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달빛을 낚다



달빛을 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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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낚시를 즐겨 다녀본 적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내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먹어보겠다는, 아주 원시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몸을 내주는 녀석들 때문에 그 목표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곤 했다.
물론 목표를 성취하기 전에 겪는 몇번의 달갑잖은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언제나 노동의 댓가로 얻어지는 포만감은 항상 생각 이상이었다.

내가 언제나 맞이하는 첫번째 난관은 미끼 문제였다.
떡밥을 쓰는 경우도 있고 가짜 미끼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물고기들도 역시 살아있는 싱싱한 먹이를 선호하는 눈치라 나의 낚시가방엔 항상 지렁이깡통이 따라다녔다.
꿈틀대는 지렁이의 몸통을 반쯤 잘라서 바늘에 끼우노라면 퍼런 진액을 내며 고통스러워 하는지렁이의 몸짓처럼 내 몸도 따라 목덜미에서 겨드랑이까지가 스멀거리면서 꿈틀거리는 느낌을 참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몸보시하는 겨, 몸보시...

미끼를 건 낚시를 던져서 찌 뜨는 모습을 본 후 다시 낚싯대를 거둬들여 납추를 가감하고 찌의 위치를조정한다. 
그리고 경쾌한 낚싯줄 소리와 함께 원하는 위치로...퐁당.^^
이제 낚싯대를 거치대에 얹고 나의 피곤하고 듬직한 부분도 접의자에 거치시키고 나면 준비단계는 끝.
태양은 찌 주변에서 이글거리고 형광색 찌는 물결을 따라 둥실거리며 떠있다.
이제부터 낚시의 묘미인 기다림의 미학을 즐겨볼까나?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렸을까?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얼굴에 따갑게 느껴지면서 목 뒤로 땀 한방울이 또르르르 굴러 내려갔다.
시계를 한번쯤 봄직도 하련만 어차피 저만치 내어놓은 세속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낚시는 내 모든 생각을 물속에 잡아넣은 채 찌만 내놓고 떠있을 뿐이다.
인내와 찌와의 지리한 싸움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찌가 한번 살짝 움직였다!
물고기가 와서 먹이감을 쳐보는 것이라고 하지?
결투를 하는 건맨처럼 손가락에 각을 세워 움켜쥐듯 긴장시키며 낚싯대 손잡이를 잡아챌 준비에 들어간다.
찌가 살짝 들어갔다 올라온다.
지렁이를 먹기 시작한 모양이다.
몸보시. 몸보시....
낚싯대 손잡이에 거의 닿을 듯 대기하고 있는 손바닥에 땀이 스며남을 감지한다.

크게... 크게 한번만 묵으라...
순간, 찌가 물속으로 쑥 들어간다.
이때닷!
긴장 속에 대기하던 손이 잡아채듯 낚싯대를 잡아당김에, 낚싯대 끝에 달린 낚싯줄 저 끝에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왔쇼이! ^^
당겨주는 이 맛에 숱한 낚시과부들이 생겨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

바늘에 주둥이가 꿰인 채로 낚싯줄에 끌려나오는 눔은 주둥이를 주먹 만큼이나 뻐끔히 벌리고 온몸을 퍼득거리고 있다.
왼손으로 몸통을 잡아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 주둥이를 꿰뚫은 바늘을 뽑아낸다.
이것이 낚시의 두번째 괴로운 일이었다.
그나마 이눔은 상처에서 피를 흘리지 않아 다행이다.
물고기의 크고 검은 눈이 날 쳐다본다.
여느 순한 동물의 눈동자에서 본 선한 빛이 거기에 있다.
소의 눈처럼, 개의 눈처럼, 사슴의 눈처럼...

난 너에게 잘못한게 없는데...?
난 널 먹을거야.
넌 이미 네가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잡았잖아.
그래도 먹으려고 잡은거야.
거짓말.
정말이야.
웃기지마. 넌 날 재미로 잡은거잖아...

물고기가 큰눈으로 날 뚫어져라 응시한다.
나도 지지 않으려고 마주 쏘아보지만 나의 시선은 점점 촛점을 잃어간다.
그가 두툼한 몸을 한번 크게 퍼덕거리면서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려 하고, 나는 허둥지둥 두손으로 그 미끈덕한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결국 물고기는 나의 손을 벗어나 물가의진흙 위로 떨어지고 만다.
주둥이를 크게 벌떡이며 숨을 몰아쉬면서도 나에게서 두눈을 떼지 않고 있다.

날 놓아줘.
싫어. 내가 잡은 물고기를 먹고 싶어.
난 곧 죽게 돼. 네가 죽은 고기도 먹을까?
물론 안먹겠지만... 넌 내가 잡은거야.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넌 이미 먹을 만큼 충분히 잡았어.
......

그러니까, 어차피네가 이긴 승부니까 먹을 만큼만 가져가.
......

네가 먹기 위해 낚시를 한거지 물고기들을 재미로 죽이는건 아니잖아?
......

물고기는 진흙 위에서 두어번 더 퍼덕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그를 두손으로 들어올려 조심스레 물속으로 풀어주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동안 난 재미로 물고기를 잡아온 것 같다.
물고기가 물속으로, 깊은 곳으로 꼬리짓을 하며 유유히 헤엄쳐 들어갔다.

그날 난 밤 늦게까지 물가에 머물렀다.
돌아오는 낚시바구니엔 달빛만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살아있는 생명 하나 하나마다 살아가는 이유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지만, 하나의 개체가 태어나기까지, 또 생명을 부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투자되었을까마는...
생명부지가 아닌 그냥 단순한 재미로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아닐까...

한가위 달이 밝을 모양이다.
달빛이나 가득 낚아서 잔치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좌청풍(左淸風) 우명월(右明月)... 어쩌구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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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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