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2일 화요일

당군과의 결전에 칼을 벼리며

당군(糖軍)과의 결전(決戰)에 칼을 벼리며...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많이 생긴다.
예상했던 일도 있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도 있고, 그 일이 생길까봐 불안 조마조마 하다가 덜컥 당하고서 '내 그럴 줄 알았다 안카나' 하는 일도 있다.

좋은 환경에서 그럭저럭 큰 걱정 없이 살아오던 그는, 어느 날 어떤 생각에 부딪히게 된다.
'어? 이건 내가 생각하던 인생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걸?'
'더 나은 무언가가 저 산 너머에 있는지도 몰라.'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들어 있는 아내를 깨워 동의를 구하고 아이들도 두들겨 깨워서 돛자리를 말아 메고 무지개를 찾으러 동쪽으로 떠났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와 아내는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또 어느 날, 그는 불현듯 이렇게 말을 했다.
'이제 난 좀 쉰다.'
그 날 이후, 그는 정말 쉬기 시작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과로에서 해방되자 자연스럽게 살도 찌고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을 해보자는 아내의 수 차례 권고는 묵살되었다.
'나에게 큰 병이라도 있다고 밝혀지면 그 다음엔 돈도 없이 어떻게 할려고...'
그랬다.
아끼며 살아야 했기에 그의 식구들은 절대 아파서는 안되었다.

아내의 성화로 부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근 5년 만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받은 판정은 고혈압(高血壓)과 당뇨(糖尿).
'아냐, 그럴리가 없지...'
그의 첫 반응은 심한 도래질이었다.
'내가 너무 긴장을 해서... 그래, 5년 동안 청진기 한 번 댄 적이 없었는데, 혹시 그 동안 큰 병이 생겼을까봐 불안하고 조마조마 했던 것 때문일거야.'
그래서 혈압(血壓)도 오르고 혈당(血糖)도 올라간 것이라고 믿어 보았다.

자의 반, 타의 반 당뇨 클래스도 수강하고 매일매일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면서 그는 자신의 테스트 수치가 일시적이 아니었던 것을 차츰 깨달아갔다.
처음엔 믿을수가 없었지만 하나씩 둘씩 수긍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난 고혈압에 당뇨가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잖는가.'

약을 투여하는 것은 의사지만, 자신이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체중 감량.
방만한 생활 속에 이전의 체중에 비해 15 kg 이나 늘어, 이미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무시해오던 그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했다.
일단 체중부터 원래로 돌려놓고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고 다짐했다.

칼로리 섭취량 줄이기.
운동 시간 늘이기.
탄수화물 줄이기.
약 챙겨먹기.
혼자 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같이 뛰었고, 그를 위해 외식(外食)의 즐거움을 억제했다.
먹음직스런 요리 광고라도 나오면, 겸연쩍은 얼굴로 아내를 보며,
'인생이 와 이리 재미 없노?'

한 가지 욕심만 자제하기도 이렇게 힘이 든데...
새삼 수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인간의 3대 기본욕구 중 첫째로 꼽히는 이 식욕(食慾) 이 문제인지라...

여하간,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받은 검진.
체중 7.8 kg 감소. 혈압 정상. 식전(食前) 혈당 정상. 기타 모든 검사 수치 정상.
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약을 복약하면서 혈당이 정상치 근처에서 오락가락하는 이른바 'controlled diabetes' 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GO! 를 외쳐야 하는 화투패.

그는 다시 한 번 싸움을 준비한다.
체중 10 kg 감량.
약물의 도움 없이 혈압과 혈당의 정상치 복귀.
'이게 나에게 주어진 싸움이라면 이 싸움을 즐기자.'
헐렁하게 커져버린 바지를 흔들며 아내에게 그는 이야기한다.
'3개월 후엔 나도 사진 한 장 찍어야겠어. 이렇게 바지 허리를 펴보이며 "나도 이만큼 빠졌어요" 하는 광고 말이지...^^'
'웃음이 나오지...여유 있어졌네.'

오랜동안 당뇨로 고생하시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병인지, 무슨 고생을 하여야 하는지 이제서야 그는 깨닫게 되었다.
손가락 끝이 성한 곳이 없어서 시험바늘 꽂을 자리가 없다고 하셨을 때, 그는 웃었었다.
맛있는 것 앞에 두고 손사래 치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식은 자식이었으되, 자식이 아니었다.

당군(糖軍)과의 결전(決戰)을 앞두고 칼을 벼리는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기도를 올린다.

당신의 뜻에 부합하다면, 이기게 해주소서.
당신의 뜻에 부합치 않다면, 지리하지 않고 단칼로 쓰러지게 하소서.
하지만 그전에,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처지에 서보게 허락하심 감사드립니다.
...
자, 이제 가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200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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