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그 노인네의 자랑거리

그 노인네의 자랑거리









그는 항상 오른쪽 발을 약간 끌며 건물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걷는다.
그리곤 가게문을 향해 90도로 정확하게 우향우한 후 유리문 손잡이를 잡아 당긴다.
뿌옇게 김 서린 듯한 안경 속에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언제나 먼 곳을 여행하고 있다.
잘 정돈된 백발의 카이제르 수염은 잊혀진 날의 훈장처럼 그의 코 밑에서 유세를 한다.
언제나 처럼 카키색 방수재킷 위로 푸른색 배낭을 매고 머리 위엔 짙은 남색 등산모.
영락없는 등산객 차림의 그가 가게 안을 휘- 둘러 보다가 나를 발견한다.

또 언제나 처럼 반가운 표정을 하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그.
배낭을 내려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지퍼를 열고 안을 뒤적이어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한다.
곧 그 무언가를 찾았는지 나를 향해 빙긋 미소를 던지며 집게 손가락을 힘차게 치켜세워 보인다.
얼핏 보기에 오래된 신문처럼 누렇게 변한 종이조각을 꺼내 들고있다.
그는 복사기들을 향하여 잠시 시선을 주더니 나를 향해 복사기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큰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우갸갸갸 으거 우갸갸거거..."





오우케이.
나는 잘 알아 들었다는 듯이 그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여주며 카운터를 빙 돌아 그에게로 간다.
그는 다시 한 번 종이조각을 흔들며 복사기 위에 얹으며 손가락으로 1장을 표시해 보인다.
"으갸갸가..."
복사기의 밝은 불빛이 엷은 신문지를 투과하며 그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밥이나 제대로 먹었는지... 까칠하게 골 깊은그의 얼굴엔 윤기가 없다.
잠자리와 샤워할 곳은 해결하는지 그는 그래도 항상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복사되어 나온 것은 오래된 신문기사 스크랩이다.
커다란 흑백사진이 함께 한 제법 큰 박스기사엔 "oo고교 풋볼스타, 명문대 진학" 이란 제목이 달려있다.
할아버지 기사예요?
손가락으로 사진의 남자를 가르키며 슬몃 물어본다.
그는 사진 속의 남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손가락으로 얼굴 윤곽선을 따라간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 얼핏 눈물이 어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복사기 옆의 이면지통에서 종이를 하나 꺼낸 그는 거기에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쓴다.
"내 아들이라네."
"스무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먼저 갔지..."
노인의 글씨는 점점 더 떨리며 더 꼬부랑거리고 끝내는 그는 하여금 클리넥스를 꺼내 코를 한 번 팽- 풀게 한다.
미안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잘 생겼지? 나의 가장 큰 자랑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어깨를 위로하며 가볍게 두들긴다.

노인은 내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기사를 읽는 동안 두어번 더 코를 풀고 간간히 유리창 밖의 회색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복사한 기사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침을 묻혀가며 봉투 뚜껑을 붙였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아들자랑을 이렇게 보내는 모양이다.
봉투엔 예의 떨리는 꼬부랑 글씨로 주소를 썼고 그 위에 우표 한 장을 약 10도 정도 비스듬하게 붙였다.
나는 그에게서 그의 소중한 보물을 두손으로 정중하게 받아든 후에 카운터 앞에 있는 우편함에 잘 넣어주었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치세우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뒤로 돌아 가게문을 열고 나갔다.
여전히 오른발을 약간씩 끌며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한참을 지켜보았다.




사실 그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우린 매년 똑같은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년 내내 한마디 하지 않는 그는 그의 아들 기사를 어딘가로 부칠 때만 저렇게 신이 나고 열심히 설명도 하고 그랬다.
나는 또 천연덕스럽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또 똑같은 반응으로 화답을 하고...
그 노인네의 유일한 자랑거리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안좋은 것일까...?
하긴 오죽 거짓말을 많이 했으면, 우리집 가훈을 '정직'으로 정하셨을까? ^^

나도 자랑할 만한 무언가를 남겼어야 했는데...
우리 부모님도 남들처럼 자랑하실 만한 그 무언가를 내가 해놨어야 하는데...
물론 그런거 없어도 우리 부모님은 날 사랑하실 거라는 건 안다.
그래도 역시 티미한 아들 보단 좀 또렷한 아들이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쇠퇴하시는 기억 속에 오래 뚜렷하게 존재하려면 말이다. ^^

인생은 오십부터라는데, 이제 시작하면 늦지는 않았을까? ^^




(20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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