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2일 화요일
다대포 왕대포
다대포 왕대포
빨간 글씨로 왕대포라고 쓰여져 있는 나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벌써 뭔지 모를, 하지만 주방에서 끓고 있는 찌게 냄새가 술 냄새와 한데 엉기어 몰려온다.
그 집, 다대포 왕대포.
누가 지은 이름인지 각운이 재미있다.
"엄니, 저희 왔어요."
K는 넉살 좋게 소리지르며, 벽 쪽 가까이에 자리한 드럼통 테이블로 가 의자 하나를 차지한다.
흘깃 쳐다보기도 하던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로 전까지 하던 일로 곧 돌아간다.
한 쪽 구석으로 과친구 하나가 혼자서 달랑 콩나물 한 접시 앞에 하고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 파전하고 동동주 먹을까? 아니면 뜨끈한 감자탕 먹을까?"
"너 돈 있어?"
"여기 봐라. 오늘 이 집에 돈 갚으러 왔다 아니냐!"
외상술 먹기를 점심먹기 보다 자주하는 K를 너무도 잘 아는지라, 단 둘이 오붓하게 술 한잔 하자는 그의 제의에 뒷주머니 지갑부터 확인했던 나였다.
"에구... 우리 K 왔구나. 그래, 요즘 밥은 먹고 다니는겨?"
"아유, 그럼요. 그리구 이거 돈 갚으려고 가져왔어요."
그가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놓자 대폿집 아주머니 안면에 함박웃음이 퍼졌다.
이 아주머니는 상호 다대포 왕대포와 아무 상관이 없었을 뿐더러 가게이름이 왜 다대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급하게 해오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널 못믿으면 누굴 믿겠니? 그렇지 않니, 샌님?"
아, 이 아주머니가 아픈데를 건드리는구나...--;;
샌님이라니...
그건 내가 이 학교를 입학해서 고등학교 동문회 가입식 때 얻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었다.
때마침 나의 모교는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했던 터라 모든 동문들이 의식 중 혹은 무의식 중에 조금씩은 up 되어있었고 술자리에서도 그런 기분은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선배의 환영인사에 이어 술 석 잔, 건배!
고등학교 교가......(애교심이 고취된다^^) 그리고 술 석 잔, 건배!
응원가......(벌써 알딸달해지는 기분으로^^) 그리고 술 석 잔, 건배!
응원구호......(요건 조금 객기를 섞어서, 용기와 함께^^) 그리고 술 석 잔, 건배!
이 때쯤 되면, 벌써 대폿집의 미닫이문이 들썩거릴 정도로 취기가 돌고 있을 때다.
"자, 이번엔 새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아-, 야 너 이름 뭐라 했지?"
"S인데요."
"그래, S의 신고쏭이 있겠습니다." (이크크--;)
옆에 앉은 직속선배가 나의 등을 토닥이더니 빈 소주병에 숟가락 하나를 꽂아서 마이크인 양 내게 건네준다.
"좋은 걸로 해라."
좋은거?
내가 소주병을 그러쥐고 주섬주섬 일어나고 있을 때, 벌써 다른 선배들은 서로 권커니 자커니 잔들을 비워내고 있었고 프로판 가스 위의 김치전골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초연이 쓸고 간 기이픈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요즘 같으면야 냅다 '남행열차' 를 뽑아댔겠지만, 좋은 걸로 하라는 직속선배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해서 조금 수준있는 우리의 가곡 '비목' 을 부른 거였다.
하지만, 순간 다대포 왕대포에 흐르던 그 싸늘한 적막감!
이제 막 김치전골에 숟가락을 디밀려던 직속선배는 그 자리에서 동작그만.
소주잔을 입으로 막 부으려던 동문회장 선배의 턱은 떡 벌어져 테이블까지 늘어졌다.
그렇지, 내가 어렸을 적부터 노래라면 한 가락 했지...^^
여기저기서 풋 풋 하는 웃음소리가 터지기 시작해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잘 마셔보지 못한 술 때문에 아마 목소리가 갈라진 모양인데, 그렇다면...
목소리를 더욱 두껍게 깔고,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제서야 선배들은 제대로 웃기 시작하면서 다시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노래를 다 끝마치고 앉자 옆의 직속선배가 웃는 얼굴로 수고했다며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막 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파전을 내오던 아주머니가,
"이 학생은 공부만 한 샌님인가봬, 뽕짝도 모르는 거 보면..."
아! 뽕짝!
순진했던 나는 대학생이 되면 수준있는 노래들만 부르는 줄 알고 있었는데, 대폿집에서의 코드는 뽕짝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도 뽕짝 노래책 한 권 정도는 외어 부를 수 있었는데...
하여간 그 때부터 난 '샌님' 이 되었다.
달갑지 않은 추억을 혼자 곱씹고 있을 때, 아주머니는 돼지뼈를 가득히 쌓아올린 감자탕 냄비를 가스불 위에 얹어주고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려 투박한 손목시계 하나를 꺼냈다.
"자, 여기 네 시계. 그리고 오늘 감자탕은 특급으로 만들어줬다."
"역시 우리 엄니가 최고야~. 잘 먹겠습니다."
시계를 받아 왼쪽 손목으로 가져가며, 또 한 번 넉살을 떠는 K.
진로소주병을 들어 내 잔에 부어주며 싱긋 윙크를 한다.
석회 바른 벽 꼭대기에 껌벅거리는 형광등 위로 가느다란 거미줄이 군데군데 먼지를 달고 있다.
드럼통 테이블의 싸늘한 감촉으로 겨울은 벌써 이만큼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감자탕이 끓으면서 뽀얗게 증기가 피어오르는 사이로 K의 얼굴이 불그스레해고 있다.
"한 잔 해라, 이 녀석아."
저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던 과친구가 다가와 술을 건넨다.
"좋지. 별 일 없냐?"
대답 대신 한 번 씨익 웃음짓던 녀석은 내가 마시고 따라준 잔을 단숨에 꿀꺽한다.
살점이 두둑히 붙은 돼지뼈 하나를 얼른 집어들어 그 친구 입을 향해 밀어준다.
반 쯤 입으로 베물었던 돼지뼈를 한 손으로 빼내면서 다른 손으로 내 등을 두어번 두드리고는 다시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간다.
서너개의 소주병이 비워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다가, 세상에 대한 개똥철학을 펼치고, 떠나버린 K의 여자친구를 성토하기도 했다.
옆 테이블을 차지한 몇몇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드럼통 테이블을 두드리며 뽕작을 시작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짜자잔짜."
그쪽에도 실연한 친구가 있는 모양이다.
이 짧은 세상에 만남과 헤어짐도 참 많은 모양이다.
결국 두어 시간 쯤 지나고나서야 우리는 얼큰하게 취하여 어깨동무를 하고 다대포 대폿집을 나서게 된다.
K는 술값이 모자라 돌려받았던 손목시계를 다시 맡기고 외상을 그었다.
점점 더 악악거리는 단발마로 변해가기 시작하는 뽕짝소리를 뒤로 하고 드르륵 미닫이를 열고 나설 때는 아픔도 울분도 소주와 함께 잊혀지는듯 느껴졌다.
별들이 총총하니 시린 초겨울밤 하늘에 빛나고 있었다.
(200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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