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얼마만에 드는 햇빛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아침해가 온전히 동산에서 떠서 저녁에 서해로 질 때까지, 회색 비구름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종일 싱싱한 햇살이 내리쬔 것이 얼마만일까?
올해 처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겨우내 비닐을 씌워 닫었던 베란다문을 열고 봄기운에 환기도 시켜본다.
반가우이... 어여들 들어오게나.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골목골목은 벌써 꽃들이 한창이고 벚꽃들은 벌써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날려 포도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모처럼의 햇빛을 즐기려고 거리마다 차들은 가득하고 공원들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빵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는 갈매기나 까마귀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이리저리 바쁘게 쏘다닌다.
이 동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나보다...
그동안의 춥고 긴 우기 동안 어느 골짝 어느 동굴 속에들 살고 있었던가.
오늘은 그네들이 은둔해 온 동굴에도 따뜻한 햇살이 부채살 마냥 퍼져들고 풀썩거리며 지게문이 닫힐 때마다 향기로운 봄기운이 따라들어와 그들의 코끝을 간지럽혔으리라.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오래되어 연신 껌뻑거리는 릴 프로젝터의 누런색 그림 속에 등장할 법한, 어머니들이 짠 두툼한 구닥다리 겨울스웨터에서는 끊임없이 먼지가 쿨럭이고, 한 번 말아 걷은 소매 끝엔 겨울의 더께가 맨질맨질하니 앉아있다.
이런 날은 빛 바랜 레코드재킷에서 모처럼 LP판을 꺼내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억 속의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는 옛노래를 듣고싶다.
먼지 걸리는 소리가 지직거리면 브로크 외벽에 덧입힌 시멘트쪼가리가 듬성듬성 떨어져나간 고향 마을의 다방 스피커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먼 향수에 젖어버리고 만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 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원로가수 백설희의 오리지널도 명곡이지만 때론 조용필의 한 맺힌 목소리도 썩 잘 어울린다.
실연한 열 아홉 소녀의 앙가슴에 사무치도록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꽃은 마치 벌써하루하루를 잃으며 살아가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와 닮아있다.
그렇게 봄날들은 가고 그렇게 서른 즈음에 도달하고...
It's just another day...
세상에 어디 가슴에 대못 하나 박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
세상에 어디 가슴에 구멍 한둘 크게 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
나의 청춘은 격정 속에 스러지고 봄날처럼 화사하게 나의 사랑은 간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은 노인네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수 많은 봄날을 보냈을 저 나이에도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감성이 남아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저 나이라면 아마도 좋은 우스개에도 덜덜 미지근하게 그저 희미한 모습으로 빙긋한 웃음을 보이면 그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어제 산에서 나무하다 견디다 못해 시냇물에다 응가를 했걸랑..."
"아침에 드신 된장찌게, 시냇물에 떠내려온 된장으로 만들었걸랑유..."
두 노인네의 얼굴에 핀 검버섯이 봄바람에 꽃잎처럼 쏟아져내린다.

화려한 봄날이 가고 있다.
또 한 해의 봄이 가고 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4.10)

달빛 아리아



달빛 아리아






무길도의 달빛 아름다운 밤이다.
말 좋아하는 사람의 말대로 20여년 내의 최대 크기의 수퍼문(super moon) 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평소보다 약간 커보이는 달이 구름 자락을 뚫고 달빛을 흘려준다.
이런 날은 베란다에 의자 놓고 앉아 커피 한 잔 뽑아들고 베에토벤의 월광곡이나 디립다 한 삼십번 들으면 좋으련만...
야밤에 음악 틀어놓고 그리하면 옆집에선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지역신문엔 또 '달빛이 인간의 광기에 미치는 영향' 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 댈테니 할 수 없이 상상으로만 즐길 수 밖에...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오늘은 첫째 아이의 밴드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오후에 녀석의 테니스클럽 원정경기가 있어서 시간이 부족할 것 같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주회 시작은 7시인데 팀 경기가 6시가 넘어서나 끝나고 말았다.
서둘러 연주회 때 입을 옷과 요기할 것을 챙겨 가지고 학교 앞에서 조마조마 기다린다.
6시 40분, 드디어 학교버스 도착.
녀석은 우리 차로 뛰어와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주워먹은 후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오디토리움으로 또 열심히 뛰어간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 신경질 부리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마음을 곱게 써야 악기 소리도 이쁘게 나는 법이니께... ^^
휴우~ 내가 이렇게 녀석들 눈치 보면서 산다니...
우리 부모님도 내 눈치 보면서 사셨을까?
아마도 그러셨던 것 같다. --;; (미안합니다)
자식 키우는 게 뭔 죄인지...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악기를 한다는 게 참 XX하다. ^^
우리 늙은 할마이 선상님은 내 바이올린 소리가 제대로 안난다고 벌써 2주째 똑같은 부분을 반복해 시키고 있다. (내가 블로그에다 서러운 일 다 이야기하는 거는 모를거다)
나름 시간 내서 연습도 하고 좀 지루하면 새로운 곡도 내 멋대로 낑낑거리며 연습해보았더니, 할마이선상은 그게 주제 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먼젓번에우리 부부 찍어준 사진을 주면서 카드를 같이 주길래 무언가 하고 열어봤더니, 격려의 말(A note of encouragement) 이라고 하면서,
'네가 바이올린으로 좋은 소리를 내게 되면 우리가 더 어렵고 더멋진 곡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은 좋은 음계를 들려다오. 지금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누가 그거 모르나...? 
할머니도 한 번 생각해보슈, 나이 오십에 바이올린 배우는게 쉬운 일인지...
자기도 때론 삑삑 소리 내더구만, 뭐...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

여하간, 그래도 할마이가 늙으막에 제자 하나 두고서 공짜로 바이올린도 주고 레슨비 하나 없이 가르치느라 수고가 많다.
쩝,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않겠는가?
그래야 할마이도 신이 나고 무길도한량의 깽깽이 실력도 늘테니까...
자자,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화이팅!!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아주 먼 언젠가 말이다^^) 무길도한량이 연주할 곡 하나를 듣고 넘어가자.

