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대설부(大雪賦)



대설부(大雪賦)







눈이 내렸다.
연 며칠을 글 쓸 것에 대해 생각을 모으고 있는 중에, 부서져 내리는 소재 부스러기들처럼 밤을 타고 살금살금 내려버렸다.
희미한 기억의 잔상들을 끌어모아 눈덩이로 굴려서 예쁜 눈사람 같은 글을 써야 할텐데...
부스러진 눈들은 아직 서로 달라붙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고만 있다.
내 생각의 단편들도 덩달아 흐트러져 내린다.





눈을 즐기러 W와 L 부부와 함께 산속 캠프로 떠난 아이들.
그곳은 산이 깊어 눈도 한 번 오면 허벅지 정도는 예삿일이다.
고립감을 맛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엔 본관 건물의 1층 처마까지 눈이 쌓여, 2층 베란다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눈썰매도 타고, Cross country 스키도 하고, snow shoes를 신고 산보도 하고...
그냥 그 위에 구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리라.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우리도 옛날엔 나름 재미있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하늘 향해 큰 입 벌리고 한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도 받아먹고,
꽁꽁 언 개울에 나가 외삼촌댁 세퍼드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달리다 그 정신없는 속도를 못이기고 개울가 돌무지에 꼻아박히기도 하고,
혹시나 산토끼 한마리 잡을까 하여 숲속 여기저기에 설치 해놓은 올무들을 차례차례 점검하느라 두 손과 두 발이 동상 걸린듯 빨갛게 얼어버리기도 하고,
썰매 경주에 이기기 위해, 뻘겋게 녹슬어 버린 스케이트날을 찾으러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느라 볼따귀는 빨갛게 터져나가버리고...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그 중에서도,
몸통에 아무렇게나 바람구멍을 숭숭 낸 커다란 쇼트닝 깡통이나 페인트 깡통 혹은 드럼통에서 투닥투닥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던 불도라무깡이 가장 좋았다.
그 주위에 둘러서서 따땃한 불볕을 쬐다보면, 누군가의 옷자락이 그을리느라 세탁소 냄새도 나고, 어느집 광에서 쌔벼나온 고구마 익는 냄새도 심심찮게 나고...
못먹는게 어디 있나?
구우면 다 맛있지...
콩 가져오는 녀석, 감자, 양파, 심지어는 끄뎅이 김치까지 내오는 녀석들...
또 적당히 몸 좀 녹이면, 연도 날려야지, 불깡통도 돌려야지... 바쁘다 바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뜨끈하게 끓인 여물죽을 거친 숨 몰아쉬며 부지런히 씹어대던 고모네 이웃 황소도 생각나고,
가파른 계단길을 미끄러지지 말라고 연탄재 뿌려놓은 골목길에 우두커니 선 전봇대 보안등도,
꽁꽁 언 손발로 집에 돌아오면, 황급히 아랫목으로 이끌어 손발을 녹여주시던 어머님도,
겨울만 되면 감기에 편도선염에 고생하며 골골대던 동생도,
눈보라 속에서도 푸리뒹뒹한 낯빛으로 꼿꼿히 버티고 서있던 칠면조들도,
내 기억 속의 눈송이들은 별 없는 밤 사이로 흩어져 내린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렇게 눈이 쓸쓸한 날은 암만 해도 호빵이라도 하나 쩌먹어야할 것 같다.
맛으로야 길거리에 뿌연 간유리 미닫이문 내달은 찐빵 만두집을 따라가기야 하겠냐마는, 꿩 대신 닭이 아니던가.
아니면 뜨끈뜨끈한 국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오뎅꼬치는 또 어떠한가?
아니면 국수면발 야들야들한 설렁탕은?
얼큰한 짬뽕은?
......

쩝, 생각이흘러가 멈추는곳은 항상 먹는 쪽이라니... --;;
우리집 엥겔지수가 높은 이유를 이제사 알 것도 같다. ^^


-큰 눈 오는 날, 잡스런 생각에 빠져들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2011.01.1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