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오너라

꽝꽝 대문을 주먹으로 두들긴다.
"무길도 한량! 도장가지고 나오세요!"
"네~ 갑니다용~" ^^
늦으면 그냥 갈까봐 부리나케 뛰어들어가 도장을 가지고 나와 문을 연다.
역시나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소포.
도장에 인주가 뭉개져 잘 안나온다고 한 말씀 들을까봐 눈치를 실실 보면서, 한편으론 재빨리 소포상자를 나꿔챈다. (맘이 쪼까 급항게로~^^)
땀이 번지르한 우체부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꾸벅하는데, 기어이 한 말씀하면서 돌아선다.
"인주밥 안긁어내면, 다음엔물건 안줘요~."
(속으로) '다음에 또 주먹으로 두들기면 도장 안줘요~'
옛날에,양반들이 있던그때에, 남의대문가에서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시종이 있으면 시종이 소리를 질렀겠지만, 동네 방네 떠나가도록 '이리 오너라'라는 절규는 꼭 대문이 닫혀있을 때만 쓰이던 것은 아니었다.
열려있는 경우에도,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허가를 받기 위해 소리를 질러댔다.
"이리 오너라"
"이 야밤에 뉘시온지요?"
"지나가는 과객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지 여쭈랍신다."
"아낙이 홀로 사는 곳이라 아니된다고 여쭈랍신다." (그 사실은 왜 밝혀?^^)
시종이 없는 경우에도 꼭 삼인칭 화법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했다.
세월이 조금 흐르면, 이젠 격식이나 품위하고는 조금 떨어진 모습으로 변한다.
주로 대문 너머 창살사이로 빼꼼히 들여다보며, 주로이름을 불러댔다.
"영철아!"
"엄마, 문 열어!" (나)
"순자야 문 열어라" (영화 제목)
"계십니까?" (이건 웬지 조금 겁난다)
버스 승강구에서 근무하는 안내양들은 목청이 좋든 아니던 코맹맹이 소리로 외쳤다.
"스토옵!"
"오라이~!"
물론 시골에 가면, 힘 좋은 남자 차장들이 정지 출발 구분도 없이 "으엌!" 하고 소리치면서 주먹으로 버스벽을 한 번 냅다 지르는곳도 있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이제 산업의 발전으로 전기를 이용하게 된다.
그때만 해도 '요비링' 이란 일본말을 주로 썼고, 조금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은 '부저' 라는 영어를 쓰기도 했지만, 아직 초인종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던 때였다.
"빼액-" (내겐 이렇게 들렸다)
"찌릉 찌릉"
버스 안내양은 이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출입문 위의 요비링을 정지시킬 땐 한 번, 출발시킬 때 두 번 누르기만 하면 오케이.
고장이 나면?
엄지와 집게 사이에 십원짜리 동전 두어개를 쥐고 요비링 옆의공간을 두들겼다.
한 번은 정지, 두 번은 출발.
가정집에서 전기가 나가면어땠을까?
목청 터져라 외치던지, 주먹, 발길질... 뭐 소리가 나는 건 뭐든지 동원해서 알려야만 했다.^^
우리집에 '"띵-동-" 하는 챠임벨이 등장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닐 적이었다.
영화에서나 듣던 그 소리가 우리 집안 구석구석에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뭔가 우리집도 이제 현대화된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또더 이상 대문에 누군가가 왔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고 지나칠 수 없는 때가 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청아하고 정겨웠던 그 '띵-동-".
너도 나도 다시 대문 밖으로 나가 눌러보고 싶었던 그 "띵-동-" 이었는데......
이 소리가 묘해서, 화장실이 급하다든지 대답을 늦게 해서 짜증이 났다든지또는 기타 사유로 인해 화가 났을 경우에는 정겨운 "띵-동-" 이 아니었다. --;;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사람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불현듯 윤수일의 '아파트' 에 나오는 청아하고 외로운 그 챠임벨이 그립다.
언젠가부터 영화에 나오는 부잣집 초인종 소리는 새소리로 변하였다.
"삐리리~삐리리~삐리리~"
무슨 새소리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혹 이문세의 '삐리삐리 파랑새' 아닐까) 그래도 괜찮은 듯 싶다.
개 짖는 소리나 할아버지 기침하는 소리 또는 갑작스런 베에토벤 5번 교향곡보단 말이다.
기술의 발전이란 참 여러가지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 같다.
띵-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훗-훗- "소성리 주민여러분, 저 이장이구만유~"
애앵- "국민여러분,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등등...
아마도 옛날 같았으면 우체부 아저씨의 소리도 달랐겠지?
"이리 오너라!"
"도장 갖고 나오랍신다!" ^^
우체부 아저씨의 대문 꽝꽝 두드리는 소리에서 시작된생각은 그치질 않는다.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은 즐거운 것이여~.

(200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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