먼저 쪼끔 아는 체 하고 들려드려야 쓰것는디...
요거는 그 유명하신 바하선상께서 작곡하신 '관현악모음곡 3번 라장조' 에 나오는 것인디, 나중에 아우구스트 빌헬르미(August Wilhelmj)란 사람이 이 곡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용도로 편곡을 하면서 다장조로 조옮김을 하고 나자,바이올린 네 줄 중 가장 굵은 G선 하나로만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여......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스톱! 정답!
예전 장학퀴즈에선 이만큼쯤 나오면 스톱거는 사람이 나왔어야 했다.
정답은?
'G선 상의 아리아' 입니다.
네, 정답입니다! (딩동댕~)

오늘은 최고의 선율을 들려주는 장영주의 연주로 들어보겠습니다.
G선 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 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2rpifOVKsug (클릭!)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불행히도 오늘 연주한 4개 밴드에서 장영주 정도의 완성품은 없는 듯 했으나, 모두 열심히 음악을 즐기며 즐겁게 연주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 어렸을 때 매일 가방운전하며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피아노학원으로 늦게 도착했다 끝나기 무섭게 뛰쳐나가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땐, 왜 그것이 좋은 약이란 걸 몰랐었을까...?
(나 쳐다보지 마시오. 난 피아노학원 근처도 못갔었으니까... ^^)
하긴, 요즘 나도 레슨이 끝나면 총알처럼 도망나오니까, 더 잔소린 말아야겠다.

휘영청한 달빛을 받으며 바닷가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그 날을 그리며,
무길도한량은 오늘도 휘-청거리는 486의 하루를 마감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3.19)

바다여행 II



바다여행II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하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바다를 보며 드뷔시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관현악곡 '바다(La Mer)' 는 세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바다 위의 새벽부터 한낮까지
2.물결의 희롱
3. 바람과 바다의 대화
가 그 구성이다.
특히 무길도한량이 좋아하는 3번째 것을,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의 연주로 링크 해놓았으니 들어보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aZ13K-yWmUI (클릭!)

물론 정훈희 또는 김추자의 '무인도' 도 좋고, 대학가요제 노래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나 '해안선' 도 좋지만, 그 표현의 깊이나 감동은 드뷔시 쪽이 쪼끔(^^) 낫지 않나 싶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것 두울.
까만 도화지에 사진들을 덕지덕지 붙인 아주 오래된 사진첩 속엔, 파도치는 갯바위 위에 바바리 자락을 날리며 서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한 청년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뒷면엔 파란색 만년필 잉크로 써내려간 싯귀.
사진은 50여년이 지나 가장자리가 다 헤지고 색이 바랬지만, 사진 속의 그 청년의 눈빛과 앙다문 입술은 가슴에 남아있다.
이젠 그 바다의 포말처럼 변해버린 모발과 검버섯이 이끼처럼 낀 손등은 말라버렸지만, 아직도 바다처럼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그리고 떠오르는 것 셋.
바다는 한 없는 사랑과 같다는 것.
태고적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듯, 바다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끝없이 사랑의 표상이다.
부모님들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따라하고, 우리네 자식들도 이어받아야 할사랑을 보여준다.
내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하고 시작하는 영시를 하나 골라봤다.
(쪼금 긴데, 꾹 참고 읽어보시길... ^^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I Have A Story to Tell You

I have a story to tell you ? it is about a fish and an ocean.

내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물고기와 바다 이야긴데 말이야.

There was a Fish in the Ocean
바다에 물고기 한마리가 있었지.

Said the Fish to the Ocean:
'You can’t see my tears because I’m in the water.'
The Ocean replied to the fish:
'I feel your tears because you’re in my heart.'

물고기가 바다에게 말했어.
'내가 물 속에 있으니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을걸요?'
바다가 물고기에게 대답했지.
'당신이 내 가슴 속에 있으니 난당신의 눈물을 느낄 수 있답니다.'

I am neither a Fish nor the Ocean, yet I feel your pain when you cry.

난 물고기도 바다도 아니지만, 네가 울 때 너의 아픔을 느낀단다.

Said the Fish to the Ocean:
'I am here I will not leave you because I will die without you.'
The Ocean replied to the fish:
'Without you my existence would have no meaning.'

물고기가 바다에게 말했어.
'당신이 없으면 난 죽을테니, 내가여기 살아있고 또 당신을 떠날 수도 없지요.'
바다가 물고기에게 대답했지.
'당신이 없는 나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I am neither a Fish nor the Ocean, yet I will not leave you because I love you.

난 물고기도 바다도 아니지만, 널 사랑하므로 널 떠날 수 없단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Said the Fish to the Ocean:
'Without fishes there is nothing in the Ocean.'
The Ocean replied to the fish:
'Without you there is nothing in my life.'

물고기가 바다에게 말했어.
'물고기들이 없으면 바다엔 아무것도 없지요.'
바다가 물고기에게 대답했지.
'당신이 없다면, 내 인생엔 아무것도 없는 거랍니다.'

I am neither a Fish nor the Ocean, without me you will still live on but without you, my life has no meaning…..
난 물고기도 바다도 아니지만, 내가 없어도 넌 살아가겠지만,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Said the Fish to the Ocean:
'So how many fishes did you known before me? '
The Ocean replied to the fish:
'You are surely not the first fish I have known, but you will always be the first fish in my heart.'

물고기가 바다에게 말했어.
'날 알기 전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을 만났어요?'
바다가 물고기에게 대답했지.
'당신이 물론내가 안첫번째물고기는 아니지만,당신은 항상 내 마음 속의 첫번째 물고기랍니다.'

I am neither a Fish nor the Ocean, and we are not each other’s first but do you know every time when I start wondering; you will be first one in my mind….

난 물고기도 바다도 아니지만,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첫번째 만남은 아니지만, 내가 그걸 궁금할 때마다 내 마음에 떠오르는 첫번째가 항상 너라는 걸 아는지...

Said the Fish to the Ocean:
'Why am I always the one asking you? '
The Ocean replied to the fish:
'Because I like being in your thoughts.'

물고기가 바다에게 말했어.
'왜 항상 내가 묻는 쪽일까요?'
바다가 물고기에게 대답했지.
'그건 내가당신의생각 속에 머물길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I am neither a Fish nor the Ocean, but know that you are always in my thoughts.
난 물고기도 바다도 아니지만, 네가 항상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걸 안단다.

If I were Fish and you were the ocean; would you let me swim in your heart?
내가 물고기이고 네가 바다라면, 네 마음에서 내가 노닐게 해주겠니?

If I am the ocean and you are a fish; you will always be the one in my heart….
내가 바다이고 네가 물고기라면, 넌 항상 내 마음 속에 있을텐데...

