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닌

"기린, 살모사, 까마귀, 너부대, 실눈... 다 나와!"
호명 받은 아이들이 뭔가 켕기는 표정을 하면서도 실실 웃으며칠판 앞으로 나가 나란히 선다.
"반장, 인솔!"
갑작스런 지명에 반장은 거의 실신하듯 옆으로 쓰러지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아, 선생님. 그래도 전 반장인데..."
"그럼 일주일 내내 냄새 맡고산 위생부장 시키랴? 총책이 너 아니냐?"
궁시렁거리는 반장에게 선생님은 라이터를 던져 주며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내몰았다.
"전원 임무완수할 때까지 돌아올 생각마!"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멀어지고 반장은계속 선생님을 원망스런 눈초리로 뒤돌아보며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간다.
아이들은 약 30분이나 지나야 돌아올 것이다.
채변봉투 수거 마지막날인 오늘까지 다섯 친구들을 제외하곤 빠짐없이 냄새나는 누런봉투를 위생부장에게 제출하고 명렬표에 체크를 받았다.
"야, 나 분명히 냈어."
"그래, 알았어. 여기 체크 했잖아."
"3반에서는 내용물 몇 개 잃어버렸대."
짝꿍이 위생부장쪽으로 몸을 슬쩍 기울이며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손으로 입을 슬쩍 가리며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소식 듣고, 아침에 하나씩 꺼내서 다 다시 세었어."
말을 하는 위생부장 친구의 얼굴색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누래보인다.
화장실로 간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10여 분만에, 예의 그 실실거리는 얼굴로 돌아왔다.
손에는 하나 같이 누런 채변봉투를 어쩡쩡한 자세로 들고 있다.
교실문을 닫으며 맨 뒤에 들어온 반장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실거리고 있다.
선생님은 그들이 한 친구의 것을 나눈 것을 알지만 굳이 밝히지 않는 눈치이다.
아이들은 위생부장에게 다가가 자신의 누런 채변봉투를 차례대로 큰 비닐수거봉투에 넣었다.
"잘 여몄어?"
위생부장이 살모사를 향해슬쩍 농담을 던진다.
"그럼. 우리 친절한 반장이 선생님 라이타로 잘그슬러줬어, 킥킥."
그 말에 불현듯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친 위생부장 친구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라이타가 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와?"
"비닐봉투를 실로 둘둘 묶어서 낸 친구가 있어서... 불로 좀 지졌으면 해서요."
"놔둬라. 실로 묶어도 된다고 봉투에 써있잖아."
위생부장은 우물쭈물 대며 그래도, 그래도... 하고 있다.
"뭐가또 문제냐?"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이 묻자 그는 자신이 잘못한듯 얼굴까지 붉히며 설명을 한다.
"그게요...너무 많이 넣어서요... 묶은데 보다도..."
위생부장이 한 손으로 코를 쥐고 한 손으로 수거봉투에 손을 넣어 범인을 골라낸다.
튼실한 양을 담았는지 멀리서 보기에도 봉투가 불룩하게 튀어나온게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아이들이 화드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선생님도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려 한동안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누고?"
저쪽 뒷문 근처에서 한 친구가 구부정하게 손을 든 상태로비칠비칠 일어선다.
올 봄 새로 시골에서 전학 온 춘삼이다.
"춘삼아... 니는 밤알 크기를 모르나? 봉투에 써있잖아..."
"저희 집 밤은 그정도 해유..."
봄 하늘 가득히 뭉게구름처럼 웃음이 퍼져나갔다.
그래도 이번엔 큰 사건 없이 수거가 잘 끝난 편이었다.
너무 작다고 다시 만들어 오라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수분이 많이 함유된 관계로 밖으로 스며나온 경우도 있었고, 또 때론 비닐이 터져 다른 사람의 봉투를 물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 배추밭을 비롯한 모든 야채밭에 뿌려지는 우리 고유의 비료, 인분의 독특한 향으로인해 유난히 파리들이 야채에 즐겨 알을 낳고, 제대로 씻겨지지 않은 야채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고, 알도 들어가고... 악순환 이었다.
유명 세제' 트리오' 가 처음 나왔을 때,과일과 채소를 씻는 용도를 주로 선전한 것을 봐도, 또는 엉터리 약장수들이즉석쇼를 통해 회충을 잡아내며 가짜 회충약을팔았던 사실을 봐도 그 당시 회충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알 수 있다.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종례시간, 주번이주전자에 물을가득 채워서 컵과 함께 교탁에 올려놓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드르륵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는 선생님의 손엔 커다란 누런 종이봉지가 들려있다.
그 안에 공포의 산토닌이 들어있다.
선생님이 교무수첩을 꺼내, 그 속에 붙여진 명렬표를위에서부터 훑어내려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혹 자신의 이름이그냥 지나쳤을까 조바심을 내며 선생님의 입만 바라본다.
마침내...
"기린, 살모사, 까마귀, 너부대, 실눈... 나와!"
모든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너부대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기린, 살모사, 까마귀와 실눈의 눈꼬리가 홱 치켜올라가면서 모두 너부대를 쏘아보기 시작한다.
"빨릉 나와, 이눔들아."
웃음을 띄운 얼굴로 선생님이 쩌렁- 소리치자, 아이들은 쭈삣주삣 거리며 교탁으로 나가 차례대로 선생님으로부터 산토닌 알약 두 개씩을 받아들고 물컵을 돌린다.
"너희들은... 모두 똑같이... 회충이다."
반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유달리 큰 소리로 웃어댄다.
"반장."
선생님이 별안간 심각한 목소리로 반장을 불러 세운다.
"네."
"너도 회충이다."
사실 거의 절반도 넘는 숫자의 아이들이 회충 판정을 받고 산토닌을 두 알씩 먹었다.
"오늘 집에 가서 뒷간에 가면, 일 보고 몇마리가 나왔는지 세어오도록 한다."
공포의 산토닌, 백미는 거기에 있었다.
산토닌은 그 기생충들을 우리의 장 밖으로 배출시키는 방법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재래식 변소에 크레졸도 뿌리고 횟가루도 뿌려서 사후 처리를 하곤 했다.
"아직 다 안 끝났다. 흑곰 이리 나와."
심상치 않은 눈치싸움이 선생님과 흑곰 사이에 벌어진 가운데, 흑곰이 교탁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의 눈은 자꾸만 발밑을 향했다.
"대."
흑곰은 칠판틀을 붙들고 엉거주춤 히프를 뒤로 내밀었다.
선생님의 정신봉이 두어 차례 흑곰의 엉덩이로 불벼락치듯 떨어졌다.
그리고 흑곰에겐 무려 스무알의 산토닌이 주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약을두 번에 나눠 다 먹었다.
"들어가. 왜 맞았는지 알지?"
"네."
흑곰이 개똥을 대신 넣었다는 것을 선생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반장이훗날 선생님의 교무수첩을 우연히 본 바에 의하면... 아주 여러가지의, 우리가 아는 모든종류의 기생충 이름이 다 흑곰 이름 옆에 나란히 써있었다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은 기생충약을 무조건먹어야 한다는우리 집사람의 지침을따르려고 약을 꺼내다가옛날의 누런 채변봉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들, 지금은 기생충 없겠지...?
우리 아이들을 불러 구충제를 먹여야겠다.
요즘의 구충제들은한꺼번에 세마리를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녹여주지만 과거 산토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까, 말까? ^^

(2009.07.0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