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오는 밤

초승달의 가느다란 자태가 구름을 헤치고 나아오니, 적막한 밤 하늘에 달빛만 교교히 흐른다.
이럴 때 쯤엔 멀리서 퉁소소리라도 한 자락 들여오면 운치라도 있으련만...
아니면 길게 뽑아대는 늑대소리라도...?
그래, 말 나온 김에 잠 못드는 그대를 위하여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만몇 가지하도록 한다.
첫번째 이야기.
교육사령부에 근무하는 장중위와 김중위는 마주 앉아 권커니 자커니 술을 마시면 밤새도록 말술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한 술친구.
그날도 오늘처럼 달빛이 희끄므리 비추는 봄날이었다.
두사람은 일과 후따분하니 숙소에 있느니, 차라리 읍내에 나가 술 한잔 하기로 한다.
그리고 새로 1시쯤, 거나하게 취한 둘은 장중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숙소로 돌아온다.
정문을 지나고 후보생들과 매주 완전무장 구보를 뛰는 호숫가를따라 바람처럼 오토바이를 달려가는 장중위는술기운에 흥이 절로 났다.
그는 곧저기 30여 미터 앞 오른쪽 가로등 밑으로 두사람을 발견한다.
하얀 옷을 입은 두사람은 호수를 배경으로 도로를 향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여자는 소복차림으로 그 옆에 서있었다.
장중위의 시선이 두사람과 마주치는 순간, 남자는 씨익 미소를 흘렸고 여자는 한 손을 들어좌우로 두어번 흔들었다.
장중위는 같이 손을 흔들어줄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근데 군부대 안에 무슨 민간인이람?'
순간 그는 이곳이 예전에 수 많은 이름 없는 묘지가 있던 야산을 밀어내고 만든 기지라는 사실을 깨닫고는갑자기 온몸의 털이 모두 곧추서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 오토바이의 액셀을있는 힘껏 당겨버린다.
뒷자리 김중위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등에 밀착해왔다.
두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둘러 숙소의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장중위는 온몸이사정없이 떨려서 담요까지 뒤집어 쓰다가 혹시나 해서 김중위에게 묻는다.
"김중위,우리 아까 호숫가 달려올 때 말이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 김중위가 장중위의 말을 자르며 되묻는다.
"니도 봤나?"
......
두사람은 아침이 올 때까지 담요 속에서 벌벌 떨며 밤을 지새야만 했다.
두번째 이야기.
김중위와 장중위의진위 알 수 없는 목격담이 흘러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수 백명의 사관후보생들에게도 이런 저런 ~카더라 괴담들이흥미롭게 회자되었다.
이층 창문 밖으로 야밤에 어떤 남자가 지나갔다는 둥, 평평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연필이 갑자기 또르르르 굴러서 떨어졌다는 둥, 불침번을 서던 후보생이 화장실에서 계속되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는 둥...
37 내무반에도 여느 내무반과 같이2층 침대 두개를 4명의 후보생이공유하고 있었다.
그 중하나의 침대 일층엔 오후보생, 이층엔 김후보생에게 배정되어 있었다.
특히 김후보생은 태권도가 5단의 싸움꾼 출신으로 깡다구가 대단했던 친구였다.
그 날,37 내무반은 취침점호시 호된 체력단련을 받아 땀을 흘린 상태.
어두운 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갈증을 느낀 김후보생은내무반 밖 복도 중간에있는 식수대로 물을 마시러 나간다.
곧 이어 밑의 침대 오후보생이졸린눈을 부비며화장실을 가기 위해 내무반을 나왔다.
"나 먼저 들어간다. 일 보고 와."
김후보생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오후보생에게 인사하고 돌아서 내무반으로 돌아온다.
그는 취침점호 시간에자신이 똑바로하지 못하여서 내무반 동료들이 같이 심한 체력단련을 받은 것에 대하여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죄여, 내 죄...'
캄캄한 내무반에 들어서며김후보생은 침대 2층 자신의 자리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더듬더듬 찾아내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두어 계단 올라갔을 때, 그는 물컹- 하니 침대 1층에서 튀어나온 동기생의 발을 밟아버렸다.
"어이쿠, 미안해. 오후보생."
동기생의 발은 아무 말 없이 빠져나갔다.
침대 2층에 올라간 김후보생은 의문에 빠진다.
침대 1층의 주인 오후보생은 방금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그의 발 밑에 물컹- 하고 밟혔던 발의 느낌이 유난히 차가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내무반 문이 열리면서 오후보생의 검은 형체가 들어오더니, 침대 1층에 바로 쓰러지듯이 누워버렸다.
"잘 자, 김후보생."
"어이, 오후보생. 자네 침대에 아무도 없어?"
"내 침대에 있기는 누가 있어?"
그럼...
김후보생이 방금 전에 밟았던 차갑던 발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태권도 5단의 그에게 밤이 그처럼 길게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듣고 나니, 이야기가 진부해서 하품이 나오면서 잠이 막 오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 양념으로....
밤에 교육사령부 주변을 경계근무 하던 두 병사가 있었다.
7-8 미터 높이로 세워진 망루초소에서 그들은 정체모를 희끄므레한 인간이 그들 뒤에서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한 병사는 총을 집어던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갔고, 다른 병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한 달 후 도망갔던 병사는 근무지 이탈죄로 영창을 갔고, 기절한 병사는 위로휴가를 갔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내려온다는 전설~~~~
자, 이제 하두 졸려서 잠 안온다는 말은 못하시겠지? ^^

(200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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