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짜장이 땡기는 날



짜장이 땡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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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중 "crave" 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를 원하다 또는 갈망하다' 하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wish, desire, long for 같은 단어들 보다 훨씬 의미가 강한 것이 crave 이다.
특별히 food craving 하면, '어떤 음식을 향한 강렬한 욕구' 를 말하는데,
임산부가 단무지나 오이피클을 미칠 것 같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군대 훈련병들이 달디 단 쵸코파이를 죽어라 찾는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그 예가 될것이다.

잠시 막간을 이용하여 영어문장 두어개를 소개해본다면,
What do you crave? (무엇을미치도록 좋아하십니까?)
When you are pregnant, do you cravepickles? (임신중엔 피클이 엄청 땡기나요?)^^

우리 아이들이 피자 라는 것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는 없다.
생각컨대, 서울에 있던 우리집 앞에 피자헛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다섯살 여섯살 하던 두 녀석을 위해 피자 한 판을 시켰다가 그 먹어대는 기세에, 은근히 한조각 얻어먹으려 했던 내 손가락 두개가 민망한 꼴을 당했던 것이 그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a,b,c 세글자도 제대로 모르던 코흘리개 두 녀석을 끌고 물 건너 이곳으로 건너온, 몇년 전 일이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붙잡아 앉혀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J야, 학교 갔다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사탕 주면서 아저씨랑 같이 가자면 넌 어떻게 할래?"
"No! 하고 말할거야."
첫째 녀석이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며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오는 답을 준다.
그렇지, 그렇지...

이번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의 차례다.
"H야, 너는 백설공주처럼 아주 예쁜 언니가 피자 사줄께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할래?"
나름 똑똑해서 선뜻 예상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답을 준비하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
아하!, 피자라는 것이 녀석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지금은 두녀석 다 찐득한 우리의 '밥'에 중독되어, 밖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밥통 열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멀리서 피자의 냄새만 흘러나와도 녀석들의 정신이 혼미해지던 때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가장 빨리 배운 단어가 p.i.z.z.a. 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무길도한량은 음식 앞에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부처라도 된다는 말인가?
에헤-, 그럴리가...
음식 있는 곳에 사람 마음이 있다고... (가만, 음식이 아니고 돈이었던가? ^^)
여하간 무길도한량도 위대한 피조물의 하나인지라, 어찌 그 푸드 크래이빙 (혹은 음식탐닉?)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좋아하는 음식만 따지며 지내도 일년 하고도 35일은 더 이야기 할 수 있으되, 오늘은 아주 간략히 아주 간단한 것으로 두글자짜리 하나만 이야기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
중국집의 두글자 메뉴 중의 하나, 바로 짜장이다. ^^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 짜장의 의미는 특별했다.
무엇이 제일 먹고 싶으냐 물으면, 백인백색으로 그 대답이 다 다를 것 같지만서도, (우리땐) 무려 65%의 사람들이 짜장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어떻게 아냐고?
소재가 빈곤하여 막대한지면을 무엇으로 메울까 고민하던 학교 교지 편집위원들이만들어낸, 심심풀이 앙케이트를 통해 나온 결과가 그러하였다.

그래서 특별한 날들, 즉 입학식, 졸업식, 생일, 단오날(이건 아닌가?)...등등의 날엔 중국집 한켠에 뜨뜻하게 바닥에 불 들어오는 방에 자리잡고 앉아 후룩 쩝, 후룩 쩝...
간혹 가다 운좋은 날은 탕슉 (이 친군 두글자 메뉴 중에 가장 비싸다)도 한접시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주로 아버님께서 함께 하신 날의 메뉴이고, 다른 날엔 주로 짜장 내지는 짬뽕이 대세였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입가에 흑갈색 짜장을 묻히면서뿌듯한 마음으로 한그릇 비워내는 짜장만큼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없었다.

후룩 쩝, 후룩 쩝... 하고 반쯤 먹을라 하면, 그제서야 짜장을 다 비비신 어머닌,
"많이 먹어라."
(화이고, 벌써 반은 먹었는디...) --;
어머니 잡수시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 그때부턴 단무지와 양파를 열심히 먹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난 한번도 곱배기를 시켜본 적이 없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집 짜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일이었기에, 짜장면 곱배기라는 것은 항상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일 따름이었다.
나중에 아버님께서 돈을 많이 버셔서, 매일 탕수육을 시켜먹어도 괜찮을 때가 되어서는 이미 나의 사랑이 보통 짜장으로도 충분할 만큼으로 감소되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 곧바로 몰려온 IMF의 거센 파도를 맞아 싸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사업장이 있던 동네엔, 서울에서 가장 싼 짜장면집이라고 TV뉴스에까지 나온 중국집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침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사업장으로 가는 외길목 코너에 떡 버티고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 길로 출근을 하노라면, 벌써 점심 때를 위하여 짜장을 볶는다, 양파를 볶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사람을 반 미치게 만들곤 했다.
그때부터 사업장에 도착할 때까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짜장, 짜장, 짜장... 하며 걷다보면 자연스레 또 하루의 점심메뉴는 결정이 되고 만다.
아... 오늘 점심에도 맛있는 짜장을 먹어야겠다. ^^

