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삥과 짜루



삥과 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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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에 하나 또는 일을 나타내는 pinta 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삥(ピン)으로 변하게 되는데, 가로채다(はねする) 라는 말을 더하여 상거래 때 거간꾼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10% (1할)을 떼는 행위를ピンはねする ... 우리말로 하면 '삥을 떼다', 나쁜 말로 하면 '삥을 뜯다' 라고 표현을 한다.

삥을 뜯다...
요즘 청소년들이 금전 갈취사건에 많이 쓰는 말이다.
물론 삥을 뜯겼다 라는 쪽이 대다수이겠지만... ^^

삥을 뜯고 뜯기는 것이 어제 오늘날의 이야기가 아니고, 돈이란 것이 생긴 이후부터 강자가 약자에게서 보이게 안보이게 강요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길도한량도 어렸을 적엔 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던 터라 뜯기고 사는 요즘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당시 고등학교로선 참 보기드물게 모든 사람이 2인용 책상을 수염 듬성듬성 난 짝꿍과 정답게 공유시키던 학교였다.
그리고 시험 때만 되면 학급의 반을 다른 학년으로 보내어 시험을 보게 했다.
예를 들면 3학년과 1학년이 2인용 책상에 나란히 앉아 시험을 보는 것이다.
컨닝의 위험이 없었겠다 하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아이구, 귀여운 것. 아그는 공부 얼마나 하냐?"
키는 나보다도 작고 몸은 배가 퉁하고 나온, 벌써 상당히 팍삭 늙은 얼굴을 한 옆자리 3학년이 이죽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경계경보!, 경계경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직관의 센서가 마구 붉은 깃발을 들어올린다.
"그냥 보통하는데요..."
"이잉, 그라믄 성님꺼 적당히 풀면 되야."
그리곤 덧붙여서 자신의 성적이 떨어지면 알아서 하라며 인상을 3초간 찌푸려 보인다.
"글고, 그렇다고 또 너무 또 잘보면 안되야... 알았제?"

우리 친구들 정보에 의하면, 그의 성적은 전체 학년 중 바닥을 기기로 유명했다.
따라서 그의 시험성적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무길도한량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일필휘지로 마구마구 답안을 써내주곤 하였다.
점수야 어쨌던, 성의껏 시험지를 채워주던 내가 기특하였던지, 두어번 시험이 끝나자 그는 나에게 사탕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그야, 이 성님은 '짜루' 라고 혀."
"짜루요?"
"아, 왜 거 있자녀. 도끼자루... 할 때 '짜루'..."
"아, 예."
"앞으로 누가 괴롭히면, 이 '짜루' 가 니 형님이라고 햐. 알았제?"
도끼자루...
뭔가 심상치 않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여하간 OK. 
이제 든든한 빽이 하나 생겼으니 학교생활이 좀 편해지겠군.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은 학교 밖에서 불량스러워 보이는 상급생이 멀리 보일라 치면, 재빨리 상대를 읽고 상황을 파악하여 무길도한량 나름대로의 대처방법 중 하나를선택하여 재빨리 실행에 옯기며 위기를 모면하곤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 세가지 대처방법이란...

첫번째 대처방법, 오던 길을 돌아서 간다.
이건 그들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다리가 좀 고생을 한다.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뺑뺑 돌다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리가 피곤하다.
더더구나 모르는 길로 빠지게 되면...? ^^
하지만 삥을 안뜯기는데 이 정도 수고쯤이야...

두번째 방법, 모자를 꾹 내려쓰고 고개를 숙인채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려서 지나친다.
"야!, 거기 안서? 어쭈? 안서?"
그들은 때때로 학교에서 보면 죽인다 하고 협박을 하지만 99.99%는 다시 알아보지 못한다.
모자를 꾹 눌러써서 얼굴을 잘 알아보기 힘든데다가 빨리 뛰어가면 학년 마크나 이름표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대다수의 불량상급생들은 이미 담배에 쩔어, 나의 건장한 다리에서 뿜어나오던 폭발적인 스피드를 쫓아올 만한 체력도 없었다. ^^