I love you
사랑한다

(by Forever Krysia)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옛날엔 물 많은 경포대 앞바다가 좋아서, 새벽 같이 일어나 강릉행 동부고속버스를 타고 당일치기 여행을 많이 가곤 했었다.
내 나이 들면 삼백 만원 짜리 조각배 하나 사서 '노인과 바다' 에서 처럼 바다와 함께 살리라 하는 꿈을 꾸며 살았는데... ^^
글쎄, 바다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요즘은, 조각배?
헤~, 겁도 없이? ^^;;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
요샌 바닷가전망이 있는 집들이 더 비싸다고 하던데... --;;
life expectancy도 엄청 늘었겠다, 인생은 50부터라고 떠들어댄 블로그 모토도 있겠다, 얼른 얼른 아이들 키워 출가시키고 아내와 속닥속닥 잘 하여,
60대엔 바닷가 꿈을 이루어 볼래나...? ^^

바다, 앞으로!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3.06)

바다여행 I



바다여행 I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가 그리웠다.
수십겹으로 밀려오는 포말로 풀어내는 억겁의 함성들이 가득 찬,
바다가 그리웠다.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 내 자신을 감당할 수 없도록 흔들어대는,
바다가 그리웠다.
그리고 그 잔잔함 속에 침묵케 하는, 살아있는
바다가 그리웠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월이란 한달의, 지루한 휴지기(休止期)를 마감할 여행으로 바다는꼭 맞는 곳이었다.
서해바다 출신의 나와 남해바다 출신의 집사람이 아니던가.
한동안 만지지 않아 낯설어진 카메라...
아, 맞다. 여기에 셧터 있었구나... ^^
나의 편치 않은 허리 덕분에 여행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가족들은, 잃었던 기억들을 찾아 여행을 위한 물품들을 준비한다.
쌀도 챙기고 군것질거리도 챙기는 대목에서 아이들은 더더욱 신이 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우리가 묵는 곳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Schooner's Cove Inn.
1806년 Lewis & Clark 탐험대가 도보로 다녀간 이후, 1846년 "태평양의 무덤" 이라고 불릴 만큼 격랑으로 유명한 이곳을 겁도 없이 통과하려던 미국해군의 스쿠너(schooner: 마스트가 두개 이상인 범선) 한 척이좌초된다.
그리고 1898년 그 스쿠너에 실려있던 대포(cannon)가 이곳에서 발견된다.
하여, 이름하여 Cannon Beach 로 불리워지게 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는 쉬지 않고 뒤척였고 소리지르며 몰아쳤다.
잠시 잠시 햇살을 주면서도 손톱만한 우박과 급작스런 소나기와 볼이 얼얼할 정도의 바람으로 하루내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던 바다.
날개죽지가 튼튼하기로 유명한 바다갈매기들도 오늘은 비행을 취소한 채 쉬기로 한다.
스쿠너가 침몰하던 날도 오늘과 같았을게다.
삽시간에 하늘은 캄캄해지고 파도는 뱃전을 넘실대며 벽을 때리고 기세 좋던 최신형 스쿠너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모로 눕기 시작한다.
위급을 알리는 짧은 비상종소리는 메아리 없이 퍼져나가고...
땡. 땡. 땡.땡. 땡...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Some say that Cannon Beach is                      사람들은 캐넌비치가
......a place on the Oregon shore.                     오레곤 해변에 있는 곳이라 말하지.
I rejoin that it is a secret place,                         그러면 난 이렇게 대꾸하지.
......within the mind ?                                          그곳은 우리 마음 속에
......where one flies kites                                   연을 날리며 자유를 꿈꾸는
......and dreams of freer times.                         비밀의 장소라고 말이지.
Rock sculptures                                                 바위로 된조각품들이
......rise like ancient Titans                                바다로 부터 옛적
......from the ocean.                                            해신 타이탄처럼 솟아오른 곳.
Walking and feeling                                           파도에 부드럽게 굴곡진
......the smooth ocean shaped                          백사장의 모래들이 발바닥에 닿으면
......grains of sand                                              오랫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against the soles of the feet                        깊은 생각들로 나를
......open thoughts long hidden.                         이끌어 주는 곳.
One early morn,                                                  어느 이른 아침,
......sensing that this moment                            이 순간이야 말로 하나님이
......is the Creator's special personal gift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고
I sigh,                                                                   나는 탄식하여 말하지.
......"Ah, Cannon Beach, your waves                아, 캐넌비치여, 너의 파도가
......have left their imprints on my soul"             내 영혼에 자국을 남겼구나 라고.

(Cannon Beach, by Bob Casey)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또 다른 먹구름의 바다가 일몰을 삼키어 가는 것을 지켜본다.
석양을 보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그것을 위해 또 다시 언젠가 이곳에 돌아올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몇 년만에 맛보는 삼분카레의 매운 맛과 함께 바다는 점차 모습을 잃어간다.

멋진 바다, 멋진 하루...
빨리 잠을 청해야겠다.
그래야 빨리 아침이 와서 또 바다를 볼 수 있을테니까...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2.28)

