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입장바꿔 생각하기


입장바꿔 생각하기





미국 남부지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새로렌트하여 들어간 아파트에서 첫날밤 잠을 자고 있는데, 무언가가 종이 위로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깨어났다.
범인은 몸통이 필름통 만한 바퀴벌레로 카펫 위에 깔아놓은 모조지 위를 기어가며 발들이 미끄러지며 만든 소리였다.

생전 처음보는 크기의 바퀴벌레의 등장에 질겁한집사람과 나는 소스라치고 이 친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다가, 결국은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거의 1/3통쯤 소진하고나서야 다시 밤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친척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밤만 되면 나타났고 (웬 친척들이 그리도 많은지...) 그럴 때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두 개의 스프레이를 쌍권총 휘들듯이 쏘아대며 격렬히 저항했다.
별나게 큰 덩치 때문에 시체 처리도 겁나는 일이었지만, 밤마다 또 다시 등장할 이 불한당들에 대한 공포로 우리의 편안한 밤잠은먼 나라의동화와 같은 이야기였다.

어느 곳을 가든 바퀴벌레는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좀 심했다.
우리는 슈퍼에 가서 붙이는 바퀴벌레약인 컴뱃을 대형으로 두 통을 사고 거의 다 소진된 스프레이를 보충하기 위해 두 개의 강력스프레이제를 더 마련했다.
컴뱃 종류의 바퀴벌레약은 "바퀴벌레를 유인(!)하여 그 약을 먹고 돌아가 약을 자기네 끼리 나누어 먹고 다 같이 죽인다" 는 점에서 바퀴벌레를 더 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꺼려오던 방법이었지만, 이젠 이판사판 가릴 수가 없는 터.

집안 곳곳에 컴뱃을 붙이는 역은 역시 나에게 주어졌고, 한참을 이곳 저곳을 기어다니고 뒹글어대면서 컴뱃을 붙이는 나를 보고 집사람이 묻길,
"웬만치 적당한 곳에 붙이고 끝내지... 정성이 너무 뻗친 것 같으네요?"
"천만에 말씀.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그들이 다니고 싶은 곳에 놓아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
외부에서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과 그들이 다닐 만한 길목을 찾아 약을 놓을 때 마다그들의 친척들이 몰살할 것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최소한 한 양동이는 나올꺼다...ㅋㅋㅋ

그들과 나의 직접적인 승부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다음날 아파트 관리원들이 집 둘레를 빙 돌아가며 약을 치고나자 바퀴벌레들의 방문이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집에서 한동안 회자되는 중요한 캣취프레이즈가 하나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그리고몇 달 안있어서, 우리의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여 나는 꽃을 선물하였고 우리는 잠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다가 화제는 바퀴벌레 사건에 이르렀고 바퀴벌레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침투경로를예상하며 약을 놓던 때로 흘러갔다.
"그래서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거지."
"그럼 이 꽃은 비록 꺾이었어도 아름다움과 향기를 주었으니 행복한건가?"
"그건 이기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이고... 꽃의 입장은 다르겠지."
"가만, 이 꽃이라는 것이 사실 식물의 생식기 아니야?"
"그러네!식물의 생식기를 예쁘다고 선물하고 향기롭다고 냄새 맡는게 맞네!ㅋㅋㅋ"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아름답고 향기롭지?
꽃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인간의 웃기는 행동이겠지.^^

서로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 인간 사이에서이해력을 높여주고 관용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참 아름다운 미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바퀴벌레에서 시작된 입장바꿔 생각하기는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면서 묘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궤변일 수 도 있고...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고...
무슨 상관이랴, 또 하루의 즐거운 생각의 유희일 뿐인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아이들의 선물을 위해 참 많은생각을 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일까?
무엇이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일까?
무엇이 가장 가슴에 남는 선물이 될 수 있을까? 등등...
받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다가 바퀴벌레가 생각이 나이 글을 쓴다.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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