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처음 카메라를 갖게된 것은 1987년 2월 10일 이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는 눈발이 어느새 발목까지 덮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침의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기지개를 켠다.
골목의 눈을 치우는 가래 소리.
자동차 시동을 걸고 아이들링하는 소리.
그리고 그 유리창을 긁어내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눈 속에 갇혀버렸다.
식당으로 내려가 그는 시계를 보면서 서둘러 아침식사를 끝냈다.
무엇으로 배를 채웠는지...
커피는 어떤 맛이었는지...
누구와 같이 테이블에 앉아 먹었는지...
시간이 빠르게 흐르게 하기 위해 눈길을 뛰어 강의실로 향한다.
히터가 눈을 녹여놓은 보도와 히터가 없는 경계에서 그는 미끄러지고 만다.
휘이 둘러보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듯 싶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세게 부딪힌 오른손이 얼얼하지만 괜찮을 듯 하다.
OK.
다시 뛰기 시작한다.
N2020, N2020, N2020, N2020...
강의시간 내내 그는 그것만 생각한다.
그리고 드디어 벨이 울리면 그는 달리기 시작한다.
눈 덮인 캠퍼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그는 한 마리 노루와 같다.
마침내 카메라점에 도착했을 때 스웨터 속의 몸은 이미 땀에 젖어버렸다.
그 위에 걸친 외투를 벗고 가쁜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진열대 앞으로 다가선다.
거기에 그가 갈망하던 모습이 있다.
Nikon N2020.
그 옆에 같이 나란히 자리한 Minolta Maxxum 7000 과 Maxxum 9000.
당시의 참피온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한 발 늦게 AF시장에 뛰어든 Nikon은 그 현란한 Maxxum들에 눌려, 그냥 '나도 만들 수는 있다.'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그 N2020의 셧터 소리에 그는 모든 세평을 먼지처럼 날려 버렸다.
생일 선물로 날아온 300 달러를 몽땅 털어넣었다.
내 이름 꼬리표가 달린 첫번째 카메라.
그는 열광했고 또 열광했다.
영혼을 깨우는 셧터 소리.
그 소리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치기어린 수 많은 사진들을 찍어댔다.
예술이고 뭐고 그런 건 몰랐다.
그냥 그 카메라가 좋아서, 그냥 그 소리가 좋아서....
그리고 먼 훗날,
그는 이제 자신도 진정한 카메라를 알고 싶은 마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사랑하던 첫 카메라 N2020를 모두 넘겨주고 수동 Nikon FM2로 바꾸어오던 날, 귓가를 계속 맴도는 그 셧터 소리는 그를 미치도록 힘들게 만들었다.
FM2를 눈에 갖다대고 첫 사진을 찍던 날.
그는 망연자실했다.
그의 눈은 수동 카메라의 촛점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난시였던 것이었다.
오랜 세월 쓰는 동안, N2020의 Auto Focus에 너무도 익숙해진 그였다.
다시 귓가에 N2020의 셧터소리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전 보다 더 큰 소리로...
(200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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