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잠 들었을까?
숨이 콱콱 받쳐오르고 목이 메말라 깔깔하기 이를데 없었다.
벌떡 일어나 후끈히 달아오른 난방히터를 낮추어주고 두리번 두리번 물그릇을 찾는다.
쏴-아-
내 창 앞에 있는 carport 의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만개하기 시작하는 벚꽃들에게 미안한 모양인지, 봄비가 캄캄한 밤을 뚫고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벌써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주차장 한 켠으로 작은 시내를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다.
봄비...
고려 인종 때의 시인 정지상.
그는'송인(送人)'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류년년첨록파)
비개인 제방에 풀빛이 푸르구나
그대를 남으로 보내는 포구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네.
대동강의 물이어찌 마를 수 있겠는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여지는데...
봄비를 맞으며 님을 보내는 절대적인 슬픔을 잔잔하게 노래했다.
하지만, 오늘 듣고 싶은 노래는 이것이 아니다.
보다 더 강렬한 봄비를 들어야만 하는, 그런 밤이다.
그 때,
나의 머리, 나의 가슴 속에서부터 아스라히 울려나오기 시작하는 음악.
마치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기관차의 거친 숨결처럼 터져나오는...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 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 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 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 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 없이 흐르네
봄비!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한 없이 흐르네
봄비!
잎새 위에, 지붕 위에, 도로 위에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보고있노라면, 그 음악이 그렇듯 들려온다.
짙은 쏘울의 향취가 가득한 그의 노래에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뚝뚝 떨어져 나온다.
깊게 문드러져 버린 고독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처절함이 느껴진다.
박인수.
그는 전쟁고아였고,전쟁입양아였고, 미군 하우스보이였고미8군클럽의 카수였다.
그로부터 1970년 신중현의 Questions 그룹에의 객원가수로봄비를 부르면서 뜰 때까지의 그의 살아온 인생역정이 그의 목소리에젖어있다.
외로움이 비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1975년 대마초파동.
와신상담 끝에 1980년 또 하나의 명곡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보셨나요'발표.
그리고......
많은 가수들이 봄비에 관련된 노래들을 불렀고, 또 많은 가수들이 이 '봄비' 를 불렀지만 나는 그의 노래처럼 맛깔스러운, 봄비스러운 봄비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신들린 듯 노래하는 김추자나 작곡한 신중현의 노래 조차도 그의 봄비 느낌에는 비할수 없다.
특히 후렴부분에서, 마이크 저 멀리서 봄비가 내린다고 절규하는 부분이 나는 좋다.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그 느낌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에서 마지막 부분 '이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 하는 부분처럼 강렬하다.
봄비는 회생의 비.
그 비를 맞고 생명이 움트고 겨우내 말랐던 땅에 해갈을 주는 따뜻한 비다.
그래서 그 비는 희망의 비, 기쁨의 비, 그리고 생명의 비이다.
그런데 박인수의 비는 그렇지가 아니하다.
슬픔의 비, 아픔의 비, 처절한 외로움의 비인 것이다.
아침해가 돋아올 때 즈음이면, 이 비는 잎새 끝에 맺힌 작은 방울들로서만 존재할 것이다.
큰 흐름은 결국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는 것...
그도 알고,나도 알고, 봄비도 이미 알고 있다.
아프게 절규한다 하더라도우리는 결국 그렇게 그렇게 시류에 편승하며 또 흘러간다는 것.
그래서 그는 또 다른 그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이렇게 가는 것이 세월이라면
너무나 아쉬워 너무나 아쉬워지네
그토록 사무치던 지난 날들은
이제는 쓸쓸히 아쉬움 남기며
나에게 손짓하네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당신이 그리워지면 울던
그 날은 턱 없이 흘러갔지만
애타게 그리던 내 마음 속에는
영원히 영원히 남으리
두 눈을 감으며 또 다시 그날을 생각하네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
그의 서러운 마음이 봄비로 내린다.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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