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바보. 천치. 멍텅구리. 으버리. 쪼다.
우리가 어렸을 때 뜻도 모르고 쓰던 단어들이다. (물론 바보는 예외지만... ^^)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맘 편한 한량이란 작자가 하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고 이해하시길... ^^

바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천치: 선천적으로 정신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멍텅구리 : 멍청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으버리: 사전에 안나오나 부산지방에선 '어바리' 라고 쓴다고 하여, 다시 어바리를 찾아봄. 발견!
어바리: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 (하여, 으버리는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인 것으로 추정됨)
쪼다: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쪼다에 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예전에 어느 코미디언이 벤허 영화가 히트 했을 때, 주인공 쥬다 벤허 (Judah Ben-Hur) 가 하도 바보 같고 천치 같고 멍텅구리 같이 답답했던 관계로 "에이, 이 쥬다 같은 녀석아" 하고 놀렸다는데서 '쪼다' 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거야 말로 100% 믿거나 말거나... ^^

여하튼, 무길도한량은 왜 이런 어바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앉았을까?
본래의 쓰임새와 달리, 사실은 이것들이 우리 형제들 간에 통용되던 '욕'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성적인 욕설이나 동물에 빗댄 말들이 우리 집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안쓰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성인들은... ^^) 우리 예삿것들은 화가 나고 폭발해야만 할 때 무언가 대용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쓸 상황이 없다면 또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이란 것이 적당히 부딪히며 살아야 잘 산다고 하지들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놀림말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화가 조금 나면, "바보!"
그거보다 조금 더 나면, "바보천치!"
그거보다도 또 눈꼽 만큼이라도 더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
또 그거보다 더 많이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의 다섯 단계로 세기를 조절하며 표현하기로 우린 약속했다.

누구는 어렸을 때부터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나쁜 XX" 하고 욕하는 것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다섯 단어의 조합을 어느 만큼 빨리 구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하고 연구했다.
"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에잇!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이것이 한 단어처럼 수려한 모습으로 유창하게 흘러나왔을 때야 그것이 '잘 사용된' 모습의 욕이 되었지, 천천히 '이런 바보, 천치, 멍텅구리...' 하고 주워 섬긴다면 그건 김이 싹 빠져버려 더 이상 아무 느낌도 매력도 없는 칠성사이다 슈바~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본론으로 가서...
어릴 적 나의 동생들은 순하고 착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사악한 오빠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며 살아왔다.
시집을 가고 아이들을 키우며 이젠 사십이 넘은 지금에도 그러하리 라고 생각은 않지만, 옛날엔 '에구, 이 미련아~' 하며 주먹으로 살짝 알밤만 주어도 3초 이내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구는 여린 녀석들이었다.
오빠의 말을 잘 듣고 같이 잘 놀고 오빠의 잘못에도 부모님께 고자질하지 않고, 혼자 벽 보고 앉아 눈물로 앙금을 녹여내던 의리의 돌쇠들이었다.
(참조: 노변한담 중 '오빠란...'  http://blog.yahoo.com/mukilteo_hanryang/articles/422 )

오늘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상급반이었던 무길도한량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에헴)
방구석에 들어앉아 몇날 몇일을 프라모델을 만드느라 처박혀 있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노올자~' 하는 소리만 들으면 금새 궁뎅이가 들썩들썩 하여, 참아내질 못하고 곧바로 달려나가야만 했다.
그날도 빠알간 가을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부리나케 신발을 꺾어 신으며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며 현관을 튀어나갈 찰나,
"잠깐 나 좀 보자." --

어머닌 막내를 데리고 시장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무길도한량이 동생 K를 봐주기를 원하셨다.
"어, 축구 가야 하는데..."
그러자 어머닌 무길도한량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시며,
"학교 앞 한씨문방구에서 얘랑 같이 아톰바도 하나씩 먹고... 같이 좀 데려가라."
아톰바!
그렇지 않아도 쓸쓸해져가는 가을바람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아톰바를 거부할 수 있는 자, 게 누가 있나?
(아톰바가 무엇이냐? 삼립인지 샤니인지에서 나온 어묵꼬치바로 호빵통처럼 둥그런 통에서 덥혀 팔았던... 요즘 핫바의 기원이라고나 할까?)

무길도한량은 동생 K를 학교 동문 앞 한씨문방구로 데리고 들어갔다.
먼저 아톰바 하나를 K에게 내밀며 그는 물었다.
"너 추운데 나가서 스탠드에 앉아 축구 볼래? 아니면 따뜻한 여기서 아톰바 먹으면서 기다릴래?"
"여기 있을께."
"자, 그럼 시간이 좀 걸릴거니까 이 오빠 것도 네가 먹어."
"오빤 안먹어?"
"암만 해도 여기에서 기다리는 네가 먹는게 나을것 같다."
"빨리 와야돼."
그는 양손에 아톰바를 든 동생을 뒤로 하고 운동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야호! 짐 덜었다!) ^^

모처럼 인원이 꽉 차 축구는 제대로 재미가 났다.
1대0 이 되고, 1대1 이 되고, 1대2 가 되고, 또 2대2 가 되고... 야호~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국기강하식에 걸려 잠시 애국가가 울리는 동안 꼼짝없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태극기가 내려지는 것을 본 후, 그들은 축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교문을 잠그기 위해 소사아저씨들이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다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저씨들이 휘휘 모는대로 남문을 향하여 아이들과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기며 걸어나갔다.

아이들과 즐거웠던 시간을 되새기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집 앞에 도착한 것은 벌써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땀 젓은 웃도리를 마루에 내려놓으려 할 때 그는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녀왔냐?"
아차!
그는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다시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아차차!

한씨문방구 아줌마의 눈꼬리는 이미 양옆으로 한 15도씩은 치켜 올라가 있었다.
그 옆에서 동생 K는 눈물 콧물을 비오듯 쏟아내며 잉-잉- 울고 있고...
"어떻게 집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를 이렇게 혼자 놔두니? 문도 못닫고 이게 뭐람?"
아줌마가 하는 소리가 앵앵거리며 그의 귀를 때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깜빡 까먹었다.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날 까먹을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는 슬며시 동생의 코트자락을 들어올려서 일단 콧물을 닦아준다.
"미안하다니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긴 골목길을 따라 벌써 보안등이 하나씩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서러운 기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고만 울어라."
이마 옆으로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그는 동생을 달래려 애를 썼다.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가 있어?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엄마한테 다 일러줄거야...잉잉잉~"
"아, 글쎄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잉잉잉~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 잉잉잉~"

골목 초입의 훈이네 집에서 된장찌게 끓이는 냄새가 온동네를 진동하며 풍겨나왔다.
그의 뱃속에서도 동생의 뱃속에서도 합창하듯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났다.
"잉잉잉~ 배두 고파... 잉잉잉~ 이 바보천치멍텅구리으버리쪼다야."
"그래... 빨리 가서 우리도 밥 먹자. 제발 좀 그만 울어라잉~"
어둠 속으로 낯 익은 하늘색 대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동생의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오늘도 또 긴긴 밤이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그를 업습해왔다.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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