점심 무렵, 중국집 빨간 오토바이가 은색가방을 매달고 들이치면 우리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냥반, 또 아침에 짜장 냄새 맡은 모양이네...
맨날 제일 싼 짜장면만 드신다고 동네에 소문 다 났슈...
회장님도 맨날 짜장이시더니, 부자가 어찌 그리 똑같으시데요?
심지어는 중국집 배달하는 사람이 말하길,
내일은 짜장 시켜도 짜장 안가져와유. 무조건 볶음밥 가져올팅게...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IMF를 짜장과 함께 보냈다.

물론 그 중국집이 있는 허름한 건물이나 사방에 짬뽕 국물이 묻은 그 빨간 오토바이나 배달하는 사람의 옷의 청결 상태로 말하자면...
두 번 다시 시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여하간 재료를 최고로 아끼고도 그 짜장의 맛은 좋았다.
깨끗한 중국집 찾으면 맛있는 곳이 없다...
주방에 들어가보면 다신 중국집 못간다... 등등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특별히 점심 약속손님이있을 경우만 빼곤 난 항상 변함없는 짜돌이였다.

어느날 이었을까?
거래처에서 온 손님 한명도 나와 같은 중국집에서 우동을 시켜먹기로 했다.
그날 따라, 이젠 무길도한량을 짜장으로부터 졸업시켜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현장의 한 직원이 와서 중국집의 나쁜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가 있어봐서 아는디유...
웬만하면 손님이 있으면 그러지 않을텐데, 그 손님은 현장의 그 직원과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 현장직원의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같이 댓거리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짜장과 우동은 도착을 하고...
한석봉이 일필휘지로 내려 갈기듯이 나무젓가락은 짙은 갈색 짜장 위로 면을 뒤집어주고, 한편으론 세심하게 떡을 썰던 석봉의 어머니 칼질처럼 짜장 묻지 않은 면이 없도록 꼼꼼히 뒤집어 주었다.
예전엔 이 집도 수타(手打)였는데...
배가 고팠었던지 손님은 벌써 그릇에서 입으로 바쁘게 우동을 끌어올리고 있다.

첫 개시를 위하여 면 위로 푹 꽂은 두 젓가락을 이제 막 휘돌리며 짜장을 감는 순간,
"악!"
마주 앉은 사람의 두눈이 순식간에 곤두서며 면이 가득 든 입을 떡 벌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왜 그러세요?
그는 떡 벌린 입으로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자신의 우동을 가르킨다.
아... --;;

그의 맑은 우동물 속에는 하얀 면을 배경으로 초록색 시금치와 주황색 당근이 얹혔는데, 그 사이로 엷은 갈색의 녀석 하나가 온탕에 들어앉은 육십대 아저씨의 포즈로 누워있다.
예전부터 중국집 짜장단지에 녀석들이 많다는 이야긴 많이 듣긴 들었지만...
그는 멋모르고 허겁지겁 두어젓갈 먹은 자신에 신경질이 나는 모양인지 젓가락을 내려놓고먼산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간혹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혹시 녀석들이 뇌 속으로...?

그래도 난 아직도 짜장면 든 젓가락을 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내꺼에 있던건 아닌데...난 계속 먹어도 되지 않을까....?
순간 우리 현장직원이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잽싸게 젓가락을 빼앗아 내동댕이치곤 그릇들을 가지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쩝... 아직 맛도 못봤는데...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한 때 열렬히, 미치도록 사랑하던 중국집 짜장과의 기억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무슨 마법의 주술처럼 내 머리 속으로 스며들어와 결국엔 먹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 영험한 고소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설사 그 맛이 갈색의 녀석들과 함께 잘 볶은 짜장의 맛이었다 해도 말이다.
너희가 짜장을 아느냐? ^^

요즈음은 고기와 호박과 양파를 썰어넣고 장에서 사온 볶은 짜장을 넣고 가끔 짜장면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암만 열심히 만들어도 그곳의 그 맛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같이 있다.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그 집을 찾을까?
하지만 답은 글쎄다.
그 집이 그대로 있을런지도 모르겠거니와 다시 찾을 용기가 없는 것도 같다.

유리창 위로 빗물이 짜장처럼흐르는 오늘은 심히 짜장이 땡기는 날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맛있는 짜장을 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벌레는 빼고...

What do you cra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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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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