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통과의례


통과의례(通過儀禮) 







"진한이는세 번 뛰었대."
"세 번이나?"
바람벽 앞 양지녘에 나란히 쪼그려 앉은 우진이와소년은 서로를 쳐다본다.
우이씨... 뭐, 이런게 다 있담...
겁 먹은 우진이의 표정에서소년은 자신의굳어가는 표정을 느낄 수 있다.
"할거냐?"
그의 시선은 우물쭈물 운동장에서 먼지를 일으키는 봄바람을 향한다.
"하긴 해야지... 안하면 같이 안논대잖아."
"내가 같이 가줄께."
소년은 우진이의 어깨를 작은 손으로 토닥인다.

그 동네에는 이상한 통과의례가 있었다.
그 통과의례를 치루지 않으면 누구도 그 동네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낄 수 없었다.
8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찜뽕, 왔다리 갔다리, 자치기... 심지어는 다방구까지 여러명이 같이 하는 모든 놀이에서 열외 되는 것이었다.
우진이처럼 오래 그곳에 산 아이들은 2학년이 되면 해야만 하고, 새로 이사온경우에는 시기를 놓쳤어도 학년 불문하고 의례를 치루어야 친구로 인정이되었다.
우진이에게도 그 때가 온 것이었다.

소년은?
소년은 겁이 많았기 때문에 동네아이들의 의례를 치루고 싶어하지 않았고, 아직까진 불이익을 당한 것이 없어서괜찮았다.
하지만 자신도 조만간 남들처럼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소년의 마음을 계속 짓누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단지, 그 의례 자체가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그에게는약간의 고소공포가 있기 때문이었다.

군데군데 심겨진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한 일요일, 소년과 그의 불쌍한 친구는 길을 나섰다.
골목 어귀마다 쌓아놓은 연탄재 더미들로부터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날려서 두 눈을 가늘게 하고 둘은 한참을 걸었다
영훈국민학교를 돌아 다시 콧잔등에 땀이 날 정도의 거리를 가면, 포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큰 길이 나오고 그 길을 가로질러서 미아리 대지극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대지극장 뒤로 몇 채의 집들을 지나면 무우밭들이 있었다.
지난 여름 그 지역 탐험을할 때,오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들의 갈증과허기를 달래주었던 무우밭이었다.
둘은 자신들의 팔뚝보다도 더 굵은 무우 하나씩을 뽑아 앞니를 토끼 모양으로 하고 흙 묻은껍데기를 갉아낸 후시원한 무우를 와구와구 베어먹었었다.
그 무우밭을 지나면서 약간의 언덕이 시작되면, 거기엔새로 집터들을만드느라쌓은 축대들이 곳곳에 가지런히 있었다.

열심히 걷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이러저리 몇 개의 코너를 돌며 오르막을오르자 벌써 아이들의 고함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가슴이 뻐근해지며 마구 방망이질 치기 시작하는것을 느끼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주변에 아무도 볼 수 없는 한적한 축대 위 아래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 있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다쳐도 좋습니까?"
"다쳐도 좋습니다!"
"그럼, 점푸!"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을 탁! 치면, 아이는 고함과 함께 축대 밑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높이는 1층집 지붕 정도.
축대 밑에는 누군가가 얇팍하게 모래를 뿌려놓았다.
아까 등을 탁 친 6학년 형은 축대 위에 계속밑에 있는 아이들에게 '올라와, 올라와' 하고소리쳤고, 밑에서는 또 다른 6학년 형은 주욱 앉아있는 아이들을 재촉해댔다.
그가 소년을 째려보며 물었다.
"너, 안 해?"
"아뇨, 오늘 안해요."
소년은 찔끔하고 놀라면서 한걸음 물러선다.
저만치에 진한이가 앉아서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진한이는 오늘도 뛰었는지 표정에 느긋함이 가득하다.

우진이의 차례가 되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입을 악물고 축대 끝에 서서 소년을 내려다본다.
"자신 있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다쳐도 좋습니까?"
"다쳐도 좋습니다."
"그럼, 점푸!"
6학년 형이 웃으며 등을 때리자, 우진이는 눈을 질끈 감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내린다.
"우와아아-!"

우진이는 착지 후에 발목을 약간 접질렸는지 한동안 발목을 움켜잡고 울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연탄불 마냥 빨개졌다.
"짜식아, 눈을 감으면 어떻하냐!"
6학년 형은 우진이에게 마구 핏대를 올리며 소리를 질러댔고,아이들 모두는 혹시 우진이가 다쳤을까봐 긴장된 마음으로 우진이의 얼굴만 주시했다.
한 5분 정도가 지나고나서야 슬그머니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6학년 형의 입가에도, 진한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들은 서로 축하하며 악수를 교환한다.

소년은갈등하고 있었다.
뛸 것인가?
뛰어서 저들과 친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혼자 남을 것인가?
이제 우진이도 뛰고,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우진이가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소년을 건너다봤다.
그리고 넌즈시 턱짓으로 축대 위를 가르켰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한 대 갈겨주고싶도록 미웠다.

축대 위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생각보다 더 무서웠다.
두 다리가 떨리고 있는 것은 추워서 인가? 아니면 무서워서인가?
아래에서우진이와 진한이가 소리를 지르며 웃고 있는 것이눈에 들어왔다.
"자신 있습니까?"
"......"
"자신 있습니까?"
"......"
6학년 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에게 물었다.
"야,임마. 뭐하러 올라왔어?"
순간 소년은 눈물이안구 앞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소리지른다.
"X팔, 뛰면 될거 아냐?"
생전 해보지 않았던 욕지거리가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오자소년은 스스로에 놀라고...소년은 몸을 축대 밑을 향하여 내던졌다.
... 발 밑의 땅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두 발바닥에 따당 하고 부딪히는 것을 느끼고는앞으로 한바퀴굴렀다.
불 같이 따가운 아픔이 온 발바닥을 통해 흐른다.

잘 했어.
나도 해낸거야.
우진이와 진한이가 와서 등을 토닥거리면서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준다.
소년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팔뚝으로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낸다.
이제 소년도 그들과 함께 오징어 가이상도 하고 다방구도 하고 찜뽕도 할 수 있는거다.
나도 할 수 있다구.
나도 이제 친구 많다구.
왠지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20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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