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24일 일요일

해피 다이너스



해피 다이너스 (Happy Diners)






What's for dinner?
첫째놈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대뜸 묻는다.
쓰... 저것이...
칼날 같은 말 한마디로 내칠까 하다가, 에이... 나도 옛날엔 저랬을 것이 뻔해서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묵직히 누르며 좋은 말로 대꾸해보려 노력을 한다.
이눔아,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부터 하고 먹을 걸 찾아야지...ㅉ
주댕이를 삐죽하더니 두 번 다시 눈길 안주고 휭 돌아서서 제 방을 향해 행진을 한다.

그래, 나도 옛날에 학교 갔다오면 힘든 척 하느라고 어머니에게 주댕이 내밀고 괜스레 신경질내며 내 방으로 올라가곤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내가 그대로 받는구만...
어무이, 이 불초한 놈을 용서하소서...
허공을 응시하며 장탄식을 해본다.
부엌에 걸려있던 후라이팬 중 하나를 번개처럼 낚아채서,쿵쾅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가는 다 큰 자식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지 않고 참아내신 어머니의 인내심에 감사를 드린다.

세상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누가, 아니 내가 언제 이 다 큰 녀석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고... 행여나 끼니 거를까봐 걱정하며 지낼 줄 상상이나 했으랴.
이눔들아, 아빤 국민학교 다닐 때 혼자 라면도 끓여 먹고 연탄불도 갈았다!
라면은 나도 끓이는데...? 근데, 연탄불이 뭐야?
끙~. 됐다, 마.
하긴 가만 놔두면 지네끼리 알아서 라면도 끓여먹고 계란후라이 해서 밥도 찾아먹더구만...

근데, 살아보니 그냥 놔두기가 참 안된거였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엄마하고 떨어져 사춘기를 보내는 두녀석들에게 건강과 절약을 위해서 외식도 자제시키면서, 집에 와도 식탁에 별거 없으면, 그건 참 신나지 않는 인생임이 틀림없으리라.
그저 한참 때는 별 맛있는거 없어도 원할 때 따뜻한 밥 배불리 먹고 식탁머리가 신나면, 그기 제일 행복한 인생 아니겠는가?
배불리게 먹이고나면, 게기름처럼 두녀석의 얼굴 위로 번져오르는 만족감 내지는 행복한 표정에선 시험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입시에 대한 긴장감 따윈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돈까스를 만들어주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진 관계로, 시린 가슴을 덥혀주고자 토요일엔 후끈한 양념통닭을, 일요일엔 남은 닭을 푹 고아서 닭게장을 끓여 무조건 밥 한주걱씩 넣고 한그릇씩 쭈욱 들이키게 했더니 좋았던모양이었다.
아빠, 오늘 저녁엔 또 무얼 먹을까?
둘째가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보며 물었다.
왜? 뭐 먹고 싶은게 있니?
응... 아빠가 좀 귀찮을텐데... 갑자기 바삭한 돈까스가먹고 싶어.
알았어.

괜히 말했나 싶은 표정으로 둘째는 현관문을 나서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가 알았다고 했잖아.
미안해.
학교에서 재밌게 지내기나 하고 와라.
제 몸무게 만큼이나 무거울 듯한 책가방을 등 뒤로 걸머지고 녀석은 신나는 듯 좌우로 흔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새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안이 나왔으므로 그 다음부터는 나의 몫이다.
일단 냉동실에 있는 돼지고기를 확인하고 해동시키기 위해 내놓았다.
아침운동을 하고, 사업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두어시쯤 되면, 이젠 인터넷을 통해 좋은 돈까스 레시피를 찾아본다.
원래 요리실력이 있었던 건 아닌지라, 때론 결과물이 처음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경우엔 아예 전혀 상관없는재료들을 더 넣어세상에 둘도 없는 요리를 만들어버린다.
그리곤 프랑스나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요리라고 하면 두녀석들은 깜빡 넘어가고 만다.
똑같은 것을 또 만들어 달라고 한 적 없는 것이 그나마 참 다행이다.

인터넷엔 정말 정보가 끓어 넘치도록 많다.
특히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요리의 달인들은 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들이 있어, 그 정보들을 걸러내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추려내는데도 아마 한 시간쯤은 투자를 해야 하는것 같다.
여하튼 레시피도 준비되고, 녀석들은 무사히 학교에서 돌아와 조용히 각자의 방에서 제 할 일들을 시작하면, 드디어 무길도의 칼잡이는 부엌으로 나선다.

고기 자르고, 밀가루 묻히고, 계란에 담갔다가, 빵가루를 가득 묻혀서 기름 속으로 짜그르르르르...
그렇게 오늘은 돈까스를 만들었다.
삼시 세끼 다 따뜻한 밥 차려주지 못할 망정, 한 끼라도 가족들 오손도손 둘러 앉아서 오늘을 감사드리고 내일을 의탁하며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들이나 천리만리 혼자 떨어진 엄마를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학교공부 이야기도 돈까스 맛이고 아이들 눈빛 반짝이는 남자아이들 이야기도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워낙에 돈까스를 좋아하던 큰아이는 손바닥만한 돈까스덩이를 네 조각이나 먹었고, 마침 돈까스가 땡겼던 둘째도 질세라 네 조각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두어시간 신경쓰며 힘들게 서서 일한 것이 하나도 힘든 생각이 안들었다.
그저 맛 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아마 우리 어머니도 우리 멕일 때 이런 마음이셨으리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했다.
하나도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두녀석들을 돌보면서 Mr. Mom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
라면과 계란후라이 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점차 요리의 영역을 넓혀가며, 두 아이들의 건강과 식탁의 즐거움에 기여함에 나 스스로의 즐거움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배워가면서 말이다.

돈까스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후 테이블을 정리하던 첫째가 물었다.
아빠?
???
인제 정말 먹고 싶은게 하나 남았거든?
뭔데?
자신있는 눈빛으로 내가 되물었다.
첫째는 두 눈을 위로 올리며 생각하는 체 하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순대.

읔, 이녀석이 순대는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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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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