의 참맛을 보여줄 수 있는거 아니겠는가.
청춘도 좋지만 역시 중요한 건 세월을 따라 농담을 더하고 깊이를 더한 우리 이맘 때가 아닐까 싶다.


오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안돌려진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받으소서
......

봐라!
서러워 말고 그 속에 간직한 힘을 찾으라 안카나.
아직도 괜찮다 아이가...
거, 고개를 들자카이!
어깨 펴고!
이 악물고!
우리 아직 게임 안끝났다고! ^^

인생도 한 50쯤 되어야 세상 단맛, 쓴맛, 매운맛, 신맛... 등등, 여하간 그런 거 골고루 맛보고 이리저리 잘 스며들어 좀더 인간다워지는 거 아닌가?
옛글에도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거기에 순응한다고 했다.
잘 익은 곡주처럼 진한 맛을 풍기는 묵직한 어른이 되자스라.
청춘에 곱던 모습들 다 잃어버렸어도, 질그릇처럼 투박한 삶 속에 숨은 오묘한 힘을  잊지말자.


(2011.10.06)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열 일곱해 동안

 
열 일곱해 동안






이제 바야흐로 가을은 본격적인 듯 하다.
아침산보를 돌 때 마다 마주치며 인사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하얗게 '하-이-' 하며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기온도 얼추 10도 내외까지 떨어진 듯 하고, 빨간색으로 변한 나무들의 숫자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구름 가득한 은회색 하늘가로 뿌옇게 동은 터오르고 또 하루의 흔적 없는 시간은 시작된다.
Where did you go?

이맘때엔 TV 속의 기상통보관은 매일 똑같은 예보를 계속하곤 한다.
"네, 월요일엔 흐리고 비, 화요일엔 흐리고 비, 수요일엔 흐리고 비, 목요일에도 흐리고 비, 금요일에도, 네, 별로 특별한 거 없습니다. 역시 흐리고 비. 토요일에도 마찬가지로 흐리고 비...
헤헤, 아, 일요일엔 한 두어시간 햇빛이 드는 곳도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론 흐리고 비가 오겠습니다. 이상, 일기예보를 마치겠습니다."
참 돈 많이 받고 할 일 없는 직업이다. ^^
"아, 잠깐, 일기예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퀴즈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헤헤."
궁시렁대는 내 말을 알아들었나보다.
"우리 지방이 10월 중 하루종일 해가 쨍쨍했던 마지막 해는 언제였을까요?"
아이구~, 차암 퀴즈 재미있다.




엊그젠 수만리 거리를 두고 웹캠 속에 마주 앉은 두 비(非)청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오늘이 그날이네?"
"올핸 잊지 않고 기억했네..."
"그래도 몇 번째인지 잘 모르지?"
"열 몇번째지, 아마?" ^^
우린 유치원 아이들 마냥 손가락으로 한해 한해 꼽아가며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열 다섯, 열 여섯, 열 일곱!"
"와-, 벌써 열 일곱번째네?"
"그렇지? 세월도 참..."
"하나도 안늙은 기분인데..."
"그러게, 그래도 벌써 17년이야."




그랬다.
벌써 열 일곱해가 흐른거였다.
뭐... 그래도 아직 이십년도 안되었잖아?
용케들 잘 살고 있다. ^^
"수고했네, 십 칠년 동안."
"고마웠어, 십 칠년 동안."
그래, 그동안 고마웠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지...
십 칠년이란 세월이 한 번을 더 지나갈지, 두번을 더 지나갈지, 세번을... (이건 좀 너무 많은가?) ... 여하간 같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세상 많고 많은 돌멩이들 중 두 모진 돌멩이가 어느날 만나, 서로 부딪치고 깨어지고 갈아지고 부숴지면서 십 칠년이란 시간을 버텨냈다.
물론 우리 부모님 금혼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험한 세상에 서로 믿고 의지하며 6205날을 지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졌다.
기념 노래라도 한 곡...?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어? 이건 그걸 기념하는 노래가 아닌데... ^^
가만 있자... 어, 이런게 있네?