창외삼경우



창외삼경우 (窓外三更雨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잠이 깼다.
두어 시간이나 잤을까...?
불씨 없는 벽난로 속에선 지붕으로 낸 양철연통이 빗방울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차가워진바깥 공기가 스며들었는지 어깨가 눅눅하니 굳어있다.
전기난로 스위치를 넣고 한 반 시간이 지나니 그나마 몸이 좀 풀리는 듯 하다.
베란다 앞 소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방안이 가득찬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오늘은 모처럼 웹캠을 통해 아버님 어머님을 같이 뵈었다.
선뜻 검은 터럭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백발의 모습.
그래도 걱정은 타향살이 아들내미 식구의 건강과 안위가 먼저이시다.
"야, 뭐 좀 부쳐줄라고 해도 눈이 많이 와서 좀 지둘리고 있다."
"급한 거 뭐 있다고 그러세요. 안부쳐주셔도 괜찮은데..."
그래도 당신들 마음엔 걱정 뿐이다.
더워도 걱정, 추워도 걱정, 잘 먹어도 걱정, 못먹어도 걱정...
길 미끄러운데 나가시지 않는게 아들내미 걱정 덜어주는 것인 줄 아셔야 할텐데...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웹캠의 한 구석엔 또 다른 만리타향에 떨어져 있는 아내가 있다.
좋은 직장에 안착했다 싶었는데, 주정부의 거덜난 재무사정으로 문 닫을지 모르는 위기에 봉착했다.
괜찮아, 어차피 평생직장은 아니었잖아?
위로는 해보지만, 그녀가혼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하는 모든 것이 그녀의 어깨에, 그리고 머리에 극심한 무게로 짓누르게 됨을 나는 안다.
이번에 옮길 땐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가서 같이 해줄 것을 약속한다.
웹캠 속에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그녀에게 손바닥이 떨어져 나가라 격려의 박수를 보내본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고집장이 완고한 아빠와 같이 하는 두 녀석들은 씩씩하다.
한과목에서 목표치 성적이 안나와 약속대로 Zune을 압수당한 첫째는, 섭섭해 하면서도 곧 온라인에 성적이 업데이트 되면 틀림없이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아빠 보다도 더 유들유들한 녀석이 때론 얄밉기도 하다.
한편 성적 만큼은 걱정 없는 둘째는, 불만족스런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 큰 대오각성을 하고 개과천선 하여 약 90% 정도 스윗한 자세로 요즘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무길도한량이 혈압 올리는 일도 좀 줄어들 것 같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무길도한량의 사업장은 작년 여름 바닥을 친 후 완만한모습으로 회복세를 보이고있다.
맘 같아서야 3년 전의 최고점까지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돌멩이 하나 하나 다시 놓으며 우보천리(牛步千里)로 가기로 한다.
할마이 L은 자신이 쓰던 바이올린을 나에게 물려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레슨까지 해주고 있다.
지금 반짝 반짝 작은 별을 연주하고 있으니, 옆사람들에겐 듣기 괴로운 소음 수준이지만 내년쯤엔 바라건대 Hotel California, 후년쯤엔 G선상의 아리아 정도는 연주할 수 있길 바라며 매일 두턱진 턱 밑에 바이올린을 끼어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연미복에 빨간 나비넥타이 매고 모자 돌리는 일만 남았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문득 비바람 부는 바다가그리워져, 결국은 새벽같이 빗속을 나섰다.
안개가 멀리 섬 주변을감싸고 바다가 파도소리와 함께 다가서면, 
모든 번민과 고뇌는 바다 속에 감추어버리고 내 가슴엔 청량한 바다 내음만 깃든다.
비 내리는 바닷가에퍼져나가는 짙은 커피향...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난 오늘도 살아가겠다.
모두와 함께...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1.30)

대설부(大雪賦)



대설부(大雪賦)







눈이 내렸다.
연 며칠을 글 쓸 것에 대해 생각을 모으고 있는 중에, 부서져 내리는 소재 부스러기들처럼 밤을 타고 살금살금 내려버렸다.
희미한 기억의 잔상들을 끌어모아 눈덩이로 굴려서 예쁜 눈사람 같은 글을 써야 할텐데...
부스러진 눈들은 아직 서로 달라붙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고만 있다.
내 생각의 단편들도 덩달아 흐트러져 내린다.





눈을 즐기러 W와 L 부부와 함께 산속 캠프로 떠난 아이들.
그곳은 산이 깊어 눈도 한 번 오면 허벅지 정도는 예삿일이다.
고립감을 맛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엔 본관 건물의 1층 처마까지 눈이 쌓여, 2층 베란다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눈썰매도 타고, Cross country 스키도 하고, snow shoes를 신고 산보도 하고...
그냥 그 위에 구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리라.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우리도 옛날엔 나름 재미있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하늘 향해 큰 입 벌리고 한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도 받아먹고,
꽁꽁 언 개울에 나가 외삼촌댁 세퍼드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달리다 그 정신없는 속도를 못이기고 개울가 돌무지에 꼻아박히기도 하고,
혹시나 산토끼 한마리 잡을까 하여 숲속 여기저기에 설치 해놓은 올무들을 차례차례 점검하느라 두 손과 두 발이 동상 걸린듯 빨갛게 얼어버리기도 하고,
썰매 경주에 이기기 위해, 뻘겋게 녹슬어 버린 스케이트날을 찾으러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느라 볼따귀는 빨갛게 터져나가버리고...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그 중에서도,
몸통에 아무렇게나 바람구멍을 숭숭 낸 커다란 쇼트닝 깡통이나 페인트 깡통 혹은 드럼통에서 투닥투닥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던 불도라무깡이 가장 좋았다.
그 주위에 둘러서서 따땃한 불볕을 쬐다보면, 누군가의 옷자락이 그을리느라 세탁소 냄새도 나고, 어느집 광에서 쌔벼나온 고구마 익는 냄새도 심심찮게 나고...
못먹는게 어디 있나?
구우면 다 맛있지...
콩 가져오는 녀석, 감자, 양파, 심지어는 끄뎅이 김치까지 내오는 녀석들...
또 적당히 몸 좀 녹이면, 연도 날려야지, 불깡통도 돌려야지... 바쁘다 바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뜨끈하게 끓인 여물죽을 거친 숨 몰아쉬며 부지런히 씹어대던 고모네 이웃 황소도 생각나고,
가파른 계단길을 미끄러지지 말라고 연탄재 뿌려놓은 골목길에 우두커니 선 전봇대 보안등도,
꽁꽁 언 손발로 집에 돌아오면, 황급히 아랫목으로 이끌어 손발을 녹여주시던 어머님도,
겨울만 되면 감기에 편도선염에 고생하며 골골대던 동생도,
눈보라 속에서도 푸리뒹뒹한 낯빛으로 꼿꼿히 버티고 서있던 칠면조들도,
내 기억 속의 눈송이들은 별 없는 밤 사이로 흩어져 내린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렇게 눈이 쓸쓸한 날은 암만 해도 호빵이라도 하나 쩌먹어야할 것 같다.
맛으로야 길거리에 뿌연 간유리 미닫이문 내달은 찐빵 만두집을 따라가기야 하겠냐마는, 꿩 대신 닭이 아니던가.
아니면 뜨끈뜨끈한 국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오뎅꼬치는 또 어떠한가?
아니면 국수면발 야들야들한 설렁탕은?
얼큰한 짬뽕은?
......

쩝, 생각이흘러가 멈추는곳은 항상 먹는 쪽이라니... --;;
우리집 엥겔지수가 높은 이유를 이제사 알 것도 같다. ^^


-큰 눈 오는 날, 잡스런 생각에 빠져들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1.14)

달려라, 토끼!



달려라, 토끼!






적어도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진, 그는 항상 달리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상품을 받기 위해 죽을똥 살똥 달려대는 운동회에서는 선생님들의 자질구레한 심부름꺼리를 찾아 본부석 주변을 얼쩡거리거나 각 종목 결승점 근처에서 물주전자를 들고 배회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 자발적인 심부름꾼이 근처에서 어물쩡거리며 대기하고 있으면 좋아했다.

