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래...

인생은 오십부터래... ^^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시인은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그 후, 아득한 세월이 흐른 후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나타났다.
쇄애애애애-----타아아아아악!
???
쇄애애애애-----타아아아아악!
오전 8시쯤 되면 우리 아파트의 계단 계단 마다 울려퍼지는 소리.
상가 백양사 크리닝 아저씨의 굵직하면서도 목구멍에서 뭔가 끓는 듯한 저음부의 울림이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초성을 듣지 못하고 중간의 애--- 하는 소리만 들어도 우리 세탁소 아저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익숙한 외침소리가 여러가지가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메에에에밀무욱~, 찹-쌀-떡-
이 소리는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소리로서, 하이옥타브로 첫 소절을 뽑아올려야 한다.
메에에에밀무욱~
그 다음은 곧바로 저음(아마도 낮은 '도' 정도?) 짧은 평성으로 세 마디를 토해낸다.
찹-쌀-떡-
다시 붙여보면,
메에에에밀무욱~, 찹-쌀-떡-
메밀묵 부분과 찹쌀떡 부분의 음조가 구분이 안되면, 좋은 외침이라 할 수 없겠다.
어두운 골목길을 휘젓던 찹쌀떡 장수의 소리가 그립다.

그 다음에 여름에 듣는 소리,
슈바악! 쉬워언한 슈바아악! 슈박이 왔어요, 슈박!
훨씬 쉬원하게 들리는 슈박장수의 외침에 더위는 벌써 저만치 달아났다.

그에 뒤질쎄라, 하지만 요새는 좀 듣기 어려운 소리,
칼 가쓰으으-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쓰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여하간 칼장수는 외쳐댄다.
칼 가쓰으으-
뒤에 쓰- 소리가 가늘수록 더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나...

듣기 어려워진 소리로 이런 것도 있다.
베----개엣-쏘옥
뭔지 짐작이 가실라나?
여전에 우리 베던 쌀겨로 만든 베개는 습기가 차든지 아니면 오래되어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때때로 베갯속의 내용물을 바꿔줘야만 했는데, 새 베갯속을 넣은 베개를 베면 잠이 쏘옥쏘옥 잘 오곤 했다.
베----개엣-쏘옥

딱.딱.딱. 불조오심~
아, 이 소리는 들어본 사람이 극히 드문 소리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통행금지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의 이야기인데, 밤이 되면 정부에서 고용한 야경꾼이 딱딱이를 두드리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불조오심~, 딱.딱.딱.
전기가 잘 없고 호롱불이나 기름등잔을 이용하던 집이 많던 관계로 아차하는 사이에 밤새 화마에 모든 것을 잃는 집들이 제법 있었다.
딱.딱.닥. 불조오심~
그나저나 잘 자는 사람들을 깨우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1960년대 중반 아버지께서는 고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기금 모금을 기획하셨다.
그래서 지역빙과업체의 협찬을 얻어 대천해수욕장에서 아이스케키 장사가 시작되었다.
동생, 후배 등 젊은이들이 아이스케키통을 짊어지고 (사실은 팔뚝에 걸고) 나섰다.
께에끼, 아이스 께에끼-
아이스케키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그걸 즐길만한 소득도 안되던 때라 팔리는 것 보다 녹아없어지는 것이 더 많았다.
나도 하루는 열 개를 배급받아 금속아이스케키통에 얼음 한 자루를 넣고 해변으로...^^
께에끼, 아이스께에끼-
땀나고 더우면 해변을 향해 아이스케키통을 깔고앉은 후, 통을 열고 제일 많이 녹은 놈을 골라서.....혓바닥으로 아래에서 위까지 한 번 쫘악 훑어 올려준 후 다시 집어넣는다.
아~ 시원하니까 다시 힘을 얻어 뜨거운 모래사장을 걸어가며 소리친다.
께에끼, 아이스 께에끼-
한 시간 동안 하나도 못팔고 내가 먹은 것만 세 개. (미안합니다^^)

한 때, 우리의 가발산업이 우리나라의 수출선봉을 자임하던 시절엔 골목길에 아줌마들의 가냘픈 목소리들도 울려퍼졌다.
머릿카락 팔아요오~
아줌마들은 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니며 짧게 끊는 소리로 외쳤다.
머릿카락 팔아요오~
긴 머리 숨뻥 자르고 눈물 글썽이던 처녀들 손에는 지폐 몇 장이 쥐어졌다.

이제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세탁소 아저씨 이외에는 육성을 듣기는 힘들어졌다.
마이크 장치를 한 봉고트럭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녹음된 소음을 양산해내고 있을 뿐이다.
기술의 발달이 편리함이라는 구실 아래 점점 인간적인 미를 밀어내고 있는 한 단면인지도......

언젠가 라디오에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라는 제목으로, 전국에 숨어있는 구전 소리들을 모아서 연속으로 방송하던 것을 기억한다.
누가 알겠는가?
이 소리들도 언젠가는 '잃어버린 우리의 소리' 로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지......^^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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