There's lots of things         
With which I'm blessed,      
Tho' my life's been both sunny and blue, 
But of all my blessings,
This one's the best:
To have a friend like you.
내 인생고락 간에
수 많은 축복을 받았지
하지만 그 중 제일은
당신과 같은 친구를 가졌다는 거.


In times of trouble
Friends will say,
"Just ask... I'll help you through it."
But you don't wait for me to ask,
You just get up
And you do it!
어려울 때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만 해... 내 끝까지 도울께."
하지만 당신은 나의 부탁을 기다리지 않고
그 즉시 일어나 날 도왔지


And I can think
Of nothing in life
That I could more wisely do,
Than know a friend,
And be a friend,
And love a friend... like you.
생각컨대 내 인생에서
당신과 같은 친구를 사귀게 되고,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것 보다
더 잘 했던 일도 없었던 것 같아.


                       (Author Unknown)





맞지... 이만한 친구 보내주심에 감사드리고...
또 이만큼 자리잡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고...
워낙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지겹지는 않았음에 감사드리고...
부모님 슬하를 떠나 한 가정을 세우고 두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음에 감사드리고...
공황으로 가진 돈이 바닥나, 호숫가에서 츄러스 하나씩 들고 기념만찬을 대신했던 2년전의 기념일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고...
비록 떨어져 있지만, 매일 웹캠으로 얼굴이나마 보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아직도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날들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감사드릴 일들은 더더욱 많아짐에 또 감사드리고... ^^

힘들어도 잘 참아내고 이겨내는 나의 친구를 위하여 건배!
더 좋은 날이 올거야...
웹캠 너머 어두운 방에서 그녀가 화이팅을 외친다.
화이팅!
나도 화이팅!




(2011.10.04)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청산도 절로절로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 水 절로 산슈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김인후)


푸른 산도 저절로 푸른 물도 저절로
산도 저절로 물도 저절로 되듯 자연 속의 나도 저절로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란 이 몸, 늙기도 저절로 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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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집 뒷간 뒤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두엇 있었다.
전기도 없이 깜깜하던 밤그늘에 바람이 불 때 마다 밤나무들은 쉬이- 하고 온 잎들을 흔들어대면, 엊그제 잠자리에서 들었던 빨간 보자기 귀신에 파란 보자기 귀신도 나올 듯 무서웠다.
판자쪽을 이어 붙인 문 틈으로 노오란 별들은 쏟아지고 흔들리는 촛불은 금새라도 꺼질 듯 위태 위태 불안 불안하기만 했다.

"아직 밖에 있는거지?"
소년는 몇 번이고 누나가 밖에 서있는질 확인했다.
"빨리 안나오면 나 가버린다."
짖궂은 누나가 재미로 소년을 얼러대면 소년은 징징대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잉잉~, 그러면 엄마한테 이를거야."
"그러니까 서두르라고!"
"나도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상황은 역전되기 마련이었다.
"야, 너 아직 밖에 있지?"
누나는 쪼개진 판자문 사이로 내다보며 묻는다.
"그래~, 빨리 안나오면 가버린다."
"어우, 야아~"

소년은 발 밑으로 떨어진 푸른 밤송이를 쪼개려고 두발로 밟아 본다.
너무 어린 눔이었는지 연한 밤송이는 갈라지지 않고 뭉개지기만 할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밤나무는 잘 익은 밤들이 꽉 찬 갈색 밤송이를 떨구기 시작할 것이다.
짧은 오후내 가을햇살에 밤송이들은 절로 벙그러질 것이고...

바람이 밤나무를 한 번 더 으스스스 떨게 만들며 지나가는 끝엔 별들이 가득하다.
"북두칠성이 큰곰자리라고 했었나?"
"그래, 북극성 건너 W자가 카시오페아자리이고..."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에 W자를 그려본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소슬바람에 가을의 바삭함이 묻어난다.
계절도 밤나무도 소년도 그렇게 절로 절로 익어갔다.


