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단상(短想)

노량진 장승백이에서 신대방 삼거리 쪽으로 꺾어져서 세번째 신호등이 있는 곳.
왼쪽으로 성대시장 입구,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횡단보도 옆으로희경악국이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지금은 중저가 옷가게가 들어선 자리, 그 곳에 '문화당'이 있었다.
'문화당'은 무미건조한 빵으로 인기가 시들한 빵집, 요즘 이야기하는 베이커리였다.
그래도 그 근처에는 그 빵집 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먹어주다가, 가끔 다른 빵집에 가면 그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얼마나 좋았든지, 다시는 '문화당'에 가지 않겠노라 맹세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먹어주기 힘든 빵들만 만들어내던 그 빵집이었다.
지금에야 골목마다 '빠리바게트' 니 '빵굼터" 니 해서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빵들을 만들어내는 곳이 어디에나 있지만, 그 땐 그 빵집이 있는 것만도 다행이던 때.
다른 빵집들 열심히 비싼 케이크와 고급 페스츄리를 만들어 돈 벌던 그 때에, 문화당의 주종목은 '먹어야 하는' 식빵이 주종목이었으니...
그나마도 많이 먹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오십대 이상 또는 당뇨기가 있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그런 맛의 빵이었다.
그런데, 그 빵집으로 자꾸만 나의 발을 이끌던 그 무엇이 있었다.
무뚝뚝 하기가 꼭 자기가 만든 빵 맛 같던젊은주인 내외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일하던 그여동생도 아닌, 바로 그 집에서 팔던 팥빙수였다.
팥빙수는, 아무 때나 만들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얼음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여름 한 철의 것이었지만 그 팥빙수를 기다리며세 계절을 인내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이더라도 그거 한 보새기먹고나면 커~.
요즘의 빙수기 또는 빙삭기에서 나오는 얼음쪼가리가 아닌, 하-얀 눈발 같이 곱게 갈아낸 얼음을 유리 보새기에 소북히 담아서, 이 빵집의 전문(?)인 달지 않은 통단팥을 아낌없이 그 위에 쌓아준 후, 연유와 미숫가루,약간의 찰떡과 젤리,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 딸기 반쪽.
그게 온쪽이면 맛이 덜 난다나 어쩐다나...
그것을 쏟아지지 않게 한쪽으로 잘 비벼가면서 먹은 후 마지막에 남은 얼음 녹은 물과 밑에 아직도 가라앉아 버티고 있는 통단팥까지 비우고나면...
아, 집에도 가기 싫었다.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던 시절.
전술학의 시작은 구보로 시작해서 구보로 끝나는 스타일의 기초체력 양성과정이었는데, 인원점검 후바로 집총구보를 시작하여약세 시간 가량 동안연병장을 돌고 또 도는 것이 훈련이었다.
말이 세 시간이지 그것은체력 뿐만 아니라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훈련이었다.
그 긴 시간을지치지 않게 이겨내는 방법, 그것이 중요했다.
바로 여기가 '문화당'의 팥빙수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지리한 시간 동안 한 발자욱 두 발자욱 군화를 옮길 때마다 상상의 나래는 퍼득였다.
자, 나는 지금 그 빵집으로 들어선다.
어두운 거울로 빙 둘러싸인 홀로 들어서면(분위기가 좀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한바퀴 휘돌아보며 팥빙수를 주문하고선풍기 밑의 시원한 자리에 차지한다.
그러면 곧 카운터 뒷쪽에서 주물로 만들어진 팥빙수 기계가 돌아가며 얼음을 갈아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잠시 후 카운터에서 일하던 주인 여동생이 팥빙수를 가져와 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침을 한 번 삼키고, 숟가락을 들어 스텐에서 느껴지는 찬 기운을 손가락으로 음미하며 딸기 반 쪽에 묻어있는 단팥을 긁어내린다.
딸기를 한 입에 넣으면서 위태롭도록 높이 쌓인 통단팥을 살짝 누르며 미숫가루와 연유와 찰떡과 젤리를 함께 버무리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한꺼번에 모두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조금씩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꺼번에 다하면 얼음이 너무 빨리 녹아버려 나중에 얼음의 맛은 사라진 채 물만 잔뜩 마시게 되므로, 얼음을 되도록 최후까지 녹지 않게 끌고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 아주 적당한 정도의 양이 함께 어우러져 유리 보새기의 한 귀퉁이에 마련되었다.
자, 이제 숟가락으로 퍼서...
"구보 중에 군가한다! 군가는 '진짜 사나이'! 하낫 둘 셋 넷!"
아그그......
그만 꿈에서 깨어나 악악 대는 소리로 군가를 외치며 구보를 계속한다.
그러다 군가가 잦아들고 오직 옆 동료의 숨가쁜 호흡 소리와 착착대는 군화소리만이 연병장에 울리기 시작하면, 또 팥빙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성대시장 앞 도로의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에서 매미가 맴맴거리기 시작하는 지금 이 시간, 나는 그 빵집의 무거운 유리문을 밀치며 들어선다.
팥빙수 하나만 주세요.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렇게 비비다만 팥빙수가 몇 십 그릇이나 될까?
어려운 훈련기간 중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내달릴 때마다 팥빙수는 비벼졌고,구보를 잘 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왔을 때, 들려준 팥빙수 이야기로 동료들 머리 속에서도 팥빙수는 매일 매일 비벼졌다.
하지만 결코구보 중 한번도 난 그 팥빙수의 맛을 보지 못했다.
우연치고는 참 기구한 운명의 우연인지 번번히 막 먹을 때가 되면, 군가니 구령이니기타 등등의 주의를 요하는 상황이 번번히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아, 팥빙수!
그 팥빙수 기계가 돌아가며얼음 깎는 소리.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서울로 특박을 나온 날, 여지없이 그 빵집으로 갔겠지?
그리고 그 그리워하던 팥빙수를 버무려 한 입 가득히 집어넣었을 때의 그 느낌이란...
마치 긴긴 훈련기간 동안 내 머리 속과 목구멍에 가득 차있던 연병장의 황토먼지들을 그 한 술에 모두 시원하게 말끔히 씻어내는 쾌감!
오랜 가뭄으로 바짝 메마른 땅에 주는 해갈이었다.
신선(神仙)도 이런 신선(神仙)은 없었다.
...
그 빵집이 지금은 없다.
결국엔 그 무뚝뚝한 주인의 그 보드랍지 못하고 달콤하지 못했던 빵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그만 내몰리고 만 것이었다.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지금도 빵을 만들고 팥빙수를 만들고 있을까?
10 여년이 넘은 지금에도 그 빵집의 그 팥빙수를 못잊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제품보다 한 사람의 매니아(mania)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는 이 시대 마지막 팥빙수 장인은 아니었을까?
그 팥빙수가 그립다.
영원하라, 팥빙수!
영원하라, 문화당 팥빙수!

(200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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