"어? 너 왜 여깄어? 너도 빨리 가서 뛰어!"
그러다가 눈치 하나도 없는 담임선생님에게 재수없이 들키면,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친구들이 뜀박질 준비하고 있는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운동모자를 뒤로 돌려쓴 놈, 무슨 육상선수나 되는 양 구부린 다리를 가슴 높이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놈,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이쪽 저쪽 발목을 돌려보는 놈, 혼자서 준비 땅 하며 출발연습을 하는 놈 등등의 아이들 틈 사이로 자신이 뛰어야 할 100미터코스가 내다보였다.

저쯤이 좋겠군...
그는 말없이 혼자 빙긋이 웃으며 직선코스에서 곡선코스로 이어지는 부분을 주시했다.
약30미터 거리쯤 될까?
운동모자 위로 10월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면서 귀 옆으로 땀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준비!...땅!
귀가 먹먹해질 만큼이나 큰 총소리에 혼비백산하며 그는 쫓기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출발과 동시에 벌써 많은 친구들이 그보다 두어 걸음 앞서 나가 있었다.
10미터...
20미터...
마지막 남은 두세명 마저도그를 추월하게 되면서,이제 마악 그가 꼴찌로 떨어지는 즈음이었다.
30미터 통과.

앗!
그의 두 발이 꼬이면서 그는 곡선코스가 시작되는 그곳에서 중심을 잃고 나뒹굴고 말았다.
코스를 따라 주욱 늘어선 학부형들이 파란 하늘과 함께 빙글 돌아갔다.
안타까운듯 흘러나오는 탄성. 
동정으로 혀 차는 소리.
맨땅에 넘어지느라 무릎이 긇히고 아팠지만 그는 천천히 다시 일어나 입을 악물고 절룩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골인하여 벌써 한산해진 결승점을 그는 천천히많은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여유있게 꼴찌로 골인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로 부터 쏟아지는 걱정어린 격려와 위로...
작전 성공. ^^
어차피 꼴찌로 창피를 당할바엔 감동의 꼴찌를 하는 것이 그 시대 운동회엔 어울리는 것이었다.
어쩌면그는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이 초등학교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악한 마음을 가진 앙팡테리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런 식이었다.
몇 년 동안 한번도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달리기를 꺼려했다.
달리면 뭐해?
또, 달려서 지면 창피하잖아?
그런 그의 마음에 발동을 걸어준 이는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체육시간에 편을 갈라 축구를 하고 있던 그에게, 체육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리 근육을 보니, 조금만 열심히 뛰면 차범근 보다도 빠르겠는걸?"
???
"한번 있는 힘을 다해 뛰어보지 않을래?"
하기 싫어하는 그를 10명의 아이들과 나란히 세웠다.
"딱 한 번만 해보는 거다."

결국 성의를 보이며 열심히 뛴 그는 10명 중 학교대표 육상선수에 이어 두번째로 골인을 했다.
"그것 봐라. 너도 열심히 하면 잘 뛸 수 있는데..."
그 자신도 믿기 어려웠지만, 그는 차츰 그렇게 달리기에 자신감을 붙여갔다.
고등학교에서도 잘 뛰었고, 대학교에서도 지치지 않고 뛰었고, 군대에 가서도 끝까지 뛰었다.
그는 자신이 토끼띠라서 잘 뛴다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차범근선수에게도 은퇴의 시간이 오고, 맨발의 아베베도 더 이상 마라톤코스를 달리고 싶지 않는 때가 오는 법이다.
체육선생님이 권하는 운동선수가 되는 길을 가진 않았지만, 그도 더 이상 달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나오는 배, 커지는 엉덩이, 넘어서는 몸무게, 더 날씬해지는 하체...
무엇을 딱히 탓할 수도 없게 점차 그는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토끼도 은퇴를 할까?

어느날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
그가 운영하는 사업장으로 한 명의 틴에이저가 들어왔다.
마침 직원 한 명은 화장실에, 또 다른 직원 한 명은 사무실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주위엔 아무도 없어서 그가 이손님을 대하게 되었다.
"급해서 그러는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무선전화기들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가 빈 것을 보니 직원들이 사무실로 다 가져간 모양.
할 수 없이 그는 전화기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간다.
순간,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업장 문밖으로 뛰어나가는 재빠른 발자욱 소리.
그는 전화기를 집으려다 뭔가 짚히는것이 있어 바로 뒤로 돌아 뛰어나갔다.
카운터쪽을 돌아 문쪽으로 뛰어가며 카운터 위를 흘겨보았다.

불우이웃돕기성금 모금함!
사업장엔, 연말이면 항상 카운터 위에 크리넥스 두 개 정도 크기의 불우이웃돕기성금모금함을 놓고있었는데, 그것을 들고 뛴 모양이다.
이 녀석이 가져갈 것이 따로 있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문밖으로 뛰어나가자 녀석이 저만치 모금함을 끼고 달아난다.
내가 왕년엔...

뚱뚱해진 토끼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쿵쾅... (이 정도면 거의 하마급 토끼인데... --;;)
전력질주를 시작하니 몸무게의 균형이 안맞는지 뭔가 박자가 잘 안맞는다.
숨이 턱턱 거리면서 턱 밑까지 차오른다.
헉헉, 거기 서! 헉헉...
달려라, 토끼야.

녀석은 건물 코너에 자전거까지 미리 준비해놓았던 모양이다.
코너에 다다르자 흘낏 그를 돌아보더니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신나게 밟아나가기 시작한다.
번개 같은 솜씨로 화단을 건너 뛰고 셔츠자락을 뒤로 날개처럼 휘날리며 달려간다.
으랏차차!
그도 옛날을 생각하며 화단을 뛰어넘고 (한쪽 발만 성공) 죽어라 달려보지만, 자전거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고... 끝내는 시야에서 놓치고 만다.
토끼야, 토끼야, 뚱뚱해진 토끼야... --;;

숨을 쉭쉭, 땀을 뻘뻘 흘리며 사업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 십대가 아침나절 사업장에 왔었던 걸 기억해낸다.
그렇지! 이녀석, 넌 잡았다.
아침에 왔을 때 모금함을 눈여겨 보았다가 사람이 뜸한 시간을 골라 훔치러 온 모양이었다.
그는 아침 동안의 사업내역을 조사하여 녀석에 대한 정보를 끄집어 내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넘겨준다.

