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2일 화요일

날아라 칠면조

날아라 칠면조








"칠면조, 칠면조 어딨어?"
아줌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유리창을 통해 밖을 살핀다.
화단의 맨드라미 너머로, 닭장 부근에서 칠면조 대머리들이 고개를 빼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하나. 둘. 셋.
있어야 할 대머리의 숫자가 맞지 않다.

"하나가 안보이는데?"
현관문을 빼꼼히 열고 좌우를 살피던 아줌마는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내려본다.
"닭장 안에 있는 모양인데요?"
"그래, 하여튼 난 대문까지 빨리 달려가면 되겠지. 닭장 좀 고쳐라, 얘. 잘 있어라."
"예, 안녕히 가세요."

아줌마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고개를 빼고 좌우를 다시 한 번 살핀 후, 대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간다.
하지만 학창시절 이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없는 아줌마는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뛰어보지만 대문을 몇 걸음 남기고 칠면조들에게 발견된다.
끼룩 끼루룩 소리를 지르면서 날개를 푸득이며 일제히 아줌마를 향해 달려가는 칠면조들.
결정적인 순간에 대문을 못열고 당황하던 아줌마는 비명을 지르다가 간발의 차이로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탈출한 후, 대문을 텅! 닫는다.

-띵, 똥-
"누구세요?"
"아줌마다. 탈출성공. 무서워서 인제 너네 집 못오겠다, 얘."
칠면조들은 아직도 대문 근처에서 끼룩 끼루룩대며 배회하고 있다.
언제라도 낯선 방문자가 나타나면 몰려가 열심히 쪼아댈 태세이다.
그들은 새들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주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 사정없는 공격을 가한다.
모이를 주는 소년이나 소년의 어머니만이 그들의 동지였다.

사실 그들의 쪼아대는 부리가 그닥 아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말 좀 보태서, 몸 크기는 셰퍼드만하여 검은 깃털로 덮여있으며, 생기기는 못생긴 대머리 독수리보다도 더 흉칙하게 생겼으며, 화가 나면 머리에서 목덜미까지 노출된 맨살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기괴한 새가 끼룩 끼루룩 하는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있는 힘을 다하여 홰치며 나는 듯이 뛰는 듯이 달려드는 형상을 보면 가히 '쥬라기공원'의 랩터가 주는 공포와 다를 바 없었다.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사람은 항상 밝은 얼굴로 대문을 열고 들어와 스스럼없이 뒷곁을 마음대로 드나들던, 강원도 출신의 전기검침원이었다.
평상시처럼 여유롭게 적산전력계 검침을 하려고 뒷곁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반대쪽 코너를 돌아 질풍노도와 같이 달려드는 한 무리의 괴물들과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세상 태어나 그는 그렇게 무서운 괴물들은 처음 보았다.

"악!"
그는 약 0.3초간의 짧은 단발마 비명소리와 함께, 손에 들었던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꼿꼿이 든 채로 대문 밖으로 뛰어 도망가는데 걸린 시간 3초.
이후 그는 다시는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언제나 대문 너머로 적산전력계 숫자만 읽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칠면조들은, 소년의 집에서 키우던 닭들이 할머니의 생신을 맞이하여 살신성인의 도를 실현한 후 텅비어버린 닭장을 채우기 위한, 어머니의 아이디어였다.
십여 마리의 닭들을 위해 마당 한구석에 지어진 닭장은 오래된 사과궤짝을 뜯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닭들에게는 그런대로 우리의 역할을 하였으나 칠면조들에게는 상황이 달랐다.
닭들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그들에게 사과궤짝 우리란, 맘만 먹으면.... 이었다.
잘 몰아넣어도, 때로 저희끼리 서로 홰치며 밀치다가 닭장에 부딪치면, 우쩍!
Ooops... sorry.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미국산이니까)

그들은 먹기도 엄청나게 먹어댔다.
소년의 어머니가 현수네 반찬가게에서 얻어오는 채소조각들과 닭사료와 식구들이 먹던 모든 음식들의 찌꺼기가 그들의 음식이었다.
그들이 온 후 구수한 누룬밥은 식탁에서 사라졌고, 소년의 어머니는 모이감을 위하여 시장에서 걷어온 찌끄러기 봉지를 따로 들고 오실 때도 있었다.
배가 고프면 그들은 어머니의 그 봉지 마저도 쫓아다니며 쪼아대곤 했다.

때때로 밥이 부족한 경우, 소년은 아직 어린 동생들이 밥 먹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거 다 먹을거니?"
"응."
"그럼 돼지 되는데?"
"그래도 다 먹을거야."
암만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칠면조가 말야..."
'칠면조가...뭐?"
반응이 있다!
"칠면조가 굶어야 된대."
"왜?"
"으응, 밥이 부족해서..."
마음 여린 동생들은 기꺼이 칠면조를 위하여 숟가락을 놓았다.
넌 좋은 주인 둔거야, 이 괴물들아...ㅋㅋㅋ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기 시작할 때, 잘 먹인 칠면조들은 이미 힘이 넘치고 있었다.
이젠 소년이 칠면조를 마음대로 번쩍 들어올리기도 버거워졌고, 칠면조들이 소년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수 많은 낯선 사람들을 쫓아내며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했으며, 때때로 닭장을 부수는 것도 부족하여 우리 위로 날아나오기까지 하곤 했다.
그들이 날개짓하면 그 밑의 마당이 깨끗이 쓸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들의 날개짓은 갈수록 힘을 더해갔다.

하루는 소년의 어머니께서 놀란 목소리로 소년을 찾으셨다.
"얘, 칠면조들이 다 없어졌다."
"그럴리가...?"
소년은 부리나케 뛰어나가 마당을 휘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녀석들이 모두 어디로 가버린거야?
뭔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드는 마음에 그는 심통스럽게 닭장을 발로 걷어찼다.

순간, 어디선가 푸드득 홰치는 소리와 함께 끼룩 끼루룩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붕 위였다.
마치 자신들의 영역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굽어살펴보는 독수리처럼, 그들은 세상 가장 도도한 모습으로 소년을 내려보고 있었다.

화단가로 빙 둘러가며 심어놓은 팬지 위로 햇살이 골고루 뿌려지는 어느날, 소년의 가족은 칠면조들과 이별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이웃들의 원성도, 감당하기 힘든 모이도, 어린 동생들의 안전문제도...
칠면조로 인한 모든 것이 쉬운 것은 없었다.
그래도 소년에겐 참 정이 들었었다.

학교를 가기 전, 소년은 닭장 앞에서 모이를 쪼고있는 칠면조들을 하나씩 쓰다듬었다.
그래도 내 말은 잘 들어주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가야만 하는구나.
여긴 너희의 영역이 아니었어...
많이 먹고 가거라.
안녕.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소년의 생각은 온통 칠면조 생각 뿐이었다.
네녀석의 못생긴 얼굴 하나 하나가 시야를 떠나지 못했다.
소년의 생각들 틈바구니에서 묘한 생각이 한 가지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년에게 칠면조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잡혀가기 전에 자유롭게 도망을 치는거야.
아주 높이, 아주 멀리, 그리고 돌아오지마.
넌 날 수 있잖아.

날아라, 칠면조!





(20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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