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평상곡




평상곡(平床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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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때쯤 되면, 이제 슬슬 평상이 생각날 때가 되었다.
그저 투박한 목수질로 만든 들마루 평상의 맛을 볼 때가 된 것이다.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뭉게구름 저만치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미류나무 가지 끝에선 매미소리 신나게 울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평상 위에장판을 깔아 박이지 않게 한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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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마루 평상에 오르려면 우선 바지를 무릎까지 둘둘 걷어 올린 후 
열 길 깊이 우물에서 방금 길어올린, 얼음장 같이 찬 물을 두레박 채로 발등에 쏟아붓는다.
벌써 조금 여름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할머니네 수건으로 대충 다리를 닦고
고무신 뒷꿈치에 고인 물은 탈탈 털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평상에 올라 공중으로 양쪽 발을 두어번씩 차례로 발길질하여 묻은 물을 털어내면,
이제 자격은 모두 갖추었다.
한 자도 안되는 평상 오르기가 이렇게 힘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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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찌그러진 양은 쟁반 위의 함지엔 달다 못해 뭉글어지기 시작한 자줏빛 딸기들과 아직은 좀 이른 듯 하지만 배꼽에서 단내를 은은히 풍겨내는 참외들이 담겨있다.
얼음덩어리 동동 띄운 구수한 미숫가루물이면 최고지만 시원한 칠성사이다도 괜찮다.
퇴침, 이건 중요한 건데...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퇴침까지는 바라지 않고, ^^
머리를 얹을 수만 있다면 플라스틱 퇴침도 마다하진 않겠다.
자, 이제 평상 위에 갖출 것도 다 준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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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 위에 두 팔과 두 다리를 있는대로 쭈욱 뻗으며 하늘을 향해 똑바로 드러눕는다.
완전 자유의 자세로 마음껏 스트레치를 하면 어느 순간골반이 삐끗하는 때가 온다. ^^
그러면 준비운동은 마친 것이다.
이 때 바라본 가운데 하늘은 텅 빈 상태이고, 저 멀리 한켠으로 뭉게구름이 피어난다.
게으른 바람이 산들 산들 불어오면 내 몸 저끄트머리에보이는 열 개의 발가락들로부터 몸이풀어지는 느낌이꾸멀거리며 올라온다.
바로 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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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우리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한민국 한 조각 땅에 붙어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구의 코딱지 만한 (이것도 큰가?), 그럼 티끌만한 우리 동네에선 누가 소리치고 있는지...
이 들마루 평상의 세계에선 철저한 고립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고립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나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끔 뜯어지게 한 하품 때문에 눈가로 눈물 주룩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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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로움에 몸을 뒤척여 옆으로 돌아누웠을 때,
그곳에 나의 책 한 권이 놓여있다면......
'노인과 바다' 정도의 책이라면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쉽게 읽다가 잠들 수 있으리라.
보다가 잠들면 좀 어떤가, 본 만큼 감동이 오겠지.

그리고, 평상.
그곳은 잠들기 제일 좋은 곳이 아니던가.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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