늙은 토끼가 느릴 순 있어도 영리한 걸 잊으면안되지... ^^
토끼는 늙어도 토끼인거야.

2010년 호랑이의 해가 저물어가 2011년 토끼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흔히 토끼의 장점은 임기웅변이 좋고, 잔꾀가 많으며, 재주가 있고, 부지런하며, 판단이 신중한 것이라고 하며, 단점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구설이 많고, 경솔하고 자만해지기 쉽다 라고 이야기한다.
운세나 토정비결을 무작정 믿자는 것이 아니라, 믿건 안믿건 토끼의 해엔 토끼의 좋은 점들만 배우고 받아들여서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이면 연신 우년신(年新 又年新) 아니겠는가?


PS. 경찰은 녀석을 잡아, 모았던 성금 $172 중 $124 를 회수하였다.
삼진아웃제 때문에 토끼는 인정을 보여 녀석을 기소하지 않기로 하였다.
도둑을 쫓아서 뛰어다닌 토끼는 몇 년이 지난 오늘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절대 본받아선 안된다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0.12.27)

짜장이 땡기는 날



짜장이 땡기는 날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영어 단어 중 "crave" 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를 원하다 또는 갈망하다' 하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wish, desire, long for 같은 단어들 보다 훨씬 의미가 강한 것이 crave 이다.
특별히 food craving 하면, '어떤 음식을 향한 강렬한 욕구' 를 말하는데,
임산부가 단무지나 오이피클을 미칠 것 같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군대 훈련병들이 달디 단 쵸코파이를 죽어라 찾는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그 예가 될것이다.

잠시 막간을 이용하여 영어문장 두어개를 소개해본다면,
What do you crave? (무엇을미치도록 좋아하십니까?)
When you are pregnant, do you cravepickles? (임신중엔 피클이 엄청 땡기나요?)^^

우리 아이들이 피자 라는 것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는 없다.
생각컨대, 서울에 있던 우리집 앞에 피자헛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다섯살 여섯살 하던 두 녀석을 위해 피자 한 판을 시켰다가 그 먹어대는 기세에, 은근히 한조각 얻어먹으려 했던 내 손가락 두개가 민망한 꼴을 당했던 것이 그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a,b,c 세글자도 제대로 모르던 코흘리개 두 녀석을 끌고 물 건너 이곳으로 건너온, 몇년 전 일이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붙잡아 앉혀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J야, 학교 갔다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사탕 주면서 아저씨랑 같이 가자면 넌 어떻게 할래?"
"No! 하고 말할거야."
첫째 녀석이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며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오는 답을 준다.
그렇지, 그렇지...

이번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의 차례다.
"H야, 너는 백설공주처럼 아주 예쁜 언니가 피자 사줄께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할래?"
나름 똑똑해서 선뜻 예상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답을 준비하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
아하!, 피자라는 것이 녀석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지금은 두녀석 다 찐득한 우리의 '밥'에 중독되어, 밖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밥통 열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멀리서 피자의 냄새만 흘러나와도 녀석들의 정신이 혼미해지던 때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가장 빨리 배운 단어가 p.i.z.z.a. 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무길도한량은 음식 앞에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부처라도 된다는 말인가?
에헤-, 그럴리가...
음식 있는 곳에 사람 마음이 있다고... (가만, 음식이 아니고 돈이었던가? ^^)
여하간 무길도한량도 위대한 피조물의 하나인지라, 어찌 그 푸드 크래이빙 (혹은 음식탐닉?)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좋아하는 음식만 따지며 지내도 일년 하고도 35일은 더 이야기 할 수 있으되, 오늘은 아주 간략히 아주 간단한 것으로 두글자짜리 하나만 이야기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
중국집의 두글자 메뉴 중의 하나, 바로 짜장이다. ^^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 짜장의 의미는 특별했다.
무엇이 제일 먹고 싶으냐 물으면, 백인백색으로 그 대답이 다 다를 것 같지만서도, (우리땐) 무려 65%의 사람들이 짜장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어떻게 아냐고?
소재가 빈곤하여 막대한지면을 무엇으로 메울까 고민하던 학교 교지 편집위원들이만들어낸, 심심풀이 앙케이트를 통해 나온 결과가 그러하였다.

그래서 특별한 날들, 즉 입학식, 졸업식, 생일, 단오날(이건 아닌가?)...등등의 날엔 중국집 한켠에 뜨뜻하게 바닥에 불 들어오는 방에 자리잡고 앉아 후룩 쩝, 후룩 쩝...
간혹 가다 운좋은 날은 탕슉 (이 친군 두글자 메뉴 중에 가장 비싸다)도 한접시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주로 아버님께서 함께 하신 날의 메뉴이고, 다른 날엔 주로 짜장 내지는 짬뽕이 대세였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입가에 흑갈색 짜장을 묻히면서뿌듯한 마음으로 한그릇 비워내는 짜장만큼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없었다.

후룩 쩝, 후룩 쩝... 하고 반쯤 먹을라 하면, 그제서야 짜장을 다 비비신 어머닌,
"많이 먹어라."
(화이고, 벌써 반은 먹었는디...) --;
어머니 잡수시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 그때부턴 단무지와 양파를 열심히 먹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난 한번도 곱배기를 시켜본 적이 없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집 짜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일이었기에, 짜장면 곱배기라는 것은 항상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일 따름이었다.
나중에 아버님께서 돈을 많이 버셔서, 매일 탕수육을 시켜먹어도 괜찮을 때가 되어서는 이미 나의 사랑이 보통 짜장으로도 충분할 만큼으로 감소되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 곧바로 몰려온 IMF의 거센 파도를 맞아 싸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사업장이 있던 동네엔, 서울에서 가장 싼 짜장면집이라고 TV뉴스에까지 나온 중국집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침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사업장으로 가는 외길목 코너에 떡 버티고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 길로 출근을 하노라면, 벌써 점심 때를 위하여 짜장을 볶는다, 양파를 볶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사람을 반 미치게 만들곤 했다.
그때부터 사업장에 도착할 때까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짜장, 짜장, 짜장... 하며 걷다보면 자연스레 또 하루의 점심메뉴는 결정이 되고 만다.
아... 오늘 점심에도 맛있는 짜장을 먹어야겠다. ^^

점심 무렵, 중국집 빨간 오토바이가 은색가방을 매달고 들이치면 우리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냥반, 또 아침에 짜장 냄새 맡은 모양이네...
맨날 제일 싼 짜장면만 드신다고 동네에 소문 다 났슈...
회장님도 맨날 짜장이시더니, 부자가 어찌 그리 똑같으시데요?
심지어는 중국집 배달하는 사람이 말하길,
내일은 짜장 시켜도 짜장 안가져와유. 무조건 볶음밥 가져올팅게...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IMF를 짜장과 함께 보냈다.

