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4일 목요일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 朴寅煥 詩)


한 보름 전 쯤이었을까?
그 날 저녁 우연히 ebay에서 떠돌고 있는 Nikon N2020를 하나 마주친다.
사실 블로그에 쓸거리를 찾아 대상을 물색하던 중이라, 처음엔 'excellent condition' 이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그 친구를 그냥 지나친다. (excellent 면 분해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마땅한 친구가 없군......
적당한 가격대의 수동 카메라 고장난 것이 영 발견하기 어려워, 계속 맴돌고 맴도는데 이 친구도 한 사람의 인연을 만나지 못해 0 bidder 를 기록하고 있었다.
시작가 $39.95
4 만원도 안되는 가격인데......

옥션 마감시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째깍 째깍 머릿속에서 초침 소리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울리고......
샤캉!
영혼의 셧터 소리가 가슴을 한 번 긋고 지나갔다.
옛날에 모두 지나간 이야기인데...뭘.

샤캉! 샤캉!
20 여년을 내 귓전에서울려주던 그 소리.
조금은 늦은 속도로 촛점을 맞추고... 그리고 한 번에 내려긋던 소리!
마치 신들린 무당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징소리처럼...
20초, 15초, 10초...
OK, OK!

그리고 그로 부터 몇 일 후 Nikon N2020는 내 작업대 머리에 앉아있다.

정말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티어 왔는지 흠 하나 없고 나무랄데 하나 없었다.
먼젓번 주인이 엄청 아꼈던지 아니면 전혀 사용을 안했던지......
몇 년 만에 다시 만져보는 N2020 인가!
한 20 여년을 동고동락 했었는데...
샤캉! 샤캉!
그래, 바로 이 소리였어.
샤캉! 샤캉! 샤캉! 샤캉!....

............

아, 그런데... 아니었다.
나의 옛날 그 N2020 가 아니었다.
내 지문골 사이사이에서 배나온 땀들이 묻어있던 그 친구.
흙더미에 긁히고 떨어뜨려 조금은 흠이 있는 그 친구.
한여름 소나기 속, 점퍼 안에서 내 체온으로 따뜻해지던그 친구.
그리고 우리 가족들 얼굴을 하나하나 잘 기억해주던 그 친구.
옛날 그 친구가 아니었다.
이를 어쩐담!

다시 N2020 를 가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운 것은 N2020 가 아니라 나와 같이 하던 그 친구가 그리운 것이었다.
바로 그 친구가!
이 새로 온 친구에게서는 아무 느낌을 느낄 수가 없었다.

미안하네... 새로 온 친구.
세월이 날실없게 만드는구만.
잘 쉬었다 가시게나.






(20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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