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합주곡
우리말 중에 '돌팔이'라는 말이 있다.
'돌아다니면서 파는 사람' 즉, 자기 터전이 없이 유랑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장터만을 목적로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와는 달라서, 이 사람 다음에 어디로 갈 지, 또 내일은 어디로 뛸 지 전혀 알 수 없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또 확대된 의미로 '제대로 자격을 갖추지 않은 채 학문, 기술, 예술 등을 팔아먹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영어에도 'quack' 라는 단어가 있는데, 물론 (1)번 뜻으로는 오리의 '꽥꽥' 거림을 뜻하지만 표제어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오면 '(경멸적인 의미로) 돌팔이, 엉터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돌팔이 의사는 quack doctor, 돌팔이 치료는 quack cures 같은 거다.
오리처럼 돌아다니며 소리쳐 사람들을 모으고, 믿을 수 없는 시술을 하고, 검증되지 않은 약들을 팔고는 그 마을을 떠나버리는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돌팔이들은 숱한 사람들의 생이빨을 뽑아내기도 하고, 늙은 과부의 쌈지돈을 울궈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꿈꾸는 많은 여인네들의 피부를 상하게 만들었다.
옛날 우리 국어교과서에 나오던 김동인의 '눈보라'에 나오는 '그'가 바로 돌팔이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 소화제를 만병통치약으로 팔고 다녔으니까 그다지 큰(?) 해악은 끼치지 않은 셈이다.
하루는 온 가족이 같이 점심을 먹고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매형이 슬그머니 나의 손을 끌어 가더니 살살 주무르기 시작한다.
"뭐하세요?"
"가만 있어봐... 내가 처남 속병들을 좀 알아봐 줄께"
그러더니 나의 손바닥 여기저기를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눌러댄다.
"여기! 아프지?"
"아뇨"
"여긴? 아프지?"
"아뇨"
"어, 아파야 하는데... 내가 수지침책을 보니까 처남은 여기가 아파야 되던데..."
아항~ 수지침. (그럼 난 마루타!)
계속 안아프다고 하니까 매형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손가락의 각도를 좀더 수직에 가깝게 하고 이를 악물면서 누르기 시작한다.
"어때? 아프지?'
"아뇨" (나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이래도? 이래도?" (더욱 이를 악물고 손가락까지 부들들 떨면서)
"아아악! 손톱으로 후벼대니 안아플수가 있나요?"
"봐, 거기가 아파야 된다니까, 처남은..."
손톱으로 그렇게 세게 후벼파는데 견딜 장사가 어디 있겠냐만은... 깊게 난 손톱자국을 문지르며 속으로 하는 소리, '돌팔이!'
평상시 일부 판매약 (일명 OTC-Over the Counter) 에 대해서는 웬만한 약사 뺨 칠 정도의 지식과 임상경험 (당신 스스로를 상대로 한) 을 가지고 계신 우리 아버님도 한 번은 '돌팔이' 소리를 유감없이 들으셨다.
그날은 무슨 일로 인해 밤이 늦도록 담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편안치 않은 다리로 자꾸만 화장실을 왕래하셨다.
"왜 그러세요? 어디 편안치 않으세요?"
"글쎄다... 아까 약 먹은 뒤로 자꾸만 뒤가 마려워서..."
"아까 무슨 약이요?"
"아까 머리 아프다고 하니까 네가 주더만...?"
무언가 번뜩 짚이신 아버님, 벌떡 일어나 장 위에 놓인 약통을 들여다보신다.
"새아가, 이게 무슨 약이지?"
"아, 그건 설사약인데요...???"
아이쿠, 할머니께 두통약 대신 설사약을 드린 것이었다.^^
카메라 수리를 하면서 나 역시 돌팔이짓을 많이 하고 있다.
잘 알 지도 못하는데...
공구라고는 망치, 드라이버, 뻰찌 밖에 모르는데...
카메라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없는데...
사진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떨까?
너무나 많은 돌팔이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그 중 하나),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에서 열심히 일할 때 가장 효율이 높은 것 아닐까?
비전문가들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일이 많을수록 배는 자꾸 산으로 가기 마련.
똑똑하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보다 나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이다.
모든 사람이 배우일 수 없고, 관객이 없이는 연극이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응원하고 박수치고, 배우와 같이 호흡하고 또 때론 비평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이제 돌팔이 합주곡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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