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수박냉차와 딱성냥

수박냉차와 딱성냥





   
         

벌써 밤하늘엔 별들이 한가득 한데 아빤 아직도 오시질 않는다.
평상 한가운데 누워 하나 둘 별을 세던 아랫집 진이는 이젠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포대기에 쌓인 채로 칭얼거리던 동생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어머니 등 뒤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있다.
진이가 대(大)자로 펼쳐누운 평상의 주변을 돌아가며 한귀퉁이씩을 차지한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 소리는 도란도란 들려오고 밤의 한기가 내리는지 서늘해진 저녁 공기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의 따뜻한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엄마,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줘...
엄마가 섬그늘에?
불쑥 꺼내는 소년의 말에 어머니가 되물으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하는거 있잖아.
으응, 그래.
어머니는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저 아래 동네에선 신작로를 내느라 우리 동네 밑에 자리한 바위산을 깨내는 다이너마이트가 수시로 뻥! 뻥! 터지고, 바위가 튀지 않도록 덮은 가마니들은 하늘 높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저러다간 우리 동네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머닌 우리가 그 근처로 가지 못하도록 하루에도 몇차례씩 주의를 주셨다.

때 이른 더위는 어린이날이 지나기 무섭게 반팔이며 양산이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어느날은 수박냉차 아저씨까지 낑낑거리며 짐자전차를 끌고 우리 동네까지 올라왔다.
그가 올라올 때 자전거 뒤켠으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가마니들이 날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졌다.

덥기로는 그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더운 것처럼 보여서, 저렇게 땀을 흘리다간 싣고 온 냉차를 아저씨가 혼자 다 마셔도 부족할 듯 싶었다.
그는 공터 옆 처마 밑 그늘에 털썩 주저앉더니 챙 좁은 밀짚모자를 뒤로 조금 제끼고, 이상한 푸른색 무늬들이 어지럽도록 마구 새겨진 셔츠의 윗단추 두개를 풀었다.
그리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한쪽 끝을 잡고 두어번 탁탁 털어내 손수건을 넓게 펼친 후 얼굴이며 목에 난 땀을 마구 문지른 후 수건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목도리 마냥 뒷목에 걸쳤다.

그가 커다란 수박 한덩이와 얼음이 담긴 냉차통에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를 끌어내려 유리컵에 넣자 유리컵엔 금새 갈색 액체가 가득 차올랐다.
냉차통을 향해 빙 둘러선 아이들을 향해 건배를 하듯 유리컵을 들어보이더니 냉차아저씨는 단숨에 그것을 자신의 긴 목 속으로 털어넣었다.
캬아~, 시원타!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어이 시원해, 어이 시원해 하는 소리를 연방 내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셔츠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가치를 입에 물은 후 딱성냥을 구두굽에 그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이자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탄성.

다시 한 번 입가에 씨익 웃음을 새긴 아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있게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가 길게 내뱉으며 머리에 얹힌 밀짚모자를 내려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겠지?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한 컵에 10원이다.
아이들은 10원이라는 액수에 그만 맥이 탁 풀리는 눈치였다.
이 동네 아이들에게 10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이 아저씨는 모르는 것일까?
10원이면 삼립 크림빵이 하난데...
빠르게 냉랭하게 식어가는 아이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냉차아저씨가 민첩성을 발휘한다.
근데! 이 아저씨가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선 5원에도 줄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입가엔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담배를 한 번 길게 빨아 하늘에 대고 동그라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야아....
아이들의 탄성이 쏟아지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멋지지?
예!
좋다. 그럼 이 아저씨가 너희들을 위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마.
아이들은 호기심에 부풀어 냉차아저씨의 입으로 모든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아... 냉차 한 잔에 5원에다가 아저씨가 이 딱성냥 하나씩 선물로 주마. 이 딱성냥 있으면 너네 아버지들도 이 아저씨처럼 동그라미 만들 수 있어. 심심할 때 아버지한테 동그라미 만들어달라 그래.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것만도 충분히 신기한데, 동그라미까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의견교환을 하느라 조금 부산해진다.

그 중 나이든 4학년 아이가 손을 들며 질문을 한다.
저는요, 얼음 먹으면 배 아파서 안되는데요?
맞습니다. 얘는 설사쟁이래요.
눈치없이 옆에 선 녀석이 끼어든다.
냉차아저씨는 안됐다는 듯이 혀를 두어번 끌끌 차더니 어쩐다 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다가, 두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낸다.
그래, 아저씨가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눈들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가선다.
아저씨가 말야... 냉차 싫은 사람은 딱성냥 3개를 10원에 주마. 어떠냐?
아이들은 순식간에 각자 집으로 사방팔방 흩어져 간다.

햇볕 내리쬐는 공터엔 냉차아저씨와 소년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년은 햇볕에 눈이 부셔 인상을 쓰며 냉차통을 올려다 보고있다.
너는 왜 안가냐?
아저씨가 물었다.
전 돈이 없는데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엄마도 돈이 없는데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아저씨는 하늘을 향해 담배를 뿜어낸다.
순간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폭음과 함께 마을 전체가 몸서리를 쳤다.

옛다, 이거 한 잔 마셔라.
아저씬 유리컵에 차디찬 냉차를 가득 부어 소년에게 내밀었다.
아녜요... 안되요. 우리 엄마가 얻어먹는건 거지래요.
소년이 도리질을 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냐, 임마.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인거야. 어서 마셔.
벌써 몇몇 녀석들이 돈을 가지고 공터로 달려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냉차아저씨에게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단숨에 냉차를 들이마셨다.
커- 시원한지고... ^^

그날 딱성냥을 산 녀석들 중의 몇몇은 쓸데없이 돈 썼다고 등짝을 후려맞았다고도 하고, 몇몇 녀석은 냉차 먹고 배탈이 났다고도 한다.
냉차도 한 잔 얻어마시고 딱성냥까지 하나 얻은 소년은 밤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를 뵙지 못한 관계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부엌에 몰래 숨겨 놓았다.
어느날 밤 장난끼가 발동한 소년은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와 함께 불장난을 하다가 농 위에 쌓은 이불 위로 늘어진 담요에 불이 옮겨붙어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하여 한동안 그 동네엔 등짝에 손바닥 문신한 녀석들과 종아리에 가로줄 무늬 새긴 녀석들이 공터에 때 이른 모기들처럼 득시글 거렸다고 한다.
바위벽을 깨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폭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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