물론 그 중국집이 있는 허름한 건물이나 사방에 짬뽕 국물이 묻은 그 빨간 오토바이나 배달하는 사람의 옷의 청결 상태로 말하자면...
두 번 다시 시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여하간 재료를 최고로 아끼고도 그 짜장의 맛은 좋았다.
깨끗한 중국집 찾으면 맛있는 곳이 없다...
주방에 들어가보면 다신 중국집 못간다... 등등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특별히 점심 약속손님이있을 경우만 빼곤 난 항상 변함없는 짜돌이였다.

어느날 이었을까?
거래처에서 온 손님 한명도 나와 같은 중국집에서 우동을 시켜먹기로 했다.
그날 따라, 이젠 무길도한량을 짜장으로부터 졸업시켜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현장의 한 직원이 와서 중국집의 나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가 있어봐서 아는디유...
웬만하면 손님이 있으면 그러지 않을텐데, 그 손님은 현장의 그 직원과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 현장직원의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같이 댓거리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짜장과 우동은 도착을 하고...
한석봉이 일필휘지로 내려 갈기듯이 나무젓가락은 짙은 갈색 짜장 위로 면을 뒤집어주고, 한편으론 세심하게 떡을 썰던 석봉의 어머니 칼질처럼 짜장 묻지 않은 면이 없도록 꼼꼼히 뒤집어 주었다.
예전엔 이 집도 수타(手打)였는데...
배가 고팠었던지 손님은 벌써 그릇에서 입으로 바쁘게 우동을 끌어올리고 있다.

첫 개시를 위하여 면 위로 푹 꽂은 두 젓가락을 이제 막 휘돌리며 짜장을 감는 순간,
"악!"
마주 앉은 사람의 두눈이 순식간에 곤두서며 면이 가득 든 입을 떡 벌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왜 그러세요?
그는 떡 벌린 입으로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자신의 우동을 가르킨다.
아... --;;

그의 맑은 우동물 속에는 하얀 면을 배경으로 초록색 시금치와 주황색 당근이 얹혔는데, 그 사이로 엷은 갈색의 녀석 하나가 온탕에 들어앉은 육십대 아저씨의 포즈로 누워있다.
예전부터 중국집 짜장단지에 녀석들이 많다는 이야긴 많이 듣긴 들었지만...
그는 멋모르고 허겁지겁 두어젓갈 먹은 자신에 신경질이 나는 모양인지 젓가락을 내려놓고먼산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간혹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혹시 녀석들이 뇌 속으로...?

그래도 난 아직도 짜장면 든 젓가락을 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내꺼에 있던건 아닌데...난 계속 먹어도 되지 않을까....?
순간 우리 현장직원이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잽싸게 젓가락을 빼앗아 내동댕이치곤 그릇들을 가지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쩝... 아직 맛도 못봤는데...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한 때 열렬히, 미치도록 사랑하던 중국집 짜장과의 기억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무슨 마법의 주술처럼 내 머리 속으로 스며들어와 결국엔 먹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 영험한 고소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설사 그 맛이 갈색의 녀석들과 함께 잘 볶은 짜장의 맛이었다 해도 말이다.
너희가 짜장을 아느냐? ^^

요즈음은 고기와 호박과 양파를 썰어넣고 장에서 사온 볶은 짜장을 넣고 가끔 짜장면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암만 열심히 만들어도 그곳의 그 맛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같이 있다.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그 집을 찾을까?
하지만 답은 글쎄다.
그 집이 그대로 있을런지도 모르겠거니와 다시 찾을 용기가 없는 것도 같다.

유리창 위로 빗물이 짜장처럼흐르는 오늘은 심히 짜장이 땡기는 날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맛있는 짜장을 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벌레는 빼고...

What do you crave?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0.12.16)

블로거를 위한 기도문



블로거를 위한 기도문








가상의 공간, 인터넷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행운인가 불운일까?

인터넷에는 자기 만족을 위하여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현학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연예인처럼 인기에 중독되어 쓰는 사람도 있고,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심심풀이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연유에서 어떠한 목적으로 글을 쓰던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것은 하나의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축복엔 책임 또한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근래에 익명의 가면성을 이용하여 어떤 대상을자극하고 헐뜯으며 린치하는 일부사람들의무책임하고, 공격적이고, 무례함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그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하는 경우들을 우리는 보았다.
어찌 그렇게 사람들 마음이 뒤틀리고 꼬였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재되어 있는 엄청난 분노가 마치 용암처럼 분출할 곳만 찾아다니는 느낌 같다.
대상이 발견되면 인민재판이라도 하는 듯 몰아가기 시작한다.
이즈메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면, 정정당당한 사과는 커녕 남의 탓을 하고 유야무야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며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다.
아니면 말고... 처럼 그 얍삽함을 잘 드러내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는 말이 있다.
또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는 말도 있다.
칼보다 강한 펜을 휘두는데, 그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블로거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평화로운 인터넷 바다에서 배를 타고 노니던 무길도한량은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물고기 한마리를 만났다.
물고기의 이름은 '블로거를 위한 기도문' 이라고 한다.
누구든 마음을 열고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왜?
무길도한량의 추천이니까... ^^
영어에 능숙하신 분들을 위하여 원문도 그 아래 적어놓았으니 참조하시길...



블로거를 위한 기도문

                                       -윌리엄 바클레이



주여

내게 언사의 재능과 책임을 주셨사오니
오로지 진실와 선함과 아름다움만을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해주시고
다른 사람의 순수함을 해하거나
그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내글을 접하는 이들이
나쁜것들에 더 현혹되도록 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마음을 타락하게 만들지 않게 하옵소서

저속한 것들이나
진실을 외면한 인기영합주의나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항상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권리들을 존중케 하소서

바라옵건대
내가말하고 쓰는모든 것들이
나의 양심에 비추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으며
당신 앞에서부끄럽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주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O God,
you gave me the gift and the responsibility of using words.

Help me in all my writing and my speaking to be the servant of goodness, of beauty and of truth.

Help me never to write or to say anything which would injure another’s innocence or take another’s faith away.

