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그 만두집
그 만두집
지금은 그 만두집이 거기에 없다.
옛날, 주소가 아직도 영등포구 노량진동이던, 30여년 전의 그 동네에는 중계소라는 이상한 버스정류장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우물을 지나 전화국쪽으로 걸음을 옮기다보면, 심드렁한 언덕배기 오르막에 그 만두집이 있었다.
낙지네 튀김집 조금 못미쳐서 문방구 맞은편으로다 말이다.
유리 미닫이문 하나에는 가게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물풀을 쑤어 허옇게 바르고 빨간 페인트로 제일 위 유리에 "만", 그리고 그 밑 유리에 "두" 라고 썼다.
그 문과 마주치는 또 다른 문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찐" "빵" 하고 써놓았다.
그러한 미닫이문 네 개가 전면을 가리고 있었는데 맨 왼쪽 문은 주방과 바로 통하게 항상 약간 열리어 있었고, 그 앞으로다가 커다란 연탄화로가 있었다.
기억컨대, 그 연탄은 25공탄이라고 불리우는 쟁반만한 연탄이었는데 그 화력이 얼마나 좋은지 그 연탄 한 번 갈때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 옆에서 들여다 보았다간 볼따구가 빨갛게 익어버릴 정도였다.
나중의 만두집들은 모두 프로판가스나 도시가스로 바꾸었는데, 그 이후 만두가 예전만큼 찰지게 잘 쪄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는데...
여하튼간 그 연탄화로 위에 얹혀있던 것이 커다랗고 시커먼 무쇠 가마솥이다.
우리 시골 살 때는 아궁이 위에 얹어놓고 아예 고정시켜 놓고 쓰던 것인데, 이 사람들은 그 가마솥을 화로 위에 올려놓고 만두와 찐빵을 2단으로 쪄대곤 했다.
가끔 가다 들려오는 뚜껑 여는 소리.
아, 뚜껑은 번쩍 다 여는 것이 아니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다 열면 솥 안의 열기가 다 빠져 나간다고 항상 미끌어뜨리듯 반 만 열었다.
실제로 한번은 조수가 뚜껑을 한번 완전히 열었다가 주인 아저씨한테 개눔 소눔 하며 벼라별 욕을 다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예의 뚜껑이 쇠 갈리는 소리를 내며 쩌엉 열리면 하아얀 증기가 얼마나 많이 뿜어져 나오는지... 아, 정말 장관이었다.
그 증기 사이로 조수는 이리 저리 얼굴을 비켜가면서 잽싼 동작으로 접시에 만두와 찐빵을 집어 담아내었다.
물론 접시에 알맞은 양을 담아내고 그 안을 다시 정리하는 것도 한 과정이었다.
그 가마솥 옆으로는 주방 유리창인데, 나름대로 진열장을 겸하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에 기대어 만두와 찐빵을 쌓아놓는데, 그것들이 그날 찐 것들인지 아니면 계속 그곳에 진열해놓는지 그건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그 만두집 앞을 지날 때 마다 진열장 속의 만두와 찐빵은 가마솥으로부터 나온 증기와 어울러져 유리창을 장식하고 있었고, 지나는 사람마다 안쳐다보고 그냥은 지나가지 못하는 광경이었다.
이제 날씨가 조금씩 싸늘해지기 시작하니 30여년전 어떤 겨울날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30여년전에 존재했건 안했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 흑백사진으로만 존재할 것 같은 한 역사 속에서 상상의 유희를 하자는 것 뿐이다.
그날은 제법 바람도 차갑게 불고 수은주도 내려가, 여자애들은 게실장갑 위로 손을 호호 불며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고 남자애들은 옷깃을 세워 뺨을 거기에 바짝 대고 바지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코를 훌쩍이며 빠르게 걷던 그런 날인 것이다.
둘둘둘 떨며 타박타박 지나가다, 만두집에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증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만 드르륵 하고 만두집 문을 열고 만다.
주방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는 주인 아저씨와 눈인사를 하고 가게 중앙의 연탄난로 주변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싸늘한 의자.
가만 느껴보니 가게 안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고 허연 회벽들이 오히려 더 을씨년스런 분위기만 주고 있었다.
그때쯤 조수가 주전자를 가지고 나와 사기컵 (중국집에 가면 물 주는 컵)에 펄펄 끓는 보리차를 부어준다.
만두 10원. 찐빵 20원.
그 때는 찐방이 왜 비쌌는지 알지도 못했다. (지금은? 그거...팥이 비싸니까^^)
여하간 뜨거운 물 두어 모금 마시고 가랑이 사이에 시린 손 부비다가 만두 한 접시 시킨다.
