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us OM-4 (1)

명가(名家)의 잃어버린 자존심.
Olympus OM-4 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SLR 카메라 시장을 선도하던 OM-1, OM-2 를 바로 계승한 OM-4.
OM system 의 총력을 모아 개발, 1983년 부터 1987년 까지 4년간만 생산되고 좀더 보강된 OM-4T 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자의 반, 타의 반 이 OM-4T 는 디지털이 기세를 올리는 2002년 까지도 지속된다.
박수칠 때 떠났으면 전설로 남았을텐데......
Olympus 의 AF 개발 실패와 OM 컬트 매니아들의 지속적인 성원이 OM-4T 로 하여금 힘든 싸움을 2002년 까지도 계속하게 만들었던 것.
그럼에도 OM-4 는 아직까지도 그 어떤 수동 SLR 기종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기능과 카리스마를 갖춘, 미래의 collector's item 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말기로 하자.
저만한 친구가 저만큼의 상태가 된 것 자체가 그에게는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일테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장롱카메라'.
그들은 그래도 귀중품 취급을 받았기에 장롱 깊숙한 곳에 조심스레 보관되어졌다.
물론 환기가 잘 안된 이유로 곰팡이도 피고 차광폼도 녹고 하겠지만, 그래도...... 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친구의 느낌은 뭐랄까...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피곤하고 굶주리고 부상입은 늙은 군인의 모습.
big fish 와의 큰 싸움을 매듭짓고 지쳐 돌아오는, 영화 '노인과 바다' 의 안소니 퀸의 모습.
모든 시험에서 최선을 다하고 터덜터덜 어깨를 늘이며 돌아오는 수험생의 모습.

그들에겐 성대한 환영식도 필요없다.
오색 꽃잎 사이로 벌어지는 화려한 카퍼레이드도, 귓청 뚫어지게 하는 밴드의 축하음악 소리도, 또는 거리에 가득 운집하여 깃발을 흔들어대는 환영 인파들의 광기도......
번쩍거리는 매스콤의 플래쉬도, 가슴 위를 장식할 그 어떤 훈장도...
바디 전체 구석구석 마다 내배이는 황동빛 마모 흔적과 상처들이 이 친구가 어떤 과정을 지금까지 겪었는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마치 차고나 창고에 방치되었을 경우에나 볼 수 있는 흙먼지들이 top 커버 부품 사이사이 마다 두툼히 쌓여있는 것이 관찰된다.

base 커버 한 쪽은 아직도 덕트 테이프를 두르고 있고 펜타프리즘 모서리에도 오랫동안 테이프를 붙였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바디를 둘러싼 가죽은 바짝 마르고 윤기를 잃어버린 상태.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일주일동안의,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긴 잠.
삼시 세끼 따뜻한 국과 밥.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사가 될 수 있는 마음 뿐.

역시나 차광폼들도 변형이 와서 back 커버를 열자 부스러기도 떨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차광폼들은 끈적하게 녹아있는 상태로 붙어있다.
우째 간수를 이리도......쯧쯧.
저절로 혀가 차졌다.
이 친구야, 예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다.
그동안의 혹사와 시련으로 부터 비롯된 모든 상처를 씻어내 보자꾸나.
그리곤 다시 일어나서 다른 친구들에게 좋은 옛날 이야기 한 보따리쯤 웃으면서 풀어놓을 수 있게 하여 보자꾸나.

(20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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