Help me never to write or say anything which would make that which is wrong more attractive, or which would soil the mind of anyone who reads or hears it.

Help me never to pander to that which is low, never to seek popularity at the expense of truth, never to be more concerned with sensations than with facts, and always to respect the feelings and the rights of other people.

Grant that all that I write or say be such that it can stand the scrutiny of my own conscience, and such that I could with a clear conscience offer it to you. This I ask for your love’s sake. Amen.

-William Barclay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0.11.07)

해피 다이너스



해피 다이너스 (Happy Diners)






What's for dinner?
첫째놈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대뜸 묻는다.
쓰... 저것이...
칼날 같은 말 한마디로 내칠까 하다가, 에이... 나도 옛날엔 저랬을 것이 뻔해서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묵직히 누르며 좋은 말로 대꾸해보려 노력을 한다.
이눔아,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부터 하고 먹을 걸 찾아야지...ㅉ
주댕이를 삐죽하더니 두 번 다시 눈길 안주고 휭 돌아서서 제 방을 향해 행진을 한다.

그래, 나도 옛날에 학교 갔다오면 힘든 척 하느라고 어머니에게 주댕이 내밀고 괜스레 신경질내며 내 방으로 올라가곤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내가 그대로 받는구만...
어무이, 이 불초한 놈을 용서하소서...
허공을 응시하며 장탄식을 해본다.
부엌에 걸려있던 후라이팬 중 하나를 번개처럼 낚아채서,쿵쾅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가는 다 큰 자식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지 않고 참아내신 어머니의 인내심에 감사를 드린다.

세상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누가, 아니 내가 언제 이 다 큰 녀석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고... 행여나 끼니 거를까봐 걱정하며 지낼 줄 상상이나 했으랴.
이눔들아, 아빤 국민학교 다닐 때 혼자 라면도 끓여 먹고 연탄불도 갈았다!
라면은 나도 끓이는데...? 근데, 연탄불이 뭐야?
끙~. 됐다, 마.
하긴 가만 놔두면 지네끼리 알아서 라면도 끓여먹고 계란후라이 해서 밥도 찾아먹더구만...

근데, 살아보니 그냥 놔두기가 참 안된거였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엄마하고 떨어져 사춘기를 보내는 두녀석들에게 건강과 절약을 위해서 외식도 자제시키면서, 집에 와도 식탁에 별거 없으면, 그건 참 신나지 않는 인생임이 틀림없으리라.
그저 한참 때는 별 맛있는거 없어도 원할 때 따뜻한 밥 배불리 먹고 식탁머리가 신나면, 그기 제일 행복한 인생 아니겠는가?
배불리게 먹이고나면, 게기름처럼 두녀석의 얼굴 위로 번져오르는 만족감 내지는 행복한 표정에선 시험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입시에 대한 긴장감 따윈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돈까스를 만들어주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진 관계로, 시린 가슴을 덥혀주고자 토요일엔 후끈한 양념통닭을, 일요일엔 남은 닭을 푹 고아서 닭게장을 끓여 무조건 밥 한주걱씩 넣고 한그릇씩 쭈욱 들이키게 했더니 좋았던모양이었다.
아빠, 오늘 저녁엔 또 무얼 먹을까?
둘째가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보며 물었다.
왜? 뭐 먹고 싶은게 있니?
응... 아빠가 좀 귀찮을텐데... 갑자기 바삭한 돈까스가먹고 싶어.
알았어.

괜히 말했나 싶은 표정으로 둘째는 현관문을 나서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가 알았다고 했잖아.
미안해.
학교에서 재밌게 지내기나 하고 와라.
제 몸무게 만큼이나 무거울 듯한 책가방을 등 뒤로 걸머지고 녀석은 신나는 듯 좌우로 흔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새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안이 나왔으므로 그 다음부터는 나의 몫이다.
일단 냉동실에 있는 돼지고기를 확인하고 해동시키기 위해 내놓았다.
아침운동을 하고, 사업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두어시쯤 되면, 이젠 인터넷을 통해 좋은 돈까스 레시피를 찾아본다.
원래 요리실력이 있었던 건 아닌지라, 때론 결과물이 처음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경우엔 아예 전혀 상관없는재료들을 더 넣어세상에 둘도 없는 요리를 만들어버린다.
그리곤 프랑스나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요리라고 하면 두녀석들은 깜빡 넘어가고 만다.
똑같은 것을 또 만들어 달라고 한 적 없는 것이 그나마 참 다행이다.

인터넷엔 정말 정보가 끓어 넘치도록 많다.
특히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요리의 달인들은 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들이 있어, 그 정보들을 걸러내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추려내는데도 아마 한 시간쯤은 투자를 해야 하는것 같다.
여하튼 레시피도 준비되고, 녀석들은 무사히 학교에서 돌아와 조용히 각자의 방에서 제 할 일들을 시작하면, 드디어 무길도의 칼잡이는 부엌으로 나선다.

고기 자르고, 밀가루 묻히고, 계란에 담갔다가, 빵가루를 가득 묻혀서 기름 속으로 짜그르르르르...
그렇게 오늘은 돈까스를 만들었다.
삼시 세끼 다 따뜻한 밥 차려주지 못할 망정, 한 끼라도 가족들 오손도손 둘러 앉아서 오늘을 감사드리고 내일을 의탁하며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들이나 천리만리 혼자 떨어진 엄마를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학교공부 이야기도 돈까스 맛이고 아이들 눈빛 반짝이는 남자아이들 이야기도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워낙에 돈까스를 좋아하던 큰아이는 손바닥만한 돈까스덩이를 네 조각이나 먹었고, 마침 돈까스가 땡겼던 둘째도 질세라 네 조각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두어시간 신경쓰며 힘들게 서서 일한 것이 하나도 힘든 생각이 안들었다.
그저 맛 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아마 우리 어머니도 우리 멕일 때 이런 마음이셨으리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했다.
하나도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두녀석들을 돌보면서 Mr. Mom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
라면과 계란후라이 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점차 요리의 영역을 넓혀가며, 두 아이들의 건강과 식탁의 즐거움에 기여함에 나 스스로의 즐거움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배워가면서 말이다.

돈까스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후 테이블을 정리하던 첫째가 물었다.
아빠?
???
인제 정말 먹고 싶은게 하나 남았거든?
뭔데?
자신있는 눈빛으로 내가 되물었다.
첫째는 두 눈을 위로 올리며 생각하는 체 하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순대.

읔, 이녀석이 순대는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