먹을 준비 해야 하니까 위에 걸친 코트는 벗어 옆자리 의자에 개어놓는다.
그쯤 되서야 얼은 몸이 조금 녹으면서 몸서리를 한 번 후드득 한다.
다리 하나가 삐딱한 테이블 위엔 쇠젓가락이 가득 꽂혀있는 젓가락통, 하얀 유리에 대가리만 빨간 간장병과 식초병, 빨간 플라스틱 고춧가루통, 설탕이 담긴 노란통 그리고 숟가락이 하나 꽂혀있는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 하나가 놓여있다.
(냅킨? 그게 뭔데...?)
말하자면 쏘스를 알아서 만들어 먹던지, 아니면 하우스 메이드 쏘스를 사용하던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만들어 먹으면 간장+식초+고춧가루 의 배합이다.
하우스메이드 쏘스는 조금 더 복잡하여 간장+식초+고춧가루+풋고추+파+깨+기타 이다.
설탕은 무엇에 쓰느냐고?
예전엔 찐빵 먹을 때, 꼭 하얀 설탕을 듬뿍 찍어 먹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모두 다 그랬다.
심지어 어떤 형은, 주인 눈 피해서, 찐빵에 침을 좌악 바르고 설탕을 찍었다.
그러면 설탕이 더 많이 찐빵에 묻을 수 있으니까.
만두를 시켰으니까 찐빵 찍어먹을 생각은 그만 두고, 젓가락통에서 젓가락을 골라 바지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다.
아무리 젓가락 숫자가 많아도 꼭 짝은 찾아 맞춰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막간을 이용하여 주인 눈치 한 번 살피고, 젓가락 끝에 침을 묻혀 설탕통에 잽싸게 꽂았다가 입으로 가져간다.
달콤한 설탕의 맛.
쩌엉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조수가 접시를 한 손에 든채 가마솥에서 만두를 꺼내고 있다.
하얀 증기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조수의 얼굴은, 아마도 증기의 뜨거움 때문인지, 매우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있다.
그리고 맨손으로!
맨손으로 부리나케 만두를 접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 있던 만두 몇개를 가장자리에 차근차근 쌓은 뒤 다시 쩌엉 하고 뚜껑을 닫는다.
주인이 빗은 만두 넣을 자리를 미리 확보해놓는 것이다.
하얀 플라스틱 만두 접시 위에는 나무 펄프를 얇게 눌러 만든 종이를 깔고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소담스럽게 담았다.
(예전에 소풍갈때 김밥을 이 펄프로 만든 나무도시락에 싸갔다. 먹고 나면 버리는 1회용)
아, 만두.
그 만두집의 만두는 주인 아저씨의 기술 덕분에 만두피가 유난히 얇았다.
거의 투명하게 보일만큼 얇아서 안의 내용물이 얼핏 보이기도 하면서 적당히 잘 싼채로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야물딱지게 머리를 틀어쥔 아름다움 이었다.
또한 크기도 결코 크지 않아서 그야말로 딱 한 입거리였다.
그 만두 하나를 입 안에 그러넣었을 때의 그 느낌!
만두로부터 쏟아져나오는 그 향과 맛과 뜨거움.
이 맛있는 한 입거리를 어떻게 하면 두 입거리로 만들어 먹느냐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였다.
뜨겁기 때문에 섣불리 반으로 덜컥 베문다면 입 천정의 허물은 내 것이 아닌거나 마찬가지.
첫번째 만두는 뜨거워서 반으로 쪼개지 못하고 한 입에 먹고,
두번째도 그렇고...
한 서너번째 되면 뜨거운 거는 적응이 되지만, 정말 맛이 있어서 한 입에...
뭐, 이러다 보면 남는 건 한 두개.
하지만 그것마저도 눈 딱감고 한 입에.
다 먹고 빈 만두 접시를 바라보면 즐거움 보다는 서운함이 더 솓구쳤다.
조금만 크게 만드시지...
조금만 아껴먹을걸...
조금만 천천히 즐기면서 먹을걸...
주인 아저씨가 마치 한 접시 더 먹으련? 하는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고 있다.
만두를 맛있게 만들어서 고마왔던 주인 아저씨의 얼굴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아아, 이러면 안되지.
난 먹을 만큼 먹은거야.
주인 아저씨의 그윽한 유혹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며 벌떡 일어선다.
때마침 누군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며 들어선다.
언덕 끝에 오를 때까지도 만두가 준 훈훈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러하겠지...
(20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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