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4일 목요일

세발자전거


세발자전거









그 아이에겐 세발자전거가 있었다.
기차역에서 국도 신작로로 쭈욱 내리뻗은 길가에 어디에 내던져 놓아도, 해가 질 무렵이면 누군가 처마 밑으로 잘 모셔다 놓는 그런 세발자전거가 있었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비타민 케이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때때로 눈이나 귀 같은 곳에서 이유없이 피가 흐르곤 했고,아이 부모는 그것을 치료해주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번은 병원으로아이를 데리고 가팔뚝만한 주사를 맞히곤 했다.
그것이 안 아플리 없었고, 아이는 번번히 징징대며 도래질 하거나 집안에서 뱅뱅 도망치거나 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이 부모는 아이를 얼르기 위해 장난감을 약속하곤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눈물이 그러그렁한 아이의 가슴에는 장난감 자동차가 하나 둘 안겨 있곤 했다.

아이의 장난감 박스가 자동차로 가득하게 될 때쯤 서울에 다녀오던 아이 아빠는 한 자전거포에 들렀다가 빨간 세발자전거를 발견한다.
차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세발자전거는 새로운 친구이자 아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줄 코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아이에게 세발자전거를 사줘야지.'

그때만 해도 한내 읍내에는 세발자전거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어른들이 타고 다니던 짐자전차들이 조금 있었고 매끈한 신사용 자전차도 한 대 없을 당시였다.

아이 아빠가 서울에서 그 빨간 세발자전거를 사가지고 오던 날은 마치 써커스라도 동네에 들어오는듯 했다.
"시발자전차 사오시는감?"
"아드님 주시게유?"
뻔한 질문들이지만 그렇게 아는체 해주는 것이 이 지방의 예의였고 관습이었다.
그러면 아이 아빠는 한사람 한사람 대답을 해주면서 또 인사를 마주 건넸다.

그 다음날은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서울에서 온 세발자전거에 신기해했다.
"아가, 어여 한 번 타봐라."
"아따, 색깔도 엄청 예쁘구만."
아이는동네 사람들, 특히 아이들 앞에서 조금은뻐기는 듯한 모습으로 세발자전거에올라 페달을화악 밟으며 이리저리 운전해보였다.
아이 부모는 몇 발자욱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행복해 했다.

그 날 이후, 그 아이의 발끝에서 세발자전거가 떨어지는 때는 없었다.
안장에 앉아 타는 것도 좋았지만뒷좌석에 한 발을 세우고 한 발로 깨금질 하며 타는 것도 재미있었다.
역전에서 한내책방으로, 한내책방에서 한일사진관으로, 한일사진관에서 로타리다방으로 부지런히 세발자전거를 운전해 다녔다.

여름에는 런닝 바람에 노팬티로 자전거를 타다가 핸들 돌아가는 곳에 중요한 곳이 끼기도 하여 그 끝에 빨간 아까장기 (머큐로크롬)을 바르면서도 핸들을 놓지 않았고, 겨울에는 눈이 녹으면서 진흙판으로 변한 길에서 세발자전거가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어도 좋았다.

신기한 것은 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길 어디에 던져놓아도, 밤이 오기 전 아이의 집 처마 밑에는 항상 세발자전거가 돌아와 있었다.
아침이 되면, 아이는 마치 자신이 어제 저녁 세발자전거를 거기에 세워놓은듯이 자연스럽게, 처마 밑에 서있는 자전거를 끄집어냈다.

아이가 점점 건강해지고 이제 세발자전거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의 크기로 성장하자, 아이 부모는 조금더 큰 두발 자전거를 생각하게 된다.
두발 자전거에 보조 바퀴가 양쪽에 달려있어서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보조 바퀴만 떼지 않으면 쓰러질 일도 없게 생긴 자전거였다.

아이 부모가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사실 결행으로 옮긴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던 시영 어머니가 그 자전거를 사준 것이었다.
그 날은 역전에서 신작로까지 연결되는 아이의 집 앞 도로가 아스팔트 포장한지 얼마 안되던 여름날이었는데, 텅 빈 도로 한가운데 나와 아이와 시영 어머니는 새 자전거를 앞에 하고 기념사진도 한 장 찍기도 했다.

하지만, 새 자전거는 먼지만 쌓여갈 뿐이었다.
서울까지 가 자전거를 사다준 아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는 죽어라 세발자전거만 고집했다.
이젠 광택도 죽고 녹이 슨, 흙투성이의 세발자전거를 끌고 아스팔트길 위를 누비고 다녔다.
로타리다방에서 한일사진관으로, 한일사진관에서 한내책방으로, 또 한내책방에서 기차역으로.

아이의 부모가 갑작스런 일로 그곳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었을때, 아이는 자신이 오래동안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냥 그곳에 가면......
다시 처마 밑에, 항상 그랬듯이세발자전거 오또카니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세월은 갔다.



(200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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