세번째는 보무도 당당하게 다가가서 걸려주는 것이다.
이건 주머니에 돈이 없을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대사가 있다.
"너, 센타해서 나오면 1원에 한대씩이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다행스럽게도, 예전엔 돈 안갖고 다닌다고 때리던 불량 상급생들은 없었다.
"단결! 수고하십시요."
헤어지며 깍듯이 경례붙이는 것과 조롱성 코멘트를잊지 않는다. ^^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칭 무길도한량 보디가드 운운하던 친구의 든든한 빽 덕분에 삥 뜯기의 존재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지냈는데, 상급학교에 진학하며 그와 갈라지고 나니 생존의 문제가 당장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동안은 세가지 전술 덕에 한 번도 못된 선배들에게 걸리지 않고 무사했었는데, 이제 든든한 3학년 성님의 빽까지 생긴다면... 
죽어라 뛰든지 모르는 길을 헤매이든지 하는 고생은 끝이겠지?
아... 이제 통학길에 걱정 좀 덜고 살겠구나 하는 희망이 뭉게구름처럼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나는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혼자 다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평소 자주 삥을 뜯기는 친구들에게 나의 복을 나누어 주었다.
"하여튼 어떤 놈이 잡으면, 무조건 짜루 동생이라고 하래."
두 녀석들은 나의 의리에 감동하여 눈물을 다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고맙구나. 난 아예 걔네 줄 돈 한장은 이쪽 주머니에 항상 따로 상비한다니까..."
"이젠 너무 걱정하지 마라. 괜찮을거야."
나는 작은 눈에 힘을 주며 목소리까지 제법 두껍게 하며그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방과 후, 두 녀석들은 기쁜 마음으로 나를 버스정류장 뒷골목의 만두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 만두가 어찌 그리 맛이 있는지...
"더 먹어, 더 먹어. 우리가 먹는건 하나도 안아깝다."
"야, 저 단팥빵도 무지 맛있어. 저거도 먹자."
만두와 찐빵과 설탕 묻힌 단팥빵들이 가득가득 담겨나온 접시들은 우리들의 즐거운 웃음을 가득 담아 내려갔다.
당면은 부들부들, 만두피는 야들야들, 나의 목소리는 유들유들, 녀석들 주머니는 간들간들... ^^

숨이 차도록 주워먹은 셋은 만두집 옆 구멍가게에서 사이다 한 병씩을 제낀 후에야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우리들 입술엔 행복감이 번지르르 하게 흘렀다.
삥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아쭈구리~. 1학년도 내놓고 만두집 드나드는 시대가 되었네 그려?"
호크는 물론이고 윗단추를 두어개 가슴까지 풀러내린 세 명의 3학년들이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꺽어신은 신발을 찍-찍- 끌면서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재빨리 경례를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오이야, 오이야. 그려 먹으니 맛있데?"
"예, 그냥저냥..."
"맛있어? 없어?"
"있었습니다."
"좋아, 너희의 추천을 받아 이 형님들도 만두를 드시겠다."

첫째놈이 우리들의 어깨를 한 번씩 툭툭 쳐주며 만두집 플라스틱 주렴을 헤치며 들어갔다.
둘째놈은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바이바이 하며 첫째놈으로부터 주렴을 받아잡으며 들어갔다.
셋째놈은 둘째놈으로부터 주렴을 받으려다 말고 돌아서 나와 우리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크지 않은 소리로 우리를 꼬나보며 말했다.
"선배님들을 위하여 두당 천원씩 갹출."

바로 이것이다.
무길도한량의 세가지 전술이 통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의 상황.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서 우린 빽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셋은 동시에 이렇게 소리질렀다.
"저흰 짜루 형님 동생들입니다."
셋째놈이 우리들의 합창에 흠짓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둘째놈이 주렴을 걷고 다시 나왔다.
첫째놈은 그 주렴을 받으며 고개만 내밀었다.

"누구 동생이라구?"
"네, 짜루 형님요."
세녀석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면서 나의 마음엔 쾌재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룰루루루~~~
"그럼, 두당이천원씩 갹출!" 
첫째눔이 소리치자, 어안이 벙벙한 우리들에게 둘째눔이 내뱉었다.

"재수없는 푸대자루새끼...머리 나쁜 놈이 안끼는데가 없어...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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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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