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 등불 켜질 때

"야야, 내가 얘기해도 다들 모른다고 하니 네가 좀 찾아보내라."
전화기를 통해 울려나오는 어머니의 말씀.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이가 며칠 전에 피아논지 클라리넷으론지 불더구만요.
내 악보하고 가사 찾아서 이메일로 보낼테니까 쪼끔만 기다리세요."
어머니께선 미국민요(?) '산골짝의 등불' 을 찾고 계셨다.
하모니카로 불어보고 싶으시댄다.
인터넷 검색이라면 내겐 일도 아니지잉~ ^^

옛날 우리집에 백조올갠이란 이름의 풍금이 있던 시절, 우리 가족은 저녁 무렵 다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풍금이야 어머니나 누나가 쳤지만, 노래는 주로 노래 좀 한다는(?) 나나 우리 동생들 차지였다.
하지만 때때로는, 보통 '근엄' 의 딱지가 붙으신 아버지도 턱을 치켜 세우시며 언제나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희망의 나라로' 배를 저어가자고 목청높여 부르셨던 기억도 난다.
또 우린 그 때 TV 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터라 유명하디 유명한 '검은 고양이 네로' 나 '잘했군 잘했어' 같은 유행가들은 알지도 못하여서 주로 음악책에 있는 노래들, 예를 들자면 '들장미' 나 '이별의 노래' 같은 노래들이나 주일학교에서 배운 몇몇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
풍금 덕분에 전 가족이 음치는 면했다지만, 글쎄... ^^
그 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중요했던 건 곡조가 아니라 노랫말이었다는 것을...
즉, 노랫말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 내지는 의미가 중요했다는 것.

여하간 근 30여년 전에나 불러보고 처음 불러보는 노래를 내가 잊지않고 한 소절 한 소절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도 신기했고, '이 노래 말씀 하시는거죠?' 하고 확인하느라 전화기에 대고, 곡조에 가사를 한 구절 한 구절 실으면서 코가 맥맥해짐을 느낀 것은 그 가사가 가진 내용 때문이었다.
산골짝의 등불
아늑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빛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니 기도해
그 산골짝에 황혼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등불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추네
국내에서는 개사되어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통기타 가수 송창식, 박인희 같은 가수도 부르고 일부 성악가도 무대에서 부른 적도 있는, 미국 개척자들이 즐겨 부르던 민요로 알려져 있는 이 노래의 원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 노래의 원제목은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골짜기에 등불켜질 때) 라는 것으로 1933년 미국 컨츄리그룹 The Vagabonds 가 발표한 월츠풍의 컨츄리 발라드이다.
대히트를 기록했고 나중엔 서부영화 주제곡으로도 쓰이고 수많은 가수들이 리바이벌하여 더 유명해졌다.
그러니까 미국꺼는 미국껀데, 민요도 아니었고 개척자들이 부르던 노래도 아니었던 셈이다.
한편 1935년 스웨덴으로 건너가면서 개사될 때, lamp 대신 candle 로 단어를 바꾸면서, 대부분 candle 하면 크리스마스전 Advent 절기를 연상하는 북구라파의 관습 때문에, 이 곡은 북구라파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애창곡으로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한가지 오해가, 스웨덴을 비롯한 핀란드, 노르웨이에서 두루 불리우던 크리스마스송이기 때문에 이 곡이 북유럽의 크리스마스송을 미국 컨츄리그룹이 레코딩 했다는 오해.

자, 그럼 한번 원래의 노랫말을 보자.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1.
There's a lamp shining bright in the cabin 오두막에 등불 켜지고
And the window is shining for me 유리창은 밝게 비치면,
And I know that my Mother is praying 보고싶어 하는 아들을 위하여
For the boy she's longing to see 어머니는 기도하고 계심을 난 안다네
REFRAIN;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골짜기에 등불 켜질 때
Then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난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네
I can see that old lamp in the window 창가로 보이는 낡은 등불
It will guide me wherever I am 내 어디 있던지 언제나 날 인도하지
2.
By the lamp light each night, I can see her 밤마다 등불 옆에서 이리저리
As she rocks in her chair to and fro 흔들의자를 흔드시는 어머니
And she prays that I'll come back to see her 내 돌아오기 어머닌 기도하시지만
Yet, I know that I never can go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알지
3.
Then she lights up the lamp and sets waiting 어머니는 등불을 켜고 기다리지만
For she knows not the crime I have done 어머니는 내가 지은 죄를 모르지
So I'll change all my ways and I'll meet her 내가 잘못을 고치고 인생 다하면
Up in Heaven when life's race is run 천국에 올라가 어머니를 만나겠지

에구, 이거 알고보니 슬픈 노래구망... --;;
늙으신 어머님이 보고싶은 아들을 기도로 기다리는, 그냥 아름다운 노래인줄 알았더니...
아들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다 있었구만.
미국판 '불효자는 웁니다' 에 다름 아니다.
에이~, 괜히 속속들이 캐고 들어가서, 몰라도 될걸 안 꼴이네.
설날도 점차 다가오는데...
그냥 1절만 부르기로 하자.
그냥 1절만 기억하기로 하자.
명절에 찾아뵙지도 못하는 아들내미를 그리며, 우리 오마이는 하모니카를 부시기로 하고...
아, 먼저 하모니카 연주를 감상하시길...
밑에 것, 클릭 구다사이!
http://www.youtube.com/watch?v=49x0MvwNtcE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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