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오늘의 날씨표에는 항상,
맑음의 햇님, 흐림의 구름, 비의 빗살무늬
이 세 가지가 같이 엉겨있다.
기상통보관도 언제나 똑같이,
"오늘은 때때로 흐리고, 때때로 비도 오다가 때때로 맑기도 하겠습니다."
야~, 저 직업 좋은 직업이야... ^^
우리나라 기상대 직원들처럼 망신당할 일도 없다.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고, 때때로 비도 온다는데....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다가 커피잔으로 손을 뻗히겠지?
커피잔을 들고 입술로 가져가 그 따스한 도기의 느낌에 평화를 느끼다가,
잔을 약간 기울여 인생의 묘약을 입안으로 흘려넣는 순간,
커피잔 너머 창문으로 한줄기 빛이 누우렇게 뻗대인다.
아! 햇빛이다!

그러면,
부리나케 하던 일 걷어치우고
뜨뜻하게 후드 달린 방수잠바 어깨에 걸쳐입고 카메라 끈을 움켜쥐고,
주차장으로 달려나가면,
늙은 나의 애마는 차가운 가을비로 뼛속까지 얼어붙어 떨고 서 있다.
부디디...부디디딩
애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예열을 하고, 그동안 나는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셔버린다.

달려가는덴 항상 뻔한 곳이지만,
요즈음엔 신호등도 보랴, 하늘에 햇빛도 보랴, 숨어있는 교통경찰도 보랴.... ^^
바짝 긴장하고 무척 설레이는 마음이 된다.
내 즐겨찾는 뒷산 공원엔 서너명의 전문 카메라맨들이 벌써 도착하여 서성대고 있다.
이들은 모두 기천불씩 하는 DSLR 카메라에, 렌즈에, 삼각대에, 알루미늄 카메라가방에...
자동차 한 대 값은 족히 됨직한 장비들로 중무장한 프로들이다.

나?
무길도한량도 부지런히 카메라 팔고 팔아서 DSLR 라는 범주에 턱걸이하는, 손바닥 만한 카메라 하나 장만하고 그 대열에는 섰는데...
??
자꾸 묻지 마시라.
Nikon F100 필름카메라와 맞바꾼 것이니 대충 그 가격대만 짐작하시라. --;
카메라만 비싸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
아, 그러고보니 사진실력으로도 물론 난 그들의 상대가 되진 못한다. ^^

여하간 우리는 경쟁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진을 찍어가며 오솔길을 걸어간다.
아이... 빨리 좀 찍지, 거 시간 되게 끄네...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하고, 때론 앞사람이 섰던 그 위치에서 똑같이 앵글을 잡아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찍는 것을 컨닝하듯 힐끗힐끗 훔쳐도 보면서...
간간히 맑은 하늘에 여우비도 뿌려준다.
아이... 그냥 찍지, 꼭 삼발이는 세우고... 참, 시간 끄네...
아주 느른 속도로 행렬은 숲 사이로 지나간다.

한 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하늘은 어둑어둑 먹구름이 몰려와 있다.
이런... 아직 한 스무 장도 못찍었는데...
차츰 더 사위는 어두워지고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전문가들은 벌써 단단해보이는 알루미늄 가방 속으로 장비들을 챙겨넣는다.
조그만 나의 카메라는 가볍게, 방수잠바 품 속으로... ^^
그리곤 제각각 발걸음도 가볍게... (걸음아, 날 살려라^^) 각자의 차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차문을 닫고 차시동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쫘아아-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선 이렇게 비와 비 사이에 짧은 시간 동안 햇빛이 나는 시간을 Sun Break 라고 부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겐, 햇빛이 나는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사진이 어차피 빛의 예술이 아니었던가.
Make hay while the sun shines.
(태양이 날 때 건초를 만들어라)
중학교 때 배운 영어 속담이 정확하게 적용되는 바로 이곳이다.
만일, 일주일 동안 Sun Break 를 놓치면,
블로그 사진은 어쩌누? ^^
(200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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