(2011.09.28)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무길도 바닷가에 서서






바다로 내려갔다.
아침 산보를 할 때 마다 멀리서 슬쩍슬쩍 한자락씩 비춰주는 바다의 푸른 치맛깃을 따라 오솔길을 내려갔다.
지난 이삼일 동안의 스산했던 날씨를 언제 그랬냐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은 쨍! 이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 몇 점 떠가고 무길도의 바다는 파랗게 시린 빛을 뿜고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꺼내 어깨 너머로 휘딱 들쳐메고 숲 사이 바다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엊그제였던가?
두 달 내내 구름 한 점 없던 아침 하늘에 은회색 구름이 뒤덮이고, 좀처럼 볼 수 없던 강한 바람까지 들더니 종내에는 빗방울마저 서너 시간 동안 뿌려댔다.
이제 다시 우기(雨期)의 시작인가 싶을 정도로 공기도 냉랭해지자 특별히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재킷을 꺼내 입었다.
하긴, 내가 느끼지 못하던 사이 벌써 우리 아파트 앞 연못엔 열두마리 오리가족이 날아들었고, 골프장 주변의 몇몇 나무 끝이 빨그스름하게 변한 것이며, 걸을 때 마다 발길에 채이는 낙엽들이며...
자연은 그렇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도 때를 맞춰 순행하고 있었다.




엊그제였던가?
웹캠 너머 부석부석한 얼굴로 부시시한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 긁적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야아, 내 이삼일 병원에 검사 들어가니까 핸드폰 하지 마라."
내가 언제 핸드폰으로 전화 드린 적이 있던가? ^^;;
"내 말은 이삼일 컴퓨터에 안나오더라도 궁금해 하지 말란 이야기다."
이 정도 말씀하면 좀 알아들었어야 자식놈인데...
워낙 센스가 느린 동네사람이라 무길도한량은 그 말씀의 뜻을 읽지 못했다.




엊그제였던가?
어머닌 물으셨다.

"요즘은 왜 글 쓰는게 좀 뜸하다?"
"사진은 잘 안찍냐?"
글쎄 아이들이 개학하고 그러니까 뭔지 모르게 덩달아 마음만 바빠져서...
통 마음 잡고 앉아서 글 쓸 시간도 없고, 사진 찍으러 나갈 시간도 없고...
두런두런 쓸데 없는 핑계만 주어 섬기고 말았다.
"무길도 앞바다도 안가냐?"
아, 무길도 앞바다!
갑니다, 갑니다용~ ^^;;





삐리리리~
소리도 방정 맞게스리 나의 핸드폰이 몸을 배배 꼬며 징징거리며 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나야."
몇 십년 전, 학교앞 문방구에다 잊고 두고 왔었던 첫째 동생이다.
"엄마가 인공심장판막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되어 상태가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무무...무슨 수술???
"혈관을 통해서 뭘 집어넣고 하는 수술인데 성공적인 모양이야. 3일, 일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경과를 체크한대..."
무길도한량도 모르는 사이에 울 어머니는 심장수술을 하셨단다... ^^;;;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천리 만리 밖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길도 앞바다는 그렇게 파란 모습을 하고 오늘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예전 내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며 뿌연 의식의 주변을 헤매일 때는 어머니께서 곁에서 끝없는 기도로 날 지켜주셨다.
어머니께서 어려우실 때를 함께 못해드리는 이 아들내미를 용서하소서.
어머니 옆에서 바싹바싹 마르는 목으로 서계셨을 연로하신 아버지께도 미안함이... --;;
그동안 낙엽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는 줄은 알았어도 부모님의 세월은 세지 못하였다.
나는 시리도록 파란 무길도의 바닷가에 서서 어머니의 쾌유를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를 지켜주세요.

하얀 조약돌 하나를 들어 힘껏 파란 바다를 향해 날려본다.





(201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