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冬安居)를 접으며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동안거(冬安居)란,
음력 시월 열엿새날부터 그 이듬해 정월 보름날까지 승려들이 일정한 장소에 들어앉아 수도를 하며 겨울을 나는 것을 말한다.
불교승려도 아닌, 무길도 한량이 무슨 동안거?
그냥, 이름이 멋지니까 나도 함 써보자구요~. ^^
그러면, 도대체 무길도 한량은 길고 긴 동지섣달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을꼬?
에... 그게 설라무네...

어느날,
그동안 피폐해지고 혼미해져버린 무길도한량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곤,
오늘 뭐 먹을까? ^^
어디 엉덩이 뜨뜻하게 지질 곳 없을까?
자꾸만 형이하학적인 쪽으로만 달려가는, 이 몸을 어찌할거나...

어느 분 말씀대로,
멀리 천리타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아내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나,
좌골신경통 이후로 무길도 한량은 30분 이상을 앉아있기가 어려우므로,불가(不可).
뭔가로 흐리멍텅해진 머리를 빤딱 빛나게 만들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마침 아이들이 방학인지라 신선한 머리의 아이들과 전적으로 행동을 같이 하면서 동안거를 시작.

동안거 중 한 수행들을 보면,
밀리고 밀린 영화들 겁나게 많이 보기. (http://www.numbero.com/, http://atdhe.net)
아이들과 컴퓨터게임 죽어라 하기. (Medal of Honor, Command & Conquer: Generals)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뚫어져라 쳐다보기. (두꺼워서 그런지 뚫어진 것 없음)
오랜만에 사업장에 나가, 나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기. (자기네도 살아있다고 함)
아이들과 뉴스 다이제스트. (세상 돌아가는 것 맛 뵈주기)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 및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아이구, 頭야... 아직도 진행중)
아이들과 같이 산보하기. (앞마당, 뒷마당, 앞산, 뒷산 그리고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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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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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밥도 먹었지? ^^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아이들과 같이 시간보내기였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아빠와 항상 시끄럽고 이기적이고 잔소리 많은 십대들이 같이 떠들고, 뒹굴고,먹고, 마시고... 하면서 서로의 생각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깔아주자는 것이었다.
최소한 앞으로 대화의 단절이나 소통의 기피 같은 불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더더군다나 기러기엄마로 인한 애정결핍이 염려되는 점도 있었고...

약 2주간에 걸친 동안거 동안,
탁한 머리 많이 비우고, 신선한 자극 많이 받고,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고...
좋은 말로, 내실(內實)을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좀 웃기는 이야기일까? ^^
아니면 결국, 푹 쉬었다는 소리인가? ^^
여하튼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보고드림당~.
동안거를 접으며 드리는 변(辯) 이었습니당~.
그나저나 우리 시님들도 결과가 좋은겨?
혹 운동부족으로 살만... ^^